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재개발 가등기 명단에···대통령실 간부 투기 의혹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4.07.10 13:22:29
  • 호수 14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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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폐허로 방치된 노량진본동 지역주택조합에서 대통령실 관계자 A씨가 언급됐다. A씨가 사업구역 내 빌라 한 채에 매매예약 가등기를 설정하면서다. 2007년 시작된 노량진본동 주택개발 사업은 현재 약 70명의 가등기권자로 인해 삽도 못 뜬 형국이다. 이들이 가등기 말소 조건으로 시행사 측에 요구한 합의금은 1000억원 이상이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대통령실 소속 간부 A씨는 노량진본동 주택개발 사업구역에 속한 영본빌라 202호에 가등기를 설정한 상태다. 통상 가등기는 미래에 이 집을 소유할 예정이라며 매매예약을 걸어두는 등기를 의미한다. 그러나 공유자만 33명, 가등기권자가 11명이나 되는 이들이 17평도 안되는 빌라 한 채에 주거 목적으로 가등기를 설정할 리는 없을 터. 실제로 A씨는 취재진과 통화에서 “가등기는 시행사와 협상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직접 말했다. 

17평 빌라에 
수십명 등기

2010년 노량진 지주택 사업이 한창일 때 A씨는 총 2억7600만원의 분담금을 입금하고 조합원 자격을 취했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노량진본동에 아파트를 5억 정도에 분양받을 수 있다고 기대했다. 그러나 A씨가 주거용 오피스텔을 소유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무주택자만 해당되는 지주택 조합원의 자격을 잃었다고 한다. 지역주택조합은 무주택자 또는 전용면적 60㎡ 이하의 유주택자들을 모집해 부지를 매입한 뒤 집을 지어 분양하는 사업을 한다.

영본빌라 가등기권자는 A씨를 포함해 총 11명이고 공유자만 약 30명으로 대부분 ‘재산보호연대’(이하 재보연) 소속이다. 재보연의 탄생 배경은 노량진본동 지역주택조합(지주택)에서 출발한다. 2007년 대우건설과 협약을 맺고 시작된 지주택은 4000억원 이상의 투자금이 몰린 ‘노른자’ 사업을 이끌었다.

그러다 부동산 경기침체로 인해 2012년 3월 조합은 2700억원 규모의 PF 대출금 만기일 이내 돈을 갚지 못해 파산했다. 결국, 대우건설도 2012년 3월24일 PF 연장을 포기했다. 조합 부도 이후 대우건설은 그해 4월10일까지 2700억원을 대위변제하고 처분권을 취득한 사업부지는 공매하겠다고 조합에 통지했다.


그러면서 시행사 로쿠스로 소유권이전등기 되는 동시에 하나자산신탁으로 신탁등기(공매대금 2100억, 신탁등기비 100억)가 이뤄져 사업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공매로 나온 부지에 사업 주체가 바뀐 것이다.

부지 공매와 내분 사태를 겪은 해당 조합은 대외적으로 로쿠스와 대우건설 및 청와대 등에 민원을 제기(2017년 동작구청 중재로 시행사와 합의까지 약 670여회)했다. 내적으로는 공매 직전 공증서류를 통해 채권자 지위를 확보한 일부 조합원 및 투자자(약 156명) 등에게 “서로 힘을 합해 시행사와 시공사에 맞서 싸우자”고 3차례 내용증명을 발송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그들 중 36명을 제외한 122명은 끝내 조합에 대한 채권자 지위를 고수해 조합원 자격서 제명당하고 말았다. 현재는 최종 388명이 유효한 조합원이고, 조합 이사 김모씨를 포함한 122명은 이미 파탄 난 조합에 대한 채권자 지위에 있을 뿐 시행, 시공사에 대한 어떠한 권리 주장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살지도 않는 집 매매 예약 가등기
시행사업 방해 목적? “전략일 뿐”

조합 이사 김씨는 공증서류로 공매 직전 채권자 지위를 확보한 사람들을 위주로 재보연이라는 미명하에 지주택조합과는 별도로 122명의 외부 조직을 결성했다. 향후 주도권 확보를 위한 집단적 위세와 단합된 행동을 위해 운영규정(행동강령) 및 개별서약서(운영규정위반시 제재 등)까지 만들어 2012년 4월 재보연을 꾸렸고, A씨는 여기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론적으로 최종 388명이 현재 유효한 노량진본동 지주택 조합원이고, 조합 이사 김씨를 포함한 122명은 2012년 말 제명되면서 재보연으로 독립한 셈이다.

