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부르는 무신사 삼중고

  • 조유담 기자 ydcho@ilyosisa.co.kr
  • 등록 2026.05.14 11:23:23
  • 호수 1583호
  • 댓글 3개

10조 문턱서 발목 잡히나

[일요시사 취재1팀] 조유담 기자 = 대한민국 패션의 공룡 무신사가 입점 업체에 대한 고율의 수수료와 타 플랫폼 입점 제한을 강요했다는 ‘갑질’ 의혹에 휩싸이며 10조원대 상장 가도에 잡음이 생겼다. 플랫폼 종속 심화로 신생 브랜드들의 자립이 불가능해진 기형적 생태계 속에 ‘택갈이’ 논란 등 관리 부실까지 겹치면서, 강화된 과징금 기준을 앞세운 공정위의 칼날이 무신사의 도덕성과 기업가치를 정조준하고 있다.

무신사는 단순한 쇼핑몰을 넘어 대한민국 패션 생태계를 지배하는 ‘플랫폼 권력’으로 성장했다. 스트리트 패션 커뮤니티로 출발했던 무신사의 연간 거래액(GMV)은 현재 약 4조5000억원 수준으로, 2025년 연 매출 1조4679억원을 기록하며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최대 수수료

공격적인 인수합병(M&A)을 통해 여성 패션 플랫폼 ‘29CM’와 ‘솔드아웃’을 인수하며 고객층을 전방위로 확대했고, 최근에는 물류 시스템 고도화와 자체 브랜드(PB) ‘무신사 스탠다드’의 오프라인 확장을 통해 온·오프라인을 아우르는 패션 제국을 건설 중이다.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는 물론 글로벌 브랜드까지 포섭하며 입점 업체만 8000여개에 달하는 국내 온라인 패션 유통의 핵심 채널로 자리 잡았다. 업계에서 “신생 브랜드의 생사는 무신사 입점 여부에 달렸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독보적인 위상을 자랑한다.

문제는 이 같은 시장 지배력이 입점 업체에게는 ‘높은 문턱’이자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무신사의 평균 수수료율은 27.8%로, 쿠팡(12.3%), G마켓(11.7%), 네이버(6.3%) 등 주요 플랫폼과 비교해도 두 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판로 개척이 절실한 중소 브랜드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고율의 수수료를 감내하고 있는 셈이다.

입점 업체들은 무신사가 거래 과정에서 이익을 더욱 확대하기 위해 ‘갑질’을 부려왔다고 주장했다. 과도한 수수료는 물론 각종 할인 행사와 프로모션 비용까지 전가하며 “팔수록 남는 게 없는 구조”를 만든다는 것이다. 무신사는 입점 업체들의 타 플랫폼 입점을 제한한 경우도 있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입점 업체들과 파트너십 협약을 맺으면서 ‘서면 합의 없이는 타 플랫폼 입점 제한’ 또는 ‘판매 채널 확대 시 사전 협의’ 조항을 계약서에 포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중소 브랜드의 판로 확대를 막고 무신사에 대한 의존도를 높여 시장 경쟁을 저해하는 행위로 간주된다.

또 입점 업체에 대해 상품 가격과 재고 등을 자사 플랫폼에 가장 유리하게 설정하도록 강요한 혐의도 받는다. 납품업체의 가격 결정권을 침해하고, 다른 플랫폼이 가격 경쟁을 하지 못하도록 방해함으로써 공정거래법상 문제 소지가 있는 대표적 독과점 행위인 ‘최혜대우(MFN)’ 조건에 해당할 수 있다.

업체들 옥죄는 ‘패션 공룡’
계속되는 갑질 논란 정조준

이에 대해 무신사 측은 단순 중개를 넘어 브랜드 큐레이션과 마케팅, 화보 촬영 지원, 데이터 분석 등 부가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비즈니스 모델에서 비롯된 것으로, 실질 수수료는 경쟁업체들에 비하면 높은 수준이 아니라고 밝혔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는 최근 ‘대규모유통업법’(대규모유통업에서의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위반 여부를 집중적으로 점검하는 현장 조사를 마쳤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달 주요 유통기업에 조사관을 파견해 시장 지배력이 강한 플랫폼 업체들이 납품 업체에 부당한 행위를 했는지 여부를 파악하기 위한 자료를 수집했으며 27일 서울 성동구에 소재한 무신사 본사 다수의 조사관을 파견해 납품 거래 내역 등 관련 자료 확보에 나섰다.

