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삼의 맛있는 정치> 4·19 혁명과 자유당 정권 몰락의 전말

1960년에는 제4대 대통령과 제5대 부통령을 뽑는 선거의 해였다. 4·19는 1960년 3·15 부정선거에 항의해 학생들이 들고일어나 자유당 정권을 종식한 의거였다.

집권 자유당은 후보로서 다른 대안이 없었으므로 이승만 현 대통령과 이기붕 국회의장을 차기 대통령과 부통령으로 당선시키려 했다.

3·15 부정선거

자유당은 1959년 초부터 전면적인 선거 준비 작업에 돌입했다. 2월 지방자치법을 개정해 시·읍·면장 임명제를 도입해 득표에 유리한 인사를 임명할 길을 만들고, 자유당 중앙조직위원회에 특수조직책을 두고 이들을 정부 각 부처의 국·과별로 특수임무를 수행토록 보임할 수 있도록 했다.

3월에는 개각으로 경찰과 지방공무원의 총수 격인 내무부 장관에 이기붕 의장과 사적으로 친밀한 최인규를 임명했다. 최인규는 곧 7개 도의 도지사를 경질했다.

6월에는 일찌감치 전당대회를 거쳐 이승만과 이기붕을 대·부통령 후보로 지명해 공식화했다(민주당에선 신구파 간의 갈등으로 후보 선정 문제가 혼미에 빠져있었다. 11월26일에야 전당대회서 조병옥(구파), 장면(신파)을 후보로 선정했다).


11월, 자유당은 본격적인 선거 대책을 세우고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자유당 중앙당은 거액의 선거자금을 모으기로 하고 목표액을 50억환으로 책정, 재무부와 국책은행인 한국은행과 산업은행을 비롯한 시중은행 및 굵직한 기업체들로부터 돈을 거둬들여 거의 70억환을 확보했다.

최인규는 경찰 인사이동을 단행해 일선 경찰서장을 연고지 중심으로 재배치했다. 전국 시·읍·면 단위로 ‘공무원 친목회’를 조직, 매주 1회씩 회합해 득표 공작을 점검토록 하고 동시에 득표 매수 자금을 살포했다.

최인규는 군수와 경찰서장들을 불러 모은 자리에 직접 나가 “어떤 비상 수단을 써서라도 이승만 박사와 이기붕 선생을 꼭 당선되도록 하라! 세계 역사상 대통령선거에 소송이 제기된 일이 있느냐? 법은 나중이고 우선 당선시켜 놓고 봐야 한다”고 독려했다.

그는 “콩밥을 먹어도 내가 먹고 징역을 가도 내가 간다. 국가 대업 수행을 위해 지시하는 것이니 군수 및 서장들은 시키는 대로만 하라”고 훈계한 것으로 후일 밝혀졌다.

11월부터 이듬해 2월 사이에 전국 각급 기관장에게 지령한 부정선거 방법은 ▲유령 유권자 조작 ▲4할 사전투표 ▲3인조 또는 5인조 공개투표 ▲완장 부대 활용 ▲야당 참관인 축출 등을 통한 자유당 후보의 85% 득표 등이었다.

이를 위해 자유당은 당 차원서 관권과 금권을 동원해 폭력배, 연예인, 청년단체, 노동조합 등 이용할 수 있는 모든 인원을 총동원해 부정선거에 투입하기로 했다.

한편 민주당 대통령후보 조병옥 박사는 신병 치료 차 1960년 1월29일 미국으로 갔는데 민주당은 조 박사의 형편을 고려해 조기 선거를 반대했다. 그러나 자유당은 농번기를 피한다는 구실로 선거일을 3월15일로 공고했다. 그런데 조 박사는 불행히도 2월15일 현지서 사망했다.


조 박사의 사망으로 대통령선거는 자유당의 이승만 후보의 당선 확정으로 기울었고, 선거의 초점은 부통령 선거로 옮아갔다. 자유당으로서는 대통령 유고 시 승계권을 가진 부통령으로 누가 당선되느냐에 따라 정권 유지 여부가 결정되는 사태를 좀 더 예민하게 체감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이승만 박사는 만 85세로 언제 유고가 생길지 알 수 없는 데다, 이기붕과 장면과의 대결서 이기붕의 승리를 기대하기도 어려웠다. 이 같은 상황서 자유당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부정선거 전략을 수정 없이 강행키로 했다.