A씨는 “오피스텔 소유로 인해 조합서 제명됐기에 시행사 합의 대상서 제외됐고, 분담금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며 “전 재산에 가까운 돈을 투자했는데, 이자까지는 돌려받아야 하지 않겠나. 변호사 정모씨가 조언하길 (영본빌라 202호)에 가등기를 설정하고 버티면 시행사에서 협상하자고 할 것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A씨는 가등기를 설정하기 위해 재보연 측에 4000만원을 입금했다.

취재진이 ‘4000만원을 입금하면서까지 지분을 확보한 이유가 뭐냐’고 묻자 A씨는 “(영본빌라 202호 공유지분)매매 금액이 대략 1700만원인데 그냥 2000만원으로 하는 것보다는 4000만원으로 올려놓는 게 좋지 않겠나”라며 “우리 입장에서 어차피 2000만원 받으려고 제한 행위를 한 건 아니지 않겠나”라고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이처럼 A씨는 가등기를 설정한 이유에 대해 개발사업의 주체를 방해하고 합의금을 더 받기 위한 것이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실제 영본빌라 202호의 감정평가액은 약 5억7000만원이며, 공유자 30여명을 기준으로 나누면 공유지분 금액은 1인당 1700~2000만원으로 계산된다. 

한 푼이라도
더 받자고…

지주택은 원수에게도 권하지 않을 만큼 리스크를 감당해야 할 사업이다. 지역주택조합사업이 가장 많이 추진되고 있는 곳은 서울 동작구다. 총 118곳 중 23곳(19%)이 몰려 있다. 준공된 지주택 아파트만 보면 24곳 중 8곳(33%)이 동작구에 있다. 문제는 사업 성공 가능성이 매우 낮고, 피해도 점점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무주택자들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지주택에 접근하는 경우 지주택 투자에 나서기도 한다. 

지주택은 조합이 사업 주체가 되는 만큼 비교적 개발 절차가 단순하고 중간마진을 없앨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일종의 ‘공동구매’이기 때문에 순탄하게 진행한다면 조합원들은 일반분양가의 반값으로 집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도 강점이다. 

지주택은 남의 땅에 집을 짓는 사업 구조인 만큼 얼마나 땅을 확보했느냐가 사업 성패의 키다. 지주택이 사업계획승인을 따내려면 구역 내 토지를 95% 이상 확보해야 하는데, 더 높은 가격을 받기 위해 알박기는 빈번하게 이뤄진다. 토지 매입에 시간이 소요되면 소요될수록 예상했던 토지 매입비가 대폭 상승할 수 있는데, 이 또한 사업 주체인 조합원이 떠안게 된다. 

지주택 추진위와 업무대행사가 결탁, 유령회사를 만들어 토지 매입비 등을 가로채는 사기도 비일비재하다. 자금난 등으로 조합이 부도를 맞을 경우 투자비를 회수하지 못하고 조합원 자격을 상실할 수도 있다. 

우여곡절 끝에 조합이 토지 매입을 완료했다고 해도 추가분담금을 무시할 수 없다. 사업이 지연됐을 경우 시공사가 일반분양 지연 등에 따른 추가분담금을 통보하기도 하는데, 이렇게 되면 조합원이 일반분양가보다 많은 비용을 지불하게 될 수도 있다.

