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문형배 헌재재판관 키운 김장하

역사 만든 조용한 후원자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경남 진주서 시작된 김장하의 침묵은, 서울의 법정서 역사적 선언이 돼 울려 퍼졌다. 누군가는 평생 말없이 주고, 누군가는 그 울림을 품고 사회를 위한 결정을 내렸다. 그 울림을 가슴 깊이 새긴 제자 문형배가, 헌정사의 결정적 장면서 조용한 목소리로 판결문을 낭독했다.

2025년 4월4일 오전 11시22분, 대한민국 헌정사에 길이 남을 결정이 내려졌다.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서 헌법재판소는 파면을 명령했다. 이 역사적인 순간에 판결문을 낭독한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뒤에는, 그의 신념과 철학을 일궈낸 조용한 뿌리 같은 인물이 있었다. 

문형배
꺼내다

바로 진주서 평생을 살아온 시민운동가이자 교육자, 기부자였던 김장하 선생이다. 최근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가 다시 조명되며, 그 이름이 회자되고 있다.

김장하 선생이 누구인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전국적으로 알려진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진주 지역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묵묵히 후원하는 어른’ ‘장학금을 주는 어른’ ‘기부는 해도 이름은 남기지 않는 사람’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지만, 그 존재가 전국적으로 조명을 받은 계기는 뜻밖의 순간에 찾아왔다.

그 단초는 다름 아닌 문형배의 입을 통해 처음 세상에 드러났다.


2019년 4월, 문형배 당시 부산고등법원 부장판사가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지명돼 국회 인사청문회에 섰다. 청문회 도중 그는 자신의 성장 과정과 가치관 형성에 영향을 준 인물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주목받는 자리서 흔히 있을 수 있는 형식적인 답변일 수도 있었지만, 문형배는 “김장하 선생님이 계셨다”며 망설임 없이 한 사람의 이름을 꺼냈다.

그리고 이어진 그의 증언은 청문회장을 순간 정적에 휩싸이게 만들었다.

그는 “나는 경남 하동의 농촌서 자랐고, 생활 형편이 어려워 학업을 지속하기 어려운 처지였다. 고등학교 2학년 무렵, 진주서 한약방을 하시던 김장하 선생님이 나를 조용히 도와줬다”며 “장학금은 물론, 서울대학교에 다니는 동안 생활비까지 지원받았다. 단 한 번도 요구나 조건이 없었고, 그저 공부하라는 말뿐이었다”고 말했다.

이후 관련 발언은 보도자료를 통해 세상에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김장하’라는 이름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문형배라는 인물이 보여준 법적 신념과 공공성의 뿌리에 김장하라는 인물이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이에 김장하 선생을 취재하려 한 기자들은 어려움에 봉착했다.

그는 인터뷰를 완강히 거부했고, 사진도 남기지 않았다. 이런 김장하 선생이 세상 밖에 꺼내지면서 문형배와의 관계도 드러났다.

문형배와 김장하 선생의 관계는 오래됐다. 문형배는 1965년 경남 하동의 가난한 농부 집안서 태어났다. 3남1녀 중 장남이었던 그는 어린 시절부터 생활고에 시달렸고, 학교서 사용하는 교과서나 교복은 늘 물려받은 것이었다. 중학교를 간신히 마친 뒤 진주 대아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그의 인생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당시 학교서 우수한 성적을 유지하던 그는 우연히 김장하 선생의 눈에 띄게 된다.

김장하 선생은 당시 진주 동성동서 ‘남성당한약방’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미 지역에서는 ‘가난한 학생들을 돕는 어른’으로 알려졌지만, 누구에게 얼마를 줬는지, 어떻게 선발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는 일부러 기록을 남기지 않았고, 학생들에게도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았다. 문형배 역시 처음에는 자신이 김장하 선생의 장학생인 줄조차 몰랐다고 한다. 학교 행정실을 통해 장학금이 들어오고 생활비가 지급됐으며, 특별한 조건 없이 학업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단디해라” 무게 있는 격려
헌재 결정 이끈 ‘어른’ 그림자

그 지원은 서울대학교에 입학한 이후에도 계속됐다. 기숙사 생활비, 식비, 등록금까지 모두 포함된 전폭적인 지원이었다. 그러나 김장하 선생은 단 한 번도 문형배에게 연락하거나 감사 인사를 요구하거나, 만남을 요청하지 않았다. 그저 한 사람이 자신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조용히 옆에서 등을 받쳐 줄 뿐이었다.

