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언론과 정치권의 관심은 온통 코스피에 집중돼있다. 코스피가 몇 포인트를 돌파했는지, 시가총액이 얼마나 늘었는지, 외국인 자금이 얼마나 들어왔는지가 연일 뉴스의 중심을 차지한다. 정부의 경제 성과도 대부분 코스피를 기준으로 평가된다.
마치 코스피가 대한민국 경제 전체를 대표하는 것처럼 이야기된다. 그러나 대한민국 경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코스피만 봐서는 부족하다.
코스피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주식시장이다. 정식 명칭은 Korea Composite Stock Price Index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현대자동차, LG에너지솔루션 같은 대기업들이 상장돼있다. 그래서 코스피는 대한민국 경제의 현재 체력을 보여주는 지표라고 할 수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도 한국 경제를 평가할 때 가장 먼저 코스피를 본다. 코스피가 오르면 한국 경제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반면 코스닥은 Korea Securities Dealers Automated Quotations의 약자다. 미국의 나스닥을 모델로 만들어진 시장으로 기술기업과 벤처기업, 성장기업이 주로 상장돼 있다. 코스피가 대한민국 경제의 현재를 보여준다면 코스닥은 대한민국 경제의 미래를 보여준다.
지금은 규모가 작지만 앞으로 산업을 이끌 가능성이 있는 기업들이 모여 있는 시장이다. 그래서 코스닥은 미래 성장지수라는 의미를 갖는다.
많은 사람들은 코스피와 코스닥을 단순히 규모 차이 정도로 생각한다. 하지만 본질적인 차이는 시장의 역할에 있다. 코스피는 이미 성장한 기업들의 무대이고 코스닥은 성장하고 있는 기업들의 무대다. 코스피가 열매라면 코스닥은 씨앗이다. 열매도 중요하지만 씨앗이 없으면 미래의 열매도 존재할 수 없다.
경제를 숲에 비유하면 코스피는 거대한 나무다. 멀리서도 잘 보이고 숲의 중심을 이루는 존재다. 그러나 건강한 숲은 큰 나무 몇 그루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수많은 작은 나무와 새싹이 함께 자라야 숲 전체가 살아난다. 코스닥은 바로 그런 경제 생태계를 보여주는 시장이다. 대한민국 경제의 지속 가능성은 코스닥의 건강성과도 직결된다.
대한민국 기업의 99% 이상은 중소기업이다. 일자리의 대부분도 중소기업에서 나온다. 혁신적인 기술과 새로운 아이디어 역시 대부분 작은 기업에서 시작된다. 오늘의 삼성전자도 과거에는 중소기업이었고 네이버와 카카오도 벤처기업 시절이 있었다. 미래의 삼성전자와 현대차가 지금 코스닥 어디에선가 성장하고 있을 수도 있다.
특히 최근 코스피의 상승세는 매우 이례적이다. 올해 들어 AI 반도체 열풍과 외국인 자금 유입에 힘입어 코스피는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하며 연일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코스피 3000 돌파가 화제였지만 이제는 코스피 1만 시대를 전망하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대한민국 증시 역사상 가장 강력한 상승장 가운데 하나라는 평가도 나온다.
분명 반가운 일이며 한국 경제의 저력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하지만 같은 기간 코스닥의 존재감은 상대적으로 미미했다. 코스피가 가파르게 상승하는 동안 코스닥은 상대적으로 완만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시장의 관심이다. 뉴스와 방송에서는 연일 코스피 최고치 경신을 보도하지만 코스닥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어떤 혁신기업들이 성장하고 있는지는 상대적으로 잘 다루지 않는다.
현재 대한민국 자본시장의 관심이 미래 성장기업보다 대기업 중심 시장에 쏠려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더 주목해야 할 사실은 최근 코스피 상승의 상당 부분이 소수 초대형 기업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는 점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반도체 기업들이 상승장을 이끌면서 지수 전체를 끌어올리고 있다. 다시 말해 코스피가 오른다고 해서 모든 산업과 모든 기업이 함께 성장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대기업 중심의 상승과 경제 전체의 건강성은 반드시 같은 의미가 아니다. 대한민국 경제의 체력을 제대로 보려면 코스피뿐 아니라 코스닥도 함께 봐야 한다.