‘떼거리 등기’ 1인당 9억원 요구
2억7600만원 넣고···3배 뻥튀기

이에 따라 A씨 등 재보연이 투자금을 그대로 돌려받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합의한 조합원들도 투자금의 50%만 돌려받은 경우가 흔하다. 그러나 A씨를 비롯한 재보연 관계자 122명은 1000억원의 보상을 시행사 측에 요구하고 있다. 

지난달 재보연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통화에서 “지주택 조합원은 평균 2~3억원을 투자했다”며 “부동산 시세에 따라 1인당 기준 최소 9억원은 보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만약 사업 주체가 가등기권자에게 9억원을 보상한다면, 2억7600만원을 낸 A씨의 경우 3배 이상의 차익을 가져간다. 


이를 두고 시행사 측은 “조합원 자격도 없는 가등기권자에게 보상할 의무는 없지 않겠나”라고 답했다.

현재 시행사 측은 가등기권자를 상대로 가등기말소 소송을 걸었다. 시행사 관계자는 지난 5월 “수십명에게 각각 가등기말소 소송을 제기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이 경우 소장 송달부터 1심판결까지 가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며 과도한 금융비용이 발생한다”고 가등기권자들을 상대로 고소장을 제출한 이유를 밝혔다.

조합원 피해
조직 운운

현재 주택법 제22조에 따라 주택건설 대지면적의 95% 이상의 사용권원을 확보한 경우, 사용권원을 확보하지 못한 대지의 모든 소유자에게 매도청구가 가능하다. 다만, 가등기말소 또는 근저당권 말소 등을 강제로 청구할 수 있는 법률 규정은 없다. 이에 따라 등기 또는 근저당권이 말소되지 않는 이상 사업을 추진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반면, A씨는 취재진과 통화에서 “가등기 설정은 사업 주체에 대한 강력한 대항력이 있다”며 “가등기말소 소송에서 질 수도 있고 이길 수도 있지만, 사업 주체는 가등기가 말소돼야만, 착공과 분양이 되기에 우리의 재산권을 보존 받으려면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시행사가 원하는 합의금을 주기 전까진 가등기를 말소하지 않고 버티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러면서 ‘양측의 합의가 오래될수록 비용부담은 분양가 상승에 원인이 되지 않나’라고 묻자, A씨는 대답하지 않았다.


영본빌라는 202호를 제외하곤 창문마저 없는 사실상 폐가에 가까운 모습이지만, 가등기권자의 알박기로 인해 철거할 수 없는 상태다. 실제로 가등기 말소가 이뤄지지 않은 부동산들은 시행사가 철거할 수 없어 수년째 방치되고 있다.

재보연 측은 방치된 공사 현장에 대해 “시공사 대우건설이 사업 승인과 착공서 늑장을 부렸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며 수천억원의 보상금과 사업권도 요구했다. 이에 대우건설은 지급보증으로 빚을 대신 갚았기에 피해자 입장이라는 주장이다.

대우건설 측은 언론과 인터뷰서 “PF 대출을 갚지 못해 대위변제로 2700억원의 빚을 지불했다”며 “토지 소유권을 얻는다고 해도 600억원의 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현재 재보연은 법적 토지 소유권을 놓고 반발하면서 시행사와 갈등을 이어가고 있다. 실제로 재보연 측은 2013년 7월부터 사업구역 내에 위치한 영본빌라, 에이스빌라, B건물에 가등기 및 공유지분 관계를 설정해 사업 주체의 업무를 방해하고 있다. 

현재 시행사가 확보한 주택건설 대지면적은 95% 이상이다. 이 중 가등기가 설정된 부동산 3곳은 1% 미만에 해당한다. 현재 영본빌라 202호는 33명의 공유자에 11명의 가등기권자, 에이스빌라 502호는 55명의 ‘떼거리 가등기’가 설정돼 있다. B 건물의 경우 1명의 가등기가 설정된 상태로 현재 가등기말소 소장이 접수된 상태다.

