<연재소설> ‘몽키하우스’ 미군 위안부 수용소 (28)환락의 하루가 시작되다

  • 김영권 작가 nammunsan@naver.com
  • 등록 2026.06.01 03:00:11
  • 호수 158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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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는 남대문이나 동대문이 아니라 ‘나라 보지’를 말하는 거야. 국가에서 우리 몸뚱이를 이용했으니…그 무서운 곳을 ‘언덕 위의 하얀 집’이라 부른 건 낭만이 아니라 야유하기 위해서였지…우리 보지는 나라의 보지였어!” <어느 위안부 할머니의 절규>

까마득하던 60년대가 저물고 1970년대가 시작되자, 신문과 방송은 위대한 영도자 박 대통령께서 온 민족이 함께 잘 사는 복지국가를 건설키 위한 원대한 청사진을 발표했다고 떠들어댔다.

하지만 기지촌이라는 특수한 환경 때문인지 별 반향이 없었다.

특수한 환경

그것보다는 AFKN 방송을 듣고 입수한 미군 철수 방침이라든가 한국 정부의 대책, 외교적 읍소와 방위비 분담금 인상 그리고 미군 장병 건강을 위한 기지촌 단속과 검진 강화 등 찜찜한 소식만 유언비어를 달고 근심스레 떠돌았다.

“형, 우리 남한과 북한이 통일돼 한민족끼리 오순도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다른 나라 사람들과 함께 세계 평화에도 협조하고 말야. 그러면 미국이 이 작은 땅을 무기 전시장으로 만들지 않아도 되고…또 몸을 팔다가 외국 군인에게 흉악한 죽음을 당하지 않을 텐데.”

청운은 기지촌 여자들의 풀이슬 같은 삶에 이어, 북파공작원으로 덧없이 죽어간 어린 동료들을 생각하며 말했다.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냐만…난 미국이 우리나라를 홀랑 집어삼켜 버릴까 봐 걱정이야.”

“뭐?”

“이 세상엔 히틀러 같은 사람과 채플린 같은 사람 그리고 그 둘을 섞어 놓은 듯한 자들도 있겠는데…내 생각엔, 미국은 겉으론 채플린 같으면서도 속은 히틀러 같다는 생각이 가끔 들더라구. 히히히.”

피에로는 복화술사처럼 입은 다문 채 웃었다. 미군 장교 클리프가 돌아보자 피에로는 슬쩍 표정을 바꿔 마치 하탈처럼 웃어 주었다.

“아무튼 덕분에 좋은 구경하는군. 이건 형 덕분이야, 저 친구 덕택이야?”

“나도 몰라. 흐흣.”

그들은 미군 장교 전용극장에 들어가 ‘목구멍 깊숙이’란 영화를 선명한 무삭제판으로 보고 난 후 카페에서 향긋한 커피를 마셨다.

다시 번다한 하루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청운의 하루는 일반인들과 달리 새벽 2시쯤부터라고 할 수도 있고 오후 3시부터라고도 할 수 있었다. 클럽의 시간은 미군들의 생활 조건에 맞춰져 돌아갔다.

그들의 군영 업무가 끝나는 오후 5시 무렵에 문을 열기 때문에 그 전에 일어나 준비할 일이 많았다.

홀 바닥을 깨끗이 닦은 후 탁자 위에 올려놓았던 의자를 내려 정리하는 건 기본이고, 주방을 청소하고 당일 필요한 각종 식료품들을 제자리에 비치해 놓아야 했다.

칼도 새파란 빛이 날 정도로 잘 갈아 놓아야 했는데, 그렇지 않을 경우엔 주방장이 ‘이래서는 파도 송송 쓸지 못하겠군. 시험적으로 한번 찔러 볼까?’ 하고 빙글빙글 웃으며 칼날을 청운의 복부에 들이댔다.

준비가 끝나면 모두 홀 지배인 앞에 부동자세로 서서 일일 훈시를 들었다. 가능한 친절하게, 속임수가 아니라 달콤함으로, 매상은 최고로!

홀 보이에 비해 카운터 보는 여자나 바텐더와 기도(문지기)는 나름 좀 자유로운 태도를 보였다.

홀 천정에 장치된 무지갯빛 유리 공이 빙글빙글 돌아가기 시작하면 들뜬 환락의 하루가 문을 연다. 그건 고락과 같은 것이다.

