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판 강타 ‘동남풍’ 막전막후

영원한 독주는 없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영남권에서 시작된 동남풍이 이번 6·3 지방선거 승패를 가를 변곡점이 됐다. 텃밭에서조차 무력하던 국민의힘이지만 서서히 보수 결집이 일어나면서 작게나마 희망을 본 모양새다. 국민의힘이 동남풍을 타고 역전승에 성공할지, 더불어민주당이 그 기세를 꺾을지, 여야 모두 위태로운 길목에 서 있다.

장동혁 대표를 비롯한 국민의힘 지도부가 보수 텃밭 민심을 훑는 등 연일 광폭 행보에 나섰다. 벼랑까지 몰렸던 장 대표는 3일 연속 영남권을 찾아 보수 지지층 결집에 힘을 쏟고 있다.

이제부터
추격전

지난 10일 장 대표는 부산 북갑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박민식 국민의힘 후보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참석했다.

이날 장 대표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후보는 정치도 모르고, 정치를 할 줄도 모르고, 정치를 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며 “대한민국을 통째로 망가뜨리고 있는 이재명과 같이 일하다가 이재명이 찍어서 내려보낸 후보”라고 발언했다. 부산 북갑에 출사표를 던진 하정우 전 AI수석을 정면 겨냥한 발언으로 현 정부 견제에 나선 것이다.

일정을 마친 장 대표는 곧바로 대구 달성군을 찾아 이진숙 예비후보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며 “지금까지 싸울 때 제대로 싸워왔던 사람, 국회에 와서 함께 싸워줘야 하지 않겠나”라고 힘을 실었다. 국민의힘 경북도당에서 열린 선거대책위원회 발대식에도 자리해 추경호 대구시장 후보와 이철우 경북도지사 후보의 손을 잡고 ‘만세’를 해보이기도 했다.

마이크를 잡은 장 대표는 “지방선거 끝나면 세금폭탄 터질 것” “독재 권력으로부터 대한민국을 구해내는 선거” “대구까지 민주당 좌파에 넘어가면 대한민국에 미래는 없다” 등 보수 유권자를 의식한 발언을 이어갔다.

이날 울산도 찾았던 그는 “이번 지방선거는 울산을 지키고 대한민국을 지키는 전쟁이다. 울산의 심장이 멈추면 대한민국 경제의 심장도 약해진다”며 보수 결집을 거듭 강조했다. 특히 비상계엄 당시 국민의힘을 탈당한 뒤 민주당 울산시장 후보로 나선 김상욱 의원을 겨냥해 “함께 타고 있던 배에 불을 지르고 혼자 구명보트를 타고 도망간 사람에게 울산 시민의 미래를 맡길 수 있겠느냐”며 “시민을 배신한 대가를 표로 보여달라”고 호소했다.

보수 지지층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배신자 프레임’을 띄우며 원팀 굳히기에 나선 것이다.

지난 12일에는 빨간색 선거 유세 점퍼를 입고 충남 천안에서 열린 충남도당 당직자 회의 및 필승 결의대회에 참석했다. 마찬가지로 장 대표는 “충청 출신의 민주당 박성준 의원은 국민이 공소 취소가 뭔지 모른다며 바보 취급하고 있고, 금산 출신 정청래 대표는 부산 가서 ‘오빠’ 불러보라고 애걸하다가 국민적 망신 대상이 됐다”며 공세를 이어갔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여의도를 떠나지 않던 장 대표가 달라진 모습을 보이자 정치권에서는 “오차범위 내 접전인 여론조사 결과에 자신감을 얻은 것”이라고 해석했다. 민주당이 앞서던 과거와 달리 양당 후보가 오차범위 내에서 다투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면서 ‘샤이 보수’가 결집하기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움직이기 시작한 부울경 샤이 보수
‘조작 기소 특검법’ 결정적 한 방

보수의 심장인 대구에서 가장 먼저 변화가 감지됐다. ‘구원투수’로 나선 민주당 김부겸 대구시장 후보와 국민의힘 추경호 대구시장 후보의 여론조사가 오차범위 내 접전으로 나타나자 “동남풍이 불고 있다”는 해석이 제기됐다.