이에 따라 이해할 수 없는 무리수가 잇달아 일어났다. 과거에도 제2대 총선 이래 선거 때마다 부정선거가 있어 왔지만 3·15 선거에서는 부정선거 계획과 실행의 정도가 예상의 범위를 훨씬 벗어난 광태의 수준이었다.

야당의 유세장에 선거권도 없는 고등학생이 참관하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등교시키는  등의 행태로 이들의 항의 시위가 대구, 대전 등지서 일어났다. 3월9일과 10일, 전라남도 여수와 광산에서는 민주당 간부가 테러로 사망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이에 긴급 소집된 민주당 확대간부회의는 ‘부정 및 불법 사태를 엄하게 다스려달라는 이 대통령에게 드리는 공개장’을 채택하는 한편, 전 국민에게 부정선거 거부 운동에 적극 참여할 것을 호소했다.

이것은 사실상의 선거 포기였는데 3·15 선거는 치르기도 전에 이미 끝난 셈이었다. 3·15 선거투표는 야당 측이 거의 방관한 상태서 이뤄졌으며, 민주당은 이날 오후 “3·15 선거는 선거가 아닌, 선거라는 이름으로 이뤄진 국민주권에 대한 강도 행위”라고 규정한 뒤 선거 무효를 선언했다.

개표가 시작되자 이승만, 이기붕의 득표가 95%∼99%까지 조작돼 나온 지역이 속출했고, 이런 터무니없는 집계에 놀란 자유당은 최인규에게 득표를 하향 조정하라고 지시했다. 그 결과 최종 집계는 총투표자 1000여만명 중 이승만 960여만명으로 88.7% 득표, 이기붕 830여만명으로 79%를 득표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투·개표 상의 공공연한 조작 행위에 대한 국민의 분노는 이날 오후, 마산서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로 표출됐다.

3·15 마산 시위와 김주열 학생의 주검

민중에 의한 혁명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민중들 사이에 분노의 공감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분노의 공감이 형성돼있다고 할지라도 촉발 요인이 없으면 행동으로 전환되지는 않는다.

인위적으로 촉발 요인을 조작하기도 하지만 자발적인 민중에 의한 집합행동이면 우연히 생긴 촉발 요인에 의해 봉기가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달리 말하면 운수(運數)라고 할 수도 있고 종교적 관점에선 하늘의 뜻이라고 할 수도 있다.

사실 4·19 혁명은 마산서 촉발됐다. (선거 당일)사전투표한 투표함이 넘어져 투표지가 쏟아지는 데 항의하는 유권자들과 정부 측 관리인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고, 선거 무효를 외치는 유권자들로부터 격렬한 데모가 발생했다.


후일 밝혀졌지만 최인규 내무 장관은 발포를 명령했다. 이날 발포로 9명이 사망 또는 실종됐다. 정부는 부정선거란 빨갱이들에 의한 거짓 선동이며 데모도 빨갱이들의 전략적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마산 시민들은 숨을 죽이고 움직이지 않았다. 자유당 정부는 뭔가 불안했던지 23일, 최인규를 내무 장관서 해임하고 그 자리에 홍진기 법무부 장관을 앉혔다.

운수라고 할까? 섭리라고 해야 할까? 3·15로부터 27일 후인 4월11일 마산 중앙부두 앞 바다에 시신 한 구가 떠올랐다. 3·15 당시 실종자로 처리됐던 마산상업고등학교 합격생 김주열군의 시체였다. 눈에 최루탄이 박히고 온몸에 돌을 매단 끔찍한 시신의 모습은 사진만 봐도 경찰이 쏜 최루탄을 눈에 맞아 절명한 사체를 누군가가 바다에 유기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이튿날, 16만명의 마산 시민 가운데 ‘걸을 수 있는’ 사람은 모두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보도된 사진과 기사를 접한 전국의 국민은 더 이상 가만히 두고만 볼 수 없다는 인식이 일순간에 전류처럼 전율했다.

가장 먼저 반응에 나선 이들은 서울 소재의 중·고 및 대학생들이었다. 이들은 자교와 타교를 가림 없이 사발통문해 “학생들은 더 이상 현실을 좌시할 수만은 없으며 정의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연합 시위를 갖겠다”며 날짜를 4월19일로 잡았다.

학생들은 미리 약속한 중앙청 앞 태평로에 집결해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경무대로 몰려갔다. 경무대는 일체의 반응 없이 학생 시위대를 향해 발포했다. 경무대 입구인 효자동 좁은 길은 삽시간에 수백, 수천으로 보이는 사상자가 뒹구는 지옥으로 변했다.


