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국정원 권한 강화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었다. 국내 파트로 볼 수 있는 경제·사이버안보에 한해 정보수집 범위가 넓어질 전망이다. 시민단체에서는 일부 사실로 드러난 민간인 사찰 의혹부터 규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강화된 국정원이 과거보다 쉽게 민간인을 사찰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국가정보원은 보수 정권에서 민간인 사찰 논란을 피하지 못했다. 유독 진보 정권에서만 권한이 약화된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일부지만 정보수집 범위가 커진 국정원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전 세계적으로 해킹 문제가 심각해지는 만큼 경제·사이버안보를 중점에 두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정치권과 일부 시민단체는 무분별한 사찰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키우기 시작했다.
해킹 위험 대비
국정원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건 지난 3일이다. 개정안은 국정원의 직무 범위에 ‘경제안보’를 추가하고, 사이버안보 분야의 경우 해킹 수법이나 피해 양상 등을 토대로 국제 또는 국가 배후 해킹 조직의 활동으로 ‘의심할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까지 정보활동 대상을 넓혔다.
현행 국정원법 제4조 제1항 제1호 나 항목엔 “방첩(산업경제정보 유출, 해외연계 경제질서 교란 및 방위산업침해에 대한 방첩을 포함한다), 대테러, 국제범죄조직에 관한 정보”라고 명시돼있다.
개정안에는 ‘경제안보’가 추가됐다. 경제안보 대상으로 ‘경제안보품목·경제안보서비스의 공급망 안정화, 소재·부품·장비산업 경쟁력 강화, 국가자원안보, 국가첨단전략산업·국가첨단전략기술 경쟁력 강화 및 보호 육성, 전략물자 수출입 등 국가 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경제에 관한 사항’을 병기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경제안보’라는 단어 자체도 대단히 포괄적이지만 공급망 안정화와 경쟁력 강화, 국가첨단전략산업까지 국정원의 정보수집 대상으로 포함됐다는 점을 비판한다.
진보당 윤종오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국회 본회의 중 있었던 국정원법 개정안 반대 토론에서 “개정안대로라면 노동자들의 활동도 ‘공급망 안정화’에 영향을 준다는 명분으로 국정원이 들여다볼 수 있고 연구자와 시민단체 역시 정보수집 대상이 될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현행 국정원법 같은 조 같은 항, 같은 호의 마 항목엔 ‘국제 및 국가 배후 해킹조직 등 사이버안보 및 위성 자산 등 안보 관련 우주 정보’만이 명시돼있는데, 개정안엔 마 항목을 ‘국제·국가 배후 해킹 조직 및 그 활동(해킹 수법이나 피해의 양상 등에 비춰 국제·국가 배후 해킹 조직의 활동으로 의심되는 경우를 포함한다) 등 사이버안보 정보’로 고치고 ‘위성 자산 등 안보 관련 우주 정보’를 바 항목으로 신설했다.
여야 합의로 이례적 국정원법 개정안 국회 통과
명목상 방첩 활동 사실상 정보수집 기능 커져
이 중 ‘해킹 수법이나 피해의 양상 등에 비춰 국제·국가 배후 해킹 조직의 활동으로 의심되는 경우를 포함한다’는 내용을 두고 국정원이 심증만으로도 국내의 IT 관련 단체들을 들여다볼 수 있는 권한이 생긴 것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의심’이 든다는 이유로 정보수집 및 조사 활동을 벌이다가 문제가 됐던 게 국정원”이라며 “직접적 조사 활동이 아닌 유관기관과의 공조를 통해 가능하도록 통제장치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정보기관 안팎에서는 여야 간 합의로 이뤄진 개정안임과 동시에 필요했던 조치라고 강조한다.
한 정보기관 관계자는 “민간 분야와 관, 군으로 권역이 나누어져 있어 상대적으로 민간 분야의 해킹 방어력이 약세다. 사이버상 구분이 어려운데 권역을 나누다 보니 사각이 있을 수 있다”며 “국가 해킹 방어력을 통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예시로 영국은 NCSC에서 국가 사이버 방어력을 통합해 운용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미중 간 갈등 양상이 첨단기술 전쟁 공급망 분쟁으로 변화하면서, 물리적 전쟁 수단보다 경제적 수단이 국가 간 갈등의 주요 이슈가 되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지금이라도 필요한 조치가 이뤄져 다행이다. 정보기관의 경제안보 활동은 적시적 요구”라고 말했다.
“전 세계적 사이버 해킹 문제 심각…적시적 조치”
“개정안, 특별감찰 결과 국회 보고 후 이뤄졌어야”
국정원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하면 경제·사이버안보 정보수집 범위가 넓어지는 등 권한이 강화되면서 국정원 1차장 산하 해외 파트와 3차장 산하 사이버 담당 부서의 역할이 커질 수 있다. 새로운 형태의 TF가 꾸려질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 우려하는 ‘무분별한 사찰’이 이뤄질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시각은 정보기관 내부에도 존재한다.
다른 정보기관 관계자는 “최근 민간인 사찰 의혹에 연루된 이들이 국정원법 개정 후 탄생할 수 있는 새로운 TF 조직에 들어가려는 움직임이 있다. ‘개정안 통과가 특별감찰이 끝난 이후에 이뤄졌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을 표하는 직원들도 있다. 특별감찰 결과가 국회에 보고돼 봐야 알겠지만 처벌받아야 할 인물 모두가 직무에서 배제되진 않았다”면서도 “현재 국정원은 또 생길 수 있는 민간인 사찰 문제를 사전에 대비하기 위해 ‘인사 조치’까지 언급한 것”이라고 전했다.
앞서 국정원은 지난 1일 “12·3 불법 내란과 관련해 지난달 25일부터 대대적인 감찰에 착수했다”고 국회에 밝혔다. 지난달 <일요시사>가 국정원의 ‘민간인 사찰’ 의혹을 보도한 지 한 달여 만이다.
국정원은 이날 국회 정보위원회 비공개 전체회의에서 이같이 보고했다고 정보위 여당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이 브리핑을 통해 밝혔다.
국정원은 의원들의 현안 질의에서 “’북한 영향력 공작 대응 TF'에 대해서는 민간인 사찰 등의 걱정과 우려가 존재한다”며 “특별감찰 결과에 따라 인사 조치까지 할 생각이 있다”고 답변했다고 윤 의원은 전했다.
의혹 규명 먼저
감찰 대상 가운데 하나로 거론된 ‘북한 영향력 공작 대응 태스크포스(TF)’는 윤 의원이 지난달 기자회견을 통해 의혹을 제기한 윤석열정부 국정원의 민간인 사찰 의혹 관련 조직이다.
윤정부 국정원은 안보조사 담당 등 4개 부서 합동으로 꾸려진 이 TF의 운영 계획을 2024년 1월3일 윤석열씨와 김태효 전 국가안보실 1차장에게 보고했다. <일요시사>는 사실상 TF의 활동은 북한과 관련이 없는 정치 동향 보고이자 광범위한 민간인 사찰이 있었다고 보도한 바 있다.
<hounder@ilyosis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