JTBC 의뢰로 메타보이스와 리서치랩이 지난 5~6일 대구 거주 18세 이상 남녀 804명을 대상으로 대구시장 선거 가상 양자 대결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국민의힘 추경호 후보 41% ▲민주당 김부겸 후보 40% 등으로 오차범위까지 추격했다. 그동안 김 후보가 오차범위 밖에서 국민의힘 후보보다 앞섰지만 불과 한 달 만에 국민의힘이 민주당을 따라잡은 것이다.

부산도 마찬가지다. <뉴스1>·한국갤럽이 지난 10~11일 부산에 사는 18세 이상 801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부산시장 후보 선호도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 전재수 후보 43% ▲국민의힘 박형준 후보 41%로 오차범위 내에서 겨루는 것으로 나타났다.

두 여론조사 모두 가상 전화번호를 활용한 무선전화 전화면접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오차범위 ±3.5%p다. 응답률은 대구시장과 부산시장 조사 각각 11.3%, 14.7%로 자세한 내용은 중앙여론조사 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반면 울산은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국민의힘 공천 과정에서 박맹우 전 시장이 컷오프되는 등 끊임없이 잡음이 이어졌고 결국 보수 지지층이 대거 이탈하면서 결집력이 약해진 것이다. 이후 박 전 시장의 컷오프가 무소속 출마로 이어지면서 민주당과의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여의도 안팎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민주당이 발의한 ‘조작 기소 특검법’이 보수 결집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공소 취소를 위한 특검이라는 프레임이 작동하면서 “거대 여당의 폭주를 막아야 한다”는 위기감이 보수 결집을 유도했다는 해석이다.

신율 명지대학교 정치학과 교수는 <일요시사>를 통해 “조작 기소 특검법이 보수 결집의 계기”라며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선거에 나가지 않으려고 했던 사람들을 투표장에 나오도록 하는 게 핵심인데, 민주당의 특검법을 보고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보수 유권자를 움직였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민주당은 ‘조작 기소 국조 특위’ 활동을 마친 직후 대장동·위례 사건이나 대북송금 사건 등에 대한 수사·기소 조작 의혹을 다룰 특검법을 발의했다. 해당 특검법에는 ‘공소취소권 부여’로 해석 가능한 조항이 포함된 만큼 특검의 배경을 놓고 이 대통령을 향한 정치적 논란이 불거졌다.

만일 특검법안이 민주당의 주도로 국회를 통과할 경우 이 대통령이 재판받는 사건 8개가 모두 무효화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오면서 야당의 공세가 이어졌다.

하나의
트리거

결국 청와대가 나서서 “구체적인 시기와 절차에 대해서는 여당인 민주당이 국민적 의견 수렴과 숙의 과정을 거쳐서 판단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도입 시기에 관해 “국민과 당원, 국회의원들의 총의를 모아 가장 좋은 선택을 하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민주당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국민의힘은 장 대표를 중심으로 한 ‘국민 무시 심판 공소 취소 저지 국민선대위’를 띄우며 총공세에 나섰다. 이를 접한 민주당은 “내란 잔재 청산 선대위를 하시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고 비꼬았지만 험지에서 고군분투하는 민주당 후보에게는 어느쪽이든 악재이긴 마찬가지다.

김부겸 대구시장 후보는 직접 나서 “동지들을 버릴 셈이 아니라면, (특검법 처리에) 신중해 달라고 요청하고 싶다”고도 전했다.