4·19로 사망한 인원은 186명, 부상자 1409명으로 집계됐다. 사망자는 초등학생 6명, 중학생 24명, 고등학생 39명, 대학생 24명, 일반인 87명 등 179명이었으며, 경무대 입구서 피격됐다. 서대문 소재의 이기붕 자택 인근서도 발포가 있었다.

이날 발포는 홍진기 신임 내무 장관이 명령한 것으로 후일 밝혀졌다.

집권 자유당이 정권 유지를 하기 위해 정부를 앞장세워 부정선거를 계획, 실행하다가 국민으로부터의 저항에 부딪혀 급기야 다수의 국민에게 총을 겨누고 살상까지 감행하면서 정부도 내리막길을 걸었다.

더 이상 정서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자유당의 권력 유지는 불가능해졌다. 같은 달 26일,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는 당연한 귀결이었으며 이렇게 4·19 사태는 마무리됐다.

김명삼 대기자
<hntn1188@naver.com>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당내 울려 퍼지던 비명(비 이재명)계 소리가 사라졌다. ‘내부 저격수’가 사라졌으니 이제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 중심으로 똘똘 뭉쳐 국회를 꽉 잡을 것이란 희망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다른 한쪽에서는 우려의 뜻을 내비친다. ‘이재명 독주’ 체제로 완성된 민주당이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22대 총선서 압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큰 폭으로 물갈이에 나섰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주요 자리에 친명(친 이재명)계 인사들을 대거 투입했다. 친명 위주의 인선을 단행해 원팀 민주당을 꾸리겠다는 셈이다. 공천 파동을 딛고 살아남은 친명 의원들이 일제히 한 보 전진했다. 피바람 잦아드니… 지난 21일 이 대표는 사무총장에 김윤덕 의원을 임명했다. 김 의원은 이번 총선서 전략공천관리위원회 위원을 지낸 인물로 지난 20대 대선 경선 당시 이재명 후보의 열린캠프서 활동한 바 있다. 조직사무부총장은 황명선 당선인,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전략기획위원장은 민형배 의원 등 친명계가 이름을 올렸다. 민주당의 정책을 이끌 민주연구원장에는 이 대표의 ‘정책 멘토’로 알려진 이한주 전 경기연구원장이 선임됐다. 이 원장은 이 대표의 ‘기본소득’을 설계한 인물로 민주당이 제시한 ‘25만원 지원금’에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법률위원장에는 이 대표의 대장동 변호를 맡은 박균택 당선인이 낙점됐다. 이 밖에도 당 대표 비서실장에는 천준호 의원,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교육연수원장에는 김정호 의원, 수석대변인에는 박성준 의원, 대변인에는 한민수·황정아 당선인이 자리했다. 이날 한민수 대변인은 인사 소개를 마친 후 당직 개편에 대해 “4·10 총선의 민심을 반영한 개혁 과제 추진에 있어서 동력을 형성한다는 의미가 있다”며 “신진 인사들에게 기회를 부여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인선은 이 대표가 국회에 입성한 후 진행된 두 번째 물갈이다. 2022년 8월 이 대표가 취임 직후 단행한 인선을 두고 ‘친명 일색’이라는 거친 비판이 터져 나왔다. 곧바로 한병도·권칠승·고민정 등 대표적인 친문(친 문재인)계 인사를 등용하면서 논란을 잠재웠지만 이번 총선서 친명이 주류를 이루면서 이들을 당에 대거 투입한 것으로 풀이된다. 22대 국회 문턱을 넘은 친문 세력은 약 스무명 안팎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때 민주당 180석을 지탱하던 핵심축이었지만 총선을 거치면서 세력이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민주당 공천을 두고 ‘비명횡사 친명횡재’라는 말이 나오자 고민정 최고위원은 위원직을 사퇴했다가 다시 복귀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처럼 공천 피바람이 당내를 휩쓸었지만 총선 이후 이 대표를 비판하던 목소리가 단숨에 잦아들었다. 총선 결과 이후 이 대표 체제는 더욱 견고해졌다. 이 대표를 거칠게 비판하며 당을 떠나거나 새로운 둥지를 꾸린 이들이 줄줄이 낙선하면서다. ‘친명’ 타이틀 달고 꽃밭 안착 둥지 떠난 탈당파 줄줄이 낙선 새로운미래 이낙연 공동대표는 이 대표와 대립각을 세운 뒤 탈당해 새로운 당을 꾸렸다. 이번 총선서 광주 광산을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민주당 민형배 당선인에게 62.25%p로 크게 밀려 패배했다. 이 공동대표가 야심 차게 창당한 새로운미래는 지역구 한 석에 그치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개혁신당과 손을 잡은 이원욱 공동선대위원장 역시 지역구서 낙선했다. 탈당 후 국민의힘으로 이적한 ‘5선 중진’ 이상민 의원과 김영주 의원(국회 부의장)도 고배를 마셨다. 홍영표·설훈 등 다른 비명계 의원 역시 줄줄이 낙선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당을 떠나면 춥다는 걸 몸소 보여줬다”며 “소위 비명계로 분류됐던 이들이 모두 당을 떠났으니 당내 파열음이 나오지 않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대부분 여의도를 떠나게 됐으니 당분간 ‘내부 저격수’로 불리는 이들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친명 체제에 화룡점정을 찍을 원내대표 선출 결과에도 눈길이 쏠린다. 