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30주년 기획 - 우리 30대는 지금…> ⑤젊은 정치인들 이야기

“앞으로 도전할 날이 더 많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기다려라, 곧 우리가 간다.” 인터뷰 도중 ‘현역 기득권에 하고 싶은 말’을 묻자 곧바로 돌아온 한마디다. 농담 반 진담 반이지만 말에 뼈가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선거철마다 여야는 앞다퉈 개혁의 상징으로 청년 정치인을 앞세우지만, 막상 30대가 여의도에서 살아남기란 쉽지 않다. 미래 세대를 이끌어갈 청년 정치인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잃을 게 없어 더욱 솔직했다. 김지수 대통령 직속 대한민국 국민통합위원회 위원(1986년생)·더불어민주당 김보미 강진 군의원(1989년생)·정진호 의정부 시의원(1995년생)의 이야기다.

그들은 취재진이 끼어들 틈도 없이 치열하게 토론하다가도 청년 문제에 머리를 맞대고 한참을 고민했다. 그러다 재치 있는 말투로 서로의 혼을 쏙 빼놓더니 이내 깔깔 웃으며 농담을 주고받았다.

세 사람은 기득권의 벽에 부딪혀 깨지고 좌절해도 또다시 도전한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유난히 하늘이 푸르던 5월, <일요시사>가 여의도 국회에서 김지수·김보미·정진호를 만났다.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김지수= 대한민국의 ‘행복지수’가 되고 싶은 김지수다. 2020년 비례대표 면접 탈락, 2022년 최고위원 예비후보 컷오프, 2024년 당 대표 선거에서는 꼴등을 했다. 인생이 컷오프지만 계속해서 도전 중이다. 지금은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 위원으로 있다.

▲김보미= 전국 최연소 의장을 역임한 강진군 의원 김보미다. 정치 인생 13년째 온갖 음해와 정치공작에 탈탈 털리면서도 먼지 한 톨 나오지 않은 당당함과 실력으로 무장했다. 이번 6·3 지방선거에선 강진군수 예비후보로 본선을 눈앞에 두고 고배를 마셨지만, 여전히 “정치가 재밌다”고 말하는 꺾이지 않는 멘탈의 소유자다.

▲정진호= 의정부 시의원 정진호다. 김보미 의원과 마찬가지로 지방선거에서 의정부 시장에 도전했으나 낙선했다. 덕분에 전국 최연소로 기초단체장 후보 타이틀을 얻었다. 그동안의 주요 성과로는 의정부 재정의 남는 돈 1293억원을 밝혀냈고 그중 불법 예비비 634억을 환수해 시민 품으로 돌려낸 일이 있다.

-세 사람 모두 평범한 30대의 삶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정치를 시작한 계기가 무엇인가?

▲김보미= 나는 흔히 말하는 시골에서 자랐다. 시간이 흐르면서 마을이 사라지고 점차 면 단위로 사라지고 결국에는 학교도 없어졌다. “바꿔야 산다”라는 생각으로 정치를 시작했다.

▲정진호= 불공정한 세상을 바꾸고 싶었다. 나 좋자고 혼자서만 잘 먹고 잘사는 게 행복하지 않더라. 그런 삶은 인생을 사는 데 있어 어떠한 의미도 없다고 생각했다.

▲김지수= 한반도 평화가 궁극적 목표다. 코스피 7000 시대지만 전쟁이 일어나면 다 무슨 소용인가. 전쟁이 일어나면 정치부터 환경, 복지, 가족 등 모든 게 파괴된다. 그런 상황이 일어나지 않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

▲정진호= 여담이지만 청년 정치인도 평범한 인간이다. 정치인은 다를 거라고 생각하는데 나도 요즘 30대가 좋아하는 거 좋아한다. 두쫀쿠(두바이 쫀득 쿠키) 좋아하고 서울 성수동 같이 핫한 곳에서 친구들도 만난다.

-사회 초년생으로서 정치를 시작하는 데 경제적 어려움은 없었나?

