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맘카페 댓글로 폐업 위기 유치원 사연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09.04 11:47:59
  • 호수 1443호
  • 댓글 2개

사이비 교주가 운영하는 유치원?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지난 7월30일, SBS는 서울 강남의 유명 영어유치원(이하 영어유치원) 대표 A씨가 특정 학부모 3명이 볼 수 있도록 카카오톡 ‘멀티프로필’을 등록했다고 보도했다. 저승사자 남성의 얼굴, ‘너희 애 많이 컸더라. 학교 마치고 어디 가는 길일까?’ 등의 사진과 글귀다. A씨는 이 일로 영어유치원 대표직을 사직했다. A씨는 왜 이런 선택을 한 것일까?

지난달 18일 서울 서초구의 한 카페. <일요시사>는 부적절한 멀티프로필을 작성해 강남 영어유치원 대표직을 사직한 A씨를 만났다. 딱 봐도 기력이 없는 얼굴이었다. 

A씨는 <일요시사>에 “어린 아이들을 대상으로 학원을 운영했던 사람이 부적절한 카카오톡 멀티프로필을 작성한 것에 부끄럽고 괴롭다”며 “멀티프로필을 작성할 때 나는 정신과 약을 복용해 제정신이 아니었다. 멀티프로필은 나의 절규였다”고 말했다.

멀티프로필
뭐길래…

이어 “남편이 변호사인 학부모의 갑질과 맘카페의 마녀사냥으로 운영하던 영어유치원이 수년간 질타를 받았다. 나는 맘카페서 말도 안 되는 모욕과 공격을 겪어 공황장애, 대인공포증, 불면증, 자살 충동을 겪고 있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A씨의 진단서에는 ‘2021년 1월부터 지속된 특정인들로 인한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우울감, 불안감, 자살 사고, 분노 등의 우울 증상을 보이고 있으며, 이에 대한 정신의학적 치료를 하고 있다. 꾸준한 치료가 필요하나, 스트레스 요인이 지속되는 한 치료 효과에 있어 한계가 있다’고 기록돼있다.


극단적 선택 후 찾았던 응급실 기록에는 ‘상기 환자는 2년 전 사업과 관련해 인터넷서 마녀사냥을 당한 이후 현재 소송 중이며 그 이후 시작된 우울, 불안, 자살 사고로 약제 처방받아왔다’며 ‘증상의 호전과 악화가 반복되고 있다. 2개월 전 우울, 자살사고가 더욱 악화됐으며 약제를 복용해도 증상 호전이 없었고 내원 이틀 전 주말, 죽고 싶은 마음에 차도로 뛰어드는 일이 있었다. 우울, 자살사고가 지속돼 본원 응급실 내원, 본과 진료를 의뢰했다’고 나와 있다.

해당 보도 이후 유치원은 지역 맘카페에 원색적인 비난을 받았다. 유치원에 아이를 보내는 학부모를 향해 ▲인간 쓰레기가 운영하는 학원에 아이들을 보내는 사람들이 신기하다 ▲아이들이 그 원의 가방을 메고 다니는 것도 싫다 ▲해당 원은 사이비 교주가 운영한다 등의 글이 줄을 이었다.

물론 일이 이렇게 될 때까지 A씨와 영어유치원이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소송이 여러 번 진행됐고, 법원은 맘카페 게시물에 관해 “각 게시물을 삭제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이미 퍼진 소문은 사라질 리 만무했다.

영어유치원은 원생이 가득 차고 대기가 60번까지 있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지만, 이 사건을 겪고 난 이후에는 원생이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코로나19 발생 이후인 2020년 제1분기의 매출이 기존 매출에 비해 43.9%가량 증가했으나, 게시물이 올라온 뒤인 2021년 제1분기에는 약 32.2% 하락했다. 

당장의 수익도 문제지만, 나빠진 이미지는 돌이킬 수 없었다. 게다가 유치원서 사명감을 갖고 수업했던 강사들이 아동 폭력 신고를 당하기도 했다.

