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군부 장악 및 전개와 평가…김주애, 4대 세습 가능?

집권 10년 차를 넘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3가지 방식을 통해 군부를 장악하고 세습 체제를 완성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첫째는 당 중심의 국정운영 구축이다. 2008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 후계구도 확립을 위한 군부의 영향력이 조정됐다.

조직개편 통해 군부 효과적 통제

우선 2010년 당규약을 개정해 국방위원회보다 당 중앙군사위원회가 국방사업 전반을 당적으로 지도한다고 하면서 최고 군사기관으로 격상시켰다. 그리고 그해 9월, 제3차 당 대표자회에서 김정은이 당중앙위원회 위원과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선출됐다.

“당 대회와 당 대회 사이에 군사 분야서 나서는 모든 사업을 당적으로 조직 지도한다”면서 군사 문제들을 국방위원회가 아닌 당 중앙군사위원회가 관할토록 했다.

그 후 이듬해 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하자 김정은은 최고사령관으로 추대됐고 2012년 4월, 제4차 당 대표자회를 개최해 당 제1비서로 등극했다.

본격적으로 정권을 잡은 김정은 제1비서는 국방위원회를 통해 운영되던 국정운영 방식을 당 중심으로 개편할 수 있었다. 2016년 6월, 7차 당 대회와 사회주의 헌법 개정을 통해 국방위원회를 폐지하고 국무위원회를 신설할 때까지 김정은 위원장은 본격적으로 군부를 장악했다.


당시 개정된 사회주의 헌법에 따르면 국무위원회는 국가 주권의 행정적 집행기관이며 국무위원회의 역할은 국정 계획과 정부의 일반정책, 대내외정책을 심의하도록 했다.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으로, 국방위원회를 국무위원회로 변경시켰다.

과거 국방위원회와 국무위원회를 비교하면 인적 구성의 변화가 특징적이다. 초기 국무위원회의 부위원장에 군 출신 황병서뿐 아니라 당료인 최룡해, 내각 총리인 박봉주를 임명한 것은 과거 국방위원회가 오로지 군부 출신으로 이뤄진 것에 비하면 당·정·군의 균형을 맞춘 것이다.

임무 면에서도 과거 국방위원회는 선군 혁명노선을 관철하기 위한 국가 주요 시책을 입안하는 것으로 돼있으나 국무위원회는 국방 건설사업을 비롯한 국가의 중요정책을 토의 결정하겠다면서 정책 결정의 범위를 확대했다.

또 과거 국방위원회가 비상시기, 국가관리의 기구적 성격을 가졌다면 국무위원회는 평시적, 상설적 최고 의사결정 기구적 성격을 가졌다. 이런 조직개편을 통해 김정은 위원장은 군부를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었고 동시에 당의 기능을 정상화했다.

둘째는 선군정치를 거치면서 비대해진 군부를 숙청과 잦은 인사 교체를 통해 길들이기를 시도했다. 사실 숙청은 김일성, 김정일 집권 시대에도 유효했던 공산주의 권력 장악의 대표적 방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일성 주석은 1956년 8월 종파 사건이 발생하자 당시 연안파와 소련파의 숙청을 단행했고 이어 이들과 연결고리가 있는 군부 내 소련파, 연안파 군인들을 쿠데타 음모 등의 명목으로 역시 숙청했다. 군부 숙청을 계기로 1961년 4차 당 대회서 당규약에 군대 내의당 조직이 처음으로 명시됐다.

숙청 통해 처형된 인사 100여명


김정일 시대에는 선군 노선의 의미에 맞는 군부에 대한 배려로 집단적이거나 대대적인 군부 숙청은 많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군벌 관료주의를 통해 영향력을 증대시키고 세력을 결집하려는 군부 개개인에 대한 숙청을 단행함으로써 권한 남용의 위험성을 주지시키는 방식으로 군부의 충성을 유도했다.

이 과정서 김정일 위원장은 안정적인 후계체제 확립을 위해 오히려 군부를 통제하는 변화를 추구했다. 다시 말해서 선군정치를 표방한 김정일이 김정은에게 권력을 승계하는 데 있어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는 군부에 대해 오히려 견제 장치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김정일 위원장은 군부를 숙청하는 방식이 아니라 후계자에게 충성할 것으로 판단되는 로열패밀리, 혹은 당 정 군의 최측근들을 활용해 김정은으로의 권력승계를 뒷받침한 것이다.

2010년에는 군과 전혀 관계가 없는 김정은의 고모 김경희와 남편 장성택이 인민군 대장으로 임명되는가 하면, 김일성의 빨치산 동료의 아들이자 당 관료 출신인 최룡해를 총정치국장으로 임명했다.

군수 담당 비서였던 박도춘이나 당 기계공업부장 출신인 주규창도 그 무렵 대장과 상장 지위를 받는 등 민간 출신의 군 간부화 작업도 진행됐다. 이 같은 당과 민간에 의한 군부 통제로의 전환은 김정은 위원장이 집권 후 군부를 장악하는 데 유리한 조건으로 작용했다.

따라서 김정은 위원장은 집권 이후 군부의 당적 통제를 기반으로 당시 군부 실세들을 하나둘씩 제거해 나갈 수 있었다.

