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몽키하우스’ 미군 위안부 수용소 (26)열일곱에 멈춰 있는 백발 노파

  • 김영권 작가 nammunsan@naver.com
  • 등록 2026.05.18 04:02:07
  • 호수 1584호
  • 댓글 0개

“국보는 남대문이나 동대문이 아니라 ‘나라 보지’를 말하는 거야. 국가에서 우리 몸뚱이를 이용했으니…그 무서운 곳을 ‘언덕 위의 하얀 집’이라 부른 건 낭만이 아니라 야유하기 위해서였지…우리 보지는 나라의 보지였어!” <어느 위안부 할머니의 절규>

백발 노파는 붉게 충혈된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며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어떤 인연으로 자식을 삼으셨어요? 친자식을 버리는 엄마도 있는데….”

“이런 기지촌에서 태어난 애들은 굴뚝새 새끼들과 같은 신세야. 엄마가 살펴주지 않으면 사악한 기생충에게 먹히고 말지. 어린 애들은 병에 걸려 죽기도 하지만, 사람 손에 팔려가 암흑 속으로 사라져 버리기 때문에 라고 말하는 거야.”

기생충 먹이

“그럼 그 애들도요?”

“걔들은 그나마 엄마가 죽을 때까지 보듬고 있었어. 시체가 된 에미의 젖을 빨다가 울다가 하고 있더군. 하나는 백인 새끼고 하는 흑인 새끼였어. 세월이 흘러 두 놈 중에 하나가 살인범이란 소문이 났었지만 다 미국으로 도망치고 말았지 뭘.”

“참 비극적이군. 만일 셰익스피어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어떤 드라마틱한 극본을 썼을지 궁금해.”

피에로가 끼어들었다.

“미친 소리 작작하구 술이나 마셔.”

“누님, 너무 슬퍼 마슈. 내가 더 구구절절 가슴을 울리는 시나리오를 써서 만고에 남을 영화를 만들 테니까.”

“말이사 늘 좋지.”

백발 노파는 주름살을 잔뜩 찡그리며 빙긋 웃었다.

“그런데 누님 내가 극본을 쓰려 해도, 주인공이 될 누님의 나이가 몇인지 잘 몰사서 캐릭터가 좀 헷갈려.”

“쳇, 무식한 녀석이 영어 나부랭이나 쓰면 좀 유식해질 것 같냐? 에라 이 어릿광대 녀석 같으니라구 흐흣, 너희들은 날 이상스런 할멈으로 보는 모양인데, 난 사실 평범한 여자일 뿐이란다. 아, 가난한 고향 산천에서나마…그 오빠도 일본으로 끌려가지 않고 나도 만주로 끌려가지 않고 고향 땅에서 부부로 만나 오붓이 함께 살 수 있었다면, 그래서 난 항상 열일곱 나이에 멈춰 사는지도 몰라.”

그녀의 충혈된 눈에 눈물방울이 맺혔다. 억누르려 애썼으나 저절로 생겨난 그 눈물을 보며 청운은 소주보다 더 맑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잔을 들어 마셨다. 소주잔에 비친 여인의 모습이 아련해 보였다.

“눈이 여전히 내리는군.”

백발 여인이 말했다. 그녀의 모습은 백발의 겉모습보다 늙어 보이지 않았다. 세파에 찌들어 주름진 얼굴이었지만 문득 그 눈엔 순수한 마음이 반짝 어린 듯도 했다.

멀리서 은은히 종소리가 들려왔다. 피에로가 시계를 들여다보더니 말했다.

“앗! 벌써….”

“응?”

“고단했던 하루도, 한 해도 지나고 이미 새해가 시작됐네요.”

“그게 뭐 그리 중요한고, 후훗.”

백발 노파가 중얼거렸다.

좀더 중요한 점이 없잖아 있었다. 1960년대가 지나고 1970년대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청운은 십대의 마지막을 어렵게 지나 이윽고 스무 살이 되었다.

새해 들어 청운은 의외로 특이한 경험을 하게 됐다. 피에로 형이 잘 아는 어느 미군 장교의 안내로 미군부대 내부를 구경하게 된 것이었다.

