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우측? 좌측? 방향도 못 정하는 나라

내방역·수서역이 드러낸 행정 공백

서울 지하철 7호선 내방역 6번 출구 에스컬레이터 앞에서는 매일 동선 충돌이 반복된다. 승객들은 본능처럼 오른쪽으로 움직이지만 탑승 순간 흐름이 정면으로 엇갈린다. 서로 길을 비켜주느라 멈춰 서고 출근 시간 이동 속도는 눈에 띄게 떨어진다.

누구나 불편을 체감하지만 이를 바로잡는 주체는 보이지 않는다. 국가가 정한 보행 질서와 공공시설 운영이 따로 노는 현실이다.

수서역 GTX-A 승강장은 상황이 더 노골적이다. 지상 연결 에스컬레이터 7기가 좌측통행으로 운영되면서 승객 흐름이 구조적으로 충돌한다. 무심코 오르다 내려오는 인파와 부딪히고 스마트폰을 보며 걷던 승객은 중심을 잃는다. 이는 개인 부주의의 문제가 아니라 동선 설계의 문제다.

국가 지정
보행 질서

우측통행 시행 15년이 지났음에도 기본 질서가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은 명백한 행정 실패다.

국가가 약속한 ‘오른쪽 질서’, 현장서 무너져= 정부는 2010년 보행 질서를 좌측에서 우측으로 전면 전환했다. 차량과 보행 흐름을 일치시켜 사고를 줄이고 국제 기준에 맞추겠다는 정책적 결단이었다. 전국적인 캠페인과 시설 정비에 막대한 예산과 행정력이 투입됐다. 국민은 불편을 감수하며 새로운 질서에 적응했고 정책 변화에 협조했다. 국가는 안전과 효율을 약속했다.

정책의 근거도 분명했다. 우측보행은 충돌 위험을 낮추고 보행 속도를 개선한다는 연구 결과가 제시됐다. 차량을 정면으로 인지할 수 있어 교통사고 예방 효과도 크다는 분석이 뒤따랐다. 질서 통일이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 이동 효율을 높인다는 점도 강조됐다. 이는 단순한 생활 지침이 아니라 국가 운영 원칙의 재정립이었다. 방향 통일은 국민 안전을 위한 공식적 사회 계약이었다.

그러나 이 정책은 지하 공간에서 완성되지 못했다. 시민의 습관은 바뀌었지만 일부 에스컬레이터는 과거 체계에 머물러 있다. 기준은 오른쪽인데 시설은 왼쪽인 비정상적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관리 소홀이 아니라 ‘정책을 끝까지 완성하지 않는 행정 태도’의 문제다. 국가가 만든 질서를 국가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는 셈이다.

지상은 정비됐는데 지하 일부는 멈춰 있다= 지상의 교통체계는 이미 ‘오른쪽 질서’로 재편됐다. 도로와 차선, 신호 체계가 일관되게 정비되면서 차량과 보행 흐름이 같은 방향 체계를 공유한다. 이동 효율과 안전성은 함께 개선됐다. 질서가 통일될 때 도시 기능도 정상적으로 작동한다. 정책 일관성이 만든 긍정적 변화다.

그러나 지하철 공간은 다르다. 내방역과 수서역 에스컬레이터는 여전히 좌측통행 체계를 유지한다. 아마 다른 역도 더 있을 것이다. 같은 도시, 같은 시민의 이동인데 공간에 따라 기준이 달라지는 기형적 구조다. 지상과 지하의 동선 체계가 충돌하면서 이동 흐름은 왜곡된다. 도시 시스템이 하나의 원칙 아래 작동하지 못하고 분절돼있는 것이다.

내방역·수서역이 드러낸 행정 공백
출구 에스컬레이터 앞 매일 동선 충돌

이 불일치는 이동 효율을 떨어뜨리고 혼란을 구조화한다. 이용자는 매번 방향을 다시 판단해야 하고 보행 리듬은 끊긴다. 출퇴근 시간에는 작은 혼선도 병목으로 확대된다. 시민은 불필요한 시간 손실과 피로를 반복적으로 감수한다. 동선 통일은 선택이 아니라 도시 운영의 기본 조건이다.