쾌락을 얻기 위해서는 한 개인 속에서도 고통이 따라 생기듯, 어떤 사람들이 즐겁기 위해서는 어떤 다른 사람들의 고생이 소비돼야 한다. 고락 총량의 법칙이라고나 할까?

혹은 고통 총량의 법칙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고통의 양은 같다는…하지만 과연 그럴까?

널따란 홀은 서구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서부영화에 나오는 듯한 긴 목로 앞엔 분홍색 의자가 놓였고, 카운터 뒤쪽으로 설치된 투명한 유리 진열장엔 양주와 맥주 그리고 콜라를 비롯한 각종 음료수 외에도 스낵류와 아몬드 봉지 따위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한쪽 구석에 설비된 음악실로 장발에 낯빛이 흰 디스크자키가 들어가면 양쪽 벽에 붙은 오디오에서는 감미로운 팝송이나 재즈가 흘러나왔다.

그건 쾌락을 갈구하는 육체와 혼백을 부르는 듯이 느껴졌다.

진한 화장으로 일상을 감춘 여자들
홀은 점점 몽환적인 요지경 속으로

그때쯤이면 진한 화장으로 일상과 과거를 감춘 여자들이 슬슬 홀 안으로 기어들었다.

그녀들 중 일부는 클럽 건물 위층의 방에서 기거했고, 일부는 옆에 붙은 별채에서 마마상(포주)과 함께 생활하거나, 아예 외부에 방을 얻어 살아가기도 했다.

그런 독립 여자들은 미군과 일정기간 계약을 맺고 동거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윽고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미군들이 밀려들기 시작하면 이국적인 체취는 한결 짙어지고 음침한 색전등들이 반짝이며 홀은 점점 몽환적인 요지경 속으로 변해 갔다.

마치 저 멀리 밀림에서 온갖 동물들이 짝짓기를 하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다르다고 할까, 미군들은 자기 마음에 드는 여자를 골라 미약을 마시고 춤을 추었다.

무지갯빛 미러볼이 천장에서 환락의 신의 눈처럼 빙글빙글 천천히 돌며 요염스런 빛을 비추는 동안 이국 남녀들은 그 인조 유리 궁전을 맴돌며 찰나적인 요지경의 꿈을 꾸는지도 몰랐다.

청운은 문득 숨이 막힌 듯 답답해지며 왠지 모를 허망감에 가슴속이 메슥거릴 때가 있었다. 그러면 잠시나마 홀 밖으로 나가 선 채 차가운 겨울바람을 들이마셨다.

아무데도 내가 살 곳은 없구나. 이젠 돌아갈 고향도 모르고….

청운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겨울 하늘에 떠서 떨고 있는 별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곧 눈물이 솟을 듯해 고개를 숙였다.

입구에서는 기도 녀석이 천국 또는 지옥의 문지기인 양 잔뜩 폼을 잡고 서서 양공주들의 보건증(성병 검진증)을 검사하고 있었다.

일주일에 두 번씩 보건소에 가서 음부를 벌린 채 보건소 남자 의사의 진찰을 받는다는 건 아무리 몸 팔아 먹고 사는 여자일지언정 수치스럽고 괴로운 일이었으리라.

차라리 인간임을 포기하고 생각도 감정도 없는 일개 나무 인형으로 변하길 바라지 않았을까. 그래도 살아가기 위해서는 국가의 시책에 순종해야 할 뿐이다.

나라에서 인정하지 않는 인권을 주장한다는 건 범죄이기에 어긴다면 지옥 같은 감옥과 죽음이 기다리는 엄혹한 독재 시대였다.

성병에 대한 방비는 당연한데, 문제는 한국 여자들만 강제적으로 단속할 뿐 미군은 그저 자유방임한다는 점이었다.

섹스 천국인 아메리카 뒷골목에서 깜냥껏 놀던 놈들이 몸속에 잠복시킨 채 지니고 온 강력한 각종 성병균들은 한국 여자의 자궁 속에서 독버섯을 피우며 점점 더 창궐할 수 있는데도, 미군 당국과 그들의 하수인 격인 한국 정부는 오직 힘없는 여자들만 닦달했다.

기도 녀석에게 걸리면 클럽 출입을 금지당할 뿐이지만, 만일 재수 없게 미군 헌병에게 붙잡히는 날이면(성병에 걸렸든 걸리지 않았든) 일단 감옥으로 끌려가야 했다.