시행사와 합의한 다수의 조합원은 재보연의 ‘알박기’로 인해 공사가 지연되면서 아직 합의금 잔금도 못 받고 있다.

한 합의 조합원은 <일요시사>와 인터뷰서 “감정가 7억도 안 되는 영본빌라는 11명이 가등기를 치고, 10억도 안되는 에이스빌라에는 55여명이 가등기를 설정해 지분을 쪼개 알박기하며 개발 사업을 방해 중”이라며 “영본빌라 가등기권자 중에 대통령실 간부가 연루됐다는 사실은 조합원들 사이에서 유명한 이야기”라고 주장했다.

대통령실
묵묵부답 

한편, A씨는 지난 2일 <일요시사>와 첫 통화에서 “공직자인 내 신상정보를 누구에게 전달받았는지 왜 대답하지 않나. 많이 불쾌하다”며 “사실과 다른 보도가 나갈 경우, 개인정보 노출과 공직자 명예훼손이 될 수 있고, 손해를 끼칠 경우 손해를 배상해야 할 수 있음을 고지한다. 더 이상 연락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이후 A씨는 재차 연락을 취해 “공무원이라는 게 요즘은 최고의 약자다. 보도가 한 번 나가면 어떻게든 스크래치가 나지 않나”라며 “조직(대통령실) 대 조직(<일요시사>)의 싸움이 돼 버릴 수 있지 않나”고 말했다. 취재진은 대통령 대변인실에 “대통령실 간부의 부동산 투기 의혹에 대한 입장을 달라”고 질의했지만, 아무런 답변을 받을 수 없었다. 

<smk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국힘 장진영 후보 지주택 투기 재조명

22대 총선 서울 동작갑서 낙마한 장진영 국민의힘 후보가 지역주택조합 투기 의혹에 휩싸인 바 있다.

그는 자신을 상대로 제기된 부동산 투기 의혹에 대해 “지역주택조합 끼고 투기하는 바보도 있느냐”며 전면 반박했다.

<뉴스타파>는 지난 3월12일 장 후보 부친이 ‘2020년 동작구 지역주택조합(지주택) 사업지의 한 필지를 매입했다가 1년 6개월 후 매도해 약 2배 시세 차익을 본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해당 토지는 맹지에 가까운 ‘ㄷ’자 모양의 비정형 필지로 가등기가 설정된 토지인데, 장 후보 부친이 이를 샀다가 지역주택조합에 되팔면서 시세보다 2배 넘는 가격에 팔아 7억여원의 시세 차익을 얻었다는 것이다.

장 후보와 지역주택조합 관계자는 전혀 사실이 아니라며 이를 반박했다. 장 후보와 지역주택조합 관계자 두 사람의 말을 종합하면, 2020년 지역주택조합인 한강주택조합은 서울 동작구 본동 지역을 매입해 재건축·재개발을 진행 중이었다.

주택법상 조합인가를 받으려면 사업 대상 지역 토지의 80%를 확보해야 하는 리스크가 있다.

당시 한강주택조합도 사업부지를 매입했는데, 대상 토지 중 한 곳에 문제가 있었다. 동작구 본동(노량진동) 190-19 토지에 가등기가 설정된 것이다.

게다가 가등기 설정시기가 1970년대로 필지 등기부등본에 사실상 등기권리자 이름만 남아 있는 상태였다. 주소가 명시돼 있었지만 그사이 행정구역 등 개편으로 주소지명이 달라져 권리자를 찾는 데 애를 먹었다고 한다.

결국, 이런 상황에서 장 후보 부친 도움으로 매매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 당시 매매가는 7억 9000만원이었다.

매매는 장 후보 부친과 조합 측이 직접 진행했다. 가등기 말소 소송도 장 후보 부친이 원고로서 수행했다.

1년 6개월 뒤인 2022년 6월 장 후보 부친은 조합 측에 해당토지를 매각했다. 평당 2800만원으로 같은 시기 조합이 매수한 다른 토지 가격의 2분의 1 수준이었다.