‘병목’ 핑계 뒤에 숨은 행정 편의주의= 행정 당국은 역사 구조와 승객 밀집도를 이유로 방향 통일이 어렵다고 설명한다. 병목현상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해명도 반복된다. 그러나 이는 본질을 비켜간다. 더 복잡하고 혼잡한 역사에서도 동선 통일이 가능했던 사례는 이미 존재한다. 구조의 문제가 아니라 우선순위의 문제다.

시설 정비에는 비용이 들고 운영 방식 변경에는 행정 부담이 따른다. 그러나 공공시설의 기준은 행정 편의가 아니라 이용자 안전과 효율이어야 한다. “어쩔 수 없다”는 말로 불합리를 방치하는 태도는 공공 운영 원칙과 거리가 멀다. 기술적 난관보다 먼저 드러나는 것은 문제 해결 의지의 부족이다.

결국 ‘병목’이라는 표현은 구조적 한계를 설명하는 말이 아니라 개선을 미루는 명분으로 소비되고 있다. 시민 불편과 위험은 행정 판단의 후순위로 밀려난다. 기본 질서를 바로잡는 일보다 관리 편의가 앞서는 순간 정책 신뢰는 무너진다. 행정의 역할은 현실을 변명하는 것이 아니라 불합리를 고치는 데 있다.

선진국은 ‘질서 설계’부터 다르다= 일본 신주쿠역은 세계에서 가장 혼잡한 역으로 꼽히지만, 승강장과 환승 통로, 에스컬레이터 방향이 일관되게 설계돼 승객 흐름이 질서 있게 유지된다. 별도의 통제가 없어도 이용자들은 자연스럽게 같은 방향으로 이동한다. 시민 의식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구조가 질서를 만들기 때문이다.

영국 킹스크로스 세인트판크라스역 역시 마찬가지다. 에스컬레이터는 ‘오른쪽 정지, 왼쪽 보행’ 원칙이 시설 구조와 함께 고착돼있다. 환승 통로와 승강장 동선도 동일한 방향 체계 아래 설계돼 혼잡 시간에도 흐름이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질서를 ‘안내’가 아니라 ‘설계’로 해결한 사례다.

선진 도시는 동선을 ‘안내’의 문제가 아니라 ‘질서’의 문제로 관리한다. 방향이 일관된 공간에서는 충돌이 줄고 이동 속도가 안정된다. 통제 인력과 관리 비용도 줄어 행정 효율이 높아진다. 구조가 질서를 만들면 시민은 별도의 지시 없이도 체계에 적응한다. 혼잡해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혼잡을 이유로 미루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구조의 문제
우선의 문제

사회는 이미 ‘오른쪽’으로 움직인다= 우측통행은 더 이상 캠페인 대상이 아니다. 엘리베이터 대기 줄과 공항 출입국 동선, 대형 쇼핑몰 이동 통로까지 사회 전반이 동일한 방향 질서를 공유한다. 대규모 인파가 몰리는 경기장과 공연장에서도 이동 흐름은 자연스럽게 한 방향으로 형성된다. 시민들은 별도 교육 없이도 같은 질서를 따른다. 사회적 합의는 이미 끝났다.

도로 교통 체계 역시 같은 기준 위에서 작동한다. 차량 이동 방향과 보행 동선이 일치하면서 교통 안전성이 높아졌다. 서로 다른 이동 수단이 동일한 질서를 공유할 때 사고 위험도 줄어든다. 방향 통일은 편의 문제가 아니라 안전관리 체계의 핵심 요소다.

