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덤비는 ‘장동혁 사퇴’ 총공세 명암

  • 박형준 기자 ctzxp@ilyosisa.co.kr
  • 등록 2026.05.06 14:15:33
  • 호수 15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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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편처럼 쪼개지는 국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미국 방문은 ‘차관보’ 논란만을 남겼다. 장 대표에 대한 사퇴 요구는 빗발치고 있지만 여전히 버티고 있다. 그러는 사이에 국민의힘은 파편처럼 쪼개지고 있다. 장 대표 사퇴를 요구하는 총공세의 명암은 각각 무엇일까?

8박10일 일정으로 미국을 방문했던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지난달 20일 새벽 귀국했다. 원래 장 대표는 2박4일 일정으로 미국을 방문할 예정이었지만, 6일 더 머물렀다. 귀국 직후 기자간담회를 열어 “미국을 방문해 공화당 핵심 인사들과 실질적인 핫라인을 구축해 흔들리는 한미 동맹을 지탱할 신뢰 토대를 만들었다”고 자평했다.

귀국 직후
자화자찬

그런데 장 대표는 누굴 만났는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그는 “비공개를 전제로 현안 브리핑·간담회를 했다”며 “외교 관례상 이를 공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귀국 전 “미국 국무부 차관보·공화당 랜디 파인 하원의원을 추가로 만났다”고 설명했다.

장 대표 등 국민의힘 미국 방문단(이하 방문단)은 지난달 16일(현지시각) “차관보를 만났다”면서 장 대표와 누군가의 뒷모습이 촬영된 사진을 공개했다. 방문단은 누구의 뒷모습인지 밝히지 않았다. 이내 밝혀진 해당 인물의 정체는 미국 국무부 공공외교 담당 차관 휘하 개빈 왁스 비서실장이었다.

차관 비서실장은 ‘차관보급’이긴 하지만, 상원의 인준을 받아 독자적 정책 권한을 행사하는 차관보와는 역할이 다른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장 대표는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을 통해 지난달 25일 사과했다. 박 대변인은 “출국과 함께 알려진 내용에 오해가 있거나 잘못 알려드린 부분이 있다면 분명히 잘못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제1야당 대표의 행보에는 엄중함·무거움이 뒤따라야 하는데, 이를 뒷받침하는 과정에서 행정적 실수가 있었다면 책임을 피할 생각이 없다”며 고개를 숙였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김민수 최고위원은 이미 지난달 15일 미국 워싱턴DC 국회의사당 앞에서 촬영한 사진이 공개돼 크게 비판받았다. 이어 ‘차관보’ 논란이 불거졌다.

방미 목적에 대해서도 설왕설래가 있었다. 장 대표는 백악관 신앙사무국 수장으로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영적 멘토로 알려진 폴라 화이트 목사를 만나려고 했다가 실패했다. 회동 시도에 대해서도 “강경 보수 성향 지지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만나려고 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그런데 이마저도 불발됐기 때문에 비판은 더욱 거세졌다.

사퇴 요구가 빗발치자, 장 대표는 지난달 24일 오전 기자간담회에서 “여러 고민을 하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같은 날 오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상황이 안 좋다고 당 대표가 물러나는 것은 책임지는 정치인의 모습이 아니”라며 “그런 정치는 장동혁의 정치가 아니”라고 썼다. 이어 “최선을 다해 지방선거를 마무리하고, 당당하게 평가받겠다”며 “미국 방문에 대해서도 성과로 평가받겠다”고 강조했다.

차관보·차관보급 입씨름…거세진 장 대표 때리기
친한·오세훈·주호영·보수 진영 한목소리 “나가”

김 최고위원은 지난달 26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장 대표 때리기가 도를 넘었다”며 “때릴 사람을 정해놓고, 무조건적 비판·조롱을 쏟는 것은 언론에 의한 폭력, ‘언폭’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박준태 당대표비서실장도 같은 날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기자들을 만나 “대표를 흔들어서 선거에 승리한 전례도 없고, 그런 얘기를 들어본 적도 없다”며 “당 대표에 대한 내부 비판이 과도하고, 선을 넘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건전한 비판이 아닌 인신공격에 가까운 말을 쏟아내는 건 당에도, 선거에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사퇴 요구를 하는 축은 ▲친한(친 한동훈)계 ▲오세훈 서울시장 ▲주호영 국회부의장 등으로 정리된다. 당 밖에선 보수 신문이 장 대표에게 강하게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이들 중 주 부의장은 지난달 2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오래 함께한 당원과 척지고 싸우는 선거는 하지 않기로 했다”면서 대구시장 선거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러면서 <주역> 계사전의 일부 구절을 인용해 “인격이 없는데 지위는 높고, 지혜는 적은데 꿈이 크면, 화를 입지 않는 자가 드물 것이라고 했다”며 “제발 나아가고 물러날 때를 알길 바란다”고 언급했다.