유통 플랫폼 불공정 행위는 쿠팡이 경쟁사인 CJ올리브영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하면서 논란이 된 바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올리브영이 납품업체들에 경쟁 플랫폼 입점을 제한하는 구조를 만들었다고 판단해 제재에 나섰다.

일부 브랜드에 대해 ‘올리브영 전용 상품’ 운영을 사실상 강제하고, 경쟁 플랫폼 판매를 제한했다는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에 대해 법원은 올리브영의 거래상 우월적 지위는 인정하면서도 납품업체들이 다른 플랫폼에도 입점할 수 있는 ‘자유의사’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특정 플랫폼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상황에서는 계약서상 동의가 있더라도 실질적 자유의사로 보기 어렵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중소기업중앙회가 2024년 발표한 ‘온라인 플랫폼 입점 중소기업 거래 실태조사’에 따르면 무신사에 입점한 업체 중 약 50%가 무신사를 통한 매출 비중이 전체 비중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높은 수수료와 비용 부담에도 불구하고 플랫폼을 떠날 수 없는 구조라면, 이는 선택이 아닌 종속에 가깝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무신사를 통해 성장한 패션 브랜드 마르디 메크르디는 플랫폼 의존도를 낮추겠다며 퇴점했지만, D2C(자사몰 중심) 전환 이후 수익성 악화를 겪으며 기업가치가 급락했다. 1조원에 달하던 기업가치가 현재는 3000억으로 급락한 상태다. 결국 최근에는 쿠팡 입점을 선택하며 사실상 플랫폼으로 복귀했다.

업계에서는 “마르디 메르크디가 패션 플랫폼이 아닌 생활용품 위주의 플랫폼에 입점한 것은 패션 브랜드로서 드문 일”이라며 생존을 위해 이미지 타격을 감수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입점 제한에 최혜 대우까지
반복되는 플랫폼 종속 논란

국내 패션 생태계에서 최고의 기업가치를 자랑하며 마뗑킴, 마리떼프랑소와저버와 함께 ‘3마’로 불리던 마르디 메크르디조차 무신사라는 거대 플랫폼을 떠난 후 고전하는 모습을 보며 소규모 브랜드들은 ‘떠나는 순간 무너진다’라는 인식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

입점 브랜드들의 종속적 형태에 공정거래위원회 역시 플랫폼 유통 시장에 대한 규제 강화에 나선 상태다. 공정위는 지난달 대규모유통업법 등 관련 고시를 개정해 과징금 부과 기준율을 상향 조정했다. 대규모유통업법의 경우 기존 60~140% 수준이던 기준율을 80~200%로 높였으며, 하도급법과 대리점법 등 주요 공정거래 관련 법령 역시 일제히 기준을 강화했다.

반복적으로 법을 위반한 사업자에 대해서는 최대 100%까지 과징금을 가중할 수 있도록 하면서 상습적인 ‘갑질’ 행위에 대한 제재 수위도 높였다.

그동안 플랫폼 업계에서는 과징금 규모가 상대적으로 낮아 대형 플랫폼 사업자들에 대한 실효성 있는 견제가 어렵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특히 대규모유통업법은 전체 매출이 아닌 ‘위반 금액’을 기준으로 과징금을 산정하는 구조여서 시장 지배력이 큰 플랫폼 기업이라 하더라도 실제 부담은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무신사는 지난 3월 ‘택갈이’ 논란에도 휩싸인 바 있다. 입점 브랜드 중 일부가 중국산 저가 상품의 라벨만 교체해 자체 제작 상품으로 판매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고가의 수수료를 받는 플랫폼이 입점 업체 검증 의무를 소홀히 했다는 비판이 커졌다.

무신사는 택갈이 행위에 대해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향후 적발 시 무신사와 29CM 등 모든 플랫폼에서 해당 업체를 영구 퇴출한다는 강도 높은 대응책을 내놨다.

