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약품-미래회-용산 ‘마님들 수상한 커넥션’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4.11.25 09:23:55
  • 호수 150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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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싸움에 등장한 노소영, 왜?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대선 기간 비밀 선거사무소로 운영했다는 ‘예화랑’의 뒷배경이 재조명받고 있다. 해당 건물의 공동소유자 김용식의 부인이자 정수인은 지난 2012년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의 결혼식서 주례를 맡은 정상명 전 검찰총장의 딸이다.

김방은 예화랑 대표의 화려한 정·재계 인맥이 눈길을 끈다. 그는 임주현 한미약품 부회장과 같은 재벌가 사교모임 ‘미래회’ 출신으로 지금까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 1월 한미약품 그룹 계열사인 ㈜온라인팜은 재건축이 예정된 예화랑과 20년 장기로 보증금 48억원, 월 임대료 4억원의 계약을 맺었다. 철거된 빈 건물과 임대계약을 맺은 속내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미술계
쥐락펴락

예화랑 건물의 등기부등본을 살펴보면, 온라인팜은 지난 1월31일 62억4000만원의 근저당권을 설정했다. 채무자는 예화랑 건물 공동소유자이자 대표 김방은과 예화랑 감사이자 동생 김용식, 아버지 김태성 등 3인이다. 해당 근저당권은 김씨 일가와 온라인팜 사이의 임대차 계약에 의해 설정됐다.

김씨 일가가 임대차보증금 48억원을 선지급받고 담보를 위해 근저당권을 설정한 것이다.

현재 예화랑 건물 소유자는 김씨 남매다. 그러나 내년 7월 말 준공이 예정된 신축건물의 지분을 김씨 일가가 나눠 갖게 되면서 등기부등본상 근저당권 채무자는 3인이 됐다. 


임차인 측은 기존 건물을 모두 철거하고 재건축한 이후, 2025년 7월 말 신축건물이 완공되면 건물을 임대키로 했다. 기존 건물은 건축가 장운규가 설계해 2006년 한국건축문화대상을 비롯해 수많은 건축상을 받았던 건물인데, 이를 모두 철거하고 내년 하반기 새로 세우는 신축건물에 임대차계약을 맺은 것이다.

향후 온라인팜으로부터 평당 3만원의 관리비(신축건물 1400평 기준 4200만원)를 받게 될 예정이다. 온라인팜은 2년 뒤에야 신축건물을 사용할 수 있게 되지만, 이미 임대차보증금 48억원을 지불했다. 또 향후 20년간 960억원의 임대료를 지급하게 될 예정이다.

재건축을 위한 시행대행은 김용식이 대표로 있는 서울플래닝이 맡았다. 서울플래닝은 재건축에 대한 모든 권한과 신축건물 준공 이후 운영 및 관리에 대한 모든 권한을 부여받았다. 

김용식의 장인은 윤 대통령의 검사 선배이자 ‘정치적 멘토’로 꼽히는 정상명 전 검찰총장이다. 2009년 9월부터 2013년 8월까지 서울플래닝의 감사를 지낸 정 전 총장은 윤 대통령 결혼식 주례를 섰다. 지난 7월에는 이원석 전 검찰총장 후임 인선을 위한 ‘검찰총장후보 추천위원회’의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김방은·김용식 남매는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한미약품 그룹 모녀(송영숙 회장, 임 부회장)와 친분이 있는 사이로 알려졌다. 1년 가까이 이어진 한미그룹 오너일가 경영권 분쟁이 고소·고발에 따른 법적 분쟁으로 비화하면서 예화랑 임대차계약이 고발 내용에 포함됐다.

한미사이언스에 따르면 회사는 지난 18일, 서울경찰청에 박재현 한미약품 대표 등 그룹사 고위임원 4명과 김남규 라데팡스파트너스(사모펀드 운용사·이하 라데팡스) 대표까지 총 5인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배임·횡령),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로 고발했다. 

철거한 예화랑에 월세 4억 계약 의문
배임 혐의로 고발당한 한미약품 모녀


한미사이언스가 공시를 통해 밝힌 박 대표와 한미약품 사내이사 등 2명 관련 배임·횡령 혐의 발생 금액은 총 81억원(단순 합산 기준)이다. 업계에 따르면, 박 대표 외 피고발인에 오른 그룹사 고위 임원은 임 부회장·박명희 한미약품 사내이사·우기석 온라인팜 대표로 파악됐다.