그 감옥은 바로 악명 높은 낙검자 수용소인 몽키하우스란 곳이었다.

들고나는 사람들이 갑자기 많아져서 청운은 급히 홀 안으로 들어갔다. 이제 본격적인 유흥 시간인 것이다.

생음악을 연주하는 캄보밴드가 로맨틱하면서도 격렬한 곡조를 흘려내는 동안 청운은 부지런히 어지러운 빈 테이블을 치우고 좌석을 정돈했다.

그리고 눈치 빠르게 물레걸로 지저분한 바닥을 닦아냈다.

괴로운 진찰

물론 힘든 일이긴 했지만 그는 고생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닥치는 모든 일을 가능한 잘 겪어 두면 나중에 의외로 도움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조금쯤 알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과거에 겪었던 참혹한 일들을 회상하면 그 정도는 충분히 견딜 만했다.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kangjoomo@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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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용지가 없다니…’ 초유의 사태 후폭풍

‘투표용지가 없다니…’ 초유의 사태 후폭풍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선거가 끝난 뒤에는 자연스럽게 후폭풍이 따라온다. 이긴 쪽은 동력을 얻고 진 쪽은 수습에 나선다. 하지만 이번 지방선거는 결과만큼이나 선거관리위원회의 행보가 회자할 것으로 보인다. ‘투표용지 부족’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불러온 후폭풍이 지방선거를 뒤흔드는 모양새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이재명정부 출범 1년(4일)을 앞두고 치러졌다. 선거 자체가 국민의 심판을 받는다는 취지로 치러지는 만큼 여야는 결과에 사활을 걸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광역단체장 등에서 싹쓸이로 의회 권력에 이어 지방 권력까지 차지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고, 국민의힘은 ‘견제’를 외치며 맞섰다. 누구 손도 안 들어줘 민심은 절묘했다.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민주당은 총 16개 시‧도 중 12곳에서 이겼다. 결과만 놓고 보면 압승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격전지였던 서울시장 선거에서 채 1% 차이도 나지 않게 석패했다. 관심을 모았던 대구에서도 졌다.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도 관심이 집중된 부산 북구갑에서 의석을 내줬다. 반면 국민의힘은 선거 초반 전패를 예상했던 것과 비교해 상당히 선전했다는 평을 받는다. 서울을 수성했고 텃밭인 대구에서도 예상보다 수월하게 이겼다. 경기 평택을 선거에서도 ‘어부지리’지만 의석 하나를 건졌다. 민주당으로선 이겨도 찜찜한, 국민의힘은 졌지만 미묘하게 웃을 수 있는 결과가 나온 셈이다. 이제 여야는 물론 이재명 정부는 선거 결과에 따른 후폭풍을 마주해야 한다. 여야 모두 ‘완벽하게 이겼다, 혹은 졌다’는 결과를 받아든 게 아니기에 후폭풍은 작지 않으리라고 예상된다. 전당대회를 앞둔 민주당은 이번 선거 결과를 두고 당권 싸움을 시작할 것이고, 보수 궤멸 직전에 간신히 살아남은 국민의힘에서도 내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여기에 또 다른 후폭풍이 더해졌다는 점이다. 심지어 이 후폭풍의 크기는 선거 결과에 따른 후폭풍과는 차원이 다르다. 선거의 신뢰성 문제까지 뒤흔들 수 있는 수준의 초대형 태풍급이다. 선거에서 심판 역할을 맡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가 도마 위에 올랐기 때문. 지난 3일 지방선거 본투표 중에 서울 일부 지역에서 투표용지 부족으로 유권자가 투표하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유권자의 참정권 행사라는 선거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에 취지가 훼손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일이 투표소 한 군데가 아니라 십수 군데서 발생했다는 점이다. 선관위에 따르면 지난 3일 서울 송파구 잠실 일대를 비롯한 12개 투표소와 강남구 1개 투표소, 광진구 1개 투표소에서 투표용지가 부족해 유권자들이 투표하지 못하고 현장에서 대기하는 일이 벌어졌다. 선관위는 사태를 인지한 후 투표용지를 이송하고 현장 대기 인원에 한해 투표를 보장하겠다고 했다. 소쿠리 이어 투표지가 없다? 부정선거 논란에 불 질렀다 하지만 잠실7동 제2투표소는 대기표를 받은 유권자를 대상으로 오후 10시까지 투표 시간을 연장하는 등 혼란이 발생했다. 동시에 소식을 접한 시민과 유튜버 등이 투표소에 몰리면서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일부 투표소에서는 투표함 반출을 둘러싸고 선관위 관계자와 시민 사이에 대치 상황까지 벌어졌다. 