▲정진호= 경선 기탁금만 1000만원에서 1500만원을 준비해야 한다. 당장 내일 1000만원을 마련해 입금해야 하는 셈이다. 기탁금을 제외하고 이런저런 비용을 대다 보면 현금으로 3000만원이 필요하다. 빚을 안고 시작하는 것이다. ‘청년 50% 감면 혜택’이 있어서 당에 물어봤더니 현역은 안 된다더라. 현역도 청년이다. 현역 청년이 돈이 많으면 오히려 그게 문제 아닌가.

▲김지수= 그렇다. 결국 다 빚이다. 나는 당 대표 선거 나갈 때 현수막도 많이 못 걸었다. 하나에 8만원, 많게는 15만원이라 세 개만 주문했다. 돈이 없으니 사무실도 없었고, 결국 당원들께 투표 독려 문자도 못 돌렸다.

▲김보미= 그런 점에서 청년 정치인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부가 청년 스타트업을 지원하듯 당에서도 청년 정치인을 독려하는 것이다. 당은 말로만 청년을 외치지, 정작 그들과 발을 못 맞추는 것 같아 아쉽다.

“기득권에 매달리는 키링 정치는 그만”
“세대교체는 뒷물이 앞물을 밀어내듯”

-청년 정치의 현실을 한 줄로 설명한다면?

▲정진호= ‘키링(열쇠고리·Keyring) 정치’를 벗어나자.

기득권 국회의원의 줄 세우기에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걸어 들어가지 말라는 뜻이다. 자신만의 의제를 설정하고 밑바닥부터 ‘박박’ 기어서 국민이든 정치 관계자든 자기 사람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내가 높은 자리에 올라갔을 때 이곳까지 올려준 사람들을 대변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의정부 시민들에게 많은 고마움을 느낀다.

▲김지수= ‘이 시대의 주인공이 돼야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인 삶’이다.

그들은 돈도 사람도 세력도 없다. 앞서 스타트업을 예시로 들었는데, 정치에서는 비전을 가진 청년에게 투자하려는 사람이 없다.

-성공한 청년 정치인의 사례가 없어서 투자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김보미= 각자도생 구조에 낙하산 정치가 만연해서 그렇다. 낙하산 정치를 근절하려면 현역 정치인이 공정한 사다리를 만들어 주면 된다. 보여주기식으로 자기 사람을 꽂고, 키링으로 만드는 대신 공정의 틀만 만들어 주면 알아서 큰다. 잘 알려지지 않은 많은 청년 정치인들 모두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자기 자리에서 잘하고 있다.

▲정진호= 나는 성공한 청년 모델이 없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은 20세 때부터 정치를 해온 대표적인 성공한 청년 정치 모델이다. 그들은 명확한 의제가 있었고 민주주의에 목숨을 걸었다. 이걸 잊지 않고 이어왔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다. 내가 계속해서 자기만의 의제를 강조하는 이유기도 하다.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정치판 변두리로 밀려나는 일도 비일비재할 것 같다.

▲김지수= 이 중에서 내가 제일 나이가 많지만 아직도 선배들로부터 “너무 어리다” “경험이 부족하다”라는 말을 항상 듣는다. 비슷한 이야기로 “조금 더 기다려라”라는 말씀도 하신다. 과연 기다리면 알아서 때가 올까? 나는 그걸 깨고 싶어서 도전한다.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증명해 나가는 중이다. “내가 했으니 너도 할 수 있다”라는 느낌이다.

▲정진호= 나는 차별을 받은 일은 없지만 청년 정치인이라는 프레임에 자기 자신을 가뒀다. 어리다는 이유로 개방적인 모습 보여주면 안 되고 공식적인 자리에서 많이 웃어도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번에 낙선하고 캠프에서 설문을 돌렸는데 “분명 젊은 후보인데 전혀 젊은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나이가 어리다”라는 말은 알고 보니 여의도 사투리였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가볍게 처신하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정진호라는 사람은 늘 열려 있고 잘 웃을 줄도 알고 시민과 어울릴 수 있는 후보라는 걸 보여드리면 어땠을까 후회가 된다.