함께 고발된 김남규 대표의 라데팡스는 오는 28일 임시주주총회를 앞두고 모녀 측이 내세운 우군이다. 전날 라데팡스는 한미사이언스 지분 3.7%를 취득하고 경영 참여형 펀드로 회사 경영에 참여한다고 밝혔다. 같은 날 송 회장과 임 부회장은 약 117만주를, 한미그룹 공익재단인 가현문화재단은 132만1831주를 라데팡스가 세운 특수목적법인(SPC) 킬링턴 유한회사에 넘긴다는 내용을 공시한 바 있다.

한미사이언스 측의 주요 고발 내용은 ▲부적절한 거래를 통한 회사 자금 유출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부당이득 취득 ▲불필요한 임대차계약을 통한 자금 유출 등이다.

업계에 따르면 형제(임종윤 사내이사·임종훈 대표) 측은 피고발인들에 대해 예화랑 건물 관련 불필요한 임대차계약을 체결했으며, 한미약품 제품 납품 관련 부적절한 거래 등 의혹이 있다고 보고 고발장을 접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한미약품 관계자는 “최근 한미사이언스 기자회견에 참석해 임종훈 대표에게 힘을 실어줬던 계열사 대표(우기석 대표)까지 서슴없이 고발하는 행위를 보며 비정함마저 느낀다”고 지적했다.

앞서 지난 13일엔 임 이사 측 인물인 한성준 코리그룹 대표가 “가현문화재단에 총 119억원을 기부해 주총 의결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며 송 회장과 박 대표를 배임 혐의로 고발하기도 했다. 지난 15일엔 한미사이언스가 3자연합(신동국 한양정밀 회장·모녀)과 이들을 위한 의결권 대리행사 권유업체를 형사 고소했다.

김방은
정체는?

3자연합은 앞서 한 대표의 송 회장·박 대표 고발 관련 “7개월간 보여준 막가파식 형제 경영에 소액주주가 등을 돌리면서, 3자연합이 상정한 특별결의 가결 가능성이 대두되자 형제들은 인륜을 저버린 고소·고발을 남발한다”고 비난했다.

한미약품 측도 “형제들이 정적을 제거하겠다는 목적으로 경영권 권한을 남용해 한미약품 경영진을 무차별 고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미사이언스 임시주총에는 ▲한미사이언스 이사회 이사 수를 기존 10명(정관상 가능한 최대 이사 수)서 11명으로 늘리는 정관 개정 ▲신 회장과 임 부회장의 이사 선임 ▲이익잉여금의 자본준비금 감액 등이 주요 안건으로 올라왔다.

이 가운데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 ISS는 3자연합 측이 상정한 정관변경 건과 신규이사 선인 건 등 두 안건에 대해 ‘반대’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회사가 상정한 주주친화정책인 감액배당 건에 대해선 찬성 의견을 제시했다.

업계에선 송 회장이 수백억원을 기부한 가현문화재단을 통해 한미약품을 장악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형제 측은 해당 고발서 송 회장과 박 대표의 결정과 지시에 따라 한미약품 이사회 결의나 승인 없이 가현문화재단에 3년간 119억원 상당의 기부금이 제공되면서 한미약품과 한미사이언스 주주들의 손해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김방은과 임 부회장은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만든 미래회서 만나 인연을 맺었다. 미래회 법인 등기에 따르면, 이사에 노소영, 임주현, 김방은, 최지은, 한혜원, 김미경, 전성은, 오선영, 이정현, 안영주, 김흥남, 조옥형, 홍수정, 박지영, 박지완 등이 이름을 올렸다가 2018년 4월6일 일제히 퇴임했다.

김 남매는 지난 대선 때 윤석열 예비후보에게 각각 1000만원을 후원한 후원자이기도 하다. 윤 대통령 당선 이후 김용식 대표는 당선자 비서실에 합류했고, 김방은 대표는 청와대 관리·활용 자문단 위원으로 위촉됐다.

윤 대통령을 정치에 입문할 때부터 도운 김용식은 대선 직후 대통령 당선인 비서실로 들어갔다. 세금으로 월급을 받기 때문에 공직자라고 볼 수 있다. 김용식이 인수위원회를 거쳐 대통령실에 취업했는지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다.

