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몽키하우스’ 미군 위안부 수용소 (25)조선 처녀들이 성 노리개로

  • 김영권 작가 nammunsan@naver.com
  • 등록 2026.05.11 03:22:13
  • 호수 15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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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는 남대문이나 동대문이 아니라 ‘나라 보지’를 말하는 거야. 국가에서 우리 몸뚱이를 이용했으니…그 무서운 곳을 ‘언덕 위의 하얀 집’이라 부른 건 낭만이 아니라 야유하기 위해서였지…우리 보지는 나라의 보지였어!” <어느 위안부 할머니의 절규>

노파는 담배를 깊이 빨아 한숨과 함께 훅 내쉬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지금도 몰라. 그 바다 밑의 탄광 속에서 죽지 않고 만약 살아 있다면 음, 내가 끌려간 곳도 역시 일본이었어. 처음엔 일본의 큰 공장에 취직시켜 많은 돈을 벌게 해준다고 속였지. 전국 각지에서 나처럼 끌려온 처녀애들과 함께 기차를 타고 가면서…난 혹시라도 일본 땅에 닿아 고향 오빠를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절망과 희망 속을 헤매고 있었어. 하지만 그 이상스런 열차는 계속 북쪽으로만 달려가더군. 추위에 떨며 황량한 산야를 지나 두만강을 건너 만주 땅에 도착했어. 속은 거였지. 그렇지만 아직 한가닥 소망은 끝내 놓지 않았어.”

한가닥 소망

“희망이 없다면 그런 땅에서는 아마 죽고 말겠지요.”

“그런데 마침내 촛불 같은 작은 소망까지도 꺼져 버렸어. 그 촛불이 소망을 꺾을 수 없는 나머지 내 맘속에 생겨난 환상인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결국은 다 짓밟혀 버리고 말았어.”

“만주 땅에서요?”

“그 당시 만주는 일본군 천지였어. 젊은 사내들을 전쟁터의 총알받이로 끌어 모아 놓았으니…가장 강렬한 욕구와 위안이 뭐였겠어, 응?”

“….”

“그래서 우리 조선 처녀애들이 그들의 성노리개가 되었단다. 하루에도 수십 명씩 마치 내 여윈 몸 위로 탱크가 지나가는 기분이었지. 고향 오빠가 저 멀리 시퍼런 바다 건너 어느 굴속에서나마 살아 있으리란 작은 희망도 서서히 꺼져 버렸어.”

세찬 밤바람이 허름한 가건물의 함석지붕을 날려 버릴 듯 흔들고 낡은 창문을 덜컹거리게 했다.

“난 내 몸뚱이가 시체라고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지옥같이 살아갔지. 일본 놈들은 마치 시간屍姦을 하는 미치광이 같았어. 히히 웃으며 시체처럼 가만히 있으라고 말하는 놈도 없지 않았지 뭐야.”

“누님, 쐬주 한잔 드시고 얘기하세요.”

“난 강제로 끌려갔고 처녀를 잃었어.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마치 내가 큰돈이라도 벌러 간 화냥년인 양 얘기하더라구. 하지만 우리들은 친일파와 일본 경찰에 속아 강제로 끌려갔을 뿐야. 돈은 무슨 돈! 겨우 굶어 죽지 않을 정도로 적은 깡보리밥과 다꾸앙을 먹으며 일본군의 성 노리개로 시달렸어. 병이 들어도 치료해 주지 않고 골방에 팽개쳐 두었다가 죽으면 황량한 골짝에 던져 버렸지. 그뿐인 줄 알아? 마루타 부대에 끌려가서 산 채로 생체실험 도구나 되는 경우도 많았대. 그 당시 이광수나 김활란 등 유명한 친일파들이 나서서, 남자들에겐 징용이나 징병을 감언이설로 권유하고 우리 같은 여자들에겐 정신대에 가입하여 대일본의 황군들을 위해 즐겁게 위안을 해주라고 열띤 강연을 하기도 했어. 아마 니놈들도 내가, 우리들이, 돈을 벌기 위해 스스로 그런 짓을 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강제였든 반강제였든 자발적으로 갔든, 우리는 모두 화냥년이란 낙인이 찍히고 말았어. 사람이 아닌 어떤 괴물이랄까? 세월이 바뀌어 나라를 되찾았는데도 지금은 미군부대 옆에 붙어살며 양색시나 양갈보란 소릴 듣고 있지. 걔들 중에 제 발로 걸어 들어온 년이 없다곤 할 수 없겠지만 속내를 알고 보면 대부분 가난에 찌든 나머지 서울로 올라왔다가 속아서 여기까지 흘러든 경우가 많아”.