그럼에도 지하철 일부 에스컬레이터는 이 규범을 따르지 않고 있다. 그래서 승객의 생활 질서와 시설 운영 체계가 정면으로 충돌한다. 이는 이용자 의식의 문제가 아니라 행정 준비 부족과 관리 부실이 낳은 결과다. 사회가 이룬 합의를 공공 시스템이 따라가지 못하는 비정상적인 장면이다.

작은 무질서가 국가 신뢰를 잠식한다= 내방역과 수서역 에스컬레이터의 좌측통행 체계는 사소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일상의 반복되는 불편은 행정 인식을 바꾼다. 기준은 존재하지만, 적용은 제각각이라는 경험이 쌓이면 정책 전반의 설득력은 약해진다. 생활 속 질서가 흔들릴수록 정부 원칙에 대한 신뢰도 함께 무너진다. 작은 균열이 제도 신뢰의 기반을 잠식한다.

국민은 국가 기준을 따르기 위해 생활 습관을 바꿨다. 그런데 정작 공공 시스템이 그 기준을 지키지 않는다면 신뢰의 균형은 깨진다. 시민에게는 준수를 요구하면서 시설 관리에는 느슨한 태도를 보이는 이중 기준이 형성된다. 이런 모순이 반복되면 정책은 권고 수준으로 전락하고 제도의 권위도 약화된다.

행정 신뢰는 거창한 성과가 아니라 사소한 원칙의 일관성에서 나온다. 작은 질서가 지켜질 때 정책 전체의 신뢰도 함께 유지된다. 반대로 사소한 무질서가 방치되면 국가 운영 전반이 허술하다는 인식이 확산된다. 기본을 관리하지 못하는 행정은 어떤 미래 전략으로도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질서는 ‘편의’ 아닌 국가 운영의 기초체력= 국가 운영은 거창한 전략 이전에 기본 질서에서 출발한다. 방향 체계처럼 단순해 보이는 규칙이 일관되게 작동할 때 행정은 신뢰를 얻는다. 사소한 원칙이 지켜지는 사회는 복잡한 정책도 안정적으로 실행된다. 반대로 작은 기준이 흔들리면 대규모 제도 역시 현장에서 힘을 잃는다. 질서의 완성도는 국가 운영 능력의 기초체력과 같다.

선진국과
비교하니…

행정은 종종 대형 개발사업과 첨단 기술 도입을 성과로 내세운다. 그러나 시민이 매일 체감하는 것은 거창한 청사진이 아니라 일상의 작동 방식이다. 출퇴근 동선이 매끄럽고 공공시설 이용이 예측 가능할 때 국가 시스템에 대한 신뢰도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기본이 정돈된 사회는 정책 비용도 줄어든다. 질서가 곧 행정 효율이다.

선진국이 강한 이유는 미래 전략이 뛰어나서만이 아니다. 사소해 보이는 생활 질서를 국가 시스템과 맞물리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방향 하나, 표지 하나, 동선 하나까지 일관되게 설계된 사회에서는 행정이 보이지 않아도 안정감이 유지된다. 국민은 통제받는다고 느끼지 않으면서도 질서 속에서 움직인다. 보이지 않는 질서의 완성도가 국가 경쟁력을 만든다.

방향 혼선은 안전을 위협하는 구조적 위험= 에스컬레이터는 움직이는 설비다. 탑승 순간 균형을 잡지 못하면 낙상 위험이 크다. 예상과 다른 방향에서 인파가 몰리면 충돌 가능성은 급격히 높아진다. 이용객이 밀집된 시간대에는 작은 혼선도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방향 예측이 어려운 공간은 본질적으로 위험하다.

노약자와 어린이, 시야가 제한된 이용객에게는 이런 환경이 더욱 치명적이다. 반대 방향 인파와 마주치는 순간 대응 시간이 부족하다. 균형을 잃으면 연쇄 낙상 사고로 확대될 가능성도 높다. 에스컬레이터 사고는 부상 강도가 크고 피해가 집단적으로 발생한다.