장 후보 부친은 7억9000만원에 해당 토지를 샀다가 15억원에 되팔았지만 시세차익의 절반을 양도소득세로 납부했다고 한다.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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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쳐야 사는데…’ 거야 각개전투, 왜?

‘뭉쳐야 사는데…’ 거야 각개전투, 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이리 뭉치고 저리 뭉쳐도 뾰족한 수가 없다. 야6당이 손을 잡으면 21석까지 가능하지만 공동 교섭단체 구성이 말처럼 쉽지 않다. 총선을 앞두고 찢어진 ‘이낙연-이준석 빅텐트’가 트라우마로 남은 탓일까? 톱니바퀴를 억지로 맞추다간 오히려 탈이 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향해 교섭단체 완화에 대한 의지를 거듭 드러내고 있다. 총선을 치르기 전부터 요구해 왔지만 아직도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이야기가 겉돌고 있기 때문이다. 고개를 돌려 야6당끼리도 머리를 맞대도 마땅한 방법이 없다. 딱 8석이 모자란 혁신당만 속이 바싹 타들어 가는 모양새다. 틀어진 시나리오 지난 4월 총선을 앞두고 ‘지민비조(지역구는 민주당, 비례는 조국혁신당)’ 열풍이 불었다. 두 당은 ‘윤석열 심판론’을 놓고 함께 싸우자며 우애를 다졌다. 혁신당의 발목을 잡던 교섭단체 조건을 현행 20석서 10석으로 완화하는 데 민주당도 동의하는 듯했다. 혁신당은 제3의 교섭단체가 만들어지면 개혁 과제 실현이 더 용이하다는 주장을 펼치며 민주당을 설득하고 있다. 양당 교섭단체 체제로는 극단적인 대결과 파행이 거듭되지만 제3교섭단체가 협상 테이블에 참여하게 되면 지금보다 생산성이 높아질 것이란 점에서다. 군소정당 차원서도 교섭단체를 꾸리는 게 이득이다. 20석 미만인 비교섭단체는 정보위원회 활동이 불가능할뿐더러 상임위원회에 간사를 둘 수 없다. 본회의나 상임위, 또는 국정감사 같은 중요 일정 논의에서 배제되는 설움도 있다. 당시 12~15석을 예상하던 혁신당은 총선 기간 진보 진영의 군소정당들과 공동 교섭단체를 구성하는 방안을 고려했다. 총선이 끝난 후 혁신당은 민주당을 제외한 야6당끼리 손을 잡는 밑그림을 그렸다. 12석을 확보한 혁신당을 포함해 ▲개혁신당 3석 ▲진보당 3석 ▲새로운미래 1석 ▲사회민주당 1석 ▲새진보연합 1석이 뭉치면 총 21석으로 공동 교섭단체를 꾸릴 수 있다. 윤정부 심판을 외치던 진보 진영의 군소정당이 전적으로 힘을 싣겠다는 의지를 보이면서 순풍이 불 것으로 전망됐다. 하지만 막상 총선이 끝나자 논의에 제동이 걸렸다. 일부 당선인이 합류를 보류하거나 선을 긋는 듯한 모양새를 취하면서다. 여기에 ‘교섭단체 구성요건 완화’를 총선 공약으로 제시한 민주당마저 미묘한 변화를 보이면서 혁신당 내에서는 당혹스러운 기류가 감지됐다. 돌풍을 타고 여의도에 진입한 혁신당 조국 대표가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경쟁자로 떠오르면서 다소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총선이 끝나고 보름이 지났을 무렵 혁신당은 민주당을 향해 다시 한번 요구사항을 전했다. ‘목마른 혁신당’ 삽 들고 나섰지만… 살살 선 긋는 민주당에 ‘도돌이표’ 조 대표는 “총선 기간에 당시 민주당 김민석 상황실장이 원내 교섭단체 의석수 기준을 낮추겠다고 했고 민주당 원내대표였던 홍익표 의원도 ‘의석수 기준을 낮추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며 “전체적인 흐름으로는 김민석 의원이 말했던 것을 되돌리는 듯한 느낌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민주당이 안 된다고 하면 우리는 우리 방식대로 원내 교섭단체를 추진할 수밖에 없다. 급하게 서두를 생각은 없고 특정 당 사람을 빼 올 생각도 없다”며 “정공법에 따라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해 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혁신당의 요구에도 민주당이 선을 그으면서 교섭단체 논의가 답보 상태에 빠졌다. 