“강제로 납치된 애들도 있지만, 대체로 무허가 직업소개소 같은 데 갔다가 떼돈을 벌 수 있다는 감언이설에 속아 온 것이겠지. 일단 여기 들어오면 나가기가 싶지 않은 게 문제야. 경찰에 신고해도 별 소용이 없어. 오히려 요주의자로 찍히고, 업소에서 고용한 깡패놈들한테 죽도록 얻어맞으니까. 대한민국의 국법은 여기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는 듯해. 우리나라 대통령마저도 미군에 대해선 큰나라 상전처럼 대하니까 말야. 결국엔 논바닥 속의 미꾸라지나 지렁이마냥 스스로 살아내라는 얘기일 뿐.”

마치 큰돈이라도 벌러 간 것처럼
친일파·일본 경찰에 속아 강제로

청운은 술잔을 만지작거리다가 들어 쭉 들이켰다. 그는 생각했다.

‘어딘지 비슷한 데가 있는 것 같군. 북파공작원과 기지촌의 양색시라는 존재들은 자의인지 타의인지 자의반 타의반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가난이나 굶주림 탓에 상경했다가 사악한 거짓말에 속아서 지옥 속으로 들어갔다는 사실이지.

집에서 쫓겨난 여자애들은 더욱 그렇지 않았을까? 그리고 돈에 현혹되긴 했지만 나를 포함한 이 쌍놈 쌍년들은 뭔지 몰라도 자기가 나라를 위해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 거지. 북파공작원들은 물색관에게 속고 양공주들은 직업소개소나 포주 협회에 속은 거랄까. 흐흐, 한미친선 관광협회 같은 데서 정기적으로 유명 인사를 초빙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 여러분은 최전방에서 총을 들고 나라를 지키는 국군 장병들보다 더 소중한 애국자라고 은근히 추켜세우면서 세뇌시키는 강연을 하고 있으니 우스워. 그래도 그런 말에 슬픈 위안을 받은 사람도 아마 있을 거야.

하지만 결국은 일시적인 환몽이었을 뿐 병마와 죽음이 아직은 젊은 몸뚱이를 차압해 버리면 지옥의 구덩이로 빠져들고 말지. 그러면 국가의 약속도 자신의 의지력도 아무 소용없이 한갓 폐기물이 되고 말아. 그들은 인간 소모품에 불과해. 무엇보다 그들이 더욱 비슷한 건 같은 나라 사람들로부터 괴물 취급에 사갈시된다는 거야. 좀 가련한 인간으로 여겨 줄 만도 하건만 대체 왜 그렇게 괄시를 하는 걸까?’

청운은 머릿속으로 생각을 하는 한편으로 백발 노파의 얘기에도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해방이 되고 일본군이 물러가자 우리 같은 여자들도 질긴 성노예의 쇠사슬에서 풀려날 줄 알았지. 하지만 현실은 너무 암담할 뿐이었어. 일단 서울까지 겨우 살아서 내려왔지만, 그런 꼴로 고향 땅으로 돌아갈 수가 있나, 돈 한푼이 있나, 무슨 다른 기술이 있나? 결국 다시 시궁창 속으로 기어 들어갈 수밖에 없었어. 흐흣, 일본군 위안부가 이번엔 미군 위안부로 변한 셈이지.”

“솔직히 잘 이해가 되지 않아요. 실감이 되지 않는다고나 할까.”

피에로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중얼거렸다.

“뭐가, 욘석아?”

“일본 식민지 시대는 호랭이 담배 피던 조선 왕조 무렵의 일이잖아요. 지금 현대는 대한민국 세상인데…너무 옛날처럼 느껴져서 착각인 듯 혼란스러워요. 어찌 그런 허무맹랑한 일이….”

“욘석아, 그건 네놈이 무식해서 그래. 내가 왜 쓸데없는 거짓말을 하겠냐?”

“그게 아니라.”

“일본과 미국, 일본군과 미군이 뭐 생판 다른 것 같어? 1945년에 해방되자마자 바로 미군이 이 땅에 들어왔어. 너희들에겐 천지 차이로 보일지 몰라도 내겐 그놈이 그놈이야. 외국 병정들에게 시달린 건 비슷하단 얘기지. 사실상 쪽바리가 물러가고 양코배기들이 들어온 건 스물 네댓 해밖에 지나지 않았단 말야.”