김방은은 지난 2022년 7월, 대통령실이 청와대 관리·활용 자문단 위원으로 위촉한 것으로 확인된다. 자문단은 대통령실 용산 이전으로 비워진 청와대를 어떻게 활용할지 논의하는 기구다.

이후 지난 1월9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서 열린 ‘2024 문화예술인 신년인사회’ 헤드 테이블에 송 회장이 초대받기도 했다. 같은 달 31일 김방은과 한미그룹 일가는 예화랑과 계약을 체결한다. 앞서 송 회장은 2003년부터 사진작가들의 창작과 전시활동을 지원했다는 이유로 지난해 10월27일 옥관문화훈장을 받았다.

한미약품 측근은 “과거 1억~3억원 정도만 가현문화재단에 기부해 오다가 송 회장이 장악하면서 한미약품은 3년 만에 119억원이라는 막대한 돈을 기부한 것”이라며 “난데없이 빈 건물에 월세 4억원을 쓴다는 건 업무상 배임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용산 이어준
미래회 역할

형제 측이 제기한 온라인팜 임대차 관련 이슈에 관해 한미약품 측은 ”한미사이언스 법무팀과 태평양의 2중 검토를 거친 뒤 체결된 계약에 관해, 경영권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한미사이언스 법무팀이 해당 계약건을 외부에 유출하는 정황이 보이고, 또 이를 상대측을 마타도어식으로 비방하고 공격하는 소재로 쓰고 있다는 점에서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고 전했다.

이어 ”‘온라인팜’은 리브랜딩 계획을 추진하면서 실제로 다수의 화장품 브랜드와 건강기능식품을 런칭했으며 창립 50주년을 맞아 한미약품그룹 역사관을 구축하기 위한 다양한 장소도 오랜 기간 물색해 왔다“며 ”예화랑 건물은, 한미그룹이 추진하고자 하는 리브랜딩 전략을 실행하면서도, 한미약품그룹 역사관을 설치해 고객들에게 한미 브랜드를 널리 알릴 수 있는 매우 적합한 공간이자 우수한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판단됐으며, 계약 체결 전 현장을 찾은 온라인팜 우기석 대표도 사업 타당성이 매우 좋다는 의견을 표명하며 계약이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또 ”신사동 가로수길 건물 임대의 경우, 여러 회사가 각자의 목적으로 입점 경쟁을 하는 구조며, 한미가 계약을 추진할 당시 역시 한 성형외과와 계약 선점 경쟁이 진행됐다“며 ”선점 과정서 건물주에게 더 이득이 되는 조건을 제시한 온라인팜이 계약 체결자로 선정됐으며, 신사동 가로수길 건물 계약 특성상 계약주체(온라인팜)가 원하는 외관 및 디자인, 컨셉 등을 전적으로 반영해 주는 조건이 전제됐다. 특히 법적 리스크를 점검하기 위해, 당시 법무팀과 법무법인(태평양)을 통해 리스크를 점검한 바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48억원 선지급 조건으로서 예화랑은 한미약품이 원하는 디자인 등으로 건축할 수 있었고 ▲주변 시세보다 적은 월세금액 ▲월세 10년간 동결 ▲언제든 전대 가능 ▲63억여원 규모 근저당설정 ▲입주 시기를 맞추지 못할 경우 96억원 반환 조건 등 한미에 유용한 방향으로 수립된 계약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더불어민주당 ‘명태균 게이트 진상조사단’은 지난 18일, 윤 대통령이 2022년 대선을 앞두고 ‘가로수팀’이라는 불법 선거사무소를 예화랑서 운영했고 그 증거를 인멸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서영교 진상조사단장은 이날 오후 국회서 열린 전체회의서 “원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등록한 후보 선거사무소, 중앙당과 시도당을 제외한 다른 선거사무소는 불법”이라며 “(그런데 윤 대통령이 대선후보 때)예화랑서 정책과 선거 조직을 이야기하고, 사람을 만나고, 선거 계획을 짰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윤 대통령의 절친인 이철호 연세대 로스쿨 교수의 이야기에 의하면 양재동에도 (불법 선거사무소가) 있었다고 한다”고 주장했다.

예화랑 감사 김용식 장인이 윤석열 멘토?
윤·김 결혼식 주례 선 정상명 전 검찰총장

김용만 의원은 무상으로 대여해 불법 선거사무소를 운영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예화랑이 ‘가로수팀’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공직선거법, 정치자금법, 수뢰후부당처사죄도 있고, 공무원이 될 사람이 뇌물을 먼저 받는 사전수뢰죄도 같이 검토돼야 하는 시점”이라며 “탄핵 사유가 될 수도 있는 부분”이라고 했다.