문형배의 부친 문재열씨는 김장하 선생과 오랜 친구 사이였다. 두 사람은 진주서 함께 시민운동에 참여하며 평생을 우정을 나눴고, 가족처럼 지냈다. 문형배는 어린 시절부터 김장하 선생의 삶을 곁에서 지켜봤다. 매일 아침 자전거를 타고 약방으로 향하는 모습, 지역 단체 행사에 말없이 후원금을 전달하고 돌아서는 뒷모습,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할 일을 하는 그 태도는 문형배에게 깊은 인상으로 남았다.

시간이 흘러 문형배는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그는 처음으로 김장하 선생을 직접 찾아가 인사를 드렸다. 고개를 숙여 감사 인사를 전하자, 김장하 선생은 “내게 고마워할 필요는 없다. 나는 이 사회에 있던 것을 너에게 준 것뿐이다. 갚으려거든 나 아닌 이 사회에 갚으라”라고 말했다.

그 말은 문형배의 삶에 깊은 울림을 남겼다.

그는 훗날 부산고법 부장판사, 창원지법 부장판사, 부산가정법원장 등을 거치며 사법체계 안에서 ‘약자의 편’에 서려 노력했다. 2019년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지명돼 국회 인사청문회에 출석한 자리서 그는 주저 없이 김장하의 이름을 꺼내며 “김장하 선생은 저에게 자유를 기반으로 부를 쌓고 평등을 추구해 불합리한 차별을 줄이며, 박애로 공동체를 연결하는 것이 가능한 곳이 대한민국이라는 사실을 가르쳐주신 분”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말,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발의되고 심판 절차가 시작됐을 때, 문형배는 당시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으로 재판을 이끌고 있었다. 그는 사건의 엄중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매 순간 공정함과 절제, 국민 앞에서의 책임을 되새겼다.

탄핵 심판이 결론을 향해 달려가던 어느 날, 그는 김장하 선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단디해라” 그의 짧은 한 마디는 무게 있는 격려이자 조언이었다.

마니또
김선생


김장하 선생은 1944년 1월16일 경상남도 사천군 정동면 장산리 노천마을서 태어났다. 넉넉지 않은 농가서 성장한 그는 중학교를 겨우 졸업하고 생계를 위해 삼천포의 한약방서 점원으로 일했다. 낮에는 약을 썰고 밤에는 독학을 하며 삶을 버텼고, 열아홉살에 전국 최연소로 한약업사 자격을 취득했다.

1963년 사천군 용현면 석거리에 자신의 한약방을 열고 9년 뒤 진주 동성동으로 옮겼다. 1972년 진주 동성동으로 이전하여 ‘남성당한약방’을 개업했다. 이후 2022년까지 약 60년간 한 자리서 약방을 운영했다.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을 위해 이윤을 사용하지 않았다. 남성당한약방은 전국서 환자들이 새벽 기차를 타고 찾아올 만큼 유명한 약방이 됐고, 김장하 선생은 성실하게 세금을 납부하며 진주서 손꼽히는 고액 납세자로 기록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이윤을 축적하지 않았다. 남성당서 벌어들인 돈은 고스란히 지역사회의 성장과 약자를 위한 지원에 쓰였다.

1983년, 그는 자신의 사재 100억원 이상을 들여 학교법인 남성학숙을 설립하고, 이듬해 진주 명신고등학교를 개교했다. 설립 자금만 100억원이 넘었고, 10년간 이사장을 맡으며 체육관, 도서관 등 모든 시설을 완비했다. 학교를 안정적으로 꾸려놓은 뒤인 1991년, 그는 학교와 인근 부지를 포함한 전 재산을 국가에 기부했다.

이 과정서 그는 명신고 이사장 퇴임사를 통해 “내가 배우지 못한 이유는 가난 때문이었다. 그 억울함을 후배들이 반복해서는 안 된다”며 “내가 번 돈은 세상의 병든 이들로부터 거둔 이윤이기에 내 자신을 위해 쓰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설립의 모든 재원이 세상의 아픈 이들에게서 나온 이상, 이것은 공공의 것이 되어야 한다. 공립화, 그것이 국가 헌납이라는 절차를 밟게 된 이유”라며 이사장 퇴임사를 마쳤다.

