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병원에는 ‘태움’, 군대에는 ‘가혹행위’가 있다. 환자를 살리는 병원과 나라를 지키는 군대. 두 조직에서는 신참을 향한 괴롭힘이 오랫동안 반복돼 왔다. 목적은 다르지만 강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명분 아래 괴롭힘이 반복된다는 점은 닮아 있다. 문제는 이런 괴롭힘이 ‘원래 그런 것’이라는 문화로 굳어지고 있다는 데 있다.
경기 광주시의 한 병원에서 근무했던 고(故) 강수빈 간호사가 세상을 떠난 건 지난 6월2일이었다. 27세였던 그는 생전 자신이 근무했던 병원에서 이른바 ‘태움’을 당했다. 태움은 선배 간호사가 후배 간호사를 심하게 괴롭히며 업무를 가르치는 악습을 뜻하는 말이다.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표현에서 유래했다.
사라지지 않는
‘우리 때도’
강씨가 해당 병원에 들어간 건 2023년이었다. 하지만 병원 생활은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강씨는 선배들의 괴롭힘을 견디다 2024년 4월 병원을 그만뒀고, 이후 고용노동부에 직장 내 괴롭힘 진정을 제기했다. 노동당국 조사 결과 강씨가 지목한 가해자 3명 가운데 1명의 괴롭힘이 인정됐다. 병원에도 시정 지시가 내려졌다.
그러나 병원 측이 해당 직원에게 내린 조치는 ‘훈계’에 그쳤던 것으로 알려졌다.
괴롭힘을 호소하며 직장을 떠났지만 문제는 그렇게 끝나지 않았다. 강씨가 자신을 괴롭힌 것으로 지목한 직원이 여전히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큰 절망감을 느꼈다는 게 유족 측 설명이다. 결국 그는 퇴사한 지 약 2년 뒤인 올해 6월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건이 알려지면서 경찰 수사도 본격화됐다. 경기남부경찰청은 20명 규모의 수사전담팀을 꾸리고 강씨가 가해자로 지목한 3명을 입건했다. 수사 과정에서는 강씨가 병원에 근무하는 동안 약 1년에 걸쳐 작성한 일기장도 확보됐다.
일기장에는 그가 노동당국에 진정을 제기했던 직장 내 괴롭힘 내용 등이 담겨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입건된 3명에게 모욕이나 명예훼손뿐 아니라 상해 혐의도 적용했다.
강씨의 죽음이 더욱 큰 파장을 낳은 이유는 그가 처음으로 ‘태움’을 호소한 간호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강씨가 병원을 떠나기 전에도, 그리고 그가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의료 현장에서는 선임의 폭언과 모욕, 감시와 과도한 통제를 견디다 결국 일터를 떠났다는 호소가 이어지고 있다.
한 사람의 죽음으로 다시 수면 위에 오른 ‘태움’은 이미 오래전부터 여러 병원에서 반복돼 오던 문제였다.
강씨의 사건이 알려지기 전후로도 의료 현장에서는 비슷한 호소가 끊이지 않았다. 피해 양상은 모두 비슷했다. 지난 5월에는 입사한 지 3개월 된 신규 간호사가 수간호사의 폭언과 감시에 시달렸다며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에 도움을 요청했다.
수간호사는 여러 간호사가 모인 자리에서 “정신 나갔냐”는 등의 폭언을 했고, 일부 간호사의 근무 모습을 CCTV로 돌려보며 감시하기도 했다. 수술실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한 간호사는 수술실 파트장으로부터 “왜 퇴사 안 하냐” “관둘 때까지 계속 태우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호소했다.
모두 ‘신참 길들이기’…괴롭힘이 ‘문화’로
위계·폐쇄성 속 ‘교육’ 명분이 통제로 변질
태움 문제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권칠승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의료기관의 직장 내 괴롭힘 신고는 2020년 431건에서 2025년 1412건으로 늘었다. 5년 만에 3.3배 증가한 수치다.
연도별로 보면 2021년 610건, 2022년 731건, 2023년 765건, 2024년 1128건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지난해에는 하루 평균 4건에 가까운 신고가 접수된 셈이다. 올해 들어서도 1월부터 3월까지 283건이 신고됐다.