이 일은 강남·서초 지역 맘카페와 영어유치원 정보 카페서 시작됐다. 해당 영어유치원은 수업하는 동안 CCTV를 학부모에게 휴대전화로 보내주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었다. 

다친 원생 ‘보험’ 문제로 시작
학부모 “내 남편은 변호사다”


그러던 어느 날 영어유치원의 한 학부모가 수업 중 자신의 아이(5세)가 발표하고 싶어서 손을 들어도 담임이 다른 아이를 먼저 시킨다며 정서 학대를 한다고 지적했다. 담임 교사는 학부모에게 정서 학대를 한 적 없다고 여러 번 반박하자, 학부모는 “젊은 교사가 이런 일을 혼자 하진 않았을 거다. 학원 운영자가 담임 교사에게 아이를 정서적 학대하라고 시킨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내 남편이 변호사다. 맘카페에 지금 있었던 일을 모두 알리겠다”고 협박하며 ‘영어유치원 원장이 촌지를 준 아이에게는 잘하고 촌지를 안 준 아이에게는 잘해주지 않는다’ 등의 이야기를 했다.

결국 영어유치원 대표와 담임교사가 유치원에 학부모를 모아놓고 간담회를 진행했다. 원장은 “촌지를 받거나 차별을 지시한 적 없다. 아이를 정서 학대하라고 한 적도 없다”며 CCTV까지 오픈했다. 

이날 자리에는 학부모와 남편인 변호사도 있었고, 학부모들은 영어유치원에 문제가 없음을 확인했다. 이후 해당 학부모의 자녀는 유치원을 퇴소했다.

여기까지가 A씨가 밝힌 사건의 시작이다. 그리고 2021년부터 영어유치원 정보 카페에는 알 수 없는 댓글과 게시물이 올라왔다. 내용은 영어유치원을 다닐 때 아이가 수업 중에 얼굴을 다쳤고, 아이를 피부과에 데려갔지만, 얼굴에 흉터가 남았는데 보험처리를 해주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해당 게시물에는 “문제는 영어유치원은 수업시간에 일어난 일(사고)임에도 보험처리를 해주지 않고 안부만 물었다. 아이 얼굴에 평생 남을 흉터가 생겼는데 내가 알아서 치료해야 한다니, 나는 해당 영어유치원의 태도가 책임감 있다고 느껴지지 않았다”며 “(유치원이)내게 대처가 미흡했다고 사과를 했으면 글을 내렸을 텐데, 법적 조치를 하겠다고 내 댓글을 신고하고 삭제했다”고 적혀있다.

게시물에는 특정 유치원을 지목하진 않았지만, 댓글은 폭발적이었다. 영어유치원을 알아보던 학부모들은 “피해야 하는 영어유치원인 것 같다. 어딘지 알 수 있냐”는 질문이 쇄도했다. 해당 게시물에는 “쪽지 보내서 알려준다. 나도 진작에 알고 피했으면 좋았을 텐데 너무 속상하다”는 답변이 달렸다.

영어유치원은 메리츠화재의 에듀파트너 종합보험에 가입돼있었고, A씨는 DB손해보험사의 학원배상책임보험에 가입돼있었다. 상대가 누군지 알 수 없었던 A씨는 카페 채팅을 통해 “상해보험에 가입돼있다. 만약 보험처리가 되지 않은 경우 3년 내에는 언제든지 처리해주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카페에는 계속 글이 올라왔고, 영어유치원은 해당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는 공지를 올렸다.

갑질과 
마녀사냥

해당 글 작성자는 “영어유치원이 공지사항으로 내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라고 말했는데, 아이는 언제든지 다칠 수 있고, 나는 유치원에 어떻게 다치게 할 수 있냐고 따져 물은 적 없다. 그저 대처에 관해 이야기 했을 뿐”이라며 “나는 유치원을 비난하고자 올린 글이 아니다. 나도 나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올리기 조심스럽지만, 불특정 다수의 학부모에게 전달된 나에 대한 잘못된 이야기를 바로잡고 싶다”고 밝혔다.

이 글에는 “해당 원이 어디냐” “정보 꼭 알려달라” “듣도 보도 못한 대처” “변호사 대동하고 언론에 대응하라” 등의 댓글이 달렸다.