김장하 선생은 교육 외에도 지역의 수많은 문화·사회·환경운동을 조용히 지원해 왔다. <진주신문> <진주가을문예>, 진주문고, 극단 현장, 진주여성민우회, 진주여성가정폭력피난센터, 형평운동기념사업회, 지리산살리기국민행동, 진주오광대보존회 등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삶을 꿰뚫는
명확한 철학

그는 1000명이 넘는 가난한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했고, 어떤 요구도 하지 않았으며, 행사나 사진도 없었다. 단지 그 학생들이 잘 살기를 바랐을 뿐이었다.

<진주신문> 창간을 후원했을 때는 진주가을문예 문학상 제정을 위해 1억5000만원의 기금을 내놓기도 했다. 진주문고가 경영난으로 위기를 맞았을 땐 두 차례나 지원해 지역 서점의 명맥을 이었다. 진주여성민우회 창립과 진주여성가정폭력피난처 설립에도 힘을 보탰고, 형평운동기념사업회와 지리산살리기국민행동, 진주오광대보존회 등도 그가 실질적으로 세운 단체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언론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았고, 후원 사실을 알리는 일조차 극도로 삼갔다. 행사 사진도 찍지 않았으며, 어떤 후원자나 장학생에게도 자신의 뜻을 강요한 적이 없었다.

이후 MBC 경남의 김현지 PD가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를 기획하면서 그의 삶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촬영을 거절당했고, 가까운 인물들조차 “선생님은 그런 걸 원하지 않으신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7년에 걸친 취재와 100명이 넘는 주변인의 증언, 오랜 시간 쌓인 기록들을 통해 김장하의 존재는 비로소 대중 앞에 드러나게 됐다.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의 김현지 PD는 “그는 자신이 카메라 앞에 서는 걸 원하지 않았고, 심지어 우리가 촬영하려 할 때 촬영 자체를 거절하셨다. 그분을 담는 데 2년이 넘게 걸렸다”고 말했다. 이런 김장하 선생을 오랫동안 취재해 만든 책 <줬으면 그만이지>의 저자 김주완 기자 역시 “7년 동안 인터뷰를 받지 않으셨고, 주변인을 100명 넘게 만나야 했다”며 “그는 기부란 그저 인간의 도리라는 말을 반복하실 뿐이었다”고 회상했다.

그의 삶을 꿰뚫는 철학은 명확하다. “돈은 똥과 같다. 모아두면 악취가 나지만, 세상에 뿌리면 거름이 된다”는 말처럼, 그는 벌어들인 자산을 모두 사회에 돌려줬다.

말년에 들어서도 검소한 생활
“나 아닌 사회에 갚으라” 지침

2000년 남성문화재단을 설립해 장학사업과 시민단체 지원을 이어갔고, 2021년 재단이 해산되자 남은 기금 34억원과 서경방송 주식 2만주를 경상국립대학교에 기탁하며 마지막까지 환원을 실천했다.

그는 별도의 자택 없이 한약방 3층서 거주했다. 옷 한 벌도 몇 년씩 수선해 입으며, 소박한 삶을 당연하게 여겼다. 정치권의 선거자금 요청도, 상장이나 상훈도, 공직 제안도 모두 거절한 사람. 그는 말보다 행동으로, 주장보다 실천으로 지역을 지탱했다.

김장하 선생은 말년에 들어서도 검소한 생활을 이어갔다. 자가용 없이 자전거를 타고 다녔고, 해외여행이라고는 2005년 평양 방문이 유일했다. 6·25 전쟁 중 전사한 줄 알았던 친형이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듣고서였다. 그 외의 어떤 관광이나 사치도 없었다.

전은정 진주문화연구소 소장은 “김장하 선생은 진주의 물리적 기반을 넘어 정신적 기반을 세운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진주서 시민운동, 문화예술, 인권운동이 지금의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건 선생님의 조용한 뒷받침 덕분”이라고 말했다.

김장하 선생은 누구보다 교육을 중요시했지만, ‘성공’을 목표로 삼지 않았다. 어떤 장학생이 “선생님의 도움을 받고도 평범한 삶을 살고 있어 죄송하다”고 하자 그는 “세상을 지탱하는 건 평범한 사람들이야. 너는 잘 살고 있는 거야”라고 답했다.