회색 담장 위에 철조망이 높게 쳐진 삭막한 풍경 저 안쪽엔 과연 무엇이 있을지 궁금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부대 안으로 들어선 청운은 내심 깜짝 놀랐다. 머릿속으로 공상하던 일반 군부대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한국군 부대에 대한 인상이 삼엄하고 황량한 일종의 수용소 같다면, 미군 부대는 마치 거대한 놀이공원이나 산뜻한 신식 공장 또는 대학 캠퍼스처럼 보였다.

거대한 놀이공원? 대학 캠퍼스?
미군 부대 내부는 하나의 소왕국

점점 안으로 들어갈수록 하나의 소왕국처럼 보이기도 하는 것이었다.

지프차는 잘 포장된 길을 달려 나갔다. 진입로에 사열병처럼 늘어선 나무들은 잎이 다 진 채 하얀 눈꽃을 피우고 있었다.

본부 건물은 저 멀리 위엄스레 우뚝 선 채 푸른 하늘에 성조기를 휘날리고 있었다. 길 양옆의 널따란 평지엔 정원처럼 잔디가 깔렸고 푸른 빛을 잃지 않은 조경수들이 잘 다듬어져 보였다.

그래서 그런지 연병장도 마치 온갖 헬스 기구가 잘 갖춰진 운동장인 듯싶었다.

장교클럽 입구의 화려한 장식물들, 아담한 도서관과 최신식 장비를 자랑한다는 병원, 넓은 수영장에 출렁거리는 맑은 물, 탁 트인 전망이 부러워 보이는 곳에 들어선 아파트…

20여분 동안 지프차를 탄 채 돌아다녔으나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드넓은 일종의 디즈니랜드 같았다. 골프장까지 가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중단했다.

겨울이지만 포근한 휴일이라 그런지 맨션아파트 앞의 광장에서는 가든파티가 벌어지는 중이었다.

테이블 위로 하얀 접시와 유리잔들이 햇빛을 투명하게 반사하고, 바베큐가 황금색으로 익어 가며 향긋한 냄새를 풍겼다. 산해진미와 미주 美酒를 앞에 둔 미군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행복스러웠다.

‘미국은 원체 땅이 넓으니까 여기서도 자기네들 몸에 맞게 아주 스케일 크게 지어 놨구나. 미국의 작은 도시 하나를 옮겨 놓은 것 같아. 흐, 이 정도면 아예 리틀 텍사스라고 불러도 되겠어. 저들에겐 이것도 좀 좁은지 몰라. 아, 하지만 얼마나 많은 농부들의 터전인 기름진 논밭이 저 밑에 깔려 버렸을까. 반강제적이라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던데.’

청운은 홀로 생각에 잠겨 미군 장교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서울 용산의 미군 기지는 여기에 비하면 마치 왕궁과 같다고나 할까.”

피에로가 말을 꺼냈다.

“뭐?”

청운이 대꾸했다.

“히히, 뭘 그리 놀라? 언젠가 미8군 소속 악극단을 따라 한번 들어가 봤지 뭐.”

“정말?”

“응. 하지만 정규 단원이 아니라 시다바리 역할이었어, 쯧.”

“그래, 어땠어?”

리틀 아메리카

“한마디로 엄청나더군. 서울 한가운데의 노른자 땅 100만 평이 다 미군부대니까. 기지 안으로 들어가는 문만 스무 개가 넘는다더군. 메인 포스트엔 주한미군 사령부, 미8군 사령부, 한미연합사령부 따위가 있는데, 그 지하에는 극비 지휘소를 비롯해 상상도 못할 시설이 들어서 있대. 그리고 남쪽 지역엔 고급 맨션 단지와 학교, 병원, 스포츠센터 등등 거대한 편의 시설이 삐까번쩍하더군. 북쪽 지구엔 한층 더 산뜻하고 첨단적인 건물이 들어서 있는데 한국 사람은 아무나 출입할 수 없다더구먼. 아무튼 말이야 봄에 꽃이 화려하게 핀 그곳의 드넓은 정원은 정말 꽃대궐 같았어. 아, 언제 그 화려찬란한 무대에 서 볼까나.”