AI 시대가 되면서 산업의 중심은 빠르게 바뀌고 있다. 20년 전 세계 시가총액 상위 기업들은 대부분 석유회사와 제조기업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엔비디아, 아마존 같은 기술기업이 세계 경제를 이끌고 있다. 이들 기업의 공통점은 모두 시장의 자금을 공급받으며 성장했다는 점이다.
결국 미래 산업 시대에는 현재의 대기업보다 미래의 성장기업을 얼마나 많이 키우느냐가 국가 경쟁력을 결정하게 된다.
미국은 오래전부터 이런 변화를 준비해 왔다. 미국에는 전통적인 대기업 중심 시장인 뉴욕증권거래소가 있고 성장기업 중심 시장인 나스닥이 있다. 미국 경제의 현재를 대표하는 기업들이 뉴욕증권거래소에 있다면 미래를 대표하는 기업들은 나스닥에서 성장해 왔다. 미국은 두 시장을 함께 육성하며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관리해 왔다. 이것이 미국 자본시장의 경쟁력이다.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엔비디아와 아마존, 메타와 테슬라도 모두 성장기업 시절 나스닥을 기반으로 성장했다. 지금은 세계 시가총액 상위 기업이 됐지만 출발은 혁신기업이었다. 미국 언론은 다우지수와 S&P500뿐 아니라 나스닥지수도 매우 중요하게 다룬다.
미래 산업의 흐름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현재의 성과만이 아니라 미래의 가능성도 함께 본다.
사실 한국 경제의 가장 큰 과제는 현재의 대기업을 유지하는 것보다 미래의 대기업을 얼마나 많이 만들어 내느냐다. 이미 성장한 기업은 유지가 중요하지만 새로운 기업은 끊임없이 탄생해야 한다. 경제의 활력은 새로운 기업이 등장할 때 살아난다. 청년 창업과 벤처투자가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 중심 무대가 바로 코스닥이다.
그렇다면 왜 한국의 코스닥은 미국의 나스닥만큼 성장하지 못했을까. 가장 큰 이유는 시장 신뢰의 문제다. 일부 기업의 회계 부정과 주가조작 사건이 반복되면서 시장 전체의 신뢰가 약해졌다. 기업 가치보다 테마와 소문에 의해 움직이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 결과 우량 기업들까지 저평가되는 일이 반복됐다.
또 다른 이유는 장기투자 문화가 약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연기금과 기관투자자들이 성장기업에 장기 투자하는 구조가 발달해 있다. 반면 한국은 상대적으로 단기 수익 중심의 투자 문화가 강하다. 기업의 미래 가치보다 당장의 실적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다. 성장기업이 충분한 시간을 갖고 도약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결국 자본시장이 미래보다 현재에 더 많은 점수를 주고 있는 셈이다.
AI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코스닥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과거에는 공장과 자본이 경쟁력이었다면 이제는 기술과 아이디어가 경쟁력이 되고 있다. 작은 기업 하나가 산업 전체를 바꿀 수 있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엔비디아도 처음에는 작은 반도체 회사였다. 지금의 글로벌 기업 대부분이 작은 혁신기업에서 출발했다.
대한민국도 AI와 바이오, 로봇과 우주산업, 양자기술과 에너지 산업의 미래 주역들이 대부분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에서 나올 가능성이 높다. 이들이 성장하지 못하면 대한민국의 미래 성장동력도 약해질 수밖에 없다. 결국 코스닥의 경쟁력은 대한민국 미래 산업의 경쟁력과 직결된다.
코스닥은 단순한 주식시장이 아니라 미래 산업의 인큐베이터다. 대한민국 경제의 내일이 자라는 공간인 셈이다.
코스닥이 도약하기 위해서는 먼저 시장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회계 투명성을 강화하고 불공정 거래를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 투자자들이 믿고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신뢰가 없는 시장에는 장기 자금도 들어오지 않는다. 건강한 시장은 신뢰 위에서 성장한다.
또한 국민연금과 기관투자자들이 우량 코스닥 기업에 보다 적극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 기술기업의 미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는 시스템도 갖춰야 한다. 적자라는 이유만으로 성장기업을 저평가해서는 안 된다. 미래 산업은 현재 실적보다 미래 가능성이 더 중요하다. 미국의 나스닥이 성장한 배경도 바로 여기에 있다.