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선거의 공정성과 신뢰성에 강한 타격을 입혔다. 특히 서울시장 선거는 국민적 관심이 집중됐던 데다 개표가 진행되면서 출구조사보다 실제 결과가 훨씬 박빙으로 나오고 있는 상태였다. 개표가 진행되는 와중에 투표도 동시에 이뤄지는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여야는 물론 지지자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국민의힘은 개표 중단을 요구했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한 지역이 공교롭게도 서울 지역 내에서 비교적 보수세가 강한 ‘강남권’으로 확인되자 당력을 집중한 것이다. 국민의힘 장동혁 상임선대위원장은 긴급 기자회견에서 개표를 중단하고 결과에 따라 서울시 선거를 다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표를 멈추고 상황에 따라 재선거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민주당은 선관위에 책임을 묻겠다면서도 국민의힘의 개표 중단, 재선거 요구는 일축했다. 민주당 조승래 총괄선대본부장은 국민의힘의 요구에 ‘일고의 가치가 없다’고 말했다. 선관위의 부실한 선거 관리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겠다고 약속하면서도 선거를 다시 치를 필요까지는 없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선관위 역시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도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선거 연기나 재선거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앞서 허철훈 선관위 사무총장은 “국민 여러분께 큰 혼란과 심려를 끼쳐 드렸다”며 “소중한 주권을 행사하기 위해 투표소를 찾아주신 국민께 불편을 드리고 공정한 선거 관리에 대한 신뢰를 훼손한 점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박빙에서 불 질렀다 그러면서 “중앙선관위는 이번 사안을 엄중히 인식하고 있으며 개표가 종료되는 즉시 일부 투표소의 투표용지가 부족했던 원인과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해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며 “미흡한 준비와 대처로 실망을 드리게 돼 다시 한번 사과드린다”고 덧붙였다. 또 이상능 선관위 선거1국장은 “이런 사례가 과거 선거에서 발생했다는 보고를 받은 적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송파구의 경우 전체 유권자 수의 50% (규모의 투표용지)를 인쇄한 것으로 파악했다”고 말했다. ‘몇 표 차이로 선거 당락이 갈리는 경우가 있는데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윤재수 선거관리정책실장은 “저희가 직접 말씀드리기는 좀 곤란할 것 같다”며 “소송 절차 등을 통해 법원의 결정에 따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답했다. 선관위는 지난 4일 0시께 긴급 위원회를 열고 수습 방안을 논의했다. 이후 위원회는 “(투표용지 부족 문제가) 공직선거법에 따른 선거 연기나 재선거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입장문을 내놨다. 또 “현재 진행되는 개표를 중단하는 것은 불가하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의 요구에 선을 그은 것이다. 이번 사태로 선관위에 개혁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쏟아지고 있다. 이번 일뿐만 아니라 선거 때마다 일어났던 ‘선관위발’ 논란이 ‘파묘’되는 분위기다. 가장 큰 논란 중 하나는 ‘소쿠리 투표’다. 2022년 대선 당시 코로나19 확진자와 격리자의 사전투표 용지를 간이 용기나 쇼핑백 등에 담으면서 촉발된 논란이다. 지난 조기 대선 때도 서울 신촌의 한 사전투표소에서 관외 선거를 위해 대기하던 일부 유권자가 대기 줄이 길다는 이유로 투표용지를 받은 채 식사하고 돌아오는 일도 있었다. 선관위의 행태는 일부 극우층에서 제기하는 ‘부정선거’ 논란에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이들은 본투표에 앞서 이틀간 진행되는 사전투표가 조작됐다는 등 부정선거가 조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주장을 내세우는데, 선관위 관련 논란도 그 근거로 언급하고 있다. 재선거까지 나왔지만… 부정선거 논란을 차단해야 할 기관에서 오히려 의심만 제공하는 꼴이다. 일각에서는 선관위 내부 사정이 반복되는 부실 선거의 배경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한 언론이 민주당 채현일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1일 기준 선관위 휴직자 수는 176명으로 집계됐다. 최근 10년 새 두 번째로 많은 수치다. 