민주당 추미애 경기도지사 후보는 조작 기소 특검법안이 보수 결집을 불러왔다는 주장에 “선동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추 후보는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이같이 밝히며 “선거는 100가지 핑계를 대려면 다 핑계가 있는 것이다. 선거가 이렇게 선동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내란을 키운 세력인 국민의힘은 12·3 불법 계엄이 계속 내란이 아니라고 했지 않으냐”며 “조작 기소 특검법안 역시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조작 기소 특검법안을 둘러싼 비판에 대해서는 “조작 기소를 밝히자는 것이 잘못됐다고 하는 것은 그 정의를 누르겠다는 것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정치적 목적을 위해 남용했다면 반드시 진상을 밝혀야 하고, 수사를 통해서 밝혀진다면 처벌해야 한다. 억울한 피해자가 있다면 그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보수 진영 입장에서는 ‘정권 견제론’을 내세울 명분이 생겼다. 국민의힘과 개혁신당 등 범야권 수도권 광역단체장은 긴급 연석회의를 열고 공동성명을 통해 해당 특검법을 ‘범죄 삭제 특검법’으로 규정하고 “사법 쿠데타를 막기 위한 범국민 저항 운동을 시작한다”며 단일 대오를 갖췄다.

이날 회의에는 국민의힘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를 비롯한 ▲유정복 인천시장 후보 ▲양향자 경기도지사 후보 ▲개혁신당 조응천 경기도지사 후보 ▲김정철 서울시장 후보 등이 이름을 올렸다.

당 지도부
전략 싸움

조 후보는 공동성명 발표 후 기자들과 만나 ‘이번 연석 회의가 단일화 논의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에 대해 “여기서 밀리면 낙동강에서 줄줄 밀려 부산 앞바다로 다 빠진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하는 것”이라며 “정치공학적으로 단일화에 도움이 되느냐 마느냐는 생각은 하나도 없다”고 답했다.

보수 결집 조짐이 보이자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아직 겨뤄볼 만하다”는 조심스러운 의견도 나온다. 최근 불거진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의 ‘국민배당금’ 발언을 비롯해 부동산 정책, 특검법 등에 총공세를 이어간다면 부·울·경(부산·울산·경남, 이하 PK)을 맴도는 동남풍을 수도권까지 끌고 올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오른쪽으로 기우는 민심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당 지도부와 후보 간의 커플링·디커플링(비동조화) 전략을 적절히 취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장 대표가 PK 라인을 따라 보수 결집을 유도하되, 일부 지역에서는 디커플링 효과를 노려야 한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장 대표가 이 이상 행동 반경을 넓혀서는 안된다는 주장도 나온다. 신 교수는 “지금 보수 지지율이 잘나오는 건 민주당의 실책 때문이지, 장 대표 때문이 아니다. 이걸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면 곤란하다”며 “장 대표가 여러 군데 돌아다닐수록 효과가 떨어질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어차피 오를 지지율이었다”며 “국민의힘 후보 정리가 끝났으니 갈 곳 잃은 집토끼가 다시 응답한 것 아니겠느냐”라고 설명했다.

영남권에서 탄력을 받은 장 대표의 행보가 수도권까지 이어질 것으로 봤지만 일부 후보들이 이를 거절한 것으로 전해진다. 보수 결집을 호소하는 장 대표의 메시지가 보수 텃밭을 벗어난 곳에서까지 긍정적 영향을 미칠지 미지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서울시당은 지난달 열린 필승 결의대회와 마찬가지로 선대위 발대식에 지도부를 초청하지 않았다.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 “와주시겠다는 마음은 고맙지만 지금 꼭 필요한 건 아닌 것 같다”고 에둘러 거절했다.

국민의힘 주광덕 남양주시장 후보 역시 “당 대표와 지도부를 향한 원망, 선거를 앞두고 분열을 반복하는 당을 향한 질타가 이어지고 있다. 장 대표가 2선으로 후퇴하지 않는다면 이번 선거에서 후보 등록을 하지 않겠다”며 비판 수위를 높이기도 했다.