진상조사단은 회의에 앞서 예화랑을 방문했다. 송재봉 의원은 “일주일 전에 찍은 사진만 봐도 ‘예화랑’이라는 표시(간판)가 확인됐는데, 오늘 가보니까 다 없어지고 펜스를 쳐놓아서 확인할 수 없을 정도”라며 “리모델링이나 재건축을 한다며 이런 행위들이 벌어지고 있다. 증거인멸죄가 추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상조사단은 이날, 명태균의 경남 창원 산업단지 부지 선정 개입 의혹도 거듭 제기했다.

염태영 의원은 “(창원 산단 발표 전에)명태균과 친분 있는 A씨가 창원시 의창구 화양리에 9필지, 2억6000만원 상당의 땅을 구매한 사실도 확인됐다”고 말했다. 이어 “공익제보자로부터 ‘땅 점’을 봐줬다는 증언이 있다”며 “땅 투기하는 사람들이 매물 주소를 물어보면 명태균이 지도를 보면서 산단에 포함된다 안 한다는 조언을 했다고 공익제보자가 증언했다”고 전했다. 그는 “산단 위치를 알지 못하면 할 수 없는 발언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창원시장 출신인 허성무 의원은 “국토교통부가 창원산단 부지를 실사할 때 명태균씨가 현장 점검을 같이 했다는 제보가 있었는데, 이때 부지는 창원대 인근 그린벨트와 창원시 대산면, 북면 일대 307만평이었다. 그런데(실제 발표에선) 이 부지들은 극히 일부분 말고는 모두 빠지고, 그보다 동쪽으로 이동한 완전히 새로운 100만평이 확정됐다”고 말했다.

이어 “이때는 국토부의 현장 실사가 없었다. 100만평이 넘는 곳을 산단으로 지정하면서 국토부가 현장에 가보지도 않았다는 걸 납득하기 어렵다”며 “이런 과정서 명태균이 창원시 부시장과 담당국장을 불러 지시·협의하고 계획을 수립했다는 증언들이 나왔는데, 이게 가능한 일이냐”고 지적했다. 

진상조사단은 제기된 각종 의혹의 고발장을 작성하고, 상설특검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야당 사정권
정치권 비화

김승원 의원은 “창원지검이 ‘명태균 게이트’를 정치자금법에 국한해서 수사한다는 의혹이 있다”며 “민주당 법률국과 힘을 모아 여론조사 조작, 공천 개입, 창원산단 선정 관련한 국가기밀 누설, 돈봉투, 예화랑 등 불법 선거사무소 설치, 국민의힘 당내 경선 방해 등 지금까지 나타난 모든 의혹에 대해 고발장을 작성 중이고 완성되는 대로 검찰에 고발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이어 “진실이 묻히지 않도록 진상조사단은 더 확실하게 꼼꼼하게 활동할 것이며 상설특검도 언제든 출범할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하겠다”고 덧붙였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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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뒤통수로 다시 꼬인 한·미·일

