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해남의 땅속이 심상치 않다. 지난 23일 오전 6시43분 해남군에서 규모 3.1의 지진이 발생했다. 해남에서는 최대계기진도 Ⅳ가 관측돼 실내의 많은 사람이 흔들림을 느낄 정도였다. 다행히 피해 신고는 없었지만 문제는 규모 3.1이라는 숫자 하나가 아니다.
지난 14일부터 불과 열흘 동안 이 일대에서 규모 2.0 이상 7차례를 포함해 모두 71차례의 크고 작은 지진이 발생했다는 사실이다.
한두번이라면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지각의 움직임으로 넘길 수도 있다. 그러나 열흘 동안 71번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하루 평균 7번꼴로 땅속에서 무언가 움직이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특정 지역에서 짧은 기간 지진이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은 이른바 ‘군집지진’의 특성을 보인다.
뚜렷한 하나의 본진 뒤에 여진이 이어지는 일반적인 지진과 달리 비슷한 지역에서 지진이 떼를 지어 반복되는 현상이다.
군집지진이 발생했다고 해서 대지진이 임박했다고 볼 수는 없다. 대부분의 군집지진은 작은 규모의 지진을 반복하다가 잦아드는 경우가 많다. 지진학적으로도 현재 기술로 작은 지진 몇 차례를 보고 앞으로 언제, 어디서, 어느 규모의 지진이 일어날지 정확하게 예측할 방법은 없다.
따라서 해남의 71차례 지진을 곧바로 ‘대지진의 전조’라고 규정한다면 과학의 영역을 넘어선 공포 조장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반대의 단정 역시 위험하다. 군집지진이니까 큰 지진으로 발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지진은 발생한 뒤에야 앞서 일어난 작은 지진이 단순한 군집지진이었는지, 더 큰 지진에 앞선 전진이었는지 확인되는 경우가 있다.
결국 우리가 현재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큰 지진이 온다’도 아니고 ‘큰 지진은 오지 않는다’도 아니다.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불확실성에 대비하는 것이 과학적인 자세다.
해남에서 더욱 주목해야 할 대목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2020년 4월26일 해남에서 규모 1.8 지진이 발생한 뒤 같은 지역에서 지진이 집중됐다. 그해 5월3일에는 지금과 똑같은 규모 3.1의 지진이 발생했고 진원 깊이 역시 21㎞였다. 당시 기상청은 이 지역이 1978년 계기 관측 시작 이후 지진이 관측되지 않았던 곳이라고 설명하며 임시 지진관측소까지 설치해 집중 감시에 들어갔다.
그런데 6년이 지난 2026년 다시 같은 해남 지역에서 군집성 지진이 나타나고 있다. 이것이 단순한 우연인지, 동일한 지하 구조가 다시 움직이는 것인지부터 규명해야 한다. 2020년의 지진 자료와 이번 71차례 지진의 진원 위치와 깊이, 발생 순서와 이동 방향 등을 겹쳐 보면 적지 않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정부가 이번 사태를 단순히 ‘규모 3.1의 작은 지진’으로만 봐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해외로 눈을 돌리면 더욱 경계해야 할 사례가 있다. 대표적인 곳이 일본 노토반도다. 이 지역에서는 2020년 말부터 수년에 걸쳐 군집지진이 이어졌다. 처음부터 규모 7급 대지진이 발생한 것이 아니었다. 작은 지진이 장기간 반복됐고 2023년에는 규모 6급 지진까지 발생한 뒤 2024년 1월1일 규모 7.5의 강력한 노토반도 지진이 일어났다.
군집지진 지역에서 결국 대규모 파괴 지진이 발생한 실제 사례였다.
물론 일본 노토와 해남을 단순 비교해서는 안 된다. 단층의 구조도 다르고 지질학적 환경과 지하 유체의 움직임도 다를 수 있다. ‘노토에서 그랬으니 해남에서도 대지진이 온다’고 말하는 것은 과학적으로 타당하지 않다. 그러나 노토 사례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 하나만은 분명하다.
군집지진이 계속된다는 사실만으로 미래의 큰 지진 가능성을 미리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도 이미 지진에 대한 뼈아픈 경험이 있다. 2016년 경주에서 규모 5.8, 2017년 포항에서 규모 5.4 지진이 발생하면서 ‘한반도는 지진 안전지대’라는 오랜 믿음이 무너졌다. 특히 포항 지진은 규모만 보면 경주보다 작았지만 진원이 얕고 도심과 가까워 훨씬 큰 피해를 냈다. 지진의 위험은 규모라는 숫자 하나로 판단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경험을 통해 배웠다.