김민석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총선 당시 정책 발표까지 담당하던 상황실장으로서 지난 3월27일 제기된 국민의힘 측의 정치개혁안 발표에 대응하는 차원서 정치 관련 정책 발표를 했다”며 “주요 공약 발표 후 당 연구원서 취합한 자료에 나온 교섭단체 요건 완화도 논의 및 검토 과제로 제기한 바 있다. 숫자 등에 대한 구체적 문제는 차후 검토사항임을 명확히 했다”고 설명했다. 정치개혁 정책을 발표하던 당시 교섭단체 기준 완화를 제시한 것은 맞지만 이는 이전부터 당이 논의해 왔던 안건일 뿐, 혁신당을 염두에 둔 이야기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즉, 장기적 논의사항이라는 것과 구체적으로 10석으로 완화하겠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니 혁신당도 이를 유념해달라는 뜻을 전했다. 그동안 교섭단체를 꾸리기 위해 혁신당만 백방으로 뛰어다닌 것은 아니다. 새로운미래와 진보당 등도 저마다 의견을 피력하며 교섭단체에만 주도권이 주어지는 국회 생태계를 비판하고 나섰다. 진보당 홍성규 수석 대변인은 <일요시사> 취재진과의 통화서 “거대 양당 중심으로만 운영되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있다”며 “현실적으로 다양한 정당이 존재하는 조건서 지금 규정은 너무 엄격하다. 운영위원회에는 원내 모든 정당이 당연히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현행 20석 이상이라는 규정은 대폭 완화될 필요가 있다”며 “진보당에서는 ‘5석 이상 개정안’ 등 다양한 제기 방도를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너도나도 동상이몽 지난 6월 야6당 원내대표가 공동 교섭단체를 논의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이면서 본격적으로 협상에 나설지 이목이 쏠렸다. 이날 마련된 자리에는 ▲혁신당 황운하 원내대표 ▲개혁신당 천하람 의원 ▲진보당 윤종오 원내대표 ▲새로운미래 김종민 의원 ▲기본소득당 용혜인 대표 ▲사회민주당 한창민 대표가 자리했다. 새로운미래 김 의원은 “교섭단체 제도를 바꾸거나 폐지하는 게 맞다”며 힘을 실었다. 이어 “교섭단체는 정당은 아니라서 정치적이거나 정책적인 견해를 같이하거나 같은 길을 갈 필요는 없는데 국회 운영에 관해서는 민주적인 운영에 대한 목소리를 같이 내는 게 교섭단체의 취지”라며 먼저 나서서 공동 교섭단체 구성을 적극 제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발언을 두고 개혁보수를 표방하는 개혁신당이 혁신당을 비롯한 사회민주당·진보당 등과 손을 잡을 수 있겠냐는 우려가 나왔다. 역시나 혁신당은 이날 자리가 마무리된 후 언론 공지를 통해 “야6당 공동 교섭단체 추진 관련해 논의한 바 없음을 알려드린다”고 알렸다. 누구보다 앞장서서 공동 교섭단체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논의 없이 무작정 상대방과 손을 잡는 건 득보다 실이 크다는 판단에서다. 개혁신당도 “공동 교섭단체 구성과 관련해 향후 논의를 이어가자는 입장으로 추진과 관련해선 어떤 것도 결정된 것이 없다”고 밝혔다. 야6당이 곧바로 합의하지 못하는 이유는 당의 방향성과 지향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총선을 앞두고 개혁신당과 새로운미래가 빅텐트를 쳤지만 결국 갈라선 것 역시 궤를 같이한다. 국민의힘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야당으로 묶이지만 정치 스펙트럼 선에서 놓고 봤을 때 끝과 끝이 분명히 존재하는 만큼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한 군소정당 관계자는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솔직히 공동 교섭단체가 절실한 상황이다. 우원식 국회의장도 긍정적으로 이야기하는 모양인데 한 가지 걸리는 건 국민의힘과 가장 근접하게 위치한 개혁신당”이라며 “교섭단체 구성 요건이 완화되지 않는다면 개혁신당과 함께 가야 하는데 서로 불편해하는 지점이 분명 있을 것이다. 비전이 같아야 잡음이 없고 또 각 당의 지지자분들도 이해해주실 텐데 (개혁신당과 손을 잡는 건)쉽지 않을 것 같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교섭단체 조건에 대한 진전이 없다. 