▲김보미= 우리가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의회에서 청바지를 입고 다니지 말라고 혼난 적도 있다. 오늘도 청바지를 입었으니 나중에 한 소리 들을지도 모른다. 이번에 출마 선언할 때 “어린 여자가 무슨 군수를 하느냐”는 말도 많이 들었다. 내가 미혼이라는 것도 감점 요소다. 누구나 생각하는 ‘표준 정치인’이 아니다 보니 무엇을 해도 족쇄가 된다.

-“진보도 싫고 보수도 싫다”는 청년 무당층이 늘어나는 추세다. 이들이 정치에 관심이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진호= 관심이 없다기보다는 참여가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정치에 대해 불평불만 하는 또래 친구에게 “네가 참여를 안 해서 그렇다”고 말한다. 참여한 만큼 얻는 게 민주주의다. 공직 선거 출마 같이 거창한 걸 하라는 게 아니라 여든 야든 당원 가입이라도 해 달라는 뜻이다.

▲김보미= 조금 의견을 달리하고 싶다. 지금 상황을 청년의 탓으로 돌리면 안 된다. 또래인 청년 정치인이 활동하고 무언가를 바꿔 나가는 선례가 있어야지, 지금 정치는 586세대가 대부분인데 청년이 함께하고 싶을까?

▲정진호= 586세대도 참여한 만큼 가져갔다. 그들은 민주화 운동 때 목숨을 걸고 싸운 정체성과 유산이 있다. 지금은 서로 나눠 먹는 정치를 하지만, 대전제는 그들 역시 정치에 참여했다는 것이다. 집에 누워서 스마트폰 스크롤을 내리며 유튜브 쇼츠만 보면서 욕하는 청년들이 어느 방식으로든 정치에 관심을 두길 바란다.

“내리꽂는 수직이 아닌 수평적 연대로”
“이 모든 걸 바꾸는 건 국민의 투표뿐”

-586세대를 주축으로 한 기득권의 벽이 허물어져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들도 나름의 역사와 전통이 있을 텐데….

▲김보미= 이재명 대통령이 말하는 시민주권, 국민주권을 위해서다. 기득권이 무너져야 주권을 찾을 수 있고 시민의 목소리가 반영된다. 지금은 기득권과 함께 목소리도, 민의도 막혀 있다고 생각한다.

▲정진호= 청년 세대가 더 절박하기 때문에 기득권이 깨져야 한다. 현재를, 그리고 미래를 살아갈 우리보다 그들(기득권)이 더 절박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은 사람이 정치에 적극적으로 진출하면 좋겠다.

▲김지수= 기득권이 ‘무너진다’기보다 자연스럽게 시대가 변하면서 그 가치를 반영하는 미래 세대가 앞으로 나서는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장강(양쯔강)의 뒷물이 앞물을 밀어낸다’는 말을 좋아한다. 새로운 가치관을 반영하는 후배와 지혜를 가진 선배가 함께하면서 더 넓은 세상으로 향하는 것이다. 후배가 앞서고 선배가 뒤에서 밀어주면 자연스럽게 세대가 교체된다.

▲김보미= 민주화의 시작은 이전 세대에서 첫발을 뗐지만 완성은 청년 세대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급변하는 시대에 맞춰 청년이 (민주화를) 이어받는 게 진짜 정치 아닐까?

▲김지수= 그러니 지금부터 미래 세대가 나서야 한다. 내가 최고위원에 도전한 것도, 당 대표 선거에 나선 것도 이런 움직임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래 세대만의 힘으로는 부족하다. 미국의 대선주자였던 버니 샌더스(85세)는 오카시오 코르테스(36세) 하원의원과 함께 “시대를 바꾸자”고 선언했다. 이처럼 미래 세대와 함께 손을 잡고 가는 장면을 만드는 게 현역 정치인들의 역할이라고 본다.

-끝으로 국민께 한마디.

▲김보미= 늘 정치에 관심을 달라고 말한다. 내가 사는 동네의 재정이라든가, 관심을 가질수록 모든 게 투명해지고, 국민이 알면 많은 게 바뀌게 된다.

