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30주년 특별 초대석> 배성훈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자문위원 ‘AI 시대’ 종이신문 미래는?

“신뢰를 담은 명품 언론으로”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신문에 나왔어요.” 그 말 한마디가 정보의 신뢰도를 보장하던 때가 있었다. 대판 신문을 양손으로 펼쳐 들고 안경을 코에 걸친 채 기사를 읽는 어르신의 모습은 식자층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이미지였다. 그로부터 수십년이 지난 현재, 신문은 읽는 사람은커녕 그 존재 자체가 희미해졌다. AI가 대다수의 삶에 침투해 있는 이때, 신문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공중파 뉴스와 조‧석간 신문으로 정보를 얻던 시대는 끝났다. 무슨 일만 일어나면 뉴스 채널을 찾고 다음 날 신문에서 소식을 확인하던 일도 사라졌다. 이제는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를 통해 생성된 정보가 뉴스와 신문을 통해 최종 확인되고 있다. 정보의 시발점에서 종점으로 대중 매체 포지션이 변화한 것이다.

폭발적인
발전 속도

유튜브로 대표되는 뉴미디어의 등장과 AI의 발달은 뉴스와 신문, 즉 레거시 미디어의 종말을 앞당기는 듯한 모양새다. 대중은 특정 시간에 제한된 정보를 전달받는 대신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정보를 얻는 상황에 익숙해졌다. 또 AI 시대의 도래는 정보의 소비자였던 대중을 공급자로 탈바꿈시켰다.

신문은 레거시 미디어 중에서도 그 역사와 유래가 긴 편에 속한다. 역으로 말하면 현 시점에서 대중이 가장 고리타분하게 느끼는 매체라는 뜻이다. 실제 인쇄 매체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빠른 속도로 떨어지고 있다. 성인 가운데 절반 이상이 1년에 책을 1권도 읽지 않는 독서율에 비춰보면 신문을 읽는 비율을 뜻하는 열독률은 그보다 더 낮으리라고 추정된다.

정말 신문의 시대는 끝난 걸까. 배성훈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자문위원은 “신문은 사치재이자 프리미엄 브랜드로 재정의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패션으로 비교하면 이른바 ‘명품화’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오픈AI의 등장으로 정보가 빠른 속도로 만들어지고 소비되는 시대에 신문이 ‘슬로우 저널리즘’이라는 틈새시장을 개척할 것으로 낙관했다.

지난해 9월8일 공식 출범한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는 이재명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은 대통령 직속 기구이자 국가 AI 정책의 최상위 컨트롤타워다. <일요시사>는 지난달 7일 전북 완주 공간정보연구원에서 배 자문위원을 만나 ‘AI 시대, 신문의 미래’를 주제로 대담을 나눴다. 다음은 배 자문위원과의 일문일답.

유튜브 이어 인공지능까지
설 자리 잃어가는 듯했지만

-AI 발전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다.

▲(AI는) 이제 단순한 대화 도구를 넘어 스스로 판단하고 실행하는 ‘지능형 에이전트’이면서 ‘물리적 실체’로 진화했다. 특히 사고 능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GPT-5.4나 Gemini3.1 같은 최신 모델은 문제 난이도에 따라 ‘생각하는 시간’을 스스로 조절한다. 사람과 대화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워지고 있다.

-앞으로 어디까지 발전할 것으로 보나?

▲인간과 구분이 불가능한 수준을 넘어 스스로 진화하는 단계에 진입할 것이다. 전문가들은 인간처럼 모든 분야에서 지능을 발휘하는 ‘범용 인공지능(AGI)’이 2027년경이면 현실로 나타날 것으로 예상한다. 자고 일어나면 전날의 경험을 통해 한층 더 똑똑해지는 ‘연속 학습’ 능력도 갖추게 될 것이다.

-AI가 언론에 미친, 미칠 영향은 어느 정도인가?

▲AI는 언론에 ‘압도적 효율’과 ‘트래픽 급감’이라는 양날의 검으로 작용했다. 특히 ‘제로 클릭’ 현상은 언론에 가장 큰 위협이다. 이용자가 키워드를 검색하면 구글 ‘AI 오버뷰’가 정보를 요약해 상단에 배치해 버린다. 굳이 언론사 사이트를 방문하지 않아도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유입량은 40%, 트래픽은 최대 75%까지 폭락할 것으로 예상됐다. 저품질 콘텐츠를 뜻하는 ‘AI 슬롭(slop)’이 넘쳐나며 정보 자체에 대한 불신도 커졌다.