그는 늘 평범함을 지켜내는 사람들의 힘을 믿었고, 바로 그런 사람이 많아지는 세상을 꿈꿨다.

그는 매번 정치권과 거리를 뒀다. 시민사회단체들이 첫 민선 진주시장 선거서 김장하 선생을 후보로 추대하려 하자 그는 자리를 피했다. 상도 거절했고, 기자들과도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 ‘숨은 후원자’ ‘익명의 어른’이라는 별명이 붙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후원받은 사람들조차 그가 누군지 모른 채 학업을 마치기도 했다.

문형배는 “재판관으로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겸손함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겸손은, 내가 나로서 존재하게 만든 이 사회를 기억하고 책임지는 데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김장하 선생은 단지 한 사람의 장학금을 준 어른이 아니었다.

지역을 지탱하고, 공동체의 윤리를 전파한 어른이었고, 말없이 실천하는 가르침 그 자체였다.

김장하를 기억하는 이들은 그를 ‘살아 있는 윤리책’ ‘ 현대의 선비’ ‘진짜 어른’ ‘사회복지법 그 자체’라고 불렀다. 김주완 기자는 “그는 정말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 취재 초기 7년간 인터뷰 한 번 받지 않았다”며 “그는 ‘돈은 나눠야 한다’고만 이야기했지, 그 이상의 미사여구는 없었다. 그런데도 지역 사회 전체가 그 사람을 기억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김현지 PD는 그를 “살아 움직이는 사회보장제도”라고 표현했다. 그는 인터뷰서 “한 사람의 사적인 삶이, 공공이라는 이름으로 이토록 넓은 울림을 줄 수 있다는 걸 처음 느꼈다”고 말했다. “카메라도 부담스러워하셔서, 핸드폰으로 촬영한 장면도 많다. 정말 그분은 다큐멘터리조차 원하지 않았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만으로도 이야기가 넘쳤다”고 전했다.

이 시대
진짜 어른

문형배의 한마디서 시작된 관심은, 결국 한 사람의 조용한 인생을 세상 밖으로 꺼내놨다. 말 한마디 하지 않아도, 빛나는 자리에 서지 않아도,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삶을 바꾸고 세상의 구조를 흔들 수 있다는 것.

그 증거가 바로 김장하 선생이었다. 2022년 한약방을 닫고 은퇴를 선언한 그는 가족들과 평범한 일상을 보냈고, 현재 그의 약방은 진주시와 지역 사회의 요청으로 ‘남성당교육관’으로 보존돼 올해 개관을 앞두고 있다.

<imshar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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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공천 개입 검찰 추가 기소 플랜