업종별로 봐도 의료 현장의 괴롭힘 문제는 두드러진다. 정부가 공개한 2024년 실태조사에서 보건·복지 분야의 직장 내 괴롭힘 경험률은 25%로 전체 업종 가운데 가장 높았다. 2025년 직장 내 괴롭힘 신고 건에서도 보건·복지 분야가 차지하는 비율은 16%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처럼 ‘태움’을 둘러싼 문제 제기는 계속돼 왔다. 강수빈 간호사 사건까지 다시 사회적 논란으로 번졌지만 비슷한 피해 호소는 좀처럼 끊이지 않고 있다. 신고 건수가 늘고 피해 유형도 폭언과 모욕, 감시, 통제 등 비슷한 형태로 반복되고 있다는 점에서 태움을 선·후배 사이의 갈등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환자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병원에서 왜 유독 신규 간호사를 중심으로 이 같은 괴롭힘이 되풀이되는 걸까?
태움이 반복되는 배경에는 병원 특유의 업무 환경과 교육 방식이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높은 긴장도와 과중한 업무, 부족한 인력, 선후배 간 위계 등으로 괴롭힘이 발생할 수 있는 토양이 만들어진다는 지적이다.
신규 간호사는 병원에 들어온 뒤 곧바로 모든 업무를 독립적으로 수행하기 어렵다. 학교에서 배운 지식과 실제 병동에서 요구되는 업무 사이에는 차이가 있는 만큼 현장에서 일정 기간 선배 간호사의 교육을 받아야 한다. 국내 병원에서는 이 과정에서 선임 간호사가 신규 간호사를 1대 1 또는 가까운 거리에서 교육하는 ‘프리셉터십’이 널리 활용되고 있다.
신규 간호사의 실수가 환자 안전과 직접 연결될 수 있다는 업무 특성도 태움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작용할 수 있다. 실수를 막기 위해 엄격하게 교육해야 한다는 인식 자체는 이해할 수 있지만, 그 강도가 지나치게 높아질 경우 폭언이나 모욕까지 ‘환자를 위해 필요한 교육’으로 받아들여질 여지가 생긴다.
2022년 간호사의 직장 내 괴롭힘 관련 국내·외 연구를 종합한 질적 메타 분석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확인됐다. 연구진은 위계적인 조직에서 간호사들이 괴롭힘을 직장 적응이나 훈련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겪는 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고 분석했다.
선배가 권력
서열의 법칙
특히 업무 능력을 높이고 환자에게 치명적인 실수를 막는 과정이라는 이유로 괴롭힘이 교육의 일부처럼 맥락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피해자는 주로 조직 내 힘이 약한 신규 또는 젊은 간호사에게 집중되는 경향을 보였다.
위계적인 조직문화 역시 태움을 유지시키는 요건으로 꼽힌다. 간호 조직의 문화와 직장 내 괴롭힘의 관계를 조사한 연구에서도 조사 대상 간호사들이 자신이 속한 조직을 ‘위계 지향적 문화’로 인식하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연구들은 수직적인 권력관계가 강할수록 아래에 있는 구성원이 부당한 대우에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본다.
신규 간호사에게 선임은 일을 알려주는 교육자이면서 병동 적응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다. 경험과 지식의 격차가 큰 상황에서는 신규가 선임의 지시를 거부하거나 교육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기 쉽지 않다. 정상적인 업무 지시와 부당한 요구의 경계가 흐려져도 우선 따르는 쪽을 선택할 가능성이 커지는 이유다.
더 큰 문제는 이런 경험이 한 세대에서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신규 시절 자신이 겪었던 강압적인 교육 방식을 ‘그렇게 해야 일을 배울 수 있다’고 받아들이면, 시간이 지나 자신이 선임이 됐을 때 같은 방식을 다음 신규에게 적용할 가능성이 생긴다.