내달 3일, 선출을 앞둔 차기 원내대표 선거가 사실상 친명인 박찬대 의원의 독무대인 만큼 ‘친명일색 민주당’이 완성될 것이란 해석이 우세하다. 박 의원은 지난 21일, 일찌감치 출마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명 대표와 강력한 투톱 체제로 개혁 국회, 민생 국회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한 박 의원이 신호탄을 쏘아 올리면서 자천타천으로 물망에 오른 의원들은 속속 불출마를 선언했다. 서영교 최고위원은 지난 22일 원내대표 출마 선언을 위한 기자회견을 예고했지만 돌연 취소했다. 당 대표 ‘원픽’ 이와 관련해 서 최고위원은 “(박찬대 의원 포함)2명 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하면 제가 원내대표에 당선돼도 최고위원 두 자리가 비게 된다”며 “총선에 압도적으로 이긴 이 대표 체제에 문제가 된다는 게 처음부터 고민이었는데 사전에 조율하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4선 김민석 의원도 “당원 주권의 화두에 집중해 보려고 한다”며 불출마를 시사했다. 인재위원회 간사였던 3선 김성환 의원과 원내수석부대표인 박주민 의원 역시 불출마 입장을 표했다. 민형배·진성준 의원도 하마평에 올랐지만 각각 전략기획위원장, 정책위의장에 임명되면서 자연스레 출마가 불발됐다. 이로써 원내대표 출마 후보군은 박 의원 한 명으로 압축됐다. 친명계 핵심인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초 10명 안팎의 후보군이 난립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물밑서 이 대표가 교통정리에 나섰다는 해석이다. 당 대표의 노골적인 선거개입이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당을 좌우하는 명심에 대항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친문 인사가 끼어들 틈도 없이 빠르게 상황이 흘러갔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주당 원내대표 겸 의장단 선출 선거관리위원회 간사인 황희 의원은 지난 24일, 선거관리위원회 1차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당규상 민주당서 원내대표 선거는 결선투표가 원칙으로 기본적으로 과반 득표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후보자가 1인일 경우 찬반 투표를 하기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원내대표 다음으로 주목받는 자리는 바로 차기 국회의장이다. 당내 우직한 이력을 가진 후보들이 기싸움이 이어가면서 명심이 누군의 손을 들어줄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민주당에서는 6선에 성공한 조정식·추미애 당선인과 5선인 정성호·우원식 의원이 22대 전반기 국회의장 출마를 밝혔다. 이들은 일제히 “기계적 중립은 없다”는 입장을 강조하며 강경 성향 의원의 표심을 얻기 위한 선명성 경쟁에 나섰다. 완벽한 시나리오 먼저 정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기계적 중립만 지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민주당 출신으로서 다음 선거의 승리를 위해 보이지 않게(그 토대를) 깔아줘야 된다”고 말했다. 여야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 다수결의 원리에 따라서 다수당의 주장대로 갈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정 의원은 이 대표의 사법연수원 18기 동기로 알려졌다. 40년 가까이 알고 지낸 만큼 ‘원조 친명’이자 ‘친명계 좌장’으로 통한다. 이 대표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7인회’ 핵심 멤버기도 하다. 친명 후발주자인 추 당선인도 국회의장 도전에 대해 “주저하지 않겠다”며 “국회의장도 물론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그렇다고 중립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지 않고 유보된 언론개혁, 검찰개혁을 해내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히면서 강성 지지자의 호응을 유도했다. 민주당 조 전 사무총장도 “여야 합의가 될 때까지 무한정 기다릴 수 없다”며 “국회의장이 되면 긴급 현안에 대해서는 의장 직권으로 본회의를 열어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과반석을 차지한 만큼 당내 경쟁도 치열해진 양상을 띠고 있다. 