“그래도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아. 우리 누님의 인생이 그토록 기구했다니.”

“많은 여자들이 놈들의 폭행으로 인해 죽었고 지금도 죽어 가고 있지. 이렇게 겨우 살아 오긴 했지만, 나도 꿈인지 생시인지 때때로 분간이 잘 안 돼.”

“며칠 전에 살해당한 아가씨는 꽤 착실했다지요?”

지옥 구덩이

“그래, 여기도 자주 왔었는걸. 몸 팔아 번 돈을 알뜰히 모아 고향 부모집에 보내 주곤 했지. 그렇게 착한 애가 왜 그토록 섬뜩하게 죽음을 당해야 하는 걸까?”

셋은 말없이 술잔을 들어 쭉 마셨다.

“직접 거둬 키우셨다는 고아 남매들은?”

청운이 물었다.

“뭐, 둥지를 떠나갔으니 재주껏 살고 있겠지.”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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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용지가 없다니…’ 초유의 사태 후폭풍

‘투표용지가 없다니…’ 초유의 사태 후폭풍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선거가 끝난 뒤에는 자연스럽게 후폭풍이 따라온다. 이긴 쪽은 동력을 얻고 진 쪽은 수습에 나선다. 하지만 이번 지방선거는 결과만큼이나 선거관리위원회의 행보가 회자할 것으로 보인다. ‘투표용지 부족’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불러온 후폭풍이 지방선거를 뒤흔드는 모양새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이재명정부 출범 1년(4일)을 앞두고 치러졌다. 선거 자체가 국민의 심판을 받는다는 취지로 치러지는 만큼 여야는 결과에 사활을 걸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광역단체장 등에서 싹쓸이로 의회 권력에 이어 지방 권력까지 차지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고, 국민의힘은 ‘견제’를 외치며 맞섰다. 누구 손도 안 들어줘 민심은 절묘했다.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민주당은 총 16개 시‧도 중 12곳에서 이겼다. 결과만 놓고 보면 압승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격전지였던 서울시장 선거에서 채 1% 차이도 나지 않게 석패했다. 관심을 모았던 대구에서도 졌다.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도 관심이 집중된 부산 북구갑에서 의석을 내줬다. 반면 국민의힘은 선거 초반 전패를 예상했던 것과 비교해 상당히 선전했다는 평을 받는다. 서울을 수성했고 텃밭인 대구에서도 예상보다 수월하게 이겼다. 경기 평택을 선거에서도 ‘어부지리’지만 의석 하나를 건졌다. 민주당으로선 이겨도 찜찜한, 국민의힘은 졌지만 미묘하게 웃을 수 있는 결과가 나온 셈이다. 이제 여야는 물론 이재명 정부는 선거 결과에 따른 후폭풍을 마주해야 한다. 여야 모두 ‘완벽하게 이겼다, 혹은 졌다’는 결과를 받아든 게 아니기에 후폭풍은 작지 않으리라고 예상된다. 전당대회를 앞둔 민주당은 이번 선거 결과를 두고 당권 싸움을 시작할 것이고, 보수 궤멸 직전에 간신히 살아남은 국민의힘에서도 내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여기에 또 다른 후폭풍이 더해졌다는 점이다. 심지어 이 후폭풍의 크기는 선거 결과에 따른 후폭풍과는 차원이 다르다. 선거의 신뢰성 문제까지 뒤흔들 수 있는 수준의 초대형 태풍급이다. 선거에서 심판 역할을 맡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가 도마 위에 올랐기 때문. 지난 3일 지방선거 본투표 중에 서울 일부 지역에서 투표용지 부족으로 유권자가 투표하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유권자의 참정권 행사라는 선거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에 취지가 훼손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일이 투표소 한 군데가 아니라 십수 군데서 발생했다는 점이다. 선관위에 따르면 지난 3일 서울 송파구 잠실 일대를 비롯한 12개 투표소와 강남구 1개 투표소, 광진구 1개 투표소에서 투표용지가 부족해 유권자들이 투표하지 못하고 현장에서 대기하는 일이 벌어졌다. 선관위는 사태를 인지한 후 투표용지를 이송하고 현장 대기 인원에 한해 투표를 보장하겠다고 했다. 소쿠리 이어 투표지가 없다? 부정선거 논란에 불 질렀다 하지만 잠실7동 제2투표소는 대기표를 받은 유권자를 대상으로 오후 10시까지 투표 시간을 연장하는 등 혼란이 발생했다. 동시에 소식을 접한 시민과 유튜버 등이 투표소에 몰리면서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일부 투표소에서는 투표함 반출을 둘러싸고 선관위 관계자와 시민 사이에 대치 상황까지 벌어졌다. 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선거의 공정성과 신뢰성에 강한 타격을 입혔다. 