기계 아닌
인간의 힘

-유튜브에 이어 또 한 번 언론의 위기 상황인가?

▲위기인 동시에 기회라고 본다. 역설적으로 언론이 주도권을 되찾을 기회일 수도 있다. 정보가 흔해질수록 직접 현장에서 검증하고 윤리적 책임을 지는 기사는 희귀한 예술품이나 사치재처럼 가치가 급등할 것이다. 독자들은 AI가 쓴 뉴스보다 사람이 쓴 뉴스를 압도적으로 신뢰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또 고품질 기사는 AI 학습의 필수 연료이기에 언론사는 AI 기업에 데이터 비용을 요구할 강력한 협상 카드를 쥘 수 있다.

-구체적으로 신문의 상황을 진단한다면?

▲이미 해외에서는 인쇄 매체를 ‘사치재’이면서 ‘프리미엄 브랜드’로 재정의하고 있다. 실제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시사‧문화 잡지인 <디 애틀랜틱>은 디지털 수익을 바탕으로 종이 잡지 발행 횟수를 연 12회로 늘렸다. 토터스 미디어가 인수한 <옵저버>처럼 속도보다는 깊이와 통찰을 제공하는 ‘슬로 저널리즘’이 고급 틈새시장에서 부활하고 있다.

-국내 신문업계에도 적용될 수 있는 부분인가?

▲세 가지 전략을 제안하고 싶다. 첫째, AI가 흉내 낼 수 없는 깊이 있는 분석과 독점 인터뷰를 제공하는 것이다. 둘째, 신문 구독 시 디지털 뉴스, 팟캐스트, 커뮤니티 혜택을 묶어주는 ‘올 엑세스’ 번들로 독자층을 잡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 행사 등으로 독자와 직접 소통하며 끈끈한 관계를 맺는 작업이 필요하다.

탐사보도
중심으로

-기사 방향에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나?

▲단순 사실 기사는 AI에 넘기고 사람만이 제공할 수 있는 ‘현장 취재, 맥락 분석, 윤리적 책임’이라는 신뢰 프리미엄에 집중하는 기사를 쓰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기자의 통찰과 독자와의 인간적 연결이라는 본질에 집중하는 언론만 살아남게 될 것이다. 기계는 정답을 내놓지만 그 답에 담긴 아픔과 이유에 공감하는 기사의 가치는 대체될 수 없다.

-짧은 영상과 글에 익숙해진 대중에게 탐사보도 같은 긴 기사가 읽힐까?

▲대중은 이미 단순 정보를 나열하는 AI 기사와 기자의 통찰이 담긴 저널리즘을 확실하게 구분하고 있다. 열독률이 낮아지는 문제는 ‘기사의 액체화’ 전략으로 돌파할 수 있다. 액체는 담는 그릇에 따라 모양이 바뀌지 않나. 기사의 핵심 알맹이를 쇼츠 영상, 오디오 팟캐스트, 맞춤형 요약 등 독자가 보기 편한 형태로 바꿔 전달하는 방식을 고안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과거처럼 신문의 시대로 회귀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는지….

▲신문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던 과거로 완전히 돌아가기는 어렵다. 하지만 앞으로 신문과 책은 ‘신뢰를 담은 명품’으로 기능할 가능성이 크다. AI 정보가 넘쳐날수록 대중은 스마트폰 알림 없이 오직 읽기에만 집중할 수 있는 ‘지적 휴식처’이자 ‘디지털 해독제’로서 인쇄 매체를 찾게 될 것이다.

정보 홍수에 지친 대중에
지적 휴식처로 기능할 것

-기자라는 직업은 어떤가. 미래가 있을까?

▲기자라는 직업 자체는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AI는 정보를 재배열할 수는 있지만, (사람처럼) 세상을 직접 관찰하고 권력에 책임을 물으면서 윤리적 책임을 지는 등의 판단은 할 수 없다. 저품질 정보가 늘어날수록 기자가 직접 발로 뛰어 검증한 기사의 가치는 급등할 수밖에 없다.