공공시설 안전의 핵심은 예측 가능성이다. 이용자가 직관적으로 움직일 수 있어야 사고 위험도 줄어든다. 방향 체계가 뒤섞이면 판단 과정이 길어지고 위험 노출도 커진다. 안전은 첨단 장비보다 기본 질서 확립에서 시작된다. 동선 통일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다.

사고 나면 국가가 책임져야= 좌측통행 에스컬레이터로 사고가 발생한다면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국가는 이미 우측통행을 국가 질서로 선언했고 국민의 보행 습관을 그 방향에 맞게 바꿨다. 그렇다면 그 기준과 어긋난 공공시설에서 발생하는 사고 역시 국가 책임의 영역으로 볼 수밖에 없다. 정책을 만든 주체가 결과의 책임도 함께 져야 한다는 점은 행정 책임의 기본 원칙에 해당한다.

도로가 파손돼 행인이 다치면 지자체가 관리 책임에 따라 배상한다. 가로수가 쓰러져 차량을 덮쳐도 관리기관이 시설 관리 책임을 진다. 시설 관리 소홀로 인한 사고는 국가배상 대상이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방향이 뒤틀린 동선 역시 이용 환경 관리 책임의 범주에 들어간다. 이는 복잡한 법리 해석 이전에 상식의 문제에 가깝다.

도시 시스템 원칙 작동 못하고 구조적 충돌
정책과 현실 엇갈리면 행정 신뢰도 무너져

국민에게는 “오른쪽으로 걸으라”고 해놓고 시설은 반대로 운영한다면 예측 가능성은 무너진다. 예측 가능성이 무너지면 안전도 함께 무너지고 사고 위험도 커진다. 정책과 환경이 충돌하는 구조적 위험을 방치한 책임은 결국 국가에 있다. 권한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 기준을 정한 주체가 그 기준이 작동할 환경을 마련하는 것은 당연한 책무다.

입법과 조례로 ‘기본 질서’부터 바로 세워야= 이제 정치가 책임져야 한다. 국회는 지하철 에스컬레이터뿐만 아니라 모든 공공시설 동선의 우측통행 원칙을 법률로 명문화해야 한다. 공공 교통시설의 보행·에스컬레이터 방향 통일을 의무 규정으로 만들고 예외도 없애야 한다. 신규 시설에는 즉시 적용하고 기존 시설에는 단계적으로 적응하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질서는 권고가 아니라 강제 규범이어야 한다.

지방의회 역시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조례를 통해 지역 내 공공시설 동선 정비를 신속히 추진해야 한다. 이는 대규모 예산 사업이 아니라 주민 안전을 위한 기본 행정이다. 중앙정부 눈치를 보며 미룰 사안도 아니다. 기술적으로 가능한 일을 방치하는 것은 명백한 직무유기다.

국민은 이미 정책에 맞춰 생활 방식을 바꿨다. 이제 국가는 그에 상응하는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기본 동선조차 완벽하게 정비하지 못하면서 선진 행정을 말하는 것은 모순이다. 정책과 현실이 엇갈리면 행정 신뢰도 함께 무너진다. 방향 통일은 국가 운영 능력을 보여주는 최소 기준이다.

기본 질서가 무너지면, 국가는 설득력을 잃어= 국가의 수준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기본 질서의 완성도에서 드러난다. 이동 방향과 표지 체계 같은 사소한 요소가 행정의 실력을 증명한다. 기초 질서가 흔들리면 정책 전반의 신뢰도 함께 무너진다. 사소한 혼란이 반복될수록 시민의 행정 피로감은 커진다.

국민은 이미 준비됐지만 행정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 생활 질서와 공공 시스템이 따로 움직이는 사회는 정상이라 할 수 없다. 정책이 발표되지만 현장에서는 완성되지 않고, 그 실패를 책임지는 행정도 보이지 않는다면 그 사회는 후진국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약속한 비전
공허한 구호

선진국은 미래 전략을 말하기 전에 기본 질서부터 완벽하게 완성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방향 하나 통일하지 못한 채 첨단 행정과 국가 경쟁력을 말한다. 기본이 무너지면 어떤 성과도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기본조차 바로 세우지 못한 행정이 미래를 말하는 순간, 국민에게 그 약속은 ‘비전’이 아니라 ‘공허한 구호’가 된다.