윤석열 공천 개입 검찰 추가 기소 플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검찰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씨가 연루된 사건들을 파고드는 속도가 달라졌다. 정권 말기 검찰의 생존 본능이라는 평가다. ‘명태균 게이트’의 한 갈래인 윤 전 대통령과 김씨의 공천 개입 의혹 수사도 갑작스레 빨라졌다. 검찰은 이 사건의 핵심 내용을 알고 있었음에도 꽁꽁 싸매왔다. 봐주기 논란 해소를 위해 김씨를 시작으로 윤 전 대통령까지 소환 조사할 가능성이 큰 대목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지도 열흘이 지났다. 12·3 내란 사태를 수사하는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박세현 서울고검장)도 9부 능선을 넘었다. 체제를 유지하면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소환 조사를 준비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은 ‘명태균 게이트’ 공천 개입 의혹을 받고 있다. 출금 연장 추가 영장 검찰 내부에서는 서울중앙지검이 정치권의 특검 명분을 약화하기 위해서라도 윤 전 대통령에 대해 최후의 수단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윤 전 대통령은 이제 불소추특권을 적용받지 못한다. 김건희씨도 영부인 지위를 상실해 검찰의 강도 높은 수사를 받을 전망이다. 두 사람 모두 자연인이 되면서 회피 수단을 잃어버린 것이다. 우선 윤 전 대통령은 파면 전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만 기소된 상태다. 현직 대통령의 경우 내란·외환죄를 제외하고는 형사상 소추가 되지 않는 불소추특권을 적용받았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위헌이자 위법하다고 인정한 만큼 직권남용 혐의가 추가로 적용될 수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앞서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본부장 박세현 서울고검장)는 지난 1월 불소추특권을 고려해 윤 전 대통령을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만 기소하고 직권남용 혐의는 적용하지 않았다. 검찰이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출국금지 조치를 연장한 만큼 이달 안에 소환 조사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중앙지검 관계자는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 자세히 얘기할 순 없다”면서도 “사저로 돌아갔으니 일정을 조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윤 전 대통령의 외환 혐의 관련 수사도 진행 중이다. 경찰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수첩을 확보하면서 “NLL(북방한계선) 인근서 북의 공격을 유도” 등과 같이 북풍 공작을 구상한 정황을 확인했다. 고발 3건을 접수한 경찰은 지난달 4일 검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에 사건을 이첩했다. 경찰은 또 대통령경호처의 체포영장 집행 방해와 보안폰(비화폰) 서버 삭제 등 증거인멸 의혹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미 경찰은 김성훈 경호처 차장과 이광우 경호본부장의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를 수사하면서 윤 전 대통령을 윗선으로 지목했다. 채상병 수사 외압 의혹을 수사하는 공수처는 윤석열정부 대통령실 관계자들과 국방부 수뇌부에 대한 조사를 확대할 계획이다. 공수처 수사는 윤 전 대통령의 격노로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을 피의자로 이첩하는 해병대 수사단의 결과가 왜곡된 것을 입증하는 것이 핵심이다. 불소추특권 상실로 부담감↓…직권남용 적용 가능 경찰·공수처 수사 한창…대면 조사 가능성 거론 공수처는 지금까지 유재은 전 국방부 법무관리관, 박경훈 전 국방부 조사본부장 등 윤 전 대통령의 격노를 간접적으로 들은 것으로 알려진 피의자들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 그러나 비상계엄 수사에 인력을 집중하며 채 상병 수사는 일시적으로 중단된 상태다. 비상계엄 정국이 마무리된 만큼 공수처는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임기훈 전 국방비서관 등에 대한 수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이 전 장관은 윤 전 대통령 격노를 직접 듣고 해병대 수사단 조사를 무마하려 한 혐의, 임 전 비서관은 당시 대통령실과 국방부 사이서 조율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이 사실상 봐주기 논란에 휩싸였던 명태균 게이트의 정점에도 윤 전 대통령이 있다. 