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는 남대문이나 동대문이 아니라 ‘나라 보지’를 말하는 거야. 국가에서 우리 몸뚱이를 이용했으니…그 무서운 곳을 ‘언덕 위의 하얀 집’이라 부른 건 낭만이 아니라 야유하기 위해서였지…우리 보지는 나라의 보지였어!” <어느 위안부 할머니의 절규>
까마득하던 60년대가 저물고 1970년대가 시작되자, 신문과 방송은 위대한 영도자 박 대통령께서 온 민족이 함께 잘 사는 복지국가를 건설키 위한 원대한 청사진을 발표했다고 떠들어댔다.
하지만 기지촌이라는 특수한 환경 때문인지 별 반향이 없었다.
특수한 환경
그것보다는 AFKN 방송을 듣고 입수한 미군 철수 방침이라든가 한국 정부의 대책, 외교적 읍소와 방위비 분담금 인상 그리고 미군 장병 건강을 위한 기지촌 단속과 검진 강화 등 찜찜한 소식만 유언비어를 달고 근심스레 떠돌았다.
“형, 우리 남한과 북한이 통일돼 한민족끼리 오순도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다른 나라 사람들과 함께 세계 평화에도 협조하고 말야. 그러면 미국이 이 작은 땅을 무기 전시장으로 만들지 않아도 되고…또 몸을 팔다가 외국 군인에게 흉악한 죽음을 당하지 않을 텐데.”
청운은 기지촌 여자들의 풀이슬 같은 삶에 이어, 북파공작원으로 덧없이 죽어간 어린 동료들을 생각하며 말했다.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냐만…난 미국이 우리나라를 홀랑 집어삼켜 버릴까 봐 걱정이야.”
“뭐?”
“이 세상엔 히틀러 같은 사람과 채플린 같은 사람 그리고 그 둘을 섞어 놓은 듯한 자들도 있겠는데…내 생각엔, 미국은 겉으론 채플린 같으면서도 속은 히틀러 같다는 생각이 가끔 들더라구. 히히히.”
피에로는 복화술사처럼 입은 다문 채 웃었다. 미군 장교 클리프가 돌아보자 피에로는 슬쩍 표정을 바꿔 마치 하탈처럼 웃어 주었다.
“아무튼 덕분에 좋은 구경하는군. 이건 형 덕분이야, 저 친구 덕택이야?”
“나도 몰라. 흐흣.”
그들은 미군 장교 전용극장에 들어가 ‘목구멍 깊숙이’란 영화를 선명한 무삭제판으로 보고 난 후 카페에서 향긋한 커피를 마셨다.
다시 번다한 하루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청운의 하루는 일반인들과 달리 새벽 2시쯤부터라고 할 수도 있고 오후 3시부터라고도 할 수 있었다. 클럽의 시간은 미군들의 생활 조건에 맞춰져 돌아갔다.
그들의 군영 업무가 끝나는 오후 5시 무렵에 문을 열기 때문에 그 전에 일어나 준비할 일이 많았다.
홀 바닥을 깨끗이 닦은 후 탁자 위에 올려놓았던 의자를 내려 정리하는 건 기본이고, 주방을 청소하고 당일 필요한 각종 식료품들을 제자리에 비치해 놓아야 했다.
칼도 새파란 빛이 날 정도로 잘 갈아 놓아야 했는데, 그렇지 않을 경우엔 주방장이 ‘이래서는 파도 송송 쓸지 못하겠군. 시험적으로 한번 찔러 볼까?’ 하고 빙글빙글 웃으며 칼날을 청운의 복부에 들이댔다.
준비가 끝나면 모두 홀 지배인 앞에 부동자세로 서서 일일 훈시를 들었다. 가능한 친절하게, 속임수가 아니라 달콤함으로, 매상은 최고로!
홀 보이에 비해 카운터 보는 여자나 바텐더와 기도(문지기)는 나름 좀 자유로운 태도를 보였다.
홀 천정에 장치된 무지갯빛 유리 공이 빙글빙글 돌아가기 시작하면 들뜬 환락의 하루가 문을 연다. 그건 고락과 같은 것이다.
쾌락을 얻기 위해서는 한 개인 속에서도 고통이 따라 생기듯, 어떤 사람들이 즐겁기 위해서는 어떤 다른 사람들의 고생이 소비돼야 한다. 고락 총량의 법칙이라고나 할까?
혹은 고통 총량의 법칙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고통의 양은 같다는…하지만 과연 그럴까?
