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삼의 맛있는 정치> 포퓰리즘 공약에 망가지는 한국경제

정치적 이익 위해 경제활동 위축

올해는 전 세계 76개 국가서 42억명이 투표하는 ‘슈퍼 선거의 해’로 경제가 정치에 휘둘리는 포퓰리즘 망령이 지구 전체를 파고들고 있다. 한국도 4월 총선이 끝난 시점에 여·야, 좌·우, 보수·진보 할 것 없이 민심을 사고 표심을 잡기 위해 대중 영합적 공약을 앞다퉈 내놨던 바 있다.

각 정당들이 주도권을 잡기 위해, 그리고 후보들이 일단 당선되기 위해 내놓는 포퓰리스트적 선거 헛공약은 한국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입힐 수 있다.

정치적 이익 위해 경제활동 위축

포퓰리스트적 선거공약은 대중의 관심을 끌고 지지를 얻기 위해 경제적 혜택 제공, 공공 서비스스의 즉각적 확대, 사회적 문제의 해결 정책 등을 제시한다. 근로자에게는 과도한 임금인상, 고용 창출을 위한 정부 지원이나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근로시간 단축 등으로 소득 증대와 복지 향상을 약속한다.

대다수의 국민에게 직접적 혜택이 제공되는 국민연금, 의료보험, 저소득층을 위한 복지 혜택을 확대하는 사회복지프로그램을 강화하는 공약도 내놓는다. 여기에 중산층 표심을 잡기 위한 감세 정책이나 주택 공급 확대 및 전세금 지원 등의 주거 문제 해결, 교통시설 등 생활 환경개선도 자주 등장한다.

가계에 인기 있는 학비 지원이나 교육 품질 향상을 위한 정책 등 교육 지원 강화, 가격 안정화를 위한 정부 조치나 소비자 보호법의 강화 등도 단골메뉴다. 포퓰리스트적 선거공약은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경우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현실성과 결여돼있어 한국경제에 장기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대중영합주의자 정책은 정치적 이익을 얻기 위해 단기적 경제 성과를 추구하며 경제의 수요 측면을 강화한다. 단기적 혜택 제공은 소비를 촉진해 대중의 지지를 얻을 수 있으나 공급 측면을 고려하지 않아 투자와 생산에 제약을 가해 경제활동을 위축시킨다.

대중 선동가적 임금인상은 장기적으로는 실업률을 높이며 고용 창출이나 소득 재분배 정책은 경제구조에 부담을 주는 만큼, 경제의 효율성과 성장을 해친다. 또 경제의 불확실성을 높여 투자 환경의 악화로 기업들은 투자를 늦추거나 산업계획을 변경한다.

외국 투자자들은 한국의 경제 정책에 대한 신뢰를 잃어 경제 성장에 제약이 된다.

이밖에 친서민 정책이라고 포장된 포퓰리스트적 선거공약은 종종 정치적 갈등을 부추기거나 사회분열 및 정치적 불안을 초래해 효율성 저해나 정책의 실행을 방해할 수도 있다.

이는 특히 정치적 안정성이 경제성장과 긴밀한 관련이 있는 한국과 같은 국가에는 큰 부담이 된다. 포퓰리스트 정책 시행은 통상 과도한 지출과 세제 인하를 포함해 장기적으로 재정건전성을 위협하며 국가의 경제적 안정성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공공 서비스 확대, 사회복지 프로그램 강화, 고용증대 등을 위한 예산 증액으로 대규모 예산 지출이 뒤따른다. 이같은 예산 지출이 정부의 수입을 초과할 경우, 결과적으로 재정적자가 초래된다.

특히 포퓰리스트 정책으로 포함되는 세제 인하는 직접적으로 재정건전성을 악화시킨다. 재정적 영향 및 경제적 효율성과 우선순위를 고려하지 않고 대중의 인기 위주로 계획한 지출은 더욱 재정건전성을 해칠 수밖에 없다.


포퓰리스트 정책이 초래한 재정적자를 과도한 통화 발행으로 메우게 되면 장기적인 생산능력을 증가시키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고 물가 상승과 인플레이션 압력을 초래할 수 있다.

아르헨티나 등 퍼주기로 국가 부도

단기적으로는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었으나 장기적으로 경제적 문제와 심각한 후유증을 초래한 해외 사례는 많다. 한때 세계 경제 7위에 올랐던 아르헨티나는 20세기 후반부터 21세기 초에 걸쳐 페론주의 정권이 시행한 각종 퍼주기식 정책으로 국가 부도 사태가 반복됐다.

최근에도 고용 창출과 소비 촉진을 위한 과도한 예산 지출과 막대한 양의 통화발행으로 물가가 뛰자 가격 상한제 등 반시장 정책으로 잡으려 했으나 실패해 또다시 인플레이션과 실업률·빈곤율 상승으로 허덕이고 있다.

페루, 에콰도르, 볼리비아 등의 인근 남미 국가들도 공공 서비스의 확대, 사회복지 프로그램의 강화, 고용 창출을 위한 정부 지출 등을 포함하는 다양한 포퓰리스트 정책을 시행해 재정건전성을 악화시키고 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결과적으로 빈곤과 불안정성에 직면하게 됐으며, 몇몇은 심각한 경제 위기에 빠졌다.