피에로는 사근사근하고 희극적인 표정으로 미군 장교와 이따금 얘기를 나누면서 청운에게 그런 말을 속닥거렸다.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투표용지가 없다니…’ 초유의 사태 후폭풍

‘투표용지가 없다니…’ 초유의 사태 후폭풍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선거가 끝난 뒤에는 자연스럽게 후폭풍이 따라온다. 이긴 쪽은 동력을 얻고 진 쪽은 수습에 나선다. 하지만 이번 지방선거는 결과만큼이나 선거관리위원회의 행보가 회자할 것으로 보인다. ‘투표용지 부족’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불러온 후폭풍이 지방선거를 뒤흔드는 모양새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이재명정부 출범 1년(4일)을 앞두고 치러졌다. 선거 자체가 국민의 심판을 받는다는 취지로 치러지는 만큼 여야는 결과에 사활을 걸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광역단체장 등에서 싹쓸이로 의회 권력에 이어 지방 권력까지 차지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고, 국민의힘은 ‘견제’를 외치며 맞섰다. 누구 손도 안 들어줘 민심은 절묘했다.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민주당은 총 16개 시‧도 중 12곳에서 이겼다. 결과만 놓고 보면 압승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격전지였던 서울시장 선거에서 채 1% 차이도 나지 않게 석패했다. 관심을 모았던 대구에서도 졌다.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도 관심이 집중된 부산 북구갑에서 의석을 내줬다. 반면 국민의힘은 선거 초반 전패를 예상했던 것과 비교해 상당히 선전했다는 평을 받는다. 서울을 수성했고 텃밭인 대구에서도 예상보다 수월하게 이겼다. 경기 평택을 선거에서도 ‘어부지리’지만 의석 하나를 건졌다. 민주당으로선 이겨도 찜찜한, 국민의힘은 졌지만 미묘하게 웃을 수 있는 결과가 나온 셈이다. 이제 여야는 물론 이재명 정부는 선거 결과에 따른 후폭풍을 마주해야 한다. 여야 모두 ‘완벽하게 이겼다, 혹은 졌다’는 결과를 받아든 게 아니기에 후폭풍은 작지 않으리라고 예상된다. 전당대회를 앞둔 민주당은 이번 선거 결과를 두고 당권 싸움을 시작할 것이고, 보수 궤멸 직전에 간신히 살아남은 국민의힘에서도 내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여기에 또 다른 후폭풍이 더해졌다는 점이다. 심지어 이 후폭풍의 크기는 선거 결과에 따른 후폭풍과는 차원이 다르다. 선거의 신뢰성 문제까지 뒤흔들 수 있는 수준의 초대형 태풍급이다. 선거에서 심판 역할을 맡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가 도마 위에 올랐기 때문. 지난 3일 지방선거 본투표 중에 서울 일부 지역에서 투표용지 부족으로 유권자가 투표하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유권자의 참정권 행사라는 선거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에 취지가 훼손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일이 투표소 한 군데가 아니라 십수 군데서 발생했다는 점이다. 선관위에 따르면 지난 3일 서울 송파구 잠실 일대를 비롯한 12개 투표소와 강남구 1개 투표소, 광진구 1개 투표소에서 투표용지가 부족해 유권자들이 투표하지 못하고 현장에서 대기하는 일이 벌어졌다. 선관위는 사태를 인지한 후 투표용지를 이송하고 현장 대기 인원에 한해 투표를 보장하겠다고 했다. 소쿠리 이어 투표지가 없다? 부정선거 논란에 불 질렀다 하지만 잠실7동 제2투표소는 대기표를 받은 유권자를 대상으로 오후 10시까지 투표 시간을 연장하는 등 혼란이 발생했다. 동시에 소식을 접한 시민과 유튜버 등이 투표소에 몰리면서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일부 투표소에서는 투표함 반출을 둘러싸고 선관위 관계자와 시민 사이에 대치 상황까지 벌어졌다. 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선거의 공정성과 신뢰성에 강한 타격을 입혔다. 특히 서울시장 선거는 국민적 관심이 집중됐던 데다 개표가 진행되면서 출구조사보다 실제 결과가 훨씬 박빙으로 나오고 있는 상태였다. 개표가 진행되는 와중에 투표도 동시에 이뤄지는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여야는 물론 지지자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국민의힘은 개표 중단을 요구했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한 지역이 공교롭게도 서울 지역 내에서 비교적 보수세가 강한 ‘강남권’으로 확인되자 당력을 집중한 것이다. 