▲정진호= 동감한다. 이제까지 우리가 한 말은 국민의 참여가 없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물론 후보들에게 부족함이 있겠지만 그 부족함을 채워주는 것 역시 국민과 당원의 참여에서 비롯된다. 변화와 혁신을 열망한다면 청년이든 기성세대든 정치에 참여해 주시길 바란다.

▲김지수=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투표다.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 약 4000명을 뽑는데 그 4000명이 4년 동안에 쓰는 예산이 약 1300조원이라고 한다. 투표하지 않으면 사라지는 ‘침묵 비용’이 1300조원이란 뜻이다. 그러니 꼭 투표하라는 당부의 말씀을 드린다. 우리 청년 정치인들도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30대 현역 의원 누구?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치러진 22대 총선 당선인들의 평균연령은 56.3세인 것으로 나타났다.

연령별로 보면 50대는 150명으로 당선인 중 절반을 차지했으며 30대는 14명으로 4.7%에 그쳤다.

대표적인 30대 정치인 중 더불어민주당은 모경종(1989년생)·김동아(1987년생)·전용기(1991년생) 의원이, 국민의힘은 김용태(1990년생)·우재준(1988년생)·김재섭(1987)·조지연(1987년생) 의원 등이 있다.

이 밖에도 개혁신당 천하람(1986년생)·무소속 장경태(1983년생)의원과 기본소득당 용혜인(1990년생) 대표 등이 30대 국회의원으로 분류된다.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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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후폭풍’ 표심 가른 당락 결정타