장 대표에게 사실상 사퇴를 요구한 것이다.

오 시장은 지난달 24일 TV조선 유튜브 방송 ‘류병수의 강펀치’에 출연해 장 대표를 향해 “창당 이래 가장 낮은 당 지지율이 나왔다면, 당연히 대표가 책임감을 느껴야 하지 않겠느냐”며 “본인의 자숙이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 오지 않았는가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전화면접조사를 통해 진행해 지난달 23일 공개한 전국지표조사(NBS) 결과에 따르면, 국민의힘 지지율은 15%로 확인됐다. 이는 지난 2020년 7월 전국지표조사가 시작된 이후 최저치다.

아울러 같은 해 9월 당 이름을 ‘국민의힘’으로 바꾼 이후 최저치였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원회 홈페이지를 참고 바람).

이어 오 시장은 “현장에서 뛰는 광역·기초단체장·의원 후보들은 ‘장 대표가 눈에 좀 덜 띄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라고 말한다”며 “장 대표가 책임감을 느끼고 행동 반경을 줄여주는 게 이 선거를 치르는 데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든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 강원도지사 후보로 확정된 김진태 현 지사도 지난달 22일, 현장 방문에 동행한 장 대표 앞에서 “당내 ‘탈장동혁’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며 “결자해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친한계 일원인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도 같은 날 기자들을 만나 장 대표를 향해 “지금이라도 지도자이자 당의 가장답게 정리하려는 책임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지금 이대로라면 후보 등록 이후 국민의힘에는 장동혁이란 존재가 남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배 의원은 “장 대표를 비난했다”는 이유로 당 윤리위원회에 제소돼있다.

아울러 “이미 당내에서는 장 대표가 존재감을 감춘다면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사실상 궐위 상태가 조성됐다는 이야기도 나온다”고 덧붙였다.

쏟아지는
결단 요구

보수 신문은 더욱 직설적으로 장 대표를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지난달 22일 공개한 김영수 TV조선 보도 고문의 칼럼을 통해 “장 대표는 지금이 물러날 적기”라고 주장했다. 이어 “장 대표의 당 리더십은 이미 망가졌고, 대표의 자격을 잃었으며, 탈동혁이 큰 흐름이 됐다”며 “국민의힘은 정상적 보수 정당이 아니라 극우 숙주 정당으로 변모했다”고 강조했다.

<동아일보>는 지난달 24일자 사설을 통해 한발 더 나아가 “장 대표가 물러나도 당장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그 출발은 책임질 사람의 책임 있는 처신부터”라고 강조하면서 “장 대표의 사퇴가 변화의 시작”이라고 충고했다.

다만 <중앙일보>는 사퇴를 요구하진 않았다. 매체는 지난달 23일자 사설을 통해 “장 대표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일을 고민하겠다는 말이 진심이라면 새로운 리더십을 위해 결단해야 한다”면서도 그 결단은 “선거 지휘에서 손을 떼고 혁신 선대위를 꾸리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의 실질적 주인이라고 평가받는 구 친윤(친 윤석열)계는 아직 장 대표에게 구체적인 의견을 밝히지 않고 있다. 이들이 장 대표에게 밝힌 의견은 윤한홍 의원이 지난해 12월 장 대표 앞에서 “민주당의 윤석열정부 국정 마비가 원인이라는 논리로 계엄이 정당화될 수 없다”며 “몇 달 동안 배신자 소리를 들어도 되니 지방선거 승리를 통해 대한민국을 살려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확인된다.