트럼프 뒤통수로 다시 꼬인 한·미·일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불확실성의 시대에 가장 확실하다고 굳게 믿었던 관계에서 파열음이 나오고 있다. 새 정부 초기부터 보이기 시작한 적신호가 이제 눈 돌릴 수 없을 정도로 커진 모습이다. 어디서부터 균열이 시작된 걸까? 우리나라 외교는 한미동맹을 배경으로 진행됐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중립 외교를 꾀한 때도 있지만 대체로 한·미 혹은 한·미·일 관계가 우선시됐다. 하지만 최근 들어 우리나라와 미국이 삐걱거리는 모습이 자주 포착되고 있다. 상수였는데 변수됐나 지난 12일 미국 이민 당국에 체포·구금됐던 한국인 근로자 316명이 귀국했다. 이번에 구금된 한국인은 총 317명으로 남성 307명, 여성 10명이다. 이 가운데 1명은 잔류를 택했다. 지난 4일, 미국 이민 당국의 불법체류 및 고용 전격 단속에서 체포돼 포크스턴 구금시설 등에 억류된 지 8일 만이다. 이들은 미국 조지아주 엘러벨의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중에 체포·구금됐다. 문제 해결을 위해 조현 외교부 장관이 미국을 급히 방문했다. 당초 이들은 지난 10일(현지시각)에 전세기를 타고 출국할 예정이었지만 ‘미국 측 사정’으로 지연됐다. 외교부는 이번에 체포·구금된 한국인이 향후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미국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조현 외교부 장관은 마코 루비오 미 국무부 장관에게 이들이 신체적 속박 없이 신속히 귀국하고 향후 미국에 재입국하는 데 불이익이 없게 해달라고 요청했고 미국 측으로부터 긍정적인 답을 받았다고 한다. 체포·구금된 한국인이 미국을 떠나는 방식을 두고 우리나라와 미국 간의 이견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자진 출국’을, 미국은 ‘추방’을 언급한 것이다. 자진 출국 방식으로 귀국하면 향후 ‘5년 입국 제한’ 등의 불이익이 없다. 반면 추방 명령으로 미국을 떠나면 영구적으로 기록이 남아 최대 10년간 미국에 들어갈 수 없다. 지난 8일 크리스티 놈 미국 국토안보부 장관이 이번 사안과 관련해 “법대로 하고 있다. 그들은 추방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출국 형태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다행히 미국 측과 조율이 이뤄지면서 자진 출국 형태로 귀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루비오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도 이재명 대통령과 도출한 한미 정상회담의 성과를 높이 평가하고 있고, 이 사안에 대한 한국인의 민감성을 이해하고 있다. 특히 미국 경제·제조업 부흥을 위한 한국의 투자와 역할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 야 “700조원 줬는데도?”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측이 원하는 바대로 가능한 한 이뤄질 수 있도록 신속히 협의하고 조치할 것을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우리 정부의 노력으로 상황이 봉합되는 모양새지만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의 후폭풍이 상당할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인 체포·구금 과정에서 드러난 미국 이민 당국의 모습을 두고 동맹을 고려하지 않은 처사라는 말이 나왔다. 실제로 미국 측은 한국인 체포 과정에서 수갑을 채웠고, 이들을 환경이 열악한 수용소에 구금했다. 야권에서 ‘외교 참사’가 일어났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6일,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 이후 내놓은 논평에서 “이재명정부는 700조원 선물 보따리를 미국에 안겼지만 회담은 공동성명조차 발표하지 못한 채 끝났다”며 “그 결과가 고스란히 현대차-LG 합작 공장 단속 사태로 돌아왔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그러면서 “국민 사이에서는 실컷 투자해 주고 뒤통수 맞은 것 아니냐는 분노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며 “700조원에 달하는 투자를 약속해 놓고도 국민의 안전도, 기업 경쟁력 확보도 실패한 것이 이재명정부의 실용 외교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우리나라는 관세 협상, 한미 정상회담 등을 통해 미국에 5000억달러(약 700조원)를 투자하겠다고 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도 지난 6일 페이스북에 글을 썼다. 수갑 채우고 수용소 넣고 장 대표는 “이번 사태는 단순한 불법체류자 단속을 넘어 앞으로 미국 내 한국 기업 현장과 교민 사회 전반으로 피해가 확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사안”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수많은 한국 기업이 미국 전역에서 공장을 건설하고 투자를 확대하는 상황에서 근로자들이 무더기로 체포되는 일이 되풀이된다면 국가적 차원의 리스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우리 정부는 이 같은 사태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미국 측과 방지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조 장관은 루비오 장관 등과 만난 자리에서 이번 사태의 재발 방지책과 대미 투자 한국 기업 관계자들의 비자 문제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조 장관은 유사 사례 재발 방지를 위해 새로운 비자 카테고리를 만드는 등 다양한 방안 논의를 위한 ‘한미 외교부-국무부 워킹그룹’ 신설을 제의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를 한미 관계 차원에서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미 관계가 순탄하게 흘러가고 있지 않다는 신호로 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당선 직후부터 관세 등을 무기로 전 세계를 흔들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가 동맹 취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은 끊임없이 제기된 바 있다. ‘삐걱거림’은 이정부 출범 초기부터 감지됐다. 