반면 당시 담임교사였던 B씨는 영어유치원이 다친 영‧유아의 병원비와 치료비에 관해 보험처리를 해주지 않았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B씨는 “음악 수업시간에 핸드벨을 손에 쥐고 흔들다가 아이가 흔든 핸드벨이 왼쪽 눈두덩이에 부딪혔다. 눈썹 아래서 피가 났고 바로 원장과 교수부장에게 상황을 전달했다. 원장이 학부모에게 연락했고 근처 피부과서 진료받았는데 대학병원에 가서 꿰매야 한다고 드레싱만 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후 상황에 관해서는 “치료가 끝나고 학부모에게 전화했더니 아이를 그냥 하원 셔틀에 태워 보내라고 했다”며 “어느 기관이든 크고 작은 사고 발생 시 모든 치료가 끝난 후 보험처리를 하는 것이 원칙이다. 영어유치원서 병원비와 치료비에 보험처리를 해주지 않았다는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아이는 2019년 8월26일부터 7개월 동안 원장, 당시 교수부장, 담임교사가 사랑으로 돌봤다. 그런데 아이의 학부모가 맘카페에 사실과 다른 글을 올려 모두에게 힘든 상황을 초래했다”고 증언했다. 

게시물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영어유치원이 ▲수업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거나 ▲식사에 중국산 고춧가루를 사용했고 ▲영어유치원 게시글이 공익목적이라는 것에 대한 탄원서를 모았으며 ▲아동학대를 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자신의 아이가 아동학대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학부모는 “아이가 3세 때 영어유치원 선생님이 말을 안 듣는다는 이유로 도깨비 전화(교육용 앱으로 아이들이 무서워하는 캐릭터가 전화를 해서 유아의 나쁜 버릇을 고쳐줌)를 사용했다”며 “이건 공포심 유발을 하는 협박이다. 또 밥을 잘 먹는 아이에게만 비타민을 줬다. 이런 일을 겪은 애가 최소 3명이나 있다”고 분개했다.


신고자는 맘카페 회원으로, 영어유치원이 아동학대를 했다는 글을 보고 신고했다. 자세한 내용은 ‘영어유치원 내에서 피해 아동의 머리를 때리거나, 도깨비 전화를 이용해 아동을 놀라게 하는 방법으로 폭행을 저질렀다’는 것이었다.

얼굴의 흉터
그날 진실은?

경찰이 피해 아동의 학부모를 찾아갔지만, 학부모는 맘카페에 올린 글과는 전혀 다른 말을 했다.

해당 학부모는 “도깨비 전화가 학대인지 모르겠다. 이미 학원을 그만뒀다. 그때 일이 언제 있었는지도 사실 잘 모른다. 경찰에 나가서 진술하고 싶지 않다. 아들이 3세인데 진술하는 것도 쉽지 않다”며 “당시 일을 기억하면서 진술하라고 하면 아들한테 나쁜 영향을 끼칠 것 같아 더 이상 사건 진행을 원하지 않는다. 확실하지도 않은데 굳이 가야 하나? 그냥 알아서 종결해라”고 진술했다.

피해 아동의 진술 및 사건 진행을 거부한 것이다.

그러면서 “내가 어제 너무 감정이 앞서나가고 흥분해서 오해의 소지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말을 했는데 손찌검은 확실치 않다”고 피해 사실도 불명확하게 해, 영어유치원이 아동학대를 한 범죄 혐의를 인정할 수 없었다.

영어유치원은 맘카페에 글을 제일 많이 올리는 한 회원에게 명예훼손행위금지 소송을 걸었다. 해당 회원이 맘카페에 올린 글은 각 4600회, 7100회, 1만4000회, 6300회, 6800회, 7900회, 9400회로 조회수가 총 5만6000회를 상회했다. 

각 글에 달린 댓글은 각 43건, 200건, 623건, 151건, 179건, 222건, 339건으로 댓글 수만 총 1756건에 이르는 등 파급력이 컸다. 