아울러 올해 초에는 한동안 “장 대표를 물러나게 한 후 국민의힘 신동욱 수석최고위원이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을 수도 있다”는 취지로 2월 위기설이 돌아다닌 적이 있다.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구체적인 의견을 밝히는 등 사퇴 요구 전면에 나서는 것은 구 친윤계의 평소 정치적 언행과 맞지 않는다.

이들은 국민의힘의 6·3 지방선거 패배가 현실이 되면 조용하게 조직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있다. 구 친윤계는 장 대표의 사퇴와 비상대책위원장 선출 과정 등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일각에선 국민의힘이 6·3 지방선거에서 패배했을 때, 장 대표가 사퇴한다고 하더라도 당이 정상궤도로 돌아갈 수 있을지에 의문을 제기한다. 계파별로 원하는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선출되길 바라는 사람이 다르면, 이를 놓고 재차 상당한 내홍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아울러 장 대표가 물러날 것이라고 장담하기도 어렵다. 장 대표가 미국 방문 도중 화이트 목사를 만나려고 했던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화이트 목사를 매개로 트럼프 대통령과 연결돼 강경 보수 성향 지지자의 환심을 얻으려고 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침묵하는
구 친윤

화이트 목사는 부정선거론에 종교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 대표와 강경 보수 성향 지지자의 환심을 확실히 얻는다면, 선거 패배를 토대로 또 다른 정치적 쟁점을 제기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장 대표 사퇴 자체를 놓고 내홍의 강도가 더욱 강해질 수도 있다.

장 대표를 조직적으로 가장 강하게 비판하는 친한계 의원을 모두 합쳐도 원내교섭단체 구성은 불가하다. 이들은 활발하게 각종 방송에 출연해 당을 비판한다. 그런데 이것이 역설적으로 구 친윤계와 장 대표 등 당권파와의 갈등을 더욱 굳혀가는 분위기다.

이로써 친한계는 정당화의 역설 상황에 빠진다. 정당화의 역설은 대외적으로 내부 비판을 하면서 이를 정당화할수록 내부에선 집단을 파괴하는 배신으로 받아들여지는 현상을 말한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윤석열 전 대통령과 결별·갈등했던 전력 때문에 강경 보수 성향 지지자들로부터 ‘배신자’라는 말을 듣는다.

스필오버 효과의 부정적 전이도 무시할 수 없다. 스필오버 효과는 특정 현상·파장이 주변의 다른 영역으로 퍼지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부정적으로 전이되면, 그 다른 영역까지 망가지거나 약화한다.

방송 출연을 통한 대외적 내부 비판은 역설적으로 당내 갈등·치부를 외부에 확대해 당 전체의 현상으로 굳어진다. 장 대표의 미국 방문 논란을 강하게 비판할수록 그 문제는 장 대표 개인이 아닌 국민의힘의 시스템 문제로 번진다. 그러면서 계파 간 적대감은 더욱 강해진다.

장 대표 개인의 일탈이 친한계의 방송 전략을 통해 증폭돼 당 전체의 시스템 마비와 약점 광고로 연결되는 것이다.

이는 결국 계파적 분극화로 연결된다. 계파적 분극화는 특정 계파가 독자적 소통에 나서 당의 공식 채널과 대립하는 현상이 구조화됐을 때, 그 특정 계파가 ‘정당 내 정당’이 되고, 상대 정당보다 더욱 위협적인 적이 되는 현상을 말한다.

국민의힘에선 한나라당 시절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의 주도권을 행사할 때 겪던 현상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당내 중립지대가 힘을 잃어 양극화된다.

친한계 잦은 방송 출연…깊어지는 정당화 역설
부딪치는 살기 위한 선택…당 지지율 15% 바닥

따라서 부산 북갑에서 진행되는 재보궐선거에 출마하는 한 전 대표가 당선되더라도 복당 및 당권 도전을 시도할 때, 내홍이 뒤따를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 전 대표는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 등 외부 보수 성향 원로와 보수 신문의 지원을 업고 있다. 하지만 밖에서 밀어주는 건 한계가 있다.

오 시장은 서울시장 선거 당락을 떠나 당권에 도전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장 대표 체제가 붕괴하면 그가 비상대책위원장이 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오 시장은 지난 2000년 이후 여의도 정치와 거리가 멀어졌던 만큼 선택의 갈림길에 서야 할 가능성이 있다.