<skkim596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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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 이후 꺼낼 국민의힘 개헌 꽃놀이패

지방선거 이후 꺼낼 국민의힘 개헌 꽃놀이패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여야 6당이 참여한 개헌 시도는 국민의힘의 투표 불참으로 인해 결국 무산됐다. 입법적 전격전을 선호하는 민주당은 지방선거 이후 내년 재보궐선거까지 약 10개월 동안의 공백기를 노릴 가능성이 있다. 국민의힘의 청야전술은 이를 막아낼 수 있을까? 국민의힘을 제외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여야 6당이 발의한 헌법 개정안이 지난 7일 의결정족수 미달로 투표 불성립 처리됐다. 국민의힘은 이날 표결 불참을 당론으로 정한 후 의원 전원이 불참했다. 이튿날인 8일,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예고하자, 우원식 국회의장은 개헌안 처리를 중단했다. 정족수 미달 투표 불성립 현행 헌법에 따르면, 개헌안은 국회 재적 의원 과반이나 대통령이 발의할 수 있다. 대통령은 이를 20일 이상 공고해야 하고, 국회는 공고일로부터 60일 이내에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해야 한다. 이어 30일 이내에 국민투표를 거쳐 유권자 과반이 투표하고, 투표자 과반이 찬성해야 확정된다. 지난 7~8일 기준, 국회 재적 의원은 286명이라서 개헌안 가결에는 191명의 찬성이 필요하다. 국민의힘 의원은 모두 106명이다. 여야 6당 의원 전원이 개헌안 투표에 참여해 찬성한다면, 국민의힘에서 최소 11명 이상의 이탈자가 나와야 한다. 개헌안에는 ▲헌법 전문에 5·18 광주 민주화 운동과 부마 민주항쟁 명시 ▲계엄 선포 시 48시간 이내 국회 승인을 받아야 유효하도록 변경 ▲국회가 계엄 해제를 능동적으로 주도할 수 있도록 대통령 권한 축소 등의 내용이 담겼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7일 청와대 앞에서 진행된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재명은 연임 불가 선언 요구를 끝내 거부했다”며 “개헌을 하겠다면, 먼저 이재명이 연임 불가를 선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지난 8일 기자들을 만나 “부마 민주항쟁과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등을 헌법 전문에 담는 데 대해 근본적으로 반대하지 않는다”며 “헌법 전문은 특정 사건에 대한 게 아니라, 통합적 역사 인식 아래 균형 잡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건국·새마을운동·근대화도 다 헌법 전문에 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1987년 개헌은 오로지 제왕적 대통령 견제에만 집중해서, 국회에 예산·입법 등 막강한 권한을 몰아주는 기형적 구조를 탄생시켰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회가 권력남용을 이유로 언제든 대통령과 국무위원들을 탄핵의 심판대에 세울 수 있다면, 헌정 질서를 무너뜨리면서 폭주하는 국회도 해산의 심판대에 설 수 있어야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완성된다”며 “의회해산권 도입을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 의원은 지난해에도 민주당을 비판할 때마다 의회해산권 도입을 주장했다. 