법원은 게시물을 올린 학부모에게 “맘카페에 영어유치원이 특정되거나 유추될 수 있는 내용의 게시물 및 댓글을 작성하거나 쪽지, 카페 채팅을 이용하는 등의 방법을 이용해 채권자들의 명예를 훼손하면 안 된다”는 판결과 함께 벌금을 내렸다.

<일요시사>는 해당 소송을 진행한 변호사에게 연락을 취했다. 영어유치원은 이 변호사가 게시물을 올린 학부모의 남편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일요시사>는 ▲학부모가 맘카페에 악플을 남긴 이유 ▲영어유치원 대표가 악플로 정신적 고통을 겪는 것을 아는지 여부 ▲변호사가 영어유치원 관련 악플을 남긴 학부모의 남편이 맞는지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등을 질문했다.

댓글로 원색적인 비난 쇄도
원생 줄더니 결국 폐업 위기

변호사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는 영어유치원이 잘 알고 해당 지역 학부모들이 잘 알고 있다. 수년 동안 학원을 운영하면서 자신에 관한 비판이 있으면, 법적인 조치를 하겠다며 학부모들의 입을 막아왔던 사실이 드러났다”며 “이번에도 영어유치원이 학부모에게 학원의 잘못을 인정하기보다 법적 조치를 운운해 협박했기 때문에 학부모가 억울하다는 입장을 표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검찰 조사 결과 영어유치원에 관한 학부모의 문제 제기는 근거가 있고 공익적인 목적이 있다고 판단됐다. 그리고 이 학부모 외에도 영어유치원에는 여러 학부모, 직원들과도 불화가 있었던 것이 드러났다”며 “영어유치원에 문제를 제기했다가 고소당한 사람은 여러명이다. 현재 퇴사한 원어민 강사 측이 학원 운영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 이에 대해서도 학원이 고소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해당 변호사는 불기소 결정서 등 세 개의 자료를 보내왔다. 학부모가 영어유치원을 대상으로 온라인에 허위 사실을 적시해 명예훼손을 한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학부모가 영어유치원 전 대표 A씨에게 접근 금지 가처분신청서다.

법원은 A씨에게 “A씨는 전화, 문자, 카카오톡 메시지, 이메일, 카카오톡 멀티프로필 상태 메시지를 통한 메시지 전달 등의 방법으로 학부모의 평온한 생활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판시했다. 

해당 사안은 A씨가 멀티프로필을 만든 것으로 시작됐으며, 법원은 A씨가 멀티프로필을 이용해 학부모의 생활을 방해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세 번째는 현재 소송 중인 자료로 여기엔 “학부모가 작성한 글이 허위 사실이라고 보기 어렵고, 허위 인식을 갖고 작성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작성 행위가 공공의 이익에 부합해 영어유치원의 명예를 훼손한다는 범의가 존재한다고 보기도 어렵다”며 “불법행위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데 영어유치원이 터무니없는 억지 주장을 계속해 학부모 가족에게 정신적 고통을 준다”는 것이었다.

위에서 말한 방법은 ▲고소 ▲주거침입 ▲학부모 협박 ▲멀티프로필 생성 ▲아동학대다. 

정신과 치료
누가 거짓말?

A씨와 영어유치원의 입장은 변하지 않았다. A씨는 “나는 멀티프로필 일로 대표직서도 물러났고, 나 때문에 영어유치원 직원들이 고통받는 것이 너무 힘들다. 학부모를 고소한 것은 명예훼손 때문이며, 무작위로 고소하지도 않았다”며 ”주거침입과 학부모 협박도 한 적 없고 변호사가 말하는 원어민 강사 문제는 해당 사건과 관계가 없다”고 반박했다.