민주당이 해법을 쥐고 있는데 아마 그쪽(민주당)도 고심이 깊을 것”이라며 “그래도 거대 양당의 충돌을 제3자가 막아주는 상황이 조금 더 희망적이지 않겠는가”라고 설명했다. 이유 있는 급발진 새로운미래 관계자 역시 “김 의원은 윤정부를 비판하는 동시에 비명(비 이재명)계로 알려졌다. 반면 혁신당이 이 대표와 어떤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아 서로(김 의원과 조 대표) 조심스러운 분위기”라며 “김 의원 역시 교섭단체에 긍정적인 입장이지만 어디까지나 정책 부문서 함께 힘을 모으는 것이지, 혁신당과의 깊은 관계에 있어서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야6당은 공동 교섭단체에 뜻을 함께하고 있으면서도 저마다 걱정을 안고 있다. 특히 개혁신당과의 충돌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이다. 이에 지난 8일 조 대표가 개혁신당 허은하 대표를 예방했지만 양쪽 모두 “공동 교섭단체 구성 관련해 적극적으로 열어두고 있다” “구성에 대해서는 내부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등 원론적인 이야기만 오간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달 30일 혁신당은 교섭단체 의석수를 10석으로 낮추는 내용 등을 담은 ‘민심 그대로 정치혁신 4법’을 발의하면서 압박 수위를 높였다. 조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서 “10석이던 국회 교섭단체 의석수를 20석으로 올린 것은 1971년 박정희 독재정권”이라며 “국회가 낡은 정치체제를 대변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교섭단체 요건 완화가 곧 22대 총선 민심”이라고 주장했다. 10석이란 숫자가 도출된 이유는 각 3석을 확보한 진보당과 개혁신당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둘 중 한쪽이라도 뜻을 함께하지 않으면 교섭단체 조건인 20석을 넘지 못하는 만큼 12석인 자당의 힘으로 교섭단체를 꾸리겠다는 설명이다. 만일 이보다 높은 15석으로 합의를 보더라도 3석만 확보하면 된다. 야6당이 뭉치기 어려운 상황서 의석수를 줄이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으로 여겨지는 이유다. 혁신당은 최근까지도 우원식 국회의장과 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만나 설득을 시도했다. 이들 모두 교섭단체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구체적인 사안은 서로 협의하고 논의해야 한다며 확답을 피했다. 우 의장은 지난 21일 기자간담회서 교섭단체 완화에 관한 질문에 “다수의 교섭단체 생성이 꽉 막힌 정국서 국회의 원만한 운영을 위해 괜찮은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군소정당이)양당을 잘 설득하고 순기능을 이야기해서 관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군소정당에 공을 넘겼다. 교섭단체 캐스팅보트 진보·개혁신당 “달라도 너무 달라” 빅텐트 뻔한 결말 누구 하나 명확한 답을 주지 않던 시점서 국회 국민청원이 해법이 될지 이목이 쏠린다. 지난달 29일 ‘국회 교섭단체 완화를 위한 국회법 개정 촉구에 관한 청원’이 소관 상임위 회부 요건인 5만명 동의를 충족하면서다. 앞서 조 대표는 청원 링크를 SNS에 게시하고 당원들에게 문자를 전송했다. 혁신당 의원들 역시 일제히 SNS에 같은 내용을 공유하며 청원 동의를 격려했다. 지난 19일 해당 청원은 심사 요건을 충족해 국회 운영위원회로 자동 회부됐다. 공이 국회로 넘어오자 조 대표는 “이제 민주당이 응답할 차례”라며 “옳은 주장이지만 우리에게 이익이 없으니 하기 싫다는 건 이기주의 발상”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길게 보면 어떤 선택이 승리의 길인지 명확하다”는 말을 덧붙이며 민주당의 결단을 촉구했다. 