국민의힘 주요 관계자들의 발언에 대해서는 “개헌안 속 숨겨진 덫을 잘 파악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개헌은 통치 구조 개헌의 전초전일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에 대해서는 “헌법적 상식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헌법 제128조 제2항은 “대통령의 임기 연장 또는 중임 변경을 위한 헌법 개정은 그 헌법 개정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 대해서는 효력이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과거 대통령들이 개헌을 통해 정권을 연장했던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반성적 고려 차원에서 삽입된 조항이다. 대통령이 해당 조항의 효력을 무시하면서 임기 연장·중임 변경을 추진하려면 하야한 후 재선을 노려야 한다. 건국·새마을운동·의회 해산 쏟아내…과연? 이재명 독재 연장? 헌법 구조상 불가능한데… 하지만 이런 상황에선 대통령이 감당해야 할 정치적 책임이 매우 클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상식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송 원내대표가 헌법 전문에 추가할 것을 요구한 건국·새마을운동·근대화도 실제로 시도할 경우, 엄청난 논쟁이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 헌법 전문은 실제 헌법재판에서 보충적 규범으로 활용되는 등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법 규범으로서의 효력을 가지고 있으며, 국가의 정체성과 헌법의 취지를 선언하는 문장이다. 따라서 국민 대다수가 동의하는 가치를 담아야 한다. 이를 위해선 역사적 평가가 끝난 불가역적 가치를 담는 게 원칙이다. 그래서 현행 헌법 전문에는 ▲3·1 운동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 ▲4·19 민주 이념 등이 담겨있다. 여야 6당이 전문 추가를 시도했던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부마 민주항쟁 등도 역사적 평가가 끝났다. 특히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재평가를 주도했던 정권은 국민의힘의 전신 신한국당 소속 김영삼 전 대통령의 문민정부였다. 송 원내대표가 주장한 건국 이념 반영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곧바로 충돌한다. 임시정부 법통 논란은 해방 직후에도 치열하게 진행됐던 논쟁이었다. 임시정부의 법통을 인정했던 진영은 이승만 전 대통령·한국민주당 등 우익 진영이었다. 제헌의회도 임시정부 시절 임시의정원의 정통성을 승계하는 방향으로 정통성을 확보했다. 이는 김 전 대통령·김대중 전 대통령도 인정한 후 역사적 상식으로 굳어졌다가 뉴라이트 진영이 건국절 논란을 일으키면서 송 원내대표의 주장으로까지 흘러간 것이다. 건국 이념 반영은 임시정부 법통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 나 의원이 주장한 의회해산권에 대해서는 “대통령제와 맞지 않는다”는 반박이 나온다. 의회해산권은 의원내각제 국가에서 총리가 보유하는 권한이다. 의회가 갖는 내각불신임권과 함께 상호 견제를 위한 짝패를 이룬다. 국무총리가 있고, 현역 의원이 내각에 참여하는 우리 통치 체제는 일정 부분 의원내각제 속성을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은 직선제로 선출된다. 대통령은 의회가 아닌 국민을 향한 정치적 책임을 진다. 아울러 국회는 대통령에 대해 탄핵소추권을 가질 뿐 대통령과 내각을 불신임할 수 없다. 대통령은 구조적으로 의회해산권을 가질 수 없다. 대통령이 의회해산권을 가졌던 것은 유신 헌법과 제5공화국 헌법이었다. 이 헌법은 대통령에게 강력한 권한을 부여했던 프랑스 드골 헌법을 참고했다. 역사적 평가 불가역 가치 국민의힘이 개헌안 표결에 불참하거나 필리버스터를 시도하는 것에 대해선 “나름대로 이유는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106석을 보유한 국민의힘으로서는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아울러 개헌안의 주요 내용인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부마 민주항쟁 등은 모두 전신 민주공화당·민주정의당을 포함한 국민의힘의 약점이다. 