한 전 대표와 비슷한 갈림길에 서서 구 친윤계 등 당 주류와 영합할지, 자신의 정체성인 수도권 내 중도·개혁 보수 성향을 유지하면서 갈등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가능성이다.

문제는 국민의힘에선 지난 2016년 이후 지난 2022년 대선 외에는 선거에서 승리한 적이 없어 당내 수도권·중도 보수 성향 그룹의 영향력이 낮아졌다는 것이다. 오 시장의 당권 도전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국민의힘의 현실이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은 많은 것이 겹친 구조적인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장 대표의 미국 방문에 대해서는 “렌트 시킹을 시도한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렌트 시킹(rent seeking)은 정치적 영향력을 통해 자신에게 유리한 제도·환경을 만들어 이익을 얻으려는 활동을 말한다.

장 대표는 국민의힘 대표 직함을 이용해 미국 방문 및 차관보 면담 등을 추진하면서 국민의힘에 무슨 이익이 됐는지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차관보급 차관 비서실장을 ‘차관보’라고 주장하다가 비난을 받았고, 화이트 목사도 만나지 못해 개인적 성과도 달성하지 못했다.

장 대표는 미국 방문을 통해 “능력 있고, 대외적 영향력이 있는 지도자”라는 위치를 얻고자 했다가 실패했다. 화이트 목사를 만나려고 했던 이유는 강성 보수 성향 지지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려고 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는 결국 포퓰리즘에 의존하려고 한 것일 수도 있다.

“이대론
망한다”

그의 미국 방문은 결국 계파적 분극화를 강화하면서 사퇴 요구가 더욱 강해지는 등 권력이 파편화되는 현상으로 연결됐다. 이미 광역지방자치단체장 후보들은 독자적인 선거대책위원회를 구축하고 있다. 이에 화룡점정 역할을 하는 것은 국민의힘 지지율이 15%로 확인되는 여론조사 결과였다.

장 대표를 향한 국민의힘 내부의 총공세에는 생명력이 완전히 소진한 것은 아니라는 ‘명’을 남긴다. 하지만 그들이 각자 살기 위해 하는 선택이 겹치고 부딪치면서 지지율은 낮아지고 계파의 분극화는 더욱 강해지는 ‘암’을 남긴다. 장 대표는 미국 방문을 통해 국민의힘의 민낯을 더욱 직설적으로 드러내고야 말았다.

<ctzx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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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호 폭발’ 시험대 오른 한미 관계