정부도 이번에는 움직였다. 행정안전부는 23일 오전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열고 오전 11시를 기해 지진 위기경보를 ‘관심’에서 ‘주의’ 단계로 상향했다. 규모 3.1 자체가 직접적인 피해를 일으킬 정도는 아니지만 같은 지역에서 지진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 선제적 조치라고 설명했다. 기상청·소방청과 지방정부도 대응 태세를 점검하고 추가 지진에 대비하고 있다.
이런 대응은 필요하고 적절하다. 그러나 ‘주의’ 단계로 올렸다는 것만으로 정부의 역할이 끝난 것은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비상근무 인원을 늘리는 행정적 대응만이 아니라 해남 땅속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과학적으로 규명하는 일이다. 2020년에 지진관측망을 추가 설치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필요하다면 임시 관측망을 대폭 보강하고 미소지진 하나까지 정밀하게 추적해야 한다.
특히 2020년과 2026년 지진의 연관성을 분석해야 한다. 두 군집의 진원 분포가 같은 단층면을 따라 형성됐는지, 지진 발생 위치가 시간에 따라 이동하고 있는지, 지하 유체의 움직임과 관련될 가능성은 없는지 국내 지진·지질 전문가들을 총동원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필요하다면 정부 차원의 합동조사단을 구성해 분석 결과를 국민에게 정기적으로 공개해야 한다. 불안을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막연한 낙관이 아니라 정확한 정보다.
주변 시설에 대한 점검도 병행해야 한다. 해남과 전남 서남권의 학교·병원·노후 건축물과 교량, 저수지, 주요 기반시설의 내진 상태를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다. 당장 큰 지진이 올 것이라고 예상해서가 아니다. 지진이 언제 발생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지진이 발생하지 않았을 때 준비하는 것이 재난 행정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대형 재난이 발생한 뒤 안전점검을 시작하는 것은 이미 늦다.
주민들에게도 보다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현재 피해가 없다”거나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발표만 반복하면 처음에는 안심되지만 지진이 계속될수록 오히려 불안이 커질 수 있다. 지금까지 지진이 어느 깊이와 범위에서 발생하고 있는지, 2020년과 어떤 점이 같고 다른지, 정부가 어떤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는지를 투명하게 알려야 한다. 위험을 숨기지 않되 과장하지 않는 것이 재난 소통의 원칙이어야 한다.
무엇보다 정부가 버려야 할 것은 ‘설마’라는 두 글자다. 설마 규모 3 정도의 지진이 더 커지겠느냐, 설마 2020년처럼 그냥 끝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가장 위험하다. 재난은 항상 발생 확률과 피해 규모를 함께 놓고 판단해야 한다. 발생 가능성이 낮더라도 한번 현실화됐을 때 피해가 엄청나다면 국가는 그 낮은 가능성까지 대비해야 한다.
일본 노토반도의 사례 역시 대지진을 예언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당시 군집지진이 시작됐다고 해서 2024년 새해 첫날 규모 7급 지진이 발생할 것이라고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바로 그것이 우리가 배워야 할 핵심이다. 지진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대비해야 하는 것이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손을 놔도 되는 것이 아니다.
정부는 해남 군집지진을 하나의 지역적 현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한반도 지진 대응체계를 다시 점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활성단층 조사와 지진 관측망 확충, 주요 시설 내진 보강, 주민 대피훈련과 재난문자 체계를 함께 살펴봐야 한다. 특히 군집지진이 반복되는 지역에 대해서는 일반적인 지진과 다른 별도의 감시·대응 매뉴얼이 필요한지도 검토할 때다.
71번이라는 숫자가 대지진을 예고하는 숫자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며칠 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해남의 땅속은 다시 조용해질 수도 있다. 그렇게 끝난다면 가장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정부의 재난 대응은 결과적으로 아무 일도 없었다고 해서 불필요했던 것이 아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도록 준비하는 것 자체가 국가가 해야 할 일이다.
해남이 일본 노토가 될 것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해남이 절대로 노토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할 근거도 아직 없다. 그래서 정부가 선택해야 할 길은 공포도 낙관도 아닌 철저한 대비다. 재난 앞에서 가장 위험한 예측은 ‘설마 일어나겠어’이고, 가장 값싼 보험은 ‘혹시 모르니 준비하자’는 자세다. 해남에서 열흘 동안 울린 71번의 작은 경고음을 정부가 결코 작게 들어서는 안 된다.
<skkim5961@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