국민의힘으로서는 4·19 혁명에 이어 역사적 약점이 헌법 전문에 추가되는 굴욕을 감당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국민의힘은 자가당착에 빠질 수 있는 부분까지 감수하면서 개헌안 표결에 불참했다. 부마 민주항쟁의 무대 부산·마산은 오랫동안 국민의힘을 탄탄하게 받쳐주던 주된 지지 기반이었다. 부산·경남은 노무현 전 대통령 등장 이후 경합 지역이 됐다. 국민의힘은 개헌 투표에 불참하면서 부산·마산의 위업을 헌법 전문에 담는 것을 걷어차는 외통수에 갇혔다. 비상계엄 관련 개헌안은 근본적으로 대통령의 권한을 약화시키면서 국회의 권한을 강화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국민의힘으로서는 개헌을 반대할 수밖에 없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서는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내부에서조차 평가가 일단락된 사안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국민의힘이 배출한 전직 대통령의 업보가 헌법에 명백하게 못 박히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위헌 정당”이라는 암시가 새 개헌안에 담기는 것을 배제하기 어렵다. 여야 6당 중 민주당에 대해선 “국민의힘의 구조적 약점을 날카롭게 찌르면서 기습적인 총력전을 시도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각 정당은 이미 6·3 지방선거라는 총력전을 앞두고 있다. 국민의힘이 개헌안 표결에 불참한 이유에 대해선 “개헌 시도가 지방선거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인식을 한 것 같다”는 분석이 나온다. 민주당이 ‘총력전 속 총력전’을 시도한 것과 비슷하다. 개헌 시도와 6·3 지방선거를 묶는 연환계를 구사하면서 전쟁을 양면 전쟁으로 바꾸는 것이다. 당세가 줄어들어 물량 동원에 한계를 보이는 국민의힘을 상대로 심리적·물리적 과부하를 유도한 것이다. 이는 장 대표의 지도력 논란까지 파고들어 결정적 지점에 화력을 집중하고, 국민의힘의 정치적 명분까지 꺾으려 했던 난도 높은 승부수였다. 개헌안 표결은 진행하지 못했지만, 국민의힘의 궁색한 현실을 전방위적으로 폭로했기 때문에 “졌지만 지지 않은 승부”라는 평가가 나올 수도 있다. 국민의힘은 그 궁색한 현실 때문에 투표 불참·필리버스터라는 고전적인 청야전술을 동원할 수밖에 없었다. 총력 공격 총력 방어 이는 명장들이나 강대국이 자주 구사하던 전법이었던 사실을 전쟁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당 태종은 제1차 고당(고구려-당나라) 전쟁에서 패배한 이후 전략을 바꿔 수시로 소규모 부대로 고구려를 침공해 변방을 교란하는 등 소모전을 병행했다. 태종의 뒤를 이은 당 고종은 2회에 걸쳐 대규모 침공을 감행했다. 고구려의 연개소문은 제2차 고당 전쟁 당시 사수에서 당나라 대군을 격파했지만, 방어선이 한반도 내부로 점점 밀리고 있는 양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어 제3차 고당 전쟁에서는 내부 배반까지 겹쳐 고구려가 끝내 멸망하고 말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군도 독일군이 서부전선 노르망디 상륙작전이라는 기습을 당해 방어에 모든 신경을 쏟고 있을 때, 바그라티온 작전이라는 총력전을 진행해 동부전선 내 독일군을 완전히 전멸시켰다. 민주당이 노린 전세는 이 같은 구도였다. 민주당은 이재명 대통령이 대표로 재임할 당시부터 윤석열정부를 상대로 30건이 넘는 탄핵소추를 발의하거나 법안 물량 공세를 펼치는 등 총력전 양상의 입법전을 주도했다. 170석이라는 압도적 의석수를 확보한 데서 비롯됐다. 원래 민주당은 압도적 지방선거 승리를 기대했다. 그러다가 이 대통령 공소 취소를 강하게 추진하는 상황에 대한 일부 유권자의 반감을 사면서 일부 지역에서는 보수층이 결집하는 등 선거 구도가 백중세로 바뀌고 있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이 대통령 공소 취소에 대한 의지를 꺾지 않고 있고, 개헌까지 시도했다. 