이어 “멀티프로필 기사가 SBS에 뜨자 학부모는 맘카페에 또 글을 올렸다. 나는 지금 영어유치원 대표도 아니다. 그런데 맘카페에는 원장의 프로필이라고 해서 전 대표가 아닌 현재 원장과 선생님이 욕을 먹고 있다. 사람들은 학부모 남편이 변호사라고 그 사람 말을 다 믿는다. 변호사다. 이미 학부모 게시글 가처분 결과에 벌금이 아니라 상대편이 변호사 비용을 부담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고 답답한 심정을 전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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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당내 울려 퍼지던 비명(비 이재명)계 소리가 사라졌다. ‘내부 저격수’가 사라졌으니 이제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 중심으로 똘똘 뭉쳐 국회를 꽉 잡을 것이란 희망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다른 한쪽에서는 우려의 뜻을 내비친다. ‘이재명 독주’ 체제로 완성된 민주당이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22대 총선서 압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큰 폭으로 물갈이에 나섰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주요 자리에 친명(친 이재명)계 인사들을 대거 투입했다. 친명 위주의 인선을 단행해 원팀 민주당을 꾸리겠다는 셈이다. 공천 파동을 딛고 살아남은 친명 의원들이 일제히 한 보 전진했다. 피바람 잦아드니… 지난 21일 이 대표는 사무총장에 김윤덕 의원을 임명했다. 김 의원은 이번 총선서 전략공천관리위원회 위원을 지낸 인물로 지난 20대 대선 경선 당시 이재명 후보의 열린캠프서 활동한 바 있다. 조직사무부총장은 황명선 당선인,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전략기획위원장은 민형배 의원 등 친명계가 이름을 올렸다. 민주당의 정책을 이끌 민주연구원장에는 이 대표의 ‘정책 멘토’로 알려진 이한주 전 경기연구원장이 선임됐다. 이 원장은 이 대표의 ‘기본소득’을 설계한 인물로 민주당이 제시한 ‘25만원 지원금’에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법률위원장에는 이 대표의 대장동 변호를 맡은 박균택 당선인이 낙점됐다. 이 밖에도 당 대표 비서실장에는 천준호 의원,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교육연수원장에는 김정호 의원, 수석대변인에는 박성준 의원, 대변인에는 한민수·황정아 당선인이 자리했다. 이날 한민수 대변인은 인사 소개를 마친 후 당직 개편에 대해 “4·10 총선의 민심을 반영한 개혁 과제 추진에 있어서 동력을 형성한다는 의미가 있다”며 “신진 인사들에게 기회를 부여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인선은 이 대표가 국회에 입성한 후 진행된 두 번째 물갈이다. 2022년 8월 이 대표가 취임 직후 단행한 인선을 두고 ‘친명 일색’이라는 거친 비판이 터져 나왔다. 곧바로 한병도·권칠승·고민정 등 대표적인 친문(친 문재인)계 인사를 등용하면서 논란을 잠재웠지만 이번 총선서 친명이 주류를 이루면서 이들을 당에 대거 투입한 것으로 풀이된다. 22대 국회 문턱을 넘은 친문 세력은 약 스무명 안팎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때 민주당 180석을 지탱하던 핵심축이었지만 총선을 거치면서 세력이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민주당 공천을 두고 ‘비명횡사 친명횡재’라는 말이 나오자 고민정 최고위원은 위원직을 사퇴했다가 다시 복귀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처럼 공천 피바람이 당내를 휩쓸었지만 총선 이후 이 대표를 비판하던 목소리가 단숨에 잦아들었다. 총선 결과 이후 이 대표 체제는 더욱 견고해졌다. 이 대표를 거칠게 비판하며 당을 떠나거나 새로운 둥지를 꾸린 이들이 줄줄이 낙선하면서다. ‘친명’ 타이틀 달고 꽃밭 안착 둥지 떠난 탈당파 줄줄이 낙선 새로운미래 이낙연 공동대표는 이 대표와 대립각을 세운 뒤 탈당해 새로운 당을 꾸렸다. 이번 총선서 광주 광산을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민주당 민형배 당선인에게 62.25%p로 크게 밀려 패배했다. 이 공동대표가 야심 차게 창당한 새로운미래는 지역구 한 석에 그치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개혁신당과 손을 잡은 이원욱 공동선대위원장 역시 지역구서 낙선했다. 탈당 후 국민의힘으로 이적한 ‘5선 중진’ 이상민 의원과 김영주 의원(국회 부의장)도 고배를 마셨다. 홍영표·설훈 등 다른 비명계 의원 역시 줄줄이 낙선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당을 떠나면 춥다는 걸 몸소 보여줬다”며 “소위 비명계로 분류됐던 이들이 모두 당을 떠났으니 당내 파열음이 나오지 않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대부분 여의도를 떠나게 됐으니 당분간 ‘내부 저격수’로 불리는 이들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친명 체제에 화룡점정을 찍을 원내대표 선출 결과에도 눈길이 쏠린다. 