여 ‘디커플링’ 야 ‘겸손 모드’
끝나지 않은 선거, 생존 수단은?

국민의힘과 마찬가지로 변곡점에 선 민주당은 “아직은 괜찮다”는 분위기다. 민주당 조승래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총괄본부장은 기자간담회를 열고 최근 영남 지역에서 이뤄지고 있는 보수 결집 현상에 대해 “이미 예상하고 예측했던 흐름”이라고 불안 여론을 일축했다.

조 본부장은 최근 영남 지역에서 민주당 후보와 국민의힘 후보 간 지지율 격차가 오차범위 내로 좁혀졌다는 여론조사가 잇달아 나온 것에 대해 “당연히 선거를 처음 준비할 때부터 지지율의 변동 혹은 조정 등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며 오히려 보수 결집이 민주당의 예상보다 늦게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경선이 마무리된 지난달 20일을 지나 25일 무렵부터 보수 결집이 이뤄질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오히려 그보다 늦은 어린이날 무렵에야 지지율 변화가 생겼다는 것이다.

그동안 정치권에서는 ‘여당 프리미엄’을 앞세운 민주당이 대구·경북(TK)와 제주를 제외하고 전국을 석권한 ‘2018년 지방선거의 영광’을 다시 누릴 가능성까지 내다봤다. 지방선거 레이스 막이 오르기 전 민주당은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지만 16개 광역자치단체장 가운데 경북지사를 제외한 15곳 석권을 벼르며 압승에 가까운 승리를 노렸다.

동남풍을 차단하기 위해 민주당은 ‘낙관론 프레임’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과제를 떠안았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절실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초반에 기세 좋게 밀고 나갔지만 유권자의 마음이 바뀌는 것은 한 순간”이라며 “한번 모이기 시작한 표심이 다시 흩어지긴 쉽지 않다. 이제부터는 중도 보수를 끌어오기 위한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기류를 의식한 듯 지난 12일 출범한 민주당 ‘대한민국 국가 정상화 선대위’는 이정부 뒷받침과 내란 세력 청산이라는 기존의 전략을 강조하면서도 ‘압도적 승리’ 대신 ‘낮고 겸손한 태도’를 강조했다.

여론조사가 오차범위 내에서 엎치락뒤치락하는 만큼 정부의 경제·부동산·민생 정책, 국민의힘의 쇄신, 후보들의 추가 리스크 등 선거판이 출렁일 가능성은 남아있다. PK를 구심점으로 한 동남풍을 어떻게 활용하는지가 선거의 막판 변수다.

민주당 박홍배 의원은 “몇몇 여론조사에서 격차가 좁혀지고 있는 지역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저도 인지하고 있다”면서도 “오히려 이 지역에서 ‘푸른 동남풍’이 불고 있다”고 주장했다.

막판 뒤집기
충분한 시간

박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이번 선거는 대선이나 총선이 아닌 지방 정부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에 관한 선거”라며 “국민께서 이 대통령이 일을 잘한다는 데에는 대부분 동의하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유권자들은 본인 지역의 경제적 침체나 일자리 문제 등을 중앙정부와 손발을 맞춰 해결할 사람을 면밀하게 보고 있다”며 “일 잘하는 이 대통령과 함께 손발 맞춰서 지역 경제과 일자리 산업을 바꿀 수 있는 지역 일꾼들을 뽑을 마음의 준비를 마치신 것 같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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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용지가 없다니…’ 초유의 사태 후폭풍