-기자의 역할도 변화할 것으로 보는지….

▲깊이 있는 보도는 AI 시대에 언론이 살아남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기자는 단순히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AI 시스템을 지휘하는 감독자이자 기술이 결코 닿을 수 없는 진실의 영역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AI가 아무리 발달한다고 해도 그 정보에 대한 검증은 사람 손을 거칠 수밖에 없다. 기사는 결국 기자의 손에서 완성된다.

-AI 시대, 기자는 어떤 역량을 키워야 할까?

▲‘서비스로서의 경청’, 즉 사회 깊숙이 들어가 독자와 신뢰를 쌓고 취재원의 진심을 끌어내는 관계 형성은 기계가 범접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성역이다. 한마디로 잘 들어야 하고, 잘 물어봐야 한다. 탐사보도, 심층 분석, 복잡한 맥락 설명 같은 고도의 지적 노동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또 ‘뉴스의 크리에이터화’를 통해 기자 개인 브랜드를 강화하고 독자와 직접 소통도 진행할 수 있는, 인간적 개성을 가진 기자가 필요한 시대가 올 것이다.

배 자문위원은 신문을 ‘오프라인 블록체인’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블록체인의 가장 큰 특징이 불변성이다. 거래 기록을 여러 사람이 분산 저장하는 구조라 조작이 어렵다. 신문도 마찬가지다. 신문은 발간 후 배포되는 순간 수정이 불가능하다. 한번 나가면 영원히 남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30년 뒤에도 신문은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책이나 보고서 같이 지금과 다른 형태일지는 모르겠지만 신문의 기능을 하는 인쇄 매체는 절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기계를 통해 눈으로 보는 것과 종이로 된 글을 읽는 건 다르다. 그때쯤 되면 지금보다 더 고급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30년 뒤에도
“존재할 것”

배 자문위원은 “AI의 발달은 노동, 창의성, 진실의 가치를 재편하는 ‘인식론적 대전환’으로 인류를 이끌고 있다. 인간은 AI를 관리하는 ‘기계의 지휘자’로 진화하고 정보의 홍수 속에서 인간의 검증과 책임이 담긴 ‘신뢰 프리미엄’은 극대화될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알고리즘의 평탄화로 인해 문화적으로 동질화되고 인지 능력이 퇴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존재한다. 결국 AI를 도구로 인간의 직관과 공감을 결합하는 소수만이 초인적 창의성을 발휘하는 세계가 도래하리라 본다”고 미래를 내다봤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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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자’ 김민석 당권 도전 막전막후