내달 3일, 선출을 앞둔 차기 원내대표 선거가 사실상 친명인 박찬대 의원의 독무대인 만큼 ‘친명일색 민주당’이 완성될 것이란 해석이 우세하다. 박 의원은 지난 21일, 일찌감치 출마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명 대표와 강력한 투톱 체제로 개혁 국회, 민생 국회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한 박 의원이 신호탄을 쏘아 올리면서 자천타천으로 물망에 오른 의원들은 속속 불출마를 선언했다. 서영교 최고위원은 지난 22일 원내대표 출마 선언을 위한 기자회견을 예고했지만 돌연 취소했다. 당 대표 ‘원픽’ 이와 관련해 서 최고위원은 “(박찬대 의원 포함)2명 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하면 제가 원내대표에 당선돼도 최고위원 두 자리가 비게 된다”며 “총선에 압도적으로 이긴 이 대표 체제에 문제가 된다는 게 처음부터 고민이었는데 사전에 조율하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4선 김민석 의원도 “당원 주권의 화두에 집중해 보려고 한다”며 불출마를 시사했다. 인재위원회 간사였던 3선 김성환 의원과 원내수석부대표인 박주민 의원 역시 불출마 입장을 표했다. 민형배·진성준 의원도 하마평에 올랐지만 각각 전략기획위원장, 정책위의장에 임명되면서 자연스레 출마가 불발됐다. 이로써 원내대표 출마 후보군은 박 의원 한 명으로 압축됐다. 친명계 핵심인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초 10명 안팎의 후보군이 난립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물밑서 이 대표가 교통정리에 나섰다는 해석이다. 당 대표의 노골적인 선거개입이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당을 좌우하는 명심에 대항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친문 인사가 끼어들 틈도 없이 빠르게 상황이 흘러갔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주당 원내대표 겸 의장단 선출 선거관리위원회 간사인 황희 의원은 지난 24일, 선거관리위원회 1차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당규상 민주당서 원내대표 선거는 결선투표가 원칙으로 기본적으로 과반 득표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후보자가 1인일 경우 찬반 투표를 하기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원내대표 다음으로 주목받는 자리는 바로 차기 국회의장이다. 당내 우직한 이력을 가진 후보들이 기싸움이 이어가면서 명심이 누군의 손을 들어줄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민주당에서는 6선에 성공한 조정식·추미애 당선인과 5선인 정성호·우원식 의원이 22대 전반기 국회의장 출마를 밝혔다. 이들은 일제히 “기계적 중립은 없다”는 입장을 강조하며 강경 성향 의원의 표심을 얻기 위한 선명성 경쟁에 나섰다. 완벽한 시나리오 먼저 정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기계적 중립만 지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민주당 출신으로서 다음 선거의 승리를 위해 보이지 않게(그 토대를) 깔아줘야 된다”고 말했다. 여야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 다수결의 원리에 따라서 다수당의 주장대로 갈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정 의원은 이 대표의 사법연수원 18기 동기로 알려졌다. 40년 가까이 알고 지낸 만큼 ‘원조 친명’이자 ‘친명계 좌장’으로 통한다. 이 대표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7인회’ 핵심 멤버기도 하다. 친명 후발주자인 추 당선인도 국회의장 도전에 대해 “주저하지 않겠다”며 “국회의장도 물론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그렇다고 중립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지 않고 유보된 언론개혁, 검찰개혁을 해내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히면서 강성 지지자의 호응을 유도했다. 민주당 조 전 사무총장도 “여야 합의가 될 때까지 무한정 기다릴 수 없다”며 “국회의장이 되면 긴급 현안에 대해서는 의장 직권으로 본회의를 열어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과반석을 차지한 만큼 당내 경쟁도 치열해진 양상을 띠고 있다. 