‘6·3 후폭풍’ 표심 가른 당락 결정타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지방선거가 끝났다. 결과는 나왔으니 원인을 분석할 시간이다. 여야 모두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를 받은 상황이라 외부보다는 내부가 더 시끌벅적한 모양새다. 여당을 견제하면서 야당을 심판한 민심의 절묘함은 어디서부터 비롯됐을까. 지방선거를 뒤흔든 두 이슈, 주식과 부동산의 관점으로 바라봤다. 광역단체장 12 대 4. 지방선거의 승패를 가르는 시‧도지사 결과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5대 12(당시 17개 시‧도)로 완패했던 4년 전 지방선거 결과를 완벽하게 뒤집었다. 문제는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이번 지방선거를 민주당의 완승으로 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모든 선거에서 가장 핵심 지역인 서울을 빼앗겼다. 이긴 것도 진 것도 이번 지방선거는 여러모로 민주당에 유리한 상황에서 치러졌다. 우선 12‧3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을 거쳐 당선된 대통령이 취임 1년 만에 맞는 선거였다.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율은 1년여 동안 60%대를 상회했다. 말 그대로 민주당이 ‘질 수 없는’ 선거였다. 실제 선거 초기 각종 여론조사 결과는 민주당의 ‘싹쓸이’를 예견했다. 국민의힘의 텃밭인 TK(대구‧경북) 지역에서조차 민주당이 이기는 결과가 나왔다. 15 대 1, 16 대 0 등의 결과를 예상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았다. 하지만 실제 선거에서는 달랐다. 민주당이 12곳에서 승리해 표면상으로는 국민의힘을 압도했지만 실속은 챙기지 못했다. 보수 궤멸 얘기까지 나왔던 국민의힘은 텃밭을 지키고 서울도 수성했다.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도 119 대 95(무소속 13)로 선방했다. 구체적으로 뜯어보면 국민의힘이 마냥 졌다고 보기 어려운 결과가 나온 것이다. 민주당으로서는 서울에서의 패배가 뼈아팠다. 국민의힘 후보로 나온 오세훈 서울시장과 민주당 정원오 후보의 득표율 차이는 불과 1.15%p, 표 차로 따지면 6만여표였다. 서울 성동구청장 출신의 정 후보는 이 대통령의 ‘샤라웃’을 받은 이른바 ‘명픽’으로 불렸다. 이 대통령이 ‘일을 잘한다’는 내용으로 정 후보를 언급하면서 인지도와 지지도가 수직 상승했다. 정 후보는 박주민 의원, 전현희 의원 등 민주당 내에서 잔뼈가 굵은 의원을 상대로 한 경선에서 이겼다. 여론조사 결과도 국민의힘 오 시장과 크게 벌어졌다. 20%p 차이가 나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서울시장 당선은 ‘떼놓은 당상’처럼 보였다. 광역단체장 12곳 이기고도 서울 내주면서 ‘반쪽 승리’ 미묘한 변화가 감지된 것은 선거운동이 시작된 이후였다. 오 시장과의 격차가 줄기 시작했고 선거가 임박해서는 오차범위 이내의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그리고 사전투표를 거쳐 본투표 당일 오후 6시 출구조사가 발표됐다. 방송 3사는 정 후보 51.4%, 오 시장 46%로 민주당이 무난하게 서울을 탈환할 것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최종 결과는 오 시장의 신승이었다. 서울 송파구 등에서 투표용지 부족으로 ‘부실 선거’ 논란까지 벌어진 끝에 나온 결과였다. 서울에서의 패배로 민주당은 광역단체장 12곳에서 이기고도 웃지 못했다. 민주당 내에서도 ‘사실상 패배’라는 아쉬운 탄식이 나왔다. 심지어 이 대통령조차 ‘민심의 경고’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서울시장 선거 결과를 두고 부동산이 표심을 갈랐다고 설명했다. 이재명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분노한 민심이 오 시장에게 표를 던졌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부동산 문제를 시장에 맡기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하지만 취임 이후 부동산과 관련해 강경 발언을 이어가는 등 정부가 시장에 깊숙이 관여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달 9일에 종료된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 정책이 대표적이다. 그동안 다주택자가 누리고 있던 사실상의 세금 감면 혜택을 거둬들이겠다는 취지였다. 이 대통령은 X(옛 트위터)에 연일 다주택자를 압박하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시장을 이기는 정부는 없지만, 정부를 이기는 시장도 없다는 내용의 글도 썼다. 정책으로 부동산 가격을 잡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이재명정부는 부동산에 묶여 있는 돈을 주식시장으로 흘러가게 하는 이른바 ‘머니 무브’를 꾀하는 정책을 쓰고 있다. 그 결과 주식시장은 ‘코스피 5000’ 시대를 넘어 1만 시대를 바라볼 정도로 폭등했다. 어떤 악재가 발생해도 하루이틀이면 장을 말아 올리는 역대급 ‘불장’에 개미들은 빚을 내서까지 진입했다. 6만 표로 당락 갈려 반면 부동산 시장은 크게 휘청였다. 수요를 억제하고 공급을 늘리면 가격은 자연스럽게 내려간다. 경제의 가장 기본으로 알려진 수요-공급의 원리다. 