무엇보다 정부와 언론의 시각이 바뀌어야 한다. 경제를 이야기할 때 코스피만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대기업이 잘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중소기업이 성장하는 것도 중요하다. 현재의 경제를 평가하는 것만큼 미래의 경제를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제는 코스닥을 국가 경쟁력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그래야 미래 산업을 키우는 정책도 나올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도 과거에는 중소기업과 벤처기업 육성을 강조해왔다.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 시절에는 스타트업 지원과 혁신 생태계 조성에 적극적이었고 대선 과정에서도 벤처 성장 전략을 주요 공약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대통령 취임 이후 경제 성과를 이야기할 때는 코스피 상승과 시가총액 증가, 외국인 투자 확대가 주로 강조되고 있다. 미래 성장기업이 모여 있는 코스닥에 대한 관심과 메시지는 상대적으로 부족해 보인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의 행보도 비슷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삼성전자와 SK그룹 등 한국을 대표하는 대기업 총수들을 만나며 협력 확대와 사업 전략을 논의했다. 그러나 미래의 엔비디아가 될 수 있는 국내 벤처기업과 스타트업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미치지 못했다.
필자는 젠슨 황이 한국의 AI 생태계와 미래 혁신기업 육성에 대한 비전까지 함께 제시했다면 더 의미 있는 방문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코스피가 대한민국 경제의 현재라면 코스닥은 대한민국 경제의 미래다. 코스피가 오늘의 성적표라면 코스닥은 내일의 가능성이다. 대기업이 잘되는 나라가 강한 나라일 수는 있다. 그러나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이 함께 성장하는 나라가 더 오래 강한 나라가 된다. 이제는 코스피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코스닥도 함께 바라봐야 할 때다.
대한민국 경제의 미래는 코스피 지수에만 있지 않다. 아직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코스닥의 작은 기업들 속에 숨어 있을 수도 있다. 오늘의 삼성전자를 자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일의 삼성전자와 엔비디아를 키우는 일은 더 중요하다. 현재의 성공에 박수를 보내는 나라보다 미래의 성공을 준비하는 나라가 더 오래 번영한다. 이제는 코스피의 시간을 넘어 코스닥의 미래를 이야기해야 할 때다.
최근 정부가 '코스닥 3000 시대'를 목표로 제시했다고 한다. 그러나 코스닥 3000이 단순한 증시 목표가 돼선 안 된다. 대한민국 경제가 오늘의 성공에 머물지 않고 미래 산업의 성장동력을 키워가겠다는 국가적 선언이 돼야 한다.
6월11일 종가 기준 코스피는 7730.82포인트, 코스닥은 951.63포인트를 기록했다. 단순 비교하면 코스피가 코스닥보다 약 8배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지수의 의미다. 코스피 지수는 1980년 1월4일을 기준값 100으로 설정해 산출한다. 다시 말해 현재 7730.82포인트라는 것은 코스피 상장기업들의 가치가 1980년보다 약 77배 커졌다는 의미다. 반면 코스닥 지수는 1996년 7월1일을 기준값 1000으로 설정해 계산한다. 현재 코스닥 951.63포인트는 상징적으로 보면 아직 출범 당시 기준선인 1000포인트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코스닥이 항상 부진했던 것은 아니다. IT 벤처 붐이 절정에 달했던 2000년 3월 코스닥지수는 2834포인트까지 치솟으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당시 코스닥은 ‘한국판 나스닥’으로 불리며 미래 산업과 벤처기업의 상징이 됐다. 수많은 투자자들이 새로운 기술기업의 성장 가능성에 주목했고 대한민국도 벤처 강국의 꿈을 꿨다.
그러나 IT 버블 붕괴와 반복된 시장 신뢰 훼손, 성장기업 생태계의 한계로 인해 코스닥은 오랜 기간 부침을 겪어야 했다.
이 사실은 현재 대한민국 자본시장의 무게중심이 어디에 놓여 있는지를 보여준다. 코스피는 최고 수준을 향해 달려가고 있지만 코스닥은 아직 과거의 영광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의 성과는 커졌지만 미래의 성장엔진은 기대만큼 강해지지 못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결국 대한민국 경제의 현재는 코스피가 보여주고 있지만 미래는 코스닥이 얼마나 성장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코스피 7730은 대한민국의 자랑이고, 코스닥 951은 대한민국의 숙제다.
<skkim5961@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