‘신참을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는 조직의 필요가 강한 위계와 결합하고, 과거 자신이 겪었던 방식이 다음 신참에게 다시 전달되는 현상. 이런 현상은 병원에서만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전혀 다른 목적과 환경을 가진 군대에서도 ‘군기’와 ‘교육’이라는 이름 아래 후임을 향한 가혹 행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국방부 직할부대인 계룡대 근무지원단에서 가혹 행위 의혹이 불거졌다. 계룡대 근무지원단 군사경찰대대에서 복무하는 해병대 병사들이 선임병들로부터 폭행과 욕설,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행동 등을 당했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피해 병사들의 진술에 따르면 선임병들은 후임들에게 고추냉이 등 음식 섭취를 강요하고 샤워장에서 알몸으로 바닥을 기어 다니게 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적절한 신체접촉을 요구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폭행과 욕설, 협박뿐 아니라 개인 물품을 빼앗았다는 진술도 제기됐다. 이후 피해를 주장한 해병대 병사 5명은 지난 9월 선임병 2명을 폭행 등의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더욱 논란이 된 것은 가혹 행위 의혹을 받는 병사들이 사건이 불거지기 전 부대 내 병영 문화 개선 행사에서 수상했다는 사실이었다.
환자 위해서?
군기 위해서?
이들은 지난 7월 초 열린 ‘언어문화 개선 역할극 경연대회’ 수상자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겉으로 드러난 조직 생활과 실제 후임병들이 경험한 생활 사이에 상당한 간극이 있었던 셈이다.
육군에서는 간부가 병사에게 강제로 팔굽혀펴기를 시켜 중증 상해를 입힌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은 지난 3월 강원 철원군 육군 15사단 체력단련실에서 벌어졌다.
당시 한 중사는 팔굽혀펴기를 하던 상병에게 자세를 지적하면서 활동복 상의를 잡아 몸을 강제로 들어 올렸다 내리는 방식으로 팔굽혀펴기를 반복하게 한 것으로 조사됐다. 피해 병사는 “너무 힘들다” “이건 아닌 것 같다”며 여러 차례 중단을 요청했지만 행위는 계속됐다.
결국 피해 병사가 한 팔굽혀펴기는 100회 가까이에 이르렀다. 이후 양팔에 극심한 통증을 느낀 피해자는 이른바 ‘콜라색 소변’을 보는 증상을 보였고, 병원 검사에서 근육효소 수치가 정상치의 수백배까지 치솟았다. 그는 근육이 손상되면서 세포 속 물질이 혈액으로 유출되는 횡문근융해증을 진단받아 2주 동안 입원 치료를 받았다.
군사경찰은 부대 관계자 진술과 의무기록 등을 토대로 혐의가 인정된다고 판단해 지난 8월 해당 중사를 직권남용가혹 행위와 폭행치상 혐의로 군 검찰에 송치했다.
올해 공군사관학교에서도 예비 생도를 대상으로 한 가혹 행위가 확인됐다. 한 예비생도는 기초훈련 과정에서 부상 부위를 폭행당하고 폭언을 들었으며, 1.5ℓ 음료와 맘모스빵을 제한된 시간 안에 먹도록 강요받았다. 이를 제대로 먹지 못했다는 이유로 식사를 하지 못하게 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공사 예비생도 7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 가운데 20명(25%)은 이른바 ‘식고문’ 형태의 음식 취식을 강요받았다고 답했다. 식사를 하지 못하게 한 일을 직접 겪거나 목격했다는 응답자는 36명(46%), 인권침해 피해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31명(39%)에 달했다.
조사에서는 10분 안에 큰 빵과 음료를 모두 먹도록 해 억지로 먹은 뒤 토했다는 진술부터 나체 상태로 목욕탕에서 팔굽혀펴기를 했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CCTV가 없는 장소에서 팔굽혀펴기와 버피테스트 등을 수십 차례 시키거나 엎드려뻗친 상태에서 기어 다니도록 했다는 진술도 있었다.
공사 측은 훈육은 있었지만 과도한 수준은 아니었다는 취지로 해명했으나 인권위는 얼차려와 폭언, 강제 취식과 식사 제한 등 상당수 의혹을 사실로 판단하고 시정을 요구했다.