이정부의 정책도 그 방향으로 설계돼있다. 다주택자를 옥죈 것도 시장에 매물을 공급하려는 의도였고 서울 전역과 경기 일부를 토지거래허가 구역으로 지정한 것은 수요를 억제하려는 노력이었다. 부동산 시장은 정부의 의도대로 반응하지 않았다. 매물은 예상만큼 나오지 않았고 수요는 많아졌다. 앞으로도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심리가 시장에 반영되면서 너도나도 빨리 집을 사려고 달려든 것이다. 매물이 줄어드는데 집을 사려는 사람은 많으니 집값은 올랐다. 매매 시장의 움직임은 전‧월세 시장에도 영향을 미쳤다. 집을 가진 사람들이 전세 대신 월세로 바꾸기 시작했고 세입자는 ‘날벼락’을 맞았다. 동시에 월세가 폭등했다. 집을 사기엔 호가가 너무 높았고 세입자로 살기에도 팍팍해졌다. 서울에서 집을 사려던 사람들이 외곽으로 밀려나는 구조였다. 20~30대의 상황은 더 암울했다. 근로소득은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주거비를 감당하지 못했다. 부동산 투기 수요를 막겠다며 대출은 막아둔 상태였고, 대출이 된다 해도 서울에 집을 사기엔 엄두도 내지 못할 만큼 시세가 높아졌다. ‘돈이 돈을 버는’ 구조로, 주식시장에서 큰돈을 만진 이들은 20~30대가 아니었다. 주식 폭등도 영향 적었다 한 주식 투자자는 “지금과 같은 불장에서는 모두가 돈을 버는 듯한 착시 현상이 일어난다. 그리고 나도 돈을 벌 것으로 생각해 시장에 뛰어든다. 하지만 실제 인생을 바꿀 정도로 돈을 버는 사람은 극소수다. 그리고 그렇게 돈을 번 사람들은 대부분 상급지로 이사 간다. 이미 상대적으로 상급지에 사는 사람이 최상급지로 가는 거다. 이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이 같은 상황은 서울시장 선거 결과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오 시장이 정 후보보다 표를 많이 받은 자치구는 25개 중 10곳이다. 정 후보는 15곳에서 이기고도 승리하지 못한 셈이다. 오 시장이 이긴 자치구에는 공통점이 있다. 집값이 크게 상승한 지역이라는 것이다. 오 시장은 송파‧광진‧영등포‧양천‧강동‧동작‧중‧용산‧서초‧강남구에서 정 후보에 앞섰다. 이 중 서초와 강남을 제외한 8개 지역구는 이정부 출범 이후 아파트값 상승률이 가장 많이 올랐다. 집값이 가장 많이 오른 10개 지역구 중 성동‧마포구만 빼고 오 시장이 이긴 지역이 일치하는 것이다. 성동구는 정 후보가 3선 구청장을 지낸 곳이다. 서울시장 선거만큼은 ‘부동산 표심’이 당락을 갈랐다고 봐도 될 정도의 결과다. 전문가들은 자산 투표 경향이 결과에 드러났다고 평가했다. 자산투표는 유권자가 자신이 보유한 집이나 주식 등과 관련한 경제적 이익에 따라 투표하는 현상을 뜻한다. 부동산 비중이 큰 강남권이 선거에서 상대적으로 보수 후보를 많이 지지하는 이유와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이정부가 출범 이후 내놓은 대출 규제, 토지거래 허가구역 지정, 다주택자 압박, 보유세 개편 시사 등의 정책은 강남권뿐만 아니라 서울 전역을 들썩이게 했다. 부동산 정책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지역구가 과거와 비교해 늘어났다는 뜻이다. 이들의 표심이 오 시장에게 집중되면서 정 후보는 석패했다. 집값에 반응한 선택 많았다 이, 취임 1주년서 “정상화”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이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지난 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부동산 관련 세금 제도를 정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투기 목적의 부동산 보유 부담을 늘리겠다는 뜻을 재확인한 자리였다. 이 대통령은 “우리나라 보유세가 대체로 낮다. 많이 사 모아도 부담이 별로 없다”며 “투기용으로 가진 것을 내놓으면 엄청난 공급 여력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또 전세에 대해서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일종의 사금융인데 지금 사라져가는 추세”라며 “정상화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집값) 상승 압력을 나름 잘 막아왔다”며 “선거에는 나쁜 영향보다 좋은 영향이 차라리 더 많지 않았을까 싶다. 1월부터 구두 개입을 통해서 눌러 놓지 않았으면 엄청나게 폭등했을 것”이라고 부동산 정책에 대해 자평했다. 공급 대책에 대해서는 “임대를 싸게, 좋은 곳에, 평범한 중산층이 충분히 살 수 있는 좋은 품질의 것으로 공급하려 한다”고 언급했다. 오 시장은 이 대통령의 부동산 정책 관련 발언을 비판했다. 그는 “대통령께서 오늘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최근 전세 매물의 급격한 감소와 전‧월세 가격 상승에 대해 ‘정상화 과정’이라고 답변했다”며 “현장의 고통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괴리된 시각”이라고 꼬집었다. 정책 그대로 오 “참사다” 그러면서 “지금 전세가 소멸하고 있는 현상은 어떤 시대적 흐름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다”라며 “정부의 잘못된 부동산 정책이 초래한 뼈아픈 결과이자 서민 주고 안정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는 ‘정책 참사’의 장면”이라고 지적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