지방선거 종료 이후엔 내년 4월 재보궐선거 전까지는 선거가 없는 만큼, 오는 6월부터 내년 4월까지 약 10개월 동안 여야가 전면전을 치를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이는 실제 정치학·정책학 이론으로도 입증된다. 존 W. 킹던 미국 미시간대 명예교수는 ‘정책의 창’ 이론을 주장했다. ▲사람들이 문제의식을 느끼고 ▲준비된 해결책이 있으며 ▲정치권이 움직일 수 있는 분위기 등 3박자가 맞물리면 ‘정책의 창’이 열린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관점에서는 선거 종료 이후 유권자로부터 직접 심판받지 않는 그 10개월이 정책의 창이 열리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개헌 및 이 대통령 공소 취소 등 물량 공세를 밀고 나갈 수 있는 전략적 시간대라고도 볼 수 있다. 업보·약점 헌법 전문 실리면 위헌 정당? 투표 불참·필리버스터…청야전술 한계 전술적으로 보더라도, 국민의힘이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은 투표 불참·필리버스터라는 청야전술격 수동적 방어밖에 없다. 법안을 반복적으로 밀어붙이면, 국민의힘은 투표 불참·필리버스터로 대응하게 된다. 그럴수록 국민 피로도가 높아지고, 중도층의 의심을 받게 된다. 진영이 확고하게 나뉜 상황에서는 중도층이 캐스팅 보트를 행사한다. 필리버스터는 말 그대로 마지막 방법이어야 하지만, 국민의힘이 거듭 사용하면서 식상해져 그만큼 비장함의 강도도 낮아졌다. 민주당의 입법적 전격전과 국민의힘의 투표 불참·필리버스터는 일종의 경로가 됐다. 양당 모두 경로 의존성이 생긴 것이다. 물론 국민의힘은 송 원내대표와 나 의원을 통해 ▲건국 담론 ▲새마을운동 ▲근대화 ▲대통령의 의회해산권 등 반격 카드를 제시했다. 하지만 모든 국민의 지지를 얻기 어려운 담론이기 때문에 기존 경로를 고칠 만큼 파급력이 강한 승부수가 되긴 어렵다. 아울러 민주당은 압도적 의석을 가진 집권여당이라는 위치를 이용해 선거 기간이 아닌 10개월 동안에도 지지층을 결집하면서 중도층의 설득을 얻을 영구적 선거운동을 할 준비를 마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 대통령 공소 취소에 대해선 중도층의 의견이 아직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아 민주당으로서도 도박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개헌안의 경우는 다르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부마 민주항쟁 ▲비상계엄 선포 및 해제 요건 변화 등은 국민 대다수가 이미 평가를 마친 사안이다. 이 대통령 공소 취소에 대한 중도층·보수층의 비판을 상쇄할 수도 있다. 민주당은 이 같은 영구적 선거운동을 통해 내년 재보궐선거에까지 대비하는 입법적 공세를 치르려고 한다. 청야전술은 자신의 경제 기반을 모두 허물면서 진행하는 극단적 처방이다. 국민의힘이 투표와 토론을 포기하거나 체력을 소비하는 등 극단적 처방을 할수록 대중·언론의 관심을 얻지 못하는 딜레마에 빠졌다. 이어 지지 기반인 부산·경남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헌법 전문에 담는 것까지 포기해야 하는 악순환의 고리에 접어들었다. 2200년 역사를 자랑하던 동로마 제국이 몰락을 이기지 못했던 사례가 있다.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세운 테오도시우스 3중 성벽은 오스만 술탄국이 준비한 대형 ‘우르반 대포’를 이겨내지 못했다. 또 예니체리 등 최정예 병력을 앞세운 오스만 술탄국의 물량 공세도 이겨내지 못했다. 여기에 방어전을 실질적으로 주도했던 용병 대장 조반니 주스티니아니가 부상 때문에 전장을 이탈하는 불운까지 겹쳤다. 궁색한 현실 자충수 되나 물론 청야전술에도 한계는 있다. 국민의힘에는 연개소문이나 조반니 주스티니아니조차도 없다. 지방선거가 끝나면 민주당에는 정책의 창이 열릴 것이다. 지도력 공백을 회복하지 못한 국민의힘은 이제 청야전술을 넘어선 새 전술을 고안해야 한다. 국민의힘은 과연 정책의 창을 막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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