널따란 홀은 서구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서부영화에 나오는 듯한 긴 목로 앞엔 분홍색 의자가 놓였고, 카운터 뒤쪽으로 설치된 투명한 유리 진열장엔 양주와 맥주 그리고 콜라를 비롯한 각종 음료수 외에도 스낵류와 아몬드 봉지 따위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한쪽 구석에 설비된 음악실로 장발에 낯빛이 흰 디스크자키가 들어가면 양쪽 벽에 붙은 오디오에서는 감미로운 팝송이나 재즈가 흘러나왔다.
그건 쾌락을 갈구하는 육체와 혼백을 부르는 듯이 느껴졌다.
진한 화장으로 일상을 감춘 여자들
홀은 점점 몽환적인 요지경 속으로
그때쯤이면 진한 화장으로 일상과 과거를 감춘 여자들이 슬슬 홀 안으로 기어들었다.
그녀들 중 일부는 클럽 건물 위층의 방에서 기거했고, 일부는 옆에 붙은 별채에서 마마상(포주)과 함께 생활하거나, 아예 외부에 방을 얻어 살아가기도 했다.
그런 독립 여자들은 미군과 일정기간 계약을 맺고 동거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윽고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미군들이 밀려들기 시작하면 이국적인 체취는 한결 짙어지고 음침한 색전등들이 반짝이며 홀은 점점 몽환적인 요지경 속으로 변해 갔다.
마치 저 멀리 밀림에서 온갖 동물들이 짝짓기를 하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다르다고 할까, 미군들은 자기 마음에 드는 여자를 골라 미약을 마시고 춤을 추었다.
무지갯빛 미러볼이 천장에서 환락의 신의 눈처럼 빙글빙글 천천히 돌며 요염스런 빛을 비추는 동안 이국 남녀들은 그 인조 유리 궁전을 맴돌며 찰나적인 요지경의 꿈을 꾸는지도 몰랐다.
청운은 문득 숨이 막힌 듯 답답해지며 왠지 모를 허망감에 가슴속이 메슥거릴 때가 있었다. 그러면 잠시나마 홀 밖으로 나가 선 채 차가운 겨울바람을 들이마셨다.
아무데도 내가 살 곳은 없구나. 이젠 돌아갈 고향도 모르고….
청운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겨울 하늘에 떠서 떨고 있는 별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곧 눈물이 솟을 듯해 고개를 숙였다.
입구에서는 기도 녀석이 천국 또는 지옥의 문지기인 양 잔뜩 폼을 잡고 서서 양공주들의 보건증(성병 검진증)을 검사하고 있었다.
일주일에 두 번씩 보건소에 가서 음부를 벌린 채 보건소 남자 의사의 진찰을 받는다는 건 아무리 몸 팔아 먹고 사는 여자일지언정 수치스럽고 괴로운 일이었으리라.
차라리 인간임을 포기하고 생각도 감정도 없는 일개 나무 인형으로 변하길 바라지 않았을까. 그래도 살아가기 위해서는 국가의 시책에 순종해야 할 뿐이다.
나라에서 인정하지 않는 인권을 주장한다는 건 범죄이기에 어긴다면 지옥 같은 감옥과 죽음이 기다리는 엄혹한 독재 시대였다.
성병에 대한 방비는 당연한데, 문제는 한국 여자들만 강제적으로 단속할 뿐 미군은 그저 자유방임한다는 점이었다.
섹스 천국인 아메리카 뒷골목에서 깜냥껏 놀던 놈들이 몸속에 잠복시킨 채 지니고 온 강력한 각종 성병균들은 한국 여자의 자궁 속에서 독버섯을 피우며 점점 더 창궐할 수 있는데도, 미군 당국과 그들의 하수인 격인 한국 정부는 오직 힘없는 여자들만 닦달했다.
기도 녀석에게 걸리면 클럽 출입을 금지당할 뿐이지만, 만일 재수 없게 미군 헌병에게 붙잡히는 날이면(성병에 걸렸든 걸리지 않았든) 일단 감옥으로 끌려가야 했다.
그 감옥은 바로 악명 높은 낙검자 수용소인 몽키하우스란 곳이었다.
들고나는 사람들이 갑자기 많아져서 청운은 급히 홀 안으로 들어갔다. 이제 본격적인 유흥 시간인 것이다.
생음악을 연주하는 캄보밴드가 로맨틱하면서도 격렬한 곡조를 흘려내는 동안 청운은 부지런히 어지러운 빈 테이블을 치우고 좌석을 정돈했다.
그리고 눈치 빠르게 물레걸로 지저분한 바닥을 닦아냈다.
괴로운 진찰
물론 힘든 일이긴 했지만 그는 고생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닥치는 모든 일을 가능한 잘 겪어 두면 나중에 의외로 도움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조금쯤 알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과거에 겪었던 참혹한 일들을 회상하면 그 정도는 충분히 견딜 만했다.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