베네수엘라의 포퓰리스트적 경제 정책은 초인플레이션과 경제 붕괴를 초래해 국가를 파탄시켰다.

한때 전 세계 1위 원유 수출국이었던 베네수엘라는 원유, 철강 등 기간산업의 국유화를 통해 확보한 자금력을 기반으로 빈민층을 대상으로 한 무상의료, 무상교육, 저가 주택, 연중 반값 생필품 제공 등 일련의 사회복지프로그램을 확대해 하층민의 삶을 개선하는 데 일부 성과를 거두며 강력한 지지를 얻었다.

그러나 2013년 이후 국유화 기업의 비효율성으로 생산성 감소와 제조 및 유통 기반이 붕괴한 상태서 재정 수입의 원천인 석유의 국제가격 하락, 미국의 석유 수출 금지 조치 등으로 외환 수입이 크게 줄었다.

그래도 복지를 줄이지 못하고 화폐 발행으로 돈을 풀어 화폐가치가 폭락하면서 살인적 초인플레이션을 초래해 경제활동은 마비됐다. 남유럽국가(PIIGS)들도 세입 기반이 취약한 상황서 방만한 사회보장 지출과 공공 부문 임금 등의 지출을 통제하지 못하다가 2009년 말부터 금융위기와 재정위기에 허덕였다.

그리스는 채무 위기가 고조되던 2015년 국제채권단의 긴축 요구에도 포퓰리즘 중독서 벗어나지 못한 채 유권자들은 이를 거부하는 후보를 당선시키는 우를 범했다.

아시아에선 태국이 1990년대와 2000년대 초기에 농가의 환심을 사기 위해 쌀을 시장가보다 높은 가격으로 사들여 재정을 낭비하는가 하면, 이로 인한 쌀 공급과잉으로 쌀 산업은 국제시장서 가격경쟁력을 상실했다.

이후 정부가 막대한 비축미를 풀면서 쌀가격이 떨어졌고, 공급량을 줄이기 위해 이모작 제한책을 내놔 농민들로부터 불만을 샀다. 이렇듯 포퓰리스트적 선거공약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심각하며 장기적으로는 국가 전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독일 킬(Kiel) 세계 경제연구소의 포퓰리즘 연구 대가인 푼케(Funke) 박사는 포퓰리즘을 한번 경험하면 재감염될 우려가 있으며 포퓰리스트 정책이 한번 시작되면 되돌리기가 어렵다고 경고했다.

한국경제가 포퓰리스트적 선거공약에 망가지지 않기 위해서는 정책 결정자들이 대중의 요구에 반응하면서도 재정건전성과 경제적 안정성을 고려해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국가 및 지역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균형 잡힌 접근 방식을 채택해야 한다.

매니페스토 공약 절실

포퓰리스트 선거공약은 종종 자유, 민주, 민족, 평등, 공정 등의 가치를 내세워 그럴듯하게 포장돼 알아채기 쉽지 않다. 이를 사전에 방지하고 균형 잡힌 정책 결정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

정책 결정 단계에선 구체적 재원 조달 방안을 제시하도록 하고 국가 재정건전성 유지, 국가채무 등의 재정지표를 일정 수준 이내로 관리하기 위한 재정 준칙(fiscal rules) 법제화를 실시해야 한다. 이는 현재 해외 주요국 대부분이 운용하는 방식이다.

이때 전문가들을 참여시켜 의견과 조언을 충분히 듣고 이를 반영해야 한다. 스웨덴은 정부가 정책 결정과 예산 편성에 대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협력해 광범위한 토론과 협의를 거쳐 의견 수렴, 가능성 검토 과정을 거치며 포퓰리스트 정책을 사전에 방지하고 있다.


이와 함께 정부나 정책 재정기관에 중립적·독립적인 평가 및 감독기구를 두고 정책의 이행 상황과 효과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해 공정한 결과를 제공하도록 해야 한다.

칠레는 국가기록 관리체계를 통해 정책 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하고 정부의 행동을 관찰해 국민이 포퓰리스트적인 제안에 대해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게 한다. 일본은 공공정보를 광범위하게 공개해 정책 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하고 공론화를 촉진함으로써 유권자들이 포퓰리스트적 제안에 대해 비판적으로 검토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선거 캠페인 기간 중 허위 정보나 과장된 공약에 대한 관련 규제를 강화할 필요도 있다. 영국에선 선거나 국정운영 중 과장된 정보나 거짓 정보를 방지하기 위한 사실 확인 서비스 운영으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유권자들의합리적 판단을 돕는다.

유권자들이 포퓰리즘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서는 정부나 비영리단체들이 정책에 대한 분석과 설명 및 재원 조달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즉, 책임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예산 확보와 추진 일정을 포함한 구체적 실행계획을 세운 매니페스토(manifesto) 선거공약을 내놔야 한다.

그러면 유권자들은 정책의 실제적인 효과와 장단점을 검토해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이행에 대한 책임도 물을 수 있을 것이다. 유권자들도 망국적 포퓰리스트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려면, ‘세상에 공짜는 없다’ ‘나중에 반드시 값을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염두하고 포퓰리스트적 선거공약을 세밀히 따져야 한다.


김명삼 대기자
<hntn11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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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