국민의힘 장동혁 상임선대위원장은 긴급 기자회견에서 개표를 중단하고 결과에 따라 서울시 선거를 다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표를 멈추고 상황에 따라 재선거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민주당은 선관위에 책임을 묻겠다면서도 국민의힘의 개표 중단, 재선거 요구는 일축했다. 민주당 조승래 총괄선대본부장은 국민의힘의 요구에 ‘일고의 가치가 없다’고 말했다. 선관위의 부실한 선거 관리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겠다고 약속하면서도 선거를 다시 치를 필요까지는 없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선관위 역시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도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선거 연기나 재선거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앞서 허철훈 선관위 사무총장은 “국민 여러분께 큰 혼란과 심려를 끼쳐 드렸다”며 “소중한 주권을 행사하기 위해 투표소를 찾아주신 국민께 불편을 드리고 공정한 선거 관리에 대한 신뢰를 훼손한 점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박빙에서 불 질렀다 그러면서 “중앙선관위는 이번 사안을 엄중히 인식하고 있으며 개표가 종료되는 즉시 일부 투표소의 투표용지가 부족했던 원인과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해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며 “미흡한 준비와 대처로 실망을 드리게 돼 다시 한번 사과드린다”고 덧붙였다. 또 이상능 선관위 선거1국장은 “이런 사례가 과거 선거에서 발생했다는 보고를 받은 적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송파구의 경우 전체 유권자 수의 50% (규모의 투표용지)를 인쇄한 것으로 파악했다”고 말했다. ‘몇 표 차이로 선거 당락이 갈리는 경우가 있는데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윤재수 선거관리정책실장은 “저희가 직접 말씀드리기는 좀 곤란할 것 같다”며 “소송 절차 등을 통해 법원의 결정에 따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답했다. 선관위는 지난 4일 0시께 긴급 위원회를 열고 수습 방안을 논의했다. 이후 위원회는 “(투표용지 부족 문제가) 공직선거법에 따른 선거 연기나 재선거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입장문을 내놨다. 또 “현재 진행되는 개표를 중단하는 것은 불가하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의 요구에 선을 그은 것이다. 이번 사태로 선관위에 개혁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쏟아지고 있다. 이번 일뿐만 아니라 선거 때마다 일어났던 ‘선관위발’ 논란이 ‘파묘’되는 분위기다. 가장 큰 논란 중 하나는 ‘소쿠리 투표’다. 2022년 대선 당시 코로나19 확진자와 격리자의 사전투표 용지를 간이 용기나 쇼핑백 등에 담으면서 촉발된 논란이다. 지난 조기 대선 때도 서울 신촌의 한 사전투표소에서 관외 선거를 위해 대기하던 일부 유권자가 대기 줄이 길다는 이유로 투표용지를 받은 채 식사하고 돌아오는 일도 있었다. 선관위의 행태는 일부 극우층에서 제기하는 ‘부정선거’ 논란에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이들은 본투표에 앞서 이틀간 진행되는 사전투표가 조작됐다는 등 부정선거가 조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주장을 내세우는데, 선관위 관련 논란도 그 근거로 언급하고 있다. 재선거까지 나왔지만… 부정선거 논란을 차단해야 할 기관에서 오히려 의심만 제공하는 꼴이다. 일각에서는 선관위 내부 사정이 반복되는 부실 선거의 배경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한 언론이 민주당 채현일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1일 기준 선관위 휴직자 수는 176명으로 집계됐다. 최근 10년 새 두 번째로 많은 수치다. 육아휴직이 124명으로 가장 많았고 일반 질병 휴직 30명, 가족 돌봄 휴직 11명, 해외 동반 휴직 8명 등이 뒤를 이었다. 지방선거, 대통령선거, 국회의원 선거 등 이른바 3대 전국 선거 때마다 휴직자가 늘어나는 선관위의 고질적인 병폐가 또다시 되풀이됐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실제 2022년 5월 기준 선관위 휴직자 수는 218명으로 최근 10년 기준으로 가장 많았다. 