‘나무호 폭발’ 시험대 오른 한미 관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지난 2월 시작된 중동 전쟁의 여파가 경제는 물론 외교까지 흔들고 있다. 전쟁이 교착 상태에 빠지면서 미국의 초조함이 우리나라에 불똥으로 튀는 모양새다. 이재명 대통령은 국익에 도움 되는 ‘실용 외교’를 줄곧 강조하고 있다. 어떤 선택이 우리나라에 가장 좋은 결과를 가져다줄까. 미국과 이스라엘이 한낮에 이란 수도 테헤란에 폭탄을 떨어뜨렸다. 공습의 여파로 이란의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를 비롯한 고위급 인사들이 폭사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이 응전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들의 저항은 거셌다. 이란은 전 세계 원유의 20~30%가 오가는 물류 허브인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는 방법으로 응수했다. 끝날 듯 안 끝나는 원유 이동이 제한되면서 유가가 폭등했다. 주가가 출렁였고 물가도 오르기 시작했다. 이란은 전 세계 경제를 볼모로 잡고 버티기 작전에 들어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을 석기시대로 돌려놓겠다’고 말하는 등 협박에 가까운 말로 압박했다. 이스라엘은 이란 주변국에도 폭탄을 투하하는 등 확전 태세를 보였다. 지난 2월28일 이후 두 달 가까이 이어지던 강 대 강 대치는 지난달 초 미국과 이란이 임시 휴전에 합의하면서 소강상태를 맞았다. 하지만 서로의 요구사항이 극명하게 다른 상황이라 휴전이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무엇보다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미국과 이란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통제권을 유지하길 원했다. 이번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한 만큼 계속 주도권을 갖고 싶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반면 미국은 호르무즈 해협의 완전 개방, 자유 항행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미국과 이란의 힘겨루기 양상은 다른 나라에 영향을 미쳤다.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가는 선박의 통행이 제한되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은 선박을 멈춰 세운 이란에 반발해 군사작전을 기획했다. 호르무즈 해협에 발이 묶인 선박의 탈출을 돕는 이른바 ‘프로젝트 프리덤’이다. 프로젝트 프리덤 착수 첫날 이란은 즉각 반발했다. 미국과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서 무력을 행사하면서 긴장 수위가 높아졌다. 불똥은 우리나라 선박에도 튀었다. 지난 4일 오후 8시40분경 호르무즈 해협의 아랍에미리트 움알쿠와인 인근 해역에 정박 중이던 HMM(옛 현대상선) 소속 선박 나무호에서 폭발과 함께 화재가 발생했다. 호르무즈 해협서 선박 사고 “이란 공격” VS “관련 없다” 폭발과 화재 당시 우리나라 국적 선원 6명을 포함한 24명이 타고 있었지만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 HMM에 따르면 나무호는 예인선을 통해 두바이항으로 옮겨졌다. 두바이 현지의 한국선급 지부 인력, 중앙해양안전심판원 소속 조사권, 소방청 감식 전문가 등이 참여해 사고 원인을 조사했다. 외교부는 지난 10일 “조사 결과 5월4일 미상의 비행체가 HMN 선미를 타격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CCTV 영상에 해당 비행체가 포착됐으나 발사 주체, 정확한 기종 및 물리적 크기 등을 확인하기에는 제약이 있는 상황”이라고 정부 합동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현장에서 수거된 비행체 엔진 잔해 등을 추가 분석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나무호 폭발을 바라보는 엇갈린 시각이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사건을 동맹의 전쟁 참여의 ‘지렛대’로 사용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일(현지시각) “이란이 한국 화물선을 포함해 관련 없는 국가들을 공격했다”며 “이제는 한국이 이 작전에 참여할 때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나무호 폭발과 관련해 사고 원인이 정확히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의 공격 때문이라고 규정해 버린 것이다. 반면 이란 측은 나무호 사건에 선을 그었다. 주한이란대사관은 지난 6일 “호르무즈 해협에서 발생한 한국 선박 피해 사건에 이란군이 연루됐다는 모든 의혹을 강력히 거부하며 단호히 부인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책임’을 언급했다. 이란대사관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관련 규정을 준수하고 발령된 경고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지정된 항로를 따르고 이란 이슬람 공화국 관계 당국과 협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피격이냐 결함이냐 또 “군사 및 안보적 긴장의 영향을 받는 환경에서 선포된 요구사항과 작전상의 실태를 무시할 경우 의도치 않은 사고가 발생할 수 있음은 자명하다”며 “이 같은 고려 사항을 무시한 채 해당 구역에서 통행이나 활동을 진행하는 당사자들에게 그런 결과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했다. 미묘하게 우리나라 선박 측으로 책임을 돌리는 듯한 뉘앙스다. 정부는 지난 6일 “(프로젝트 프리덤) 작전이 종료됐기 때문에 (참여) 검토는 꼭 필요하지 않게 됐다”고 밝혔다. 위성락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우리는 그동안 ‘해양 자유 구상’에 대해 검토하고 있었고 프로젝트 프리덤에 대해서도 검토하려고 했었다”고 말했다. 정부의 선 긋기에도 불구하고 이번 나무호 사건은 동맹국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노골적인 요구가 또다시 표면화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는 반응이 나온다. 지난 3월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5개국을 향해 호르무즈 해협에 함정 파견을 요구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여러 국가, 특히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시도로 영향을 받는 국가들은 해협을 개방하고 안전하게 유지하기 위해 미국과 함께 군함을 보낼 것”이라고 자신의 트루스소셜에 글을 썼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5개국은 중국, 프랑스, 일본, 한국, 영국 등이다. 