‘2인자’ 김민석 당권 도전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연임에 제동이 걸렸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6·3 지방선거가 몰고 온 ‘책임론 후폭풍’과 당권 경쟁이 맞물린 탓이다. 차기 당 대표 후보로 이름을 올린 김민석 국무총리가 곧바로 빈틈을 파고들었다. 그의 복귀는 단순한 정치 행보가 아닌 당의 체질을 ‘이재명의 민주당’으로 바꾸겠다는 일종의 기획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 7일 이재명 대통령이 한성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차기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함에 따라 김민석 국무총리의 사의 표명도 공식화됐다. 이재명정부 초대 총리를 지낸 그는 “제 다음 임무는 기득권의 저항을 돌파하고 이정부의 시대정신을 실현할 강력하고 유능한 민주당을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길었던 몸 풀기 김 총리는 한 후보자가 청문회 문턱을 넘고 인수인계를 마친 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사실상 당권 도전을 시사한 만큼 당원 주권과 민심을 앞세워 존재감 키우기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한 후보자 지명 직후 김 총리는 자신의 SNS를 통해 “당에 돌아가 이재명정부의 시대정신을 강력하게 뒷받침하기 위해서 저는 대통령님께 총리직 사임과 민주당 복귀의 뜻을 말씀드렸다”고 밝혔다. 그는 이정부의 시대정신으로 ‘대한민국의 황금시대’를 제시했다. 김 총리는 “이정부의 시대정신은 우리 역사의 골든 에이지, 즉 황금시대를 만드는 것이다. 미국의 뉴딜 시대, 스웨덴의 복지국가 건설 시대처럼 대한민국을 대체 불가의 선도 국가로 우뚝 세우는 것”이라며 “이 대통령이 그 첫 문을 열고 있다. K-민주주의 부활, 코스피 1만 임박, 글로벌 AI 허브 추진, 한류 열풍. 이 모두가 K-황금시대의 징표”라고 설명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유능한 여당, 유능한 민주당’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김 총리는 “이정부의 시대정신을 확고하게 뒷받침하는 것이 국민의 바람이자 민주당 백만 당원의 사명”이라며 “국정 성공·총선 승리·연속 집권의 3대 과제를 달성하려면 경제 성장과 민주주의를 함께 거머쥔 강력한 실용 연합 민주당이 돼야 한다. 그것이 국민주권과 당원 주권 강화의 길”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3일 치러진 지방선거와 재보궐선거 결과에 대해서는 “무한 책임을 가진 집권 민주당의 각성과 긴장, 혁신을 요구하고 있다”며 “김대중에서 노무현, 문재인을 거쳐 이재명에 이르는 민주당 역사의 교훈은, 당정 일체와 민생 실용 확장 노선만이 성공과 연속의 길이란 것”이라고 부연했다. 새로 선출되는 당 대표는 거대 여당의 고삐는 물론 2028년 총선 공천권까지 쥐게 된다. 따라서 정치권에서는 오는 8월17일 치러질 전당대회를 앞두고 청와대가 김 총리를 민주당에 투입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정청래 지도부의 지방선거 결과가 아쉽다는 반응이 나오는 만큼 차기 총선 또한 정 대표 체제로 치른다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점에서다. “다음 목표 유능한 민주당 만들기” 이미 계산 끝난 권력 투쟁 플랜 이 대통령이 직접 김 총리를 언급해 ‘김민석 투입설’을 뒷받침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이 대통령이 김 총리에 대해 “이제는 또다른 역할을 맡는 게 더 적정하다고 보여 역할을 바꾸게 됐다”고 언급한 것. 이 대통령은 지난 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연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밝히며 “김 총리의 정말 뛰어난 리더십으로 내각은 잡음 없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제가 제시하는 방향대로 치열하게 잘 달려왔다. 이제는 또 다른 역할을 해도 적정하다고 보여지기 때문에 역할을 바꾸게 됐다”고 말했다.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 역시 “이정부의 첫 번째 총리로 내란을 극복하고 대한민국의 회복을 진두지휘한 김 총리의 노고에 깊이 감사드린다. 지난 1년 이정부의 성과는 사실상 김 총리의 성과라 불러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라며 그를 치켜세웠다. 이번 지방선거 결과를 두고 청와대와 민주당 지도부의 반응이 엇갈리면서 8월 전당대회는 사실상 ‘정청래 심판론’으로 굳어지고 있다. 심판론과 청와대에 맞서는 정 대표의 발언 수위가 높아지면서 당정 관계에 미묘한 기류가 흐르는 모양새다.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서울, 부산, 대구 등 주요 격전지를 탈환하지 못하면서 책임론이 불거졌다. 선거 운동 초반만 하더라도 ‘15대 1 압승’ 등 민주당이 낙관에 젖은 것이 패착의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당 역시 책임을 피하지 못한 것이다. 