‘투표용지가 없다니…’ 초유의 사태 후폭풍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선거가 끝난 뒤에는 자연스럽게 후폭풍이 따라온다. 이긴 쪽은 동력을 얻고 진 쪽은 수습에 나선다. 하지만 이번 지방선거는 결과만큼이나 선거관리위원회의 행보가 회자할 것으로 보인다. ‘투표용지 부족’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불러온 후폭풍이 지방선거를 뒤흔드는 모양새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이재명정부 출범 1년(4일)을 앞두고 치러졌다. 선거 자체가 국민의 심판을 받는다는 취지로 치러지는 만큼 여야는 결과에 사활을 걸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광역단체장 등에서 싹쓸이로 의회 권력에 이어 지방 권력까지 차지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고, 국민의힘은 ‘견제’를 외치며 맞섰다. 누구 손도 안 들어줘 민심은 절묘했다.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민주당은 총 16개 시‧도 중 12곳에서 이겼다. 결과만 놓고 보면 압승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격전지였던 서울시장 선거에서 채 1% 차이도 나지 않게 석패했다. 관심을 모았던 대구에서도 졌다.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도 관심이 집중된 부산 북구갑에서 의석을 내줬다. 반면 국민의힘은 선거 초반 전패를 예상했던 것과 비교해 상당히 선전했다는 평을 받는다. 서울을 수성했고 텃밭인 대구에서도 예상보다 수월하게 이겼다. 경기 평택을 선거에서도 ‘어부지리’지만 의석 하나를 건졌다. 민주당으로선 이겨도 찜찜한, 국민의힘은 졌지만 미묘하게 웃을 수 있는 결과가 나온 셈이다. 이제 여야는 물론 이재명 정부는 선거 결과에 따른 후폭풍을 마주해야 한다. 여야 모두 ‘완벽하게 이겼다, 혹은 졌다’는 결과를 받아든 게 아니기에 후폭풍은 작지 않으리라고 예상된다. 전당대회를 앞둔 민주당은 이번 선거 결과를 두고 당권 싸움을 시작할 것이고, 보수 궤멸 직전에 간신히 살아남은 국민의힘에서도 내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여기에 또 다른 후폭풍이 더해졌다는 점이다. 심지어 이 후폭풍의 크기는 선거 결과에 따른 후폭풍과는 차원이 다르다. 선거의 신뢰성 문제까지 뒤흔들 수 있는 수준의 초대형 태풍급이다. 선거에서 심판 역할을 맡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가 도마 위에 올랐기 때문. 지난 3일 지방선거 본투표 중에 서울 일부 지역에서 투표용지 부족으로 유권자가 투표하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유권자의 참정권 행사라는 선거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에 취지가 훼손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일이 투표소 한 군데가 아니라 십수 군데서 발생했다는 점이다. 선관위에 따르면 지난 3일 서울 송파구 잠실 일대를 비롯한 12개 투표소와 강남구 1개 투표소, 광진구 1개 투표소에서 투표용지가 부족해 유권자들이 투표하지 못하고 현장에서 대기하는 일이 벌어졌다. 선관위는 사태를 인지한 후 투표용지를 이송하고 현장 대기 인원에 한해 투표를 보장하겠다고 했다. 소쿠리 이어 투표지가 없다? 부정선거 논란에 불 질렀다 하지만 잠실7동 제2투표소는 대기표를 받은 유권자를 대상으로 오후 10시까지 투표 시간을 연장하는 등 혼란이 발생했다. 동시에 소식을 접한 시민과 유튜버 등이 투표소에 몰리면서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일부 투표소에서는 투표함 반출을 둘러싸고 선관위 관계자와 시민 사이에 대치 상황까지 벌어졌다. 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선거의 공정성과 신뢰성에 강한 타격을 입혔다. 특히 서울시장 선거는 국민적 관심이 집중됐던 데다 개표가 진행되면서 출구조사보다 실제 결과가 훨씬 박빙으로 나오고 있는 상태였다. 개표가 진행되는 와중에 투표도 동시에 이뤄지는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여야는 물론 지지자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국민의힘은 개표 중단을 요구했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한 지역이 공교롭게도 서울 지역 내에서 비교적 보수세가 강한 ‘강남권’으로 확인되자 당력을 집중한 것이다. 