부실한 관리

이번 공정거래위원회 조사와 택갈이 논란은 무신사의 상장 계획에도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투자은행 업계에 따르면 무신사는 약 10조원 수준의 기업가치를 목표로 기업공개(IPO)를 추진 중이다. 다만 시장에서는 무신사의 기업가치가 당초 기대만큼 평가받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10조원이라는 기업가치가 지나치게 부풀려져 있다는 지적과 함께 부실한 관리 역량까지 드러난 가운데, 독점 구조와 입점 업체 종속 문제가 본격적으로 부각될 경우 투자자들이 가장 민감하게 보는 규제 리스크가 커질 가능성이 높다.

<ydcho@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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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용지가 없다니…’ 초유의 사태 후폭풍

‘투표용지가 없다니…’ 초유의 사태 후폭풍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선거가 끝난 뒤에는 자연스럽게 후폭풍이 따라온다. 이긴 쪽은 동력을 얻고 진 쪽은 수습에 나선다. 하지만 이번 지방선거는 결과만큼이나 선거관리위원회의 행보가 회자할 것으로 보인다. ‘투표용지 부족’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불러온 후폭풍이 지방선거를 뒤흔드는 모양새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이재명정부 출범 1년(4일)을 앞두고 치러졌다. 선거 자체가 국민의 심판을 받는다는 취지로 치러지는 만큼 여야는 결과에 사활을 걸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광역단체장 등에서 싹쓸이로 의회 권력에 이어 지방 권력까지 차지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고, 국민의힘은 ‘견제’를 외치며 맞섰다. 누구 손도 안 들어줘 민심은 절묘했다.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민주당은 총 16개 시‧도 중 12곳에서 이겼다. 결과만 놓고 보면 압승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격전지였던 서울시장 선거에서 채 1% 차이도 나지 않게 석패했다. 관심을 모았던 대구에서도 졌다.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도 관심이 집중된 부산 북구갑에서 의석을 내줬다. 반면 국민의힘은 선거 초반 전패를 예상했던 것과 비교해 상당히 선전했다는 평을 받는다. 서울을 수성했고 텃밭인 대구에서도 예상보다 수월하게 이겼다. 경기 평택을 선거에서도 ‘어부지리’지만 의석 하나를 건졌다. 민주당으로선 이겨도 찜찜한, 국민의힘은 졌지만 미묘하게 웃을 수 있는 결과가 나온 셈이다. 이제 여야는 물론 이재명 정부는 선거 결과에 따른 후폭풍을 마주해야 한다. 여야 모두 ‘완벽하게 이겼다, 혹은 졌다’는 결과를 받아든 게 아니기에 후폭풍은 작지 않으리라고 예상된다. 전당대회를 앞둔 민주당은 이번 선거 결과를 두고 당권 싸움을 시작할 것이고, 보수 궤멸 직전에 간신히 살아남은 국민의힘에서도 내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여기에 또 다른 후폭풍이 더해졌다는 점이다. 심지어 이 후폭풍의 크기는 선거 결과에 따른 후폭풍과는 차원이 다르다. 선거의 신뢰성 문제까지 뒤흔들 수 있는 수준의 초대형 태풍급이다. 선거에서 심판 역할을 맡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가 도마 위에 올랐기 때문. 지난 3일 지방선거 본투표 중에 서울 일부 지역에서 투표용지 부족으로 유권자가 투표하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유권자의 참정권 행사라는 선거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에 취지가 훼손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일이 투표소 한 군데가 아니라 십수 군데서 발생했다는 점이다. 선관위에 따르면 지난 3일 서울 송파구 잠실 일대를 비롯한 12개 투표소와 강남구 1개 투표소, 광진구 1개 투표소에서 투표용지가 부족해 유권자들이 투표하지 못하고 현장에서 대기하는 일이 벌어졌다. 선관위는 사태를 인지한 후 투표용지를 이송하고 현장 대기 인원에 한해 투표를 보장하겠다고 했다. 소쿠리 이어 투표지가 없다? 부정선거 논란에 불 질렀다 하지만 잠실7동 제2투표소는 대기표를 받은 유권자를 대상으로 오후 10시까지 투표 시간을 연장하는 등 혼란이 발생했다. 동시에 소식을 접한 시민과 유튜버 등이 투표소에 몰리면서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일부 투표소에서는 투표함 반출을 둘러싸고 선관위 관계자와 시민 사이에 대치 상황까지 벌어졌다. 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선거의 공정성과 신뢰성에 강한 타격을 입혔다. 