미국 백악관은 이재명 대통령 당선과 관련해 처음 내놓은 메시지에서 중국을 언급해 ‘이례적’이라는 말을 들었다. 백악관은 지난 6월3일 한국 대선 결과에 대한 언론의 질문에 “한미동맹은 철통같이 유지된다”면서도 “한국은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진행했지만 미국은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에 대한 중국의 개입과 영향력 행사에 대해서는 여전히 우려하며 반대한다”고 말했다. 백악관의 메시지를 두고 이정부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행사 견제, 실용 외교를 표방하는 이 대통령이 중국과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는 압박 등 다양한 해석이 이어졌다. 당시 미국은 중국과 관세를 두고 이른바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었다. 시간이 가면서 다소 소강상태가 되긴 했지만 갈등의 골은 여전히 남아 있다. 분위기만 화기애애? 관세 협상이나 한미 정상회담을 두고도 여전히 후폭풍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협상 시한으로 정한 날짜를 하루 앞두고 미국과 타결을 이뤄냈다. 당초 한미FTA로 우리나라와 미국 사이의 관세는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0’이었기에 타격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서한을 통해 언급한 상호 관세 25%를 15%로 낮추는 데는 합의했지만 과정은 난항을 거듭했다. 루비오 장관의 방한이 취소되는가 하면 ‘한미 2+2 통상 협의’를 앞두고 미국 측의 취소로 구윤철 기획재정부 장관이 발길을 돌리는 일도 벌어졌다. 일본이 먼저 관세 협상을 마무리하면서 기준이 생기고 시간에 쫓기는 등 여의치 않은 상황이 지속됐다. 결국 미국과의 관세 협상은 일본과 비슷한 수준에서 정리됐고 동시에 천문학적인 수준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다. 이때도 관세 협상 결과를 두고 이견이 나타났다. 우리 정부 측은 쌀, 소고기 등 농산물 개방은 없다고 주장했던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전면 개방을 말했다. 또 대미 투자의 방식에서도 서로 다른 생각을 보였다. 이견은 한미 정상회담을 거치고도 조율되지 않은 모양새다. 미국 측은 관세 협상 타결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 대통령의 방미를 언급했고 실제 한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정상회담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치러졌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앞에 두고 면박을 주는 등의 돌발 행동을 보인 바 있어 우려가 제기됐지만 무난하게 마무리됐다는 평을 받았다. 문제는 명문화된 결과가 없다는 점이다. 지난달 25일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진행했지만 공동합의문은 발표하지 않았다. 역대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정상회담 이후 공동성명을 통해 동맹의 성과와 협력 의제를 문서화해 왔다. 당선 메시지에 중국 언급 정상회담 합의문도 없어 당시 공동합의문이 나오지 않은 데 대해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제기될 정도였다. 정상회담에서 각종 현안을 폭넓게 논의했지만 구체적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결과였다. 특히 자동차 관세가 확정되지 않으면서 업계는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했다. 관세 협상에서 자동차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내용으로 타결했지만 문서로 명시되지 않은 것이다. 안보 문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한미 정상회담 이후인 지난달 28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공동발표문이 항상 있는 것은 아니”라며 “정상 간 논의 내용은 상당 부분 생중계됐고 나머지는 언론 브리핑을 통해 양국 국민에게 효과적으로 설명했다”고 말했다. 위 안보실장은 “문건을 만들어내기까지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많은 공감대가 있었다. 그런 공감대를 바탕으로 추가 협의를 하면 마무리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나온 조 장관의 발언은 조금 더 구체적이었다. 그는 “투자 부문에서 국민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어 수용하지 않았다”며 공동합의문이 발표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말했다. 이어 “미일 간 합의문 내용을 보면 왜 우리가 협상을 지연해 가면서까지 안을 만들고 있는지 이해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일본은 관세 협상에서 제조업·항공우주·농업·에너지·자동차 등 분야에서 미국에 시장을 개방하고 5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하는 내용의 합의를 진행했다. 또 합의 불이행 시 미국이 관세를 재조정할 수 있다는 조항이 담긴 것으로 알려지면서 ‘굴욕 협상’이라는 말도 나왔다. 조 장관은 “일본의 타결 협상안을 보면 우리가 비슷한 협상안을 받아들인다고 할 때 여러 문제점이 많다”며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분명히 하며 협상을 강하게 하다 보니 합의가 지연되고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품목 관세가 부과될 때 최혜국 대우가 불확실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현재로서는 그렇다”고 인정했다. 불확실성 해소될까? 우리나라와 미국 사이에 자리한 불확실성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타국을 대하는 방식은 이제 변수를 넘어 상수가 되는 모양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가 한미 관계를 더 흔들 가능성도 있는 상황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