국민의힘 장동혁 상임선대위원장은 긴급 기자회견에서 개표를 중단하고 결과에 따라 서울시 선거를 다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표를 멈추고 상황에 따라 재선거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민주당은 선관위에 책임을 묻겠다면서도 국민의힘의 개표 중단, 재선거 요구는 일축했다. 민주당 조승래 총괄선대본부장은 국민의힘의 요구에 ‘일고의 가치가 없다’고 말했다. 선관위의 부실한 선거 관리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겠다고 약속하면서도 선거를 다시 치를 필요까지는 없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선관위 역시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도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선거 연기나 재선거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앞서 허철훈 선관위 사무총장은 “국민 여러분께 큰 혼란과 심려를 끼쳐 드렸다”며 “소중한 주권을 행사하기 위해 투표소를 찾아주신 국민께 불편을 드리고 공정한 선거 관리에 대한 신뢰를 훼손한 점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박빙에서 불 질렀다 그러면서 “중앙선관위는 이번 사안을 엄중히 인식하고 있으며 개표가 종료되는 즉시 일부 투표소의 투표용지가 부족했던 원인과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해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며 “미흡한 준비와 대처로 실망을 드리게 돼 다시 한번 사과드린다”고 덧붙였다. 또 이상능 선관위 선거1국장은 “이런 사례가 과거 선거에서 발생했다는 보고를 받은 적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송파구의 경우 전체 유권자 수의 50% (규모의 투표용지)를 인쇄한 것으로 파악했다”고 말했다. ‘몇 표 차이로 선거 당락이 갈리는 경우가 있는데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윤재수 선거관리정책실장은 “저희가 직접 말씀드리기는 좀 곤란할 것 같다”며 “소송 절차 등을 통해 법원의 결정에 따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답했다. 선관위는 지난 4일 0시께 긴급 위원회를 열고 수습 방안을 논의했다. 이후 위원회는 “(투표용지 부족 문제가) 공직선거법에 따른 선거 연기나 재선거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입장문을 내놨다. 또 “현재 진행되는 개표를 중단하는 것은 불가하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의 요구에 선을 그은 것이다. 이번 사태로 선관위에 개혁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쏟아지고 있다. 이번 일뿐만 아니라 선거 때마다 일어났던 ‘선관위발’ 논란이 ‘파묘’되는 분위기다. 가장 큰 논란 중 하나는 ‘소쿠리 투표’다. 2022년 대선 당시 코로나19 확진자와 격리자의 사전투표 용지를 간이 용기나 쇼핑백 등에 담으면서 촉발된 논란이다. 지난 조기 대선 때도 서울 신촌의 한 사전투표소에서 관외 선거를 위해 대기하던 일부 유권자가 대기 줄이 길다는 이유로 투표용지를 받은 채 식사하고 돌아오는 일도 있었다. 선관위의 행태는 일부 극우층에서 제기하는 ‘부정선거’ 논란에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이들은 본투표에 앞서 이틀간 진행되는 사전투표가 조작됐다는 등 부정선거가 조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주장을 내세우는데, 선관위 관련 논란도 그 근거로 언급하고 있다. 재선거까지 나왔지만… 부정선거 논란을 차단해야 할 기관에서 오히려 의심만 제공하는 꼴이다. 일각에서는 선관위 내부 사정이 반복되는 부실 선거의 배경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한 언론이 민주당 채현일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1일 기준 선관위 휴직자 수는 176명으로 집계됐다. 최근 10년 새 두 번째로 많은 수치다. 육아휴직이 124명으로 가장 많았고 일반 질병 휴직 30명, 가족 돌봄 휴직 11명, 해외 동반 휴직 8명 등이 뒤를 이었다. 지방선거, 대통령선거, 국회의원 선거 등 이른바 3대 전국 선거 때마다 휴직자가 늘어나는 선관위의 고질적인 병폐가 또다시 되풀이됐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실제 2022년 5월 기준 선관위 휴직자 수는 218명으로 최근 10년 기준으로 가장 많았다. 