특히 서울시장 선거는 국민적 관심이 집중됐던 데다 개표가 진행되면서 출구조사보다 실제 결과가 훨씬 박빙으로 나오고 있는 상태였다. 개표가 진행되는 와중에 투표도 동시에 이뤄지는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여야는 물론 지지자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국민의힘은 개표 중단을 요구했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한 지역이 공교롭게도 서울 지역 내에서 비교적 보수세가 강한 ‘강남권’으로 확인되자 당력을 집중한 것이다. 국민의힘 장동혁 상임선대위원장은 긴급 기자회견에서 개표를 중단하고 결과에 따라 서울시 선거를 다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표를 멈추고 상황에 따라 재선거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민주당은 선관위에 책임을 묻겠다면서도 국민의힘의 개표 중단, 재선거 요구는 일축했다. 민주당 조승래 총괄선대본부장은 국민의힘의 요구에 ‘일고의 가치가 없다’고 말했다. 선관위의 부실한 선거 관리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겠다고 약속하면서도 선거를 다시 치를 필요까지는 없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선관위 역시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도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선거 연기나 재선거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앞서 허철훈 선관위 사무총장은 “국민 여러분께 큰 혼란과 심려를 끼쳐 드렸다”며 “소중한 주권을 행사하기 위해 투표소를 찾아주신 국민께 불편을 드리고 공정한 선거 관리에 대한 신뢰를 훼손한 점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박빙에서 불 질렀다 그러면서 “중앙선관위는 이번 사안을 엄중히 인식하고 있으며 개표가 종료되는 즉시 일부 투표소의 투표용지가 부족했던 원인과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해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며 “미흡한 준비와 대처로 실망을 드리게 돼 다시 한번 사과드린다”고 덧붙였다. 또 이상능 선관위 선거1국장은 “이런 사례가 과거 선거에서 발생했다는 보고를 받은 적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송파구의 경우 전체 유권자 수의 50% (규모의 투표용지)를 인쇄한 것으로 파악했다”고 말했다. ‘몇 표 차이로 선거 당락이 갈리는 경우가 있는데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윤재수 선거관리정책실장은 “저희가 직접 말씀드리기는 좀 곤란할 것 같다”며 “소송 절차 등을 통해 법원의 결정에 따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답했다. 선관위는 지난 4일 0시께 긴급 위원회를 열고 수습 방안을 논의했다. 이후 위원회는 “(투표용지 부족 문제가) 공직선거법에 따른 선거 연기나 재선거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입장문을 내놨다. 또 “현재 진행되는 개표를 중단하는 것은 불가하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의 요구에 선을 그은 것이다. 이번 사태로 선관위에 개혁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쏟아지고 있다. 이번 일뿐만 아니라 선거 때마다 일어났던 ‘선관위발’ 논란이 ‘파묘’되는 분위기다. 가장 큰 논란 중 하나는 ‘소쿠리 투표’다. 2022년 대선 당시 코로나19 확진자와 격리자의 사전투표 용지를 간이 용기나 쇼핑백 등에 담으면서 촉발된 논란이다. 지난 조기 대선 때도 서울 신촌의 한 사전투표소에서 관외 선거를 위해 대기하던 일부 유권자가 대기 줄이 길다는 이유로 투표용지를 받은 채 식사하고 돌아오는 일도 있었다. 선관위의 행태는 일부 극우층에서 제기하는 ‘부정선거’ 논란에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이들은 본투표에 앞서 이틀간 진행되는 사전투표가 조작됐다는 등 부정선거가 조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주장을 내세우는데, 선관위 관련 논란도 그 근거로 언급하고 있다. 재선거까지 나왔지만… 부정선거 논란을 차단해야 할 기관에서 오히려 의심만 제공하는 꼴이다. 일각에서는 선관위 내부 사정이 반복되는 부실 선거의 배경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한 언론이 민주당 채현일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1일 기준 선관위 휴직자 수는 176명으로 집계됐다. 최근 10년 새 두 번째로 많은 수치다. 육아휴직이 124명으로 가장 많았고 일반 질병 휴직 30명, 가족 돌봄 휴직 11명, 해외 동반 휴직 8명 등이 뒤를 이었다. 