국회의장 경선에 당원투표를 반영하자는 주장까지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강성 지지층의 힘이 크게 작용하는 만큼 후보들은 당심을 겨냥하기 위해 명심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당의 주요 인사들이 ‘이재명과의 호흡’을 강조하고 나선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은 당을 좌지우지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를 앞세운 메시지가 앞다퉈 나오면서 입법 독주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도 커질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너도나도 ‘명심팔이’를 하며 이 대표에 대한 충성심 경쟁을 하니 국회의장은커녕, 기본적인 공직자의 자질마저 의심스러울 정도”라며 “협치라는 말을 머릿속에서 아예 지워버려야 한다는 망언을 빙자한 민주당의 속내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상임위를 독식하겠다는 위헌적 발상도 서서히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솔솔 올라오는 ‘대표 연임설’ 대세는 ‘명심’…친문계 주목 총선 승리 이후 일부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 “협치는 없다”는 기류가 흐르자 이를 꼬집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당내 주요직이 속속들이 친명으로 배치되는 가운데 친문에게 더 이상 핵심적인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여기에 이 대표의 연임설까지 불거지면서 ‘이재명호’ 민주당은 한층 견고해질 전망이다. 이 대표 임기는 오는 8월28일까지다. 이제까지 민주당서 당 대표가 연임한 역사는 없지만 당헌·당규상 이를 금지한 조항도 없다. 이 대표가 마음만 먹는다면 몇 번이고 당 대표를 연임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 대표는 20대 대선 패배 직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와 전당대회에 연이어 출마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선례를 남기기도 했다. 총선 승리 직후부터 친명 의원 중심으로 “민주당에 압승을 가져다준 이 대표가 한번 더 당 대표를 맡아야 한다”는 여론이 일면서 친·비명 간의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정성호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국회가 본연의 역할을 하고 민주당이 윤석열정권의 무능과 폭주하는 이 상황을 막아야 된다는 측면서 당 대표가 강한 리더십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며 “그런 면에서 연임할 필요성도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총선이 끝나고 이 대표를 만나 “강한 당 대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고도 덧붙였다. 해남·진도·완도에 승기를 꽂은 박지원 당선인 역시 “만약 이 대표가 계속 대표를 한다고 하면 당연히 해야 한다. 연임해야 맞다”며 “이번 총선을 통해 국민이 이 대표를 신임했다”고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줬다. 반면 친문계 핵심으로 꼽히는 윤건영 의원은 이 대표 연임에 대해 “전당대회가 넉 달이나 남은 상황서 민주당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이슈”라며 “지금은 총선서 나타난 민의를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당의 리더십에 관한 것은 시간을 두고 차분하게 풀어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의도 정가에 밝은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친명 체제를 두고 외부서 걱정하는 모양이지만 정작 당내에서는 후폭풍이 불 수 없는 상황”이라며 “비명 의원끼리 바람을 일으키려고 해도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폭풍 전야 잔잔한 미풍 일제히 이 대표의 의중만 바라보는 민주당은 친명과 찐명 그리고 ‘신명(새로운 친명)’만 존재하게 된다. 이런 상황서 “당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되겠냐”는 비판이 물밑으로 조용히 들려온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애초에 이 대표의 목적은 자신만의 민주당을 만드는 거였고 이번 총선을 통해 결국 이뤄냈다”며 “친명 민주당이라는 날카로운 검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국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이 대표는 임기를 마치는 날까지 자신의 영향력 밑에 당을 두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속 타는 조국혁신당 교섭단체 구성에 난항을 겪는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앞서 조국당 조국 대표는 여러 차례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범야권 연석회의’를 제안했지만 이 대표는 만찬 회동으로 갈무리하는 데 그쳤다. 민주당 내에서는 “아직 그럴 시기가 아니다”라며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이 대표와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조 대표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캐스팅보트 역할을 쥔 것 또한 조국당인 만큼 22대 국회 개원 이후 민주당과 협상 테이블에 앉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