그 대표적인 조치가 잘 알려진 운구 4인방의 교체다. 2012년 말까지 김정은 위원장은 당시 군부 실세인 리영호 총참모장을 모든 직위서 해제하고 영결식 당시 인민무력부장이었던 김영춘을 비롯, 김정각 총정치국 1부 국장, 우동측 국가안전보위부 1부 부장을 한직으로 밀어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도자로서의 위상 정립을 위해 군 파벌 간 외화벌이 사업의 독식 문제를 제기하면서 군 실세에 대한 본보기식 숙청을 단행했는데 리영호는 반혁명 분자로 몰아, 장성택은 국가 전복 음모행위라는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 재판 판결 직후 무자비한 처형이라는 방식을 통해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 방식으로 숙청을 단행했다.

2012년부터 이런 숙청을 통해 처형된 인사들은 100여명이 되는 것으로 판단된다. 또 숙청과 함께 김정은은 군 고위 관료들에 대한 강등과 복권을 반복하는 이른바 ‘견장 정치’도 펼쳤다. 군부 장악이 절정을 이뤘던 정권 출범 이후 2~3년 동안을 보면 총정치국장을 제외하고 인민무력부장, 총참모장 등 군부의 핵심 요직의 인사를 최소 4회에서 8회에 걸쳐 교체했다.

그나마 북한 군부의 당적 통제를 담당하는 총정치국장은 최룡해서 황병서로 2회 교체됐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 역시도 좀 더 기간을 확대해 보면 김정은 집권 이후 2023년까지 총정치국장의 교체 횟수는 11번에 달했고 평균 재임 기간은 12개월이었다.

승진, 갈등, 해임, 재기용을 반복한 사례 중 대표적인 것이 현 총참모장 이영길의 사례다.

군단장이었던 그가 2012년 김정은 집권 이후 진급을 거듭하면서 2013년 총참모장이 임명됐으나 2016년 이후 한동안 공식 석상에 나타나지 않아 처형설이 나돌았다. 그러나 2018년 총참모장으로 복귀했고 이듬해 또 총참모장서 해임됐다.


그러다 2020년 사회 안전상, 2021년 국방상으로 임명됐고 지난해 8월 총참모장으로 재임명됐다. 이 같은 회전문식 반복적 인사패턴을 통해 김정은 위원장은 군부를 장악하고 충성 경쟁을 유인해 온 것으로 판단된다.

셋째, 정책적 측면서 병진 노선의 추진과 핵·미사일 개발에 따른 국방력 강화 기조는 김정은 위원장의 대표적인 군권 장악 사례와 연결될 수 있다. 과거 김일성 시대 병진 노선과 김정일 시대의 선군 노선은 국방 강화를 위해 경제 분야의 손해를 감수했고 그 결과 경제와 국방 분야의 불균형은 북한 경제의 장기침체를 가져왔다.

반면 김정은 위원장의 집권 이후 제시한 병진 노선은 “국방비를 추가로 늘리지 않고도 전쟁억제력과 방위력의 효과를 결정적으로 높임으로써 경제건설과 인민 생활 향상에 힘을 집중할 수 있게 한다”는 경제발전 전략에 중점을 둔 측면이 있었다.

핵·미사일 개발 지속해 군 통제

군부의 통제 역시도 핵 무력 발전이 우선돼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는 점에서 과거처럼 국방이 경제에 우선될 소지는 있었다.

그러나 병진 노선으로 국방에 대한 투입이 제한될 경우, 군부의 반발 등이 우려되기 때문에 김정은 위원장은 2015년부터 4대 전략 노선을 강조하면서 정치사상, “도덕 강군과, 전법 강군과 다 병종 강군과” 등을 제시하고 고위급 인사 교체와 군부대 현지 지도 등을 통해 군부의 동요를 통제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후 본격적으로 핵을 개발하기 시작한 2016년부터는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개발을 통해 자연스럽게 군부 위상이 다시 강화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김정은 위원장이 군부를 통제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보다 북한 군부 내부의 성격 변화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 김일성, 김정일 시대 북한 고위 군부 관료들은 빨치산 혁명 등 출신 성분의 연계성이 높았다. 그러나 핵미사일을 본격적으로 개발하는 과정서 김정은 위원장은 전문 직업군으로서의 군부의 성격을 변화시켰다.

김정은 위원장은 북한 군부 내 테크노크라트를 중용함으로써 자연스럽게 군부 내의 정치성의 발호를 배제하고 국방력 강화에만 집중케 할 수 있었다. 또 군의 경제활동 투입을 장려하면서도 책임성을 강조함으로써 과거처럼 군부가 무질서하게 이권에 개입하는 것을 철저히 통제해 왔다.

결론적으로 김정은 위원장은 집권 초기 단계적인 숙청과 보직 변경을 통해 군부의 정치성을 배제하고 정권에 충성하는 조직으로 발전될 수가 있도록 군부를 장악했다. 핵 개발이 본격화된 이후에는 당과 국가를 보위하고 정권의 핵 정책을 군사적으로 뒷받침하는 선 핵 정치의 상징으로 역할을 부여함으로써 군을 통제해 나갈 수 있었다.

앞으로 북한이 핵·미사일 개발을 지속하는 한, 국권 수호와 인민 안전 보호라는 역사적 사명의 부여, 핵 강국의 군대라는 자부심을 사상적으로 심어줌으로써 군을 효과적으로 통제해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김명삼 대기자
<hntn1188@naver.com>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