특히 서울시장 선거는 국민적 관심이 집중됐던 데다 개표가 진행되면서 출구조사보다 실제 결과가 훨씬 박빙으로 나오고 있는 상태였다. 개표가 진행되는 와중에 투표도 동시에 이뤄지는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여야는 물론 지지자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국민의힘은 개표 중단을 요구했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한 지역이 공교롭게도 서울 지역 내에서 비교적 보수세가 강한 ‘강남권’으로 확인되자 당력을 집중한 것이다. 국민의힘 장동혁 상임선대위원장은 긴급 기자회견에서 개표를 중단하고 결과에 따라 서울시 선거를 다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표를 멈추고 상황에 따라 재선거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민주당은 선관위에 책임을 묻겠다면서도 국민의힘의 개표 중단, 재선거 요구는 일축했다. 민주당 조승래 총괄선대본부장은 국민의힘의 요구에 ‘일고의 가치가 없다’고 말했다. 선관위의 부실한 선거 관리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겠다고 약속하면서도 선거를 다시 치를 필요까지는 없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선관위 역시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도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선거 연기나 재선거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앞서 허철훈 선관위 사무총장은 “국민 여러분께 큰 혼란과 심려를 끼쳐 드렸다”며 “소중한 주권을 행사하기 위해 투표소를 찾아주신 국민께 불편을 드리고 공정한 선거 관리에 대한 신뢰를 훼손한 점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박빙에서 불 질렀다 그러면서 “중앙선관위는 이번 사안을 엄중히 인식하고 있으며 개표가 종료되는 즉시 일부 투표소의 투표용지가 부족했던 원인과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해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며 “미흡한 준비와 대처로 실망을 드리게 돼 다시 한번 사과드린다”고 덧붙였다. 또 이상능 선관위 선거1국장은 “이런 사례가 과거 선거에서 발생했다는 보고를 받은 적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송파구의 경우 전체 유권자 수의 50% (규모의 투표용지)를 인쇄한 것으로 파악했다”고 말했다. ‘몇 표 차이로 선거 당락이 갈리는 경우가 있는데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윤재수 선거관리정책실장은 “저희가 직접 말씀드리기는 좀 곤란할 것 같다”며 “소송 절차 등을 통해 법원의 결정에 따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답했다. 선관위는 지난 4일 0시께 긴급 위원회를 열고 수습 방안을 논의했다. 이후 위원회는 “(투표용지 부족 문제가) 공직선거법에 따른 선거 연기나 재선거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입장문을 내놨다. 또 “현재 진행되는 개표를 중단하는 것은 불가하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의 요구에 선을 그은 것이다. 이번 사태로 선관위에 개혁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쏟아지고 있다. 이번 일뿐만 아니라 선거 때마다 일어났던 ‘선관위발’ 논란이 ‘파묘’되는 분위기다. 가장 큰 논란 중 하나는 ‘소쿠리 투표’다. 2022년 대선 당시 코로나19 확진자와 격리자의 사전투표 용지를 간이 용기나 쇼핑백 등에 담으면서 촉발된 논란이다. 지난 조기 대선 때도 서울 신촌의 한 사전투표소에서 관외 선거를 위해 대기하던 일부 유권자가 대기 줄이 길다는 이유로 투표용지를 받은 채 식사하고 돌아오는 일도 있었다. 선관위의 행태는 일부 극우층에서 제기하는 ‘부정선거’ 논란에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이들은 본투표에 앞서 이틀간 진행되는 사전투표가 조작됐다는 등 부정선거가 조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주장을 내세우는데, 선관위 관련 논란도 그 근거로 언급하고 있다. 재선거까지 나왔지만… 부정선거 논란을 차단해야 할 기관에서 오히려 의심만 제공하는 꼴이다. 일각에서는 선관위 내부 사정이 반복되는 부실 선거의 배경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한 언론이 민주당 채현일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1일 기준 선관위 휴직자 수는 176명으로 집계됐다. 최근 10년 새 두 번째로 많은 수치다. 육아휴직이 124명으로 가장 많았고 일반 질병 휴직 30명, 가족 돌봄 휴직 11명, 해외 동반 휴직 8명 등이 뒤를 이었다. 