국회의장 경선에 당원투표를 반영하자는 주장까지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강성 지지층의 힘이 크게 작용하는 만큼 후보들은 당심을 겨냥하기 위해 명심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당의 주요 인사들이 ‘이재명과의 호흡’을 강조하고 나선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은 당을 좌지우지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를 앞세운 메시지가 앞다퉈 나오면서 입법 독주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도 커질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너도나도 ‘명심팔이’를 하며 이 대표에 대한 충성심 경쟁을 하니 국회의장은커녕, 기본적인 공직자의 자질마저 의심스러울 정도”라며 “협치라는 말을 머릿속에서 아예 지워버려야 한다는 망언을 빙자한 민주당의 속내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상임위를 독식하겠다는 위헌적 발상도 서서히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솔솔 올라오는 ‘대표 연임설’ 대세는 ‘명심’…친문계 주목 총선 승리 이후 일부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 “협치는 없다”는 기류가 흐르자 이를 꼬집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당내 주요직이 속속들이 친명으로 배치되는 가운데 친문에게 더 이상 핵심적인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여기에 이 대표의 연임설까지 불거지면서 ‘이재명호’ 민주당은 한층 견고해질 전망이다. 이 대표 임기는 오는 8월28일까지다. 이제까지 민주당서 당 대표가 연임한 역사는 없지만 당헌·당규상 이를 금지한 조항도 없다. 이 대표가 마음만 먹는다면 몇 번이고 당 대표를 연임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 대표는 20대 대선 패배 직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와 전당대회에 연이어 출마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선례를 남기기도 했다. 총선 승리 직후부터 친명 의원 중심으로 “민주당에 압승을 가져다준 이 대표가 한번 더 당 대표를 맡아야 한다”는 여론이 일면서 친·비명 간의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정성호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국회가 본연의 역할을 하고 민주당이 윤석열정권의 무능과 폭주하는 이 상황을 막아야 된다는 측면서 당 대표가 강한 리더십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며 “그런 면에서 연임할 필요성도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총선이 끝나고 이 대표를 만나 “강한 당 대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고도 덧붙였다. 해남·진도·완도에 승기를 꽂은 박지원 당선인 역시 “만약 이 대표가 계속 대표를 한다고 하면 당연히 해야 한다. 연임해야 맞다”며 “이번 총선을 통해 국민이 이 대표를 신임했다”고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줬다. 반면 친문계 핵심으로 꼽히는 윤건영 의원은 이 대표 연임에 대해 “전당대회가 넉 달이나 남은 상황서 민주당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이슈”라며 “지금은 총선서 나타난 민의를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당의 리더십에 관한 것은 시간을 두고 차분하게 풀어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의도 정가에 밝은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친명 체제를 두고 외부서 걱정하는 모양이지만 정작 당내에서는 후폭풍이 불 수 없는 상황”이라며 “비명 의원끼리 바람을 일으키려고 해도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폭풍 전야 잔잔한 미풍 일제히 이 대표의 의중만 바라보는 민주당은 친명과 찐명 그리고 ‘신명(새로운 친명)’만 존재하게 된다. 이런 상황서 “당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되겠냐”는 비판이 물밑으로 조용히 들려온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애초에 이 대표의 목적은 자신만의 민주당을 만드는 거였고 이번 총선을 통해 결국 이뤄냈다”며 “친명 민주당이라는 날카로운 검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국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이 대표는 임기를 마치는 날까지 자신의 영향력 밑에 당을 두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속 타는 조국혁신당 교섭단체 구성에 난항을 겪는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앞서 조국당 조국 대표는 여러 차례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범야권 연석회의’를 제안했지만 이 대표는 만찬 회동으로 갈무리하는 데 그쳤다. 민주당 내에서는 “아직 그럴 시기가 아니다”라며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이 대표와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조 대표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캐스팅보트 역할을 쥔 것 또한 조국당인 만큼 22대 국회 개원 이후 민주당과 협상 테이블에 앉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