당시 3월에는 대선, 6월에는 지방선거가 각각 치러졌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으로 갑작스럽게 치러진 지난해에도 선거를 한 달 앞둔 5월 기준 휴직자는 145명에 달했다. 이 같은 문제가 반복적으로 지적되자 선관위도 선거 기간에는 휴직을 자제하라는 내용의 공지를 내리는 등 개선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법으로 보장된 육아휴직 등은 강제로 제한할 수 없으니 인력을 채용하는 방향으로 인력 공백을 막겠다는 대응책도 내놨다. 하지만 앞서 선관위 내부에서 채용 관련 비리 의혹이 크게 불거지면서 이마저도 미덥지 못한 방안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더 큰 문제는 선거 때마다 논란이 불거지고 내부의 고질적인 병폐 등으로 지적을 받는 와중에도 선관위는 큰 변화가 없다는 점이다. 독립된 ‘헌법기관’이라는 방패를 내세워 ‘지금만 넘기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이 선관위를 좀먹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자정을 할 수 없으면 외력이라도 가해야 하는데 그것조차 막혀 있다는 것이다. 선거 때마다 구설 불거지는데… 자정은커녕 외부 감사도 안 돼 2023년 5월 당시 선관위 사무총장, 사무차장 등 고위 간부의 자녀가 선관위 경력직 채용에 특혜를 받았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아빠 찬스’ 논란의 시발점이다. 이후 선관위 자체 특별감사 결과 고위직 자녀 특혜 채용이 관행적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감사원이 선관위의 인력 관리 실태에 관한 직무감찰에 착수했다. 그러자 선관위는 ‘독립기관’임을 내세우면서 감사원 감사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회는 물론 여론의 반발이 거셌다. 선관위는 감사원 직무감찰을 부분적으로 수용하면서도 “감사원의 감사 범위를 명확히 정리할 필요가 있다”며 2023년 7월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헌재는 선관위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해 2월 헌재는 “이 사건 직무감찰은 헌법 및 법률상 권한 없이 이뤄진 것으로 선관위의 독립적 업무 수행 권한을 침해했다”고 밝혔다. 선관위가 감사원의 감사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헌법에 기재된 감사원의 감사 범위가 “행정부 내부의 통제장치로서의 성격”인 만큼 정부와 독립된 헌법기관인 선관위는 국회, 법원, 헌재와 같이 직무감찰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그 배경으로 선관위의 선거 관리 업무를 들었다. 대통령 소속 기관인 감사원이 독립된 헌법 기구인 선관위를 직무감찰할 수 있게 되면 선거 관리 공정성에 대한 신뢰가 훼손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감사원의 직무감찰 배제가 곧바로 부패 행위에 대한 성역의 인정으로 호도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헌재는 “감사원 직무감찰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이를 대신할 독립성과 전문성을 갖춘 자체 감찰기구가 마련될 것이라는 점을 전제로 한 것”이라며 “선관위는 자체 감찰제도의 실효성을 담보함으로써 우려를 불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결국 내부 자정 기능에 기대를 건 것이다. 이번에는 고쳐질까 하지만 채용 의혹은 차치하고라도 그 이후에도 가장 본연의 업무인 선거 관리에서 계속해서 잡음을 내고 있다는 점에서 선관위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곱지 않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4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민주공화국에서 무엇보다 철저해야 할 선거 관리에 납득하기 쉽지 않은 허점이 발생한 점에 대해 매우 큰 유감을 표한다”며 “국민의 참정권이 한치라도 훼손되는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신뢰할 만한 적절한 대책을 조속하게 마련해 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제 지방선거는 끝났다. 선관위는 이 후폭풍을 감당할 수 있을까.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