민주당 내분도 본격화하고 있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지난 8일 “우리 당은 대통령 지지도에만 의존한 나머지 지역별 민심에 부합하는 전략과 비전을 충분히 제시하지 못했다”며 최고위원직을 내려놨다. 이 전 최고위원은 당청 갈등, 조국혁신당 합당 무산 등 당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정 대표와 각을 세우며 친명(친 이재명) 입장을 대변해 왔던 인물이다. 지방선거 경선에서 탈락한 김영록 전남도지사는 정 대표를 향해 사퇴 요구를 하기도 했다. 그는 한 라디오를 통해 “(호남 지역의) 일반적인 여론을 들어보면 ‘정청래 시대는 끝났다’고 한다”며 “당 대표 연임 반대 운동을 하겠다. 이 시각부터 당 대표에서 끌어내기 위해 내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날을 세웠다. 사면초가 정청래 이 대통령이 지방선거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직접 묻는 듯한 발언도 지도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이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승패는 판단 주체마다 기준이 다를 것”이라면서도 “이겨야 하는 곳에서 졌다면 최소한 성공은 아니다. 국민들의 경고”라고 말했다. 그동안 정 대표가 지방선거를 “전국적인 승리”라고 자평한 것과 달리 냉혹한 평가가 이어지면서 이 대통령이 여당을 향해 회초리를 들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 대통령은 “제사가 끝난 뒤 먹고 즐기고 놀 생각만 하면 되겠느냐”며 “마음을 내려놓고 겸손한 자세로 죽을 힘을 다하는 것과 딴마음 먹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고 말했다. 이어 “선거가 끝나고 2~3일은 저도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았다. 결론은 나의 부족함”이라면서도 민주당을 향해 “집권당일 때와 야당일 때는 대응 양상이 달라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다음날 정 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지방선거 결과에 대해 잘한 것은 잘했다, 못한 것은 못했다, 반성할 것은 반성하겠다, 성찰할 것은 성찰하겠다고 공과를 냉철히 진단할 수 있도록 평가위원회를 만들어 백서를 발간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의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 대해선 “대체 불가 대한민국, 대체 불가 대통령의 비전을 확실하게 보여줬다”며 “당정청 간 원 팀, 원 보이스를 더욱 강화해서 일 잘하는 지방정부와 함께 일 잘하는 이정부의 성공을 흔들림 없이 뒷받침하겠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정 대표가 최고위원 회의를 마친 뒤의 한 발언이었다. 그는 “야당이 야당다울 때 지지하고 여당이 여당다울 때 국민은 항상 선택적으로 지지해 왔다”며 “민심이 천심이다. 국민이 곧 하늘이다. 국민을 이기는 정권은 없다. 국민은 영원하고 정권은 짧다”고 말해 친명계의 공분을 샀다. 민주당 황명선 최고위원은 자신의 전당대회 불출마를 밝히며 “실패한 지도부의 한 사람으로, 출마하지 않는 것이 당원에 대한 도리”라며 정 대표를 겨누는 듯한 메시지를 내놨다. 문진석 의원은 “집권여당 대표 언어로는 매우 부적절하다. 우리 당 미래가 심히 걱정된다”고 직격했으며 민주통합당(민주당 전신) 김유정 전 의원은 “이런 이야기는 사실은 야당이 하는 얘기다. ‘해보자는 건가’ 그런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기다렸다” 광폭 행보 민주당이 내전을 벌이는 동안 김 총리는 전방위로 보폭을 넓혔다. 지난 9일 이 대통령이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흘간의 유럽 순방을 위해 출국했는데, 통상 환송 행사에 매번 참석하던 정 대표 대신 김 총리가 나타나면서 이목을 끌었다. 민주당 지도부가 환송 행사에 참석하지 않은 것은 이정부 출범 이후 이날이 처음이다. 매번 자리하던 민주당 지도부가 빠지고 김 총리가 등장하면서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을 둘러싼 아전인수식 해석이 나오고 있다. 청와대는 “해당 사안을 정치적 의미로 해석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중동 전쟁의 장기화와 선거관리위원회 부실 관리 대응 등 국내 상황을 염두에 둬서 환송 인원을 최소화했다. 국무총리의 참석은 장기간 순방 일정 수행에 따른 내각 차원의 업무지시 및 당부사항 등을 전달하기 위한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김 총리는 호남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권리당원 3분의 1이 분포한 호남은 전당대회 최대 승부처이기 때문이다. 앞선 지방선거 과정에서 정 대표가 가장 많이 찾은 곳 역시 전북이다. 