육아휴직이 124명으로 가장 많았고 일반 질병 휴직 30명, 가족 돌봄 휴직 11명, 해외 동반 휴직 8명 등이 뒤를 이었다. 지방선거, 대통령선거, 국회의원 선거 등 이른바 3대 전국 선거 때마다 휴직자가 늘어나는 선관위의 고질적인 병폐가 또다시 되풀이됐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실제 2022년 5월 기준 선관위 휴직자 수는 218명으로 최근 10년 기준으로 가장 많았다. 당시 3월에는 대선, 6월에는 지방선거가 각각 치러졌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으로 갑작스럽게 치러진 지난해에도 선거를 한 달 앞둔 5월 기준 휴직자는 145명에 달했다. 이 같은 문제가 반복적으로 지적되자 선관위도 선거 기간에는 휴직을 자제하라는 내용의 공지를 내리는 등 개선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법으로 보장된 육아휴직 등은 강제로 제한할 수 없으니 인력을 채용하는 방향으로 인력 공백을 막겠다는 대응책도 내놨다. 하지만 앞서 선관위 내부에서 채용 관련 비리 의혹이 크게 불거지면서 이마저도 미덥지 못한 방안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더 큰 문제는 선거 때마다 논란이 불거지고 내부의 고질적인 병폐 등으로 지적을 받는 와중에도 선관위는 큰 변화가 없다는 점이다. 독립된 ‘헌법기관’이라는 방패를 내세워 ‘지금만 넘기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이 선관위를 좀먹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자정을 할 수 없으면 외력이라도 가해야 하는데 그것조차 막혀 있다는 것이다. 선거 때마다 구설 불거지는데… 자정은커녕 외부 감사도 안 돼 2023년 5월 당시 선관위 사무총장, 사무차장 등 고위 간부의 자녀가 선관위 경력직 채용에 특혜를 받았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아빠 찬스’ 논란의 시발점이다. 이후 선관위 자체 특별감사 결과 고위직 자녀 특혜 채용이 관행적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감사원이 선관위의 인력 관리 실태에 관한 직무감찰에 착수했다. 그러자 선관위는 ‘독립기관’임을 내세우면서 감사원 감사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회는 물론 여론의 반발이 거셌다. 선관위는 감사원 직무감찰을 부분적으로 수용하면서도 “감사원의 감사 범위를 명확히 정리할 필요가 있다”며 2023년 7월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헌재는 선관위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해 2월 헌재는 “이 사건 직무감찰은 헌법 및 법률상 권한 없이 이뤄진 것으로 선관위의 독립적 업무 수행 권한을 침해했다”고 밝혔다. 선관위가 감사원의 감사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헌법에 기재된 감사원의 감사 범위가 “행정부 내부의 통제장치로서의 성격”인 만큼 정부와 독립된 헌법기관인 선관위는 국회, 법원, 헌재와 같이 직무감찰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그 배경으로 선관위의 선거 관리 업무를 들었다. 대통령 소속 기관인 감사원이 독립된 헌법 기구인 선관위를 직무감찰할 수 있게 되면 선거 관리 공정성에 대한 신뢰가 훼손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감사원의 직무감찰 배제가 곧바로 부패 행위에 대한 성역의 인정으로 호도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헌재는 “감사원 직무감찰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이를 대신할 독립성과 전문성을 갖춘 자체 감찰기구가 마련될 것이라는 점을 전제로 한 것”이라며 “선관위는 자체 감찰제도의 실효성을 담보함으로써 우려를 불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결국 내부 자정 기능에 기대를 건 것이다. 이번에는 고쳐질까 하지만 채용 의혹은 차치하고라도 그 이후에도 가장 본연의 업무인 선거 관리에서 계속해서 잡음을 내고 있다는 점에서 선관위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곱지 않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4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민주공화국에서 무엇보다 철저해야 할 선거 관리에 납득하기 쉽지 않은 허점이 발생한 점에 대해 매우 큰 유감을 표한다”며 “국민의 참정권이 한치라도 훼손되는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신뢰할 만한 적절한 대책을 조속하게 마련해 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제 지방선거는 끝났다. 선관위는 이 후폭풍을 감당할 수 있을까.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