서울중앙지검 명태균 의혹 전담 수사팀(팀장 이지형 차장검사)은 윤 전 대통령과 김씨가 지난 2022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지난해 22대 국회의원 선거 등에서 공천에 개입했단 의혹을 수사 중이다. 윤 전 대통령 부부가 명씨의 청탁을 받고 국민의힘 김영선 전 의원의 공천에 개입했다는 게 의혹의 핵심이다. 특히 윤 전 대통령은 명씨가 운영한 것으로 추정되는 미래한국연구소가 실시한 여론조사를 무상으로 제공받았다는 의혹도 받는다. 이미 윤 전 대통령의 음성을 통해 공천 개입 정황이 확인된 상황서 검찰은 명씨의 이른바 ‘황금폰’ 포렌식은 물론 관련자들에 대한 수사를 진행해 왔다. 김씨는 지난 2022년 5월9일 명씨에게 전화를 걸어 “당선인(윤 전 대통령)이 (당에) 전화했는데 ‘(김영선을) 그냥 밀라’고 했다”며 “잘될 거니까 지켜보자”고 말했다. 검찰은 김씨가 2021년 7월 명씨로부터 대선 지지율 등 여론조사 결과를 미리 받은 카카오톡 메시지도 확보한 상태다. 명씨는 김씨가 지난해 총선서도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김씨가 김 전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김상민 검사가 (경남 창원 의창서) 당선되도록 지원해라. 그러면 선거 끝나고 장관 또는 공기업 사장 자리를 주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 무렵 김씨가 김 전 의원과 11차례 통화한 내역도 확보한 상태다. 다만 김 전 검사는 국민의힘 공천을 받지 못했다. 특검을 막아라 중앙지검 수사팀은 김씨에게 지난 2월부터 최근까지 두 차례 “공천 개입 의혹 관련해 대면 조사 필요성이 있으니 출석해달라”며 소환을 통보했다. 명씨 사건이 중앙지검으로 이송되기 전 수사를 담당했던 곳은 창원지검이다. 창원지검은 김씨가 국민의힘 공천에 깊숙하게 개입한 정황을 지난해 수사를 마무리하기 이전부터 알고 있었다. <뉴스타파>가 공개했던 창원지검 수사보고서에 따르면, 창원지검은 명씨와 윤 대통령 부부의 통화 녹음 파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모두 김 전 의원 공천과 관련된 통화였다. 창원지검은 김 전 의원과 명씨가 나눈 카카오톡 대화 메시지도 확보해 ‘공천 개입’ 의혹을 적극적으로 들여다봤다. 먼저 국민의힘 대표였던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은 명씨에게 “창원 의창구가 김 전 의원 단수공천이 아닌, 경선이 될 것 같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명씨는 김씨가 “윤상현 의원(공천관리위원장)에게 두 번이나 전화를 했다”면서 김 전 의원은 단수공천이 확실하다고 했다. 이어 이 의원에게 “사모님과 당선인에게 물어보세요” “사모님이 대표님께 전화할 겁니다”라면서 김씨가 김 전 의원 단수공천을 확정했다는 취지로 반복해서 말했다. 이들의 대화 말미서 명씨는 이 의원에게 “의문이 있으면 사모님께 전화하면 됩니다”라고 강조했다. 두 사람의 마지막 카톡 대화 1시간 뒤인 5월9일 오전 10시1분이다. 검찰은 명씨가 윤 대통령과 통화하며 녹음한 사실을 확인했다. 녹음 파일의 제목은 ‘통화녹음 윤석열대통령_220509_100104’. 2분30초짜리 파일이다. 검찰은 명씨가 이 녹음 파일을 저장한 USB를 자신의 PC에 꽂아서 지난 2023년 4월과 7월경에 수차례에 걸쳐서 재생한 사실을 PC 포렌식을 통해 파악했다. 지난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공개한 20초 분량의 윤 대통령 육성이 이날 녹음된 통화 중 일부다. 같은 날 명씨는 이 의원에게 “윤 대통령께서 저한테 전화오셨습니다. 윤한홍·권성동 의원에게 그런 말 들은 적 없다고 하시면서 윤상현 의원에게 전화해서 김 전 의원으로 전략공천 주라고 전화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냈다. 김씨와 윤 전 대통령이 공천에 개입한 정황이 확인됐음에도 김씨는 명씨 사건과 관련해 단 한 번도 소환 조사를 받지 않았다. 검찰 내부서도 봐주기 논란을 피하기 힘들다는 비판이 역력하다. 검찰의 봐주기 논란에 불을 지펴온 민주당 등 야 6당은 수차례 ‘명태균 특검법’을 발의해 왔다. 수사 대상에는 명씨와 연루된 것으로 보이는 범여권 ‘잠룡’부터 윤 전 대통령과 김씨까지 포함됐다. 못 미더운 수사기관 당초, 명태균 특검법 초안에는 윤 전 대통령과 김씨의 2022년 대우조선 파업 등 의혹과 관련해 불법적으로 개입했다는 의혹을 수사 대상에 포함하려 했다. 하지만 ‘불법적 정황 증거’를 파악하기 힘들 수 있다는 판단 하에 인지 수사 범위를 확대하는 것으로 보완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주요 정책 결정과 사업에 개입했다는 것으로 수사 대상을 한정 짓지 않고 추가 수사 가능성을 열어뒀다. 명태균 특검법 제2조 제6항에는 ‘제1호부터 5호까지 관련된 의혹 사건에 대한 증거인멸 및 범인 도피, 조사·수사를 고의적으로 지연·해태·봐주기를 하는 등 공무원의 직무유기 및 직권남용과 이에 관련된 불법행위를 했다는 의혹 사건’이라고 적시돼있다. 이는 창원지검이 현재 수사를 진행하고 있음에도 수사 진척 사항을 공개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만큼, 검찰이 의도적으로 수사를 지연시키거나 미진하게 수사를 진행한 부분이 있다면 이 부분을 직무유기 또는 직권남용으로 특검 수사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러나 이 특검법은 지난달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이었던 최상목 기획재정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에게 가로막혔다. 