그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에너지 수급에 큰 영향을 받은 국가들이 직접 호위 작전에 나서야 한다는 ‘수익자 부담 원칙’을 내세웠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에도 우리나라를 포함한 5개국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일부 국가들은 군함을 보내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우리나라 역시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그러다 두 달도 못 돼 또 한 번의 ‘트럼프발 호르무즈 청구서’가 날아든 것이다. 신중한 정부 넘겨 왔는데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각에서는 한미 관계에 균열이 생긴 게 아니냐는 말이 지속해서 흘러나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동 전쟁을 빌미로 우리나라에 여러 가지를 요구하는 것과는 별개로 동맹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부정적인 상황이 잇따라 벌어지고 있다는 반응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 임기 초 각국에 관세 폭탄을 던질 때부터 시작된 균열이 아직까지 봉합되지 않고 있다는 말까지 들린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혈맹’이라고 불리던 한미 관계가 무색할 정도로 우리나라에 거친 태도를 보여왔다. 특히 관세 문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등을 대놓고 화두로 올렸다. 관세를 부과하고 분담금을 더 내라는 식으로 여러 차례 압박했다. 미군이 북한으로부터 우리나라를 지켜주고 있으니 돈으로 보상하라고 밀어붙였다. 최근에는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말을 두고 진실 공방이 벌어졌다. 정 장관이 지난 3월6일 국회에서 북한 우라늄 농축시설 소재지로 구성을 언급했다. 정부와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공식 확인한 영변과 강선 외의 장소다. 국민의힘 정보위원회 소속 의원들에 따르면, 정 장관의 발언 이후 미국은 4월 초 정보를 공유하는 것을 일부 제한했다. 정 장관은 구성이 과거 미국 싱크탱크나 국내 언론 보도 등으로 이미 언급됐던 장소라며 정보 유출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달 20일 “정 장관의 발언 이전에 구성 핵시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각종 논문과 언론 보도로 이미 전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었던 점은 명백한 팩트”라고 두둔했다. 정 장관의 발언은 정쟁으로도 번졌다. 국민의힘은 정 장관의 해임 건의안을 발의했다. 국민의힘은 해임건의안을 발의하면서 “(한미) 동맹의 균열을 초래하고 국가 안보의 금도를 넘어섰다”며 그 배경을 밝힌 바 있다. 정 장관은 “안보 사안에 대해 숭미주의가 너무 지나친 것 같다”고 맞섰다. 정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은 자동 폐기됐다. 트럼프 노골적 참전 요구 청구서 받아든 이 선택은? 미국 측에서 우리나라 사법 체계를 흔드는 듯한 행보도 잇따라 나왔다. 김범석 쿠팡 의장, 방시혁 하이브 의장 관련 논란이다. 쿠팡은 지난해 11월 3300만건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로 조사를, 방 의장은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심지어 방 의장은 출국금지 상태다. 미국 정계에서는 다양한 경로로 쿠팡 ‘감싸기’를 하고 있다. 미국 기업인 쿠팡을 ‘차별적으로’ 대하지 말라는 게 골자다. 수사 대상에 오른 김 의장의 안전을 보장해야 안보를 논의할 수 있다는 말까지 나왔다. 미국 공화당 하원의원들이 쿠팡 등 미국 기업에 대한 차별적 규제를 중단하라는 항의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최근에는 공정거래위원회가 김 의장을 쿠팡의 동일인(총수)으로 지정하면서 한미 간에 감정싸움이 불거질 수 있다는 말도 나왔다. 지금까지 쿠팡의 동일인은 법인이었는데 김 의장(개인)으로 바뀌면서 법적 책임이 대폭 늘었다. 실제 쿠팡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에서 공시 의무를 준수하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가 이중으로 규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차별적 조치라는 것이다. 또 김 의장이 미국 국적자인데 그를 한국법상 총수로 지정한 것은 한미FTA를 위반한 것이라고도 강조했다. 주한미국대사관에서 방 의장을 비롯한 하이브 관계자 3명의 출국금지를 해제해 달라는 요청이 경찰청에 오기도 했다.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는 하이브 상장 과정에서 방 의장이 2000억원대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로 수사하고 있다. 경찰은 방 의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검찰이 보완 수사를 이유로 반려했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미국이 내정간섭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어떤 이유로든 미국이 우리나라에서 수사를 받는 인물에 대해 특정 요구를 한다는 것 자체가 과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선택 기로 앞으로는? 더 큰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가 또다시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이재명정부의 외교 방향은 ‘국익’ ‘실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대통령은 전시작전권 전환 등 안보 독립을 외치는 중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외교는 오랜 시간 한미동맹의 바탕 위에서 이뤄졌다. 결국 선택해야 할 시기가 올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합류일까, 관망일까?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