지방선거, 대통령선거, 국회의원 선거 등 이른바 3대 전국 선거 때마다 휴직자가 늘어나는 선관위의 고질적인 병폐가 또다시 되풀이됐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실제 2022년 5월 기준 선관위 휴직자 수는 218명으로 최근 10년 기준으로 가장 많았다. 당시 3월에는 대선, 6월에는 지방선거가 각각 치러졌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으로 갑작스럽게 치러진 지난해에도 선거를 한 달 앞둔 5월 기준 휴직자는 145명에 달했다. 이 같은 문제가 반복적으로 지적되자 선관위도 선거 기간에는 휴직을 자제하라는 내용의 공지를 내리는 등 개선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법으로 보장된 육아휴직 등은 강제로 제한할 수 없으니 인력을 채용하는 방향으로 인력 공백을 막겠다는 대응책도 내놨다. 하지만 앞서 선관위 내부에서 채용 관련 비리 의혹이 크게 불거지면서 이마저도 미덥지 못한 방안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더 큰 문제는 선거 때마다 논란이 불거지고 내부의 고질적인 병폐 등으로 지적을 받는 와중에도 선관위는 큰 변화가 없다는 점이다. 독립된 ‘헌법기관’이라는 방패를 내세워 ‘지금만 넘기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이 선관위를 좀먹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자정을 할 수 없으면 외력이라도 가해야 하는데 그것조차 막혀 있다는 것이다. 선거 때마다 구설 불거지는데… 자정은커녕 외부 감사도 안 돼 2023년 5월 당시 선관위 사무총장, 사무차장 등 고위 간부의 자녀가 선관위 경력직 채용에 특혜를 받았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아빠 찬스’ 논란의 시발점이다. 이후 선관위 자체 특별감사 결과 고위직 자녀 특혜 채용이 관행적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감사원이 선관위의 인력 관리 실태에 관한 직무감찰에 착수했다. 그러자 선관위는 ‘독립기관’임을 내세우면서 감사원 감사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회는 물론 여론의 반발이 거셌다. 선관위는 감사원 직무감찰을 부분적으로 수용하면서도 “감사원의 감사 범위를 명확히 정리할 필요가 있다”며 2023년 7월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헌재는 선관위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해 2월 헌재는 “이 사건 직무감찰은 헌법 및 법률상 권한 없이 이뤄진 것으로 선관위의 독립적 업무 수행 권한을 침해했다”고 밝혔다. 선관위가 감사원의 감사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헌법에 기재된 감사원의 감사 범위가 “행정부 내부의 통제장치로서의 성격”인 만큼 정부와 독립된 헌법기관인 선관위는 국회, 법원, 헌재와 같이 직무감찰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그 배경으로 선관위의 선거 관리 업무를 들었다. 대통령 소속 기관인 감사원이 독립된 헌법 기구인 선관위를 직무감찰할 수 있게 되면 선거 관리 공정성에 대한 신뢰가 훼손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감사원의 직무감찰 배제가 곧바로 부패 행위에 대한 성역의 인정으로 호도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헌재는 “감사원 직무감찰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이를 대신할 독립성과 전문성을 갖춘 자체 감찰기구가 마련될 것이라는 점을 전제로 한 것”이라며 “선관위는 자체 감찰제도의 실효성을 담보함으로써 우려를 불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결국 내부 자정 기능에 기대를 건 것이다. 이번에는 고쳐질까 하지만 채용 의혹은 차치하고라도 그 이후에도 가장 본연의 업무인 선거 관리에서 계속해서 잡음을 내고 있다는 점에서 선관위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곱지 않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4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민주공화국에서 무엇보다 철저해야 할 선거 관리에 납득하기 쉽지 않은 허점이 발생한 점에 대해 매우 큰 유감을 표한다”며 “국민의 참정권이 한치라도 훼손되는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신뢰할 만한 적절한 대책을 조속하게 마련해 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제 지방선거는 끝났다. 선관위는 이 후폭풍을 감당할 수 있을까.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