태움 신고 5년 새 3.3배↑
군 가혹행위도 끊이지 않아
국방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5년 6월 말까지 육·해·공군에서 가혹 행위로 군검찰에 접수된 사건은 모두 543건이었다. 해군·해병대가 308건으로 가장 많았고 육군 187건, 공군 48건이었다. 연도별로 보면 해군·해병대의 경우 2020년 34건이던 가혹 행위 사건이 2023년 68건, 2024년 112건으로 늘었다.
육군에서도 같은 기간 가혹 행위와 별도로 폭행 등 형법·군형법상 폭력범죄 3010건이 집계됐다. 접수된 가혹 행위가 모두 처벌로 이어진 것도 아니었다. 해당 기간 불기소율은 육군 41.7%, 해군·해병대 39.6%, 공군 50%였다. 기소된 사건 가운데 실제 실형이 선고된 경우는 육해공군을 합쳐 2건이었고 벌금형이 78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 같은 모습은 간호사 태움 문화와도 적지 않은 공통점을 보인다. 가장 닮은 점은 ‘신참’이 선임에게 의존하는 구조다. 신규 간호사는 병동 업무와 조직 적응을 선배에게 배우고, 신병과 후임 역시 군 생활과 규율을 선임과 간부에게 익힌다.
경험이 부족한 신참이 선임에게 배우지 않고는 조직에 적응하기 어려운 만큼 자연스럽게 힘의 차이가 생긴다. 교육과 통제의 경계가 흐려질 수 있다는 점도 비슷하다.
병원에서는 ‘환자 안전을 위해 엄격하게 가르쳐야 한다’는 논리가, 군대에서는 ‘군기를 잡아야 한다’는 논리가 작동한다. 모두 조직 운영에 필요한 명분이지만 그 과정에서 폭언과 모욕, 과도한 통제가 허용되기 시작하면 교육이 괴롭힘으로 바뀔 수 있다.
폐쇄적인 환경도 공통적이다. 간호사는 병동 내 교대근무와 인수인계를 통해 같은 구성원과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어야 하고, 군인은 같은 부대와 생활관에서 먹고 자며 생활한다. 피해자가 가해자와 관계를 쉽게 끊기 어렵다는 점에서 괴롭힘이 장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두 조직 모두 ‘대물림’이 나타난다는 점이 닮아 있다. 신규 시절 강압적인 교육을 받았던 간호사가 선임이 된 뒤 같은 방식을 후배에게 적용하고, 신병 때 가혹행위를 겪었던 병사가 선임이 된 뒤 후임에게 비슷한 행동을 반복하는 식이다.
결국 “나도 그렇게 배웠다” “우리 때는 더 심했다”는 말로 과거 자신이 겪었던 피해가 현재의 괴롭힘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고, 그 과정이 반복되면서 개인의 행동이 조직의 관행으로 굳어지는 것이다.
정부도 최근 태움 문제를 조직문화 차원에서 다루기 시작했다. 보건복지부와 고용노동부는 저연차 간호사를 대상으로 특별진단을 실시하고, 병원별 괴롭힘 실태조사와 조직문화 컨설팅, 신고·상담 지원, 근로 감독 연계를 강화하고 있다.
국회에서도 의료기관에 괴롭힘 예방 교육과 신고·조사, 피해자 보호, 가해자 인사조치 체계를 의무화하는 이른바 ‘태움 방지 3법’이 발의됐다. 군대에서도 가혹 행위는 군형법에 따라 처벌되고 내부 징계가 병행되고 있다. 그러나 병원과 군대 모두 처벌만으로 오랜 관행을 끊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나도 당했다”
대물림 형태
신참 교육을 특정 선임에게 과도하게 의존하는 구조와 강한 위계, 폐쇄적인 조직문화가 그대로라면 가해자가 바뀌어도 비슷한 일이 반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괴롭힘을 교육과 적응의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그 방식이 다음 신참에게 다시 전달되는 구조를 바꾸는 것이 핵심이다. 처벌과 함께 교육 방식과 인력 배치, 신고·보호 체계 등 조직문화 전반을 함께 손봐야 한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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