지방선거, 대통령선거, 국회의원 선거 등 이른바 3대 전국 선거 때마다 휴직자가 늘어나는 선관위의 고질적인 병폐가 또다시 되풀이됐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실제 2022년 5월 기준 선관위 휴직자 수는 218명으로 최근 10년 기준으로 가장 많았다. 당시 3월에는 대선, 6월에는 지방선거가 각각 치러졌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으로 갑작스럽게 치러진 지난해에도 선거를 한 달 앞둔 5월 기준 휴직자는 145명에 달했다. 이 같은 문제가 반복적으로 지적되자 선관위도 선거 기간에는 휴직을 자제하라는 내용의 공지를 내리는 등 개선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법으로 보장된 육아휴직 등은 강제로 제한할 수 없으니 인력을 채용하는 방향으로 인력 공백을 막겠다는 대응책도 내놨다. 하지만 앞서 선관위 내부에서 채용 관련 비리 의혹이 크게 불거지면서 이마저도 미덥지 못한 방안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더 큰 문제는 선거 때마다 논란이 불거지고 내부의 고질적인 병폐 등으로 지적을 받는 와중에도 선관위는 큰 변화가 없다는 점이다. 독립된 ‘헌법기관’이라는 방패를 내세워 ‘지금만 넘기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이 선관위를 좀먹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자정을 할 수 없으면 외력이라도 가해야 하는데 그것조차 막혀 있다는 것이다. 선거 때마다 구설 불거지는데… 자정은커녕 외부 감사도 안 돼 2023년 5월 당시 선관위 사무총장, 사무차장 등 고위 간부의 자녀가 선관위 경력직 채용에 특혜를 받았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아빠 찬스’ 논란의 시발점이다. 이후 선관위 자체 특별감사 결과 고위직 자녀 특혜 채용이 관행적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감사원이 선관위의 인력 관리 실태에 관한 직무감찰에 착수했다. 그러자 선관위는 ‘독립기관’임을 내세우면서 감사원 감사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회는 물론 여론의 반발이 거셌다. 선관위는 감사원 직무감찰을 부분적으로 수용하면서도 “감사원의 감사 범위를 명확히 정리할 필요가 있다”며 2023년 7월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헌재는 선관위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해 2월 헌재는 “이 사건 직무감찰은 헌법 및 법률상 권한 없이 이뤄진 것으로 선관위의 독립적 업무 수행 권한을 침해했다”고 밝혔다. 선관위가 감사원의 감사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헌법에 기재된 감사원의 감사 범위가 “행정부 내부의 통제장치로서의 성격”인 만큼 정부와 독립된 헌법기관인 선관위는 국회, 법원, 헌재와 같이 직무감찰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그 배경으로 선관위의 선거 관리 업무를 들었다. 대통령 소속 기관인 감사원이 독립된 헌법 기구인 선관위를 직무감찰할 수 있게 되면 선거 관리 공정성에 대한 신뢰가 훼손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감사원의 직무감찰 배제가 곧바로 부패 행위에 대한 성역의 인정으로 호도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헌재는 “감사원 직무감찰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이를 대신할 독립성과 전문성을 갖춘 자체 감찰기구가 마련될 것이라는 점을 전제로 한 것”이라며 “선관위는 자체 감찰제도의 실효성을 담보함으로써 우려를 불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결국 내부 자정 기능에 기대를 건 것이다. 이번에는 고쳐질까 하지만 채용 의혹은 차치하고라도 그 이후에도 가장 본연의 업무인 선거 관리에서 계속해서 잡음을 내고 있다는 점에서 선관위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곱지 않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4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민주공화국에서 무엇보다 철저해야 할 선거 관리에 납득하기 쉽지 않은 허점이 발생한 점에 대해 매우 큰 유감을 표한다”며 “국민의 참정권이 한치라도 훼손되는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신뢰할 만한 적절한 대책을 조속하게 마련해 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제 지방선거는 끝났다. 선관위는 이 후폭풍을 감당할 수 있을까.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