혁신당이 교섭단체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국회 내 각종 제약을 해소하기 위해서라지만 일각에서는 미래를 대비하기 위함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한 야권 관계자는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야6당 중 혁신당이 (교섭단체 구성에)제일 열심히 하고 있다. 12석의 혁신당은 1~2석을 가진 정당보다 교섭단체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며 “20점을 맞은 학생과 98점을 맞은 학생 중 어느 쪽이 100점을 위해 더 노력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이 관계자는 “물론 교섭단체가 되면 국회서 활동반경이 넓어지고 이런저런 제약도 풀리지만 조 대표는 사법 리스크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며 “법원의 시간이 다가오기 전 국회에 조금이라도 더 파고들어야 한다. 자신을 믿고 함께한 비례혁신당 의원들을 위해서라도 안정적인 둥지를 꾸려야 한다는 부담감이 조 대표에게는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모든 논의는 과반 의석인 민주당의 동의 없이는 어려운 상황이다. 주도권을 쥔 민주당은 “야6당의 합의 없이 구체적인 숫자를 언급하기엔 이르다”는 입장을 되풀이하며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최요한 정치평론가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교섭단체는 오히려 이재명 대표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며 “이 대표의 대권가도에 도움이 되고 의회 운영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울러 “정치권에서는 조 대표를 이 대표의 라이벌로 보는데 그건 그때 가봐야 아는 일이다. 지금 상황서 혁신당은 아군이 아니라 우군”이라며 “현실적으로 야6당, 21석이 뭉치기는 어렵다. 20석을 10석으로 완화해 혁신당이 독자적 교섭단체가 될 수 있도록 풀어주는 게 유리하다”고 전망했다. 또 다른 야권 관계자는 추석 전후를 눈여겨보라고 귀띔했다. 한발 후퇴? 도움닫기? 이 관계자는 “TF처럼 느슨한 형태의 교섭단체라도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며 “야6당이 손잡고 간병인 부담 완화나 간호법 같은 민생법안을 추석 전까지 빠르게 통과시키는 방안이 거론된다. 연대에 부담을 느끼는 당이 있는 만큼 정책 지향성을 배제하고 기능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춰 핵심 의제를 관철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신임 당 대표의 회담이 한차례 미뤄지면서 모든 이슈를 흡수하고 있다. 제3정당의 공간이 좁아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며 “민생 의제를 두고 존재감 확보를 위해 추석 전후로 교섭단체 등록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부연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조 회동 무슨 말 오갔나? 지난 21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가 만남을 가졌다. 이 대표는 “두 당의 관계는 협력적 경쟁 관계이자 경쟁적 협력관계”라며 “우당으로서 최종적 정권교체를 이뤄내자”고 강조했다. 조 대표 역시 정권교체를 힘주어 말하며 “이 대표가 선봉에 서서 3가지 과제의 해결사 역할을 해달라”고 화답했다. 이날 이 대표는 교섭단체 문제에 공감하며 기본과 원칙을 위해 힘을 모아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지난 18일 전당대회서 신임 당 대표로 선출된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는 “정치라는 게 현실이어서 제 개인적인 뜻대로만 움직이는 건 아닌데 노력해보겠다”고 말해 민주당 내 의견을 통합하는 데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