민주당은 이번 주 명태균 특검법에 대한 재표결에 나선다. 이는 조기 대선 레이스에 맞춰 명태균 게이트 의혹을 수면 위로 꺼내 윤 전 대통령과 김씨, 국민의힘 차기 대선주자들을 동시에 흔들겠다는 계획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명태균 특검법이 국민의힘 차기 주자로 꼽히는 홍준표 전 대구시장을 향한 견제구 카드로 활용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명씨와 연관된 의혹 당사자로 거론되는 상황서 명태균 특검법 움직임 자체가 압박이 될 수 있다. 오 시장 측은 “명씨의 미공표 여론조사를 받아본 적도 없다”며 비용 대납 의혹은 사실무근이라고 전면 부인해 왔다. 또 명씨 주장에 “새빨간 거짓말” “전혀 사실이 아니다” 등의 표현으로 강하게 반박했다. ‘명태균 게이트’ 봐주기 의혹 해소 급선무 “성과 뺏기면 안 돼” 강도 높은 수사 예고 “여러 차례 만났다”는 주장에 관해서도 오 시장 측은 ‘2021년 1월께 김 전 의원 소개로 명씨를 두 번 만났고, 당시 캠프 실무를 총괄한 강철원 전 정무부시장이 추가 연락한 것은 맞지만, 부정 여론조사 수법을 확인한 뒤 상대할 가치가 없는 인물이라 생각해 2월께 완전히 끊어냈다’고 입장을 밝혔다. 강 전 부시장은 앞서 검찰 참고인 조사에 출석하면서 “5%의 사실에 95%의 허위를 엮고 있는 명태균 진술의 실체를 명확히 밝히는 자리”라고 하기도 했다. 다만 실제 특검이 가동될지는 미지수다. 거부권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어서려면 200명의 찬성이 필요한데 국민의힘에서 최소 8명의 이탈표가 넘어와야 한다. 민주당은 차기 주자들 간의 역학관계에 따라 국민의힘 단일대오가 무너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명씨와 김 전 의원이 보석으로 풀려난 것도 변수다. 창원지법 형사4부(부장판사 김인택)는 지난 9일 구속 기소된 명씨와 김 전 의원이 신청한 보석을 허가했다. 검찰이 지난해 11월15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이들을 구속한 지 145일 만이다. 재판부는 보석 조건으로 ▲각각 주거지 제한 ▲보증금 5000만원 납입 ▲거주지 변경 시 허가 의무 ▲법원 소환 시 출석 의무 ▲증거인멸 금지 의무 등을 걸었다. 재판부는 “재판 진행 경과 등에 비춰볼 때 구속 기간 만료 내에 공판 종결이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 점,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 측면 등을 고려해 조건을 부과해 보석을 허가했다”고 사유에 대해 설명했다. 앞서 명씨 변호인은 명씨가 사형이나 무기 또는 장기 10년이 넘는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죄를 범하지 않았고 증거인멸 및 도주 염려가 없는 점, 무릎 건강이 좋지 않은 점 등을 들어 지난해 12월 법원에 보석 허가청구서를 제출했다. 명씨가 다시 폭로전에 나설 경우 6월 대선 전까지 수사 결론을 내야 한다는 여론이 생길 수 있다. 다만 이미 재판이 진행 중인 만큼 과도한 여론전에 나서면 역효과를 낼 수 있다. 검찰 안팎에서는 석방되면서 수사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미 출장 조사 등 수사가 상당 부분 진척됐고, 황금폰을 명씨로부터 제출받아 포렌식을 마치는 등 필요한 증거자료가 상당 부분 확보돼 공소 유지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검찰은 윤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검토 중이다. <일요시사>와 접촉한 한 검찰 간부는 “윤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가능성이 크냐”는 질문에 “이제는 부담감 없이 마음껏 수사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중앙지검 관계자는 “특검에 성과를 뺏겨서는 안 된다는 분위기고 수사팀도 의지가 강하다. 심우정 검찰총장이 간부 회의를 통해 ‘타협하자’는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요리조리 눈치 보기 검찰은 명씨 사건뿐만 아니라 김씨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에 대한 재수사도 검토 중인 모양새다. 앞서 검찰은 지난해 10월 이 사안에 대해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를 들어 무혐의 처분했다. 하지만 고발인인 민주당 최강욱 전 의원이 검찰 무혐의 처분에 항고해 서울고검은 재수사 여부를 검토 중이다. 특히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혐의로 기소됐던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 등이 파면 선고 전날인 지난 3일 대법원서 유죄를 확정받으면서 재수사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