당시 3월에는 대선, 6월에는 지방선거가 각각 치러졌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으로 갑작스럽게 치러진 지난해에도 선거를 한 달 앞둔 5월 기준 휴직자는 145명에 달했다. 이 같은 문제가 반복적으로 지적되자 선관위도 선거 기간에는 휴직을 자제하라는 내용의 공지를 내리는 등 개선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법으로 보장된 육아휴직 등은 강제로 제한할 수 없으니 인력을 채용하는 방향으로 인력 공백을 막겠다는 대응책도 내놨다. 하지만 앞서 선관위 내부에서 채용 관련 비리 의혹이 크게 불거지면서 이마저도 미덥지 못한 방안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더 큰 문제는 선거 때마다 논란이 불거지고 내부의 고질적인 병폐 등으로 지적을 받는 와중에도 선관위는 큰 변화가 없다는 점이다. 독립된 ‘헌법기관’이라는 방패를 내세워 ‘지금만 넘기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이 선관위를 좀먹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자정을 할 수 없으면 외력이라도 가해야 하는데 그것조차 막혀 있다는 것이다. 선거 때마다 구설 불거지는데… 자정은커녕 외부 감사도 안 돼 2023년 5월 당시 선관위 사무총장, 사무차장 등 고위 간부의 자녀가 선관위 경력직 채용에 특혜를 받았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아빠 찬스’ 논란의 시발점이다. 이후 선관위 자체 특별감사 결과 고위직 자녀 특혜 채용이 관행적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감사원이 선관위의 인력 관리 실태에 관한 직무감찰에 착수했다. 그러자 선관위는 ‘독립기관’임을 내세우면서 감사원 감사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회는 물론 여론의 반발이 거셌다. 선관위는 감사원 직무감찰을 부분적으로 수용하면서도 “감사원의 감사 범위를 명확히 정리할 필요가 있다”며 2023년 7월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헌재는 선관위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해 2월 헌재는 “이 사건 직무감찰은 헌법 및 법률상 권한 없이 이뤄진 것으로 선관위의 독립적 업무 수행 권한을 침해했다”고 밝혔다. 선관위가 감사원의 감사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헌법에 기재된 감사원의 감사 범위가 “행정부 내부의 통제장치로서의 성격”인 만큼 정부와 독립된 헌법기관인 선관위는 국회, 법원, 헌재와 같이 직무감찰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그 배경으로 선관위의 선거 관리 업무를 들었다. 대통령 소속 기관인 감사원이 독립된 헌법 기구인 선관위를 직무감찰할 수 있게 되면 선거 관리 공정성에 대한 신뢰가 훼손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감사원의 직무감찰 배제가 곧바로 부패 행위에 대한 성역의 인정으로 호도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헌재는 “감사원 직무감찰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이를 대신할 독립성과 전문성을 갖춘 자체 감찰기구가 마련될 것이라는 점을 전제로 한 것”이라며 “선관위는 자체 감찰제도의 실효성을 담보함으로써 우려를 불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결국 내부 자정 기능에 기대를 건 것이다. 이번에는 고쳐질까 하지만 채용 의혹은 차치하고라도 그 이후에도 가장 본연의 업무인 선거 관리에서 계속해서 잡음을 내고 있다는 점에서 선관위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곱지 않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4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민주공화국에서 무엇보다 철저해야 할 선거 관리에 납득하기 쉽지 않은 허점이 발생한 점에 대해 매우 큰 유감을 표한다”며 “국민의 참정권이 한치라도 훼손되는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신뢰할 만한 적절한 대책을 조속하게 마련해 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제 지방선거는 끝났다. 선관위는 이 후폭풍을 감당할 수 있을까.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