김 총리는 지난 6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포럼을 찾아 “지금은 다시 긴장하고 혁신해야 하는 시기”라며 “호남이 지방 주도 성장과 케이(K) 황금시대를 만드는 데 있어 중심이자 출발점이 돼야 한다는 의미로 ‘약무호남 시무국가’를 다시 해석할 때”라고 힘줘 말했다. 이어 “정치 백수 18년 동안 전국을 유람해 보니 전북 익산이 그렇게 좋더라. 장모님이 편찮으셔서 얼마 전 익산에 조그마한 집을 하나 구했다”고 말해 호남을 정치적 기반으로 삼겠다는 뜻을 은연중에 밝히기도 했다. 거세지는 ‘심판론’ 휘청이는 지도부 “권리당원 잡아라” 앞다퉈 호남으로 김 총리는 ‘유능한 민주당’을 앞세워 여의도 내 스킨십도 늘려가고 있다. 그는 지난 10일 조정식 신임 국회의장을 만나 “정치·경제·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기대만큼 입법의 속도가 나지 않는 상황”이라며 여당의 입법 추진에 대한 아쉬움 표현했다. 앞서 이 대통령 역시 입법 속도를 지적한 만큼 이정부 하반기에는 당정의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인물이 당 대표 적임자라는 신호를 보낸 것으로 풀이된다. 조 국회의장은 김 총리에 대해 “이정부의 집권 플랜을 설계하고 1기 내각을 이끌면서 안정감 있는 리더십으로 많은 성과를 냈다”고 평가했다. 이어 “풍부한 국정 경험을 갖춘 중진 의원으로서, 향후 국회 복귀 시 우리 국회와 정치가 한발 더 도약하는 데 큰 역할을 해달라”고 말했다. 친명계의 환영 속 복귀 준비를 마친 김 총리가 ‘이재명 후광’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이정부 출범 이후 김 총리는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 덕에 긍정적인 평가가 주를 이뤘으나 “현재 김 총리의 체급은 이 대통령이 키워준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기 때문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2024년 김 총리가 최고위원 도전을 위해 전당대회에 출마했을 때 당시 이재명 당 대표 후보가 그를 많이 도와줬다. 라이브 방송에서 ‘김민석 표가 왜 이렇게 안 나오냐’는 말 한마디에 1위를 굳히던 정봉주 전 의원을 꺾지 않았나”라며 “이제는 그 누구의 도움 없이 스스로 일궈낸 결과물로 당원을 설득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당권 신경전이 날카로운 만큼 정 대표와 김 총리의 표심 끌어안기 행보 역시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정 대표를 향한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의 압박 수위가 날로 높아지면서 당은 일촉즉발의 상태에 접어들었다. 김 전 부원장은 YTN 라디오 인터뷰에서 “어쨌든 간에 지방선거를 패배했다. 사실상 패배하고 나서 거기에 대한 정리를 하는 게 우리 집권여당에서 국정을 운영하는 집행부(행정부)를 뒷받침해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거기에 대한 괴리감이 있지 않은가. 그런 부분에서는 1년간 열심히 청와대에서 일한 집행부에게 다소의 불만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상황”이라며 현 지도부를 저격했다. 친명계 총공격 ‘이 대통령이 김 총리의 리더십을 칭찬한 것이 차기 당권에 대한 명심이라는 해석’이라는 질문에는 “(김 총리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것이 그동안의 수고에 대한 덕담과 맞물렸다고 볼 수 있다”며 “지금 김 총리가 확정적으로 대표에 도전하겠다는 결정은 안 하셨지만, 세간에서 그렇게 다 해석하는 모습에서 조금 힘을 실어주기 위한 덕담이 아닌가, 저는 이렇게 저는 볼 수 있다고 본다”고 진단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또 다른 잠룡, 송영길 행보는? 보궐선거를 통해 인천 연수갑에 당선된 송영길 의원의 행보도 주목된다. 국회 입성에 성공한 그는 호남을 돌며 김 총리와 마찬가지로 핵심 인사와의 접촉을 늘려가고 있다. 그런 송 의원은 자신의 역할과 관련한 모든 질문에 “정청래 대표의 거취를 보고 판단하겠다”며 해석의 여지를 남겨뒀다. 그는 지난 9일 민주당 전현희 의원 주최로 열린 ‘이재명정부 2년 차, 더 과감한 개혁이다’ 포럼에 참석한 후 기자들과 만나 “당청 관계는 같이 공동 운명체로 책임지는 것”이라며 “정당은 국민 눈높이나 민심을 잘 반영할 존재로서 민심이 관료 사회에 갇혀있지 않게 대통령을 설득하고 전달하는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번 전당대회가 서로 분열과 갈등이 증폭되는 전당대회가 안 되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저도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차기 당 지도부에 대해서는 “포용과 화합”을 강조했다. 그는 “대통령과 불필요한 갈등으로 에너지를 소비하는 게 아니라 긴밀한 신뢰로 협력해 개혁을 추동해 나가야 할 중차대한 시점에 놓여 있다”며 “모든 개혁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당에 있다고 생각한다. 집권여당이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