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오전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대강당에서 열린 제132주년 동학농민혁명 기념식은 단순한 역사 행사 이상의 의미를 남겼다. 1894년 낡은 봉건 질서 아래 신음하던 농민들이 부당한 권력과 외세 침략에 맞서 일어섰던 동학농민혁명이 132년이 지난 지금 다시 대한민국 국가 담론의 중심으로 호출됐기 때문이다.
동학농민혁명은 2019년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이후 매년 정부 주관 기념식으로 이어져 왔지만, 올해 분위기는 이전과 달랐다.
특히 올해 기념식이 주목받은 이유는 현직 대통령의 기념사가 처음으로 전달됐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대독한 기념사를 통해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자 주인임을 일깨운 동학농민혁명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위대한 첫 발걸음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사람답게 사는 세상, 모두가 잘사는 대동세상을 꿈꾸며 부당한 권력에 항거하던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은 우리의 가슴 속에 꺼지지 않는 등불이 되었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또 “국민주권정부 역시 1894년 농민들이 꿈꾸던 대동세상과 맞닿아 있다”며 “정부는 국민이 나라의 진정한 주인으로서 정당한 권리를 누리고 성장의 결실을 함께 나누는 따뜻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온 힘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동학 정신이 3·1 운동과 4·19 혁명, 5·18 민주화운동을 거쳐 촛불혁명과 빛의 혁명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하며, 현재 정부의 정치적 정통성이 대한민국 민중혁명의 흐름 위에 서 있음을 강조했다.
기념식 슬로건은 ‘동학농민혁명, 오늘의 빛이 되다’였다. 행사장 조명이 어두워진 뒤 대형 스크린에 동학군 발자취와 12·3 비상계엄을 막아낸 장면이 교차로 등장하자 객석 곳곳에서는 조용한 탄성이 흘러나왔다. 특히 이 대통령의 기념사에 담긴 메시지는 이번 기념식이 단순한 과거 재현이 아니라 현재 정치와 직접 연결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바로 그 순간, 국민주권 간판을 건 이재명정부가 왜 동학을 다시 꺼내 들었는지가 선명해졌다.
생각해보면 대한민국 근현대사는 거대한 민중혁명의 흐름 위에서 움직여왔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은 “보국안민, 제폭구민”을 외치며 반봉건·반외세 개혁을 요구했다. 이것은 단순 농민 반란이 아니라 백성이 국가 운영의 주체임을 선언한 최초의 집단적 정치운동이었다.
그리고 이 흐름은 결과적으로 갑오개혁을 촉발시켰다. 조선은 동학 이후 더 이상 과거 체제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갑오개혁은 분명 근대화 개혁이었다. 신분제가 폐지되고 과거제가 사라졌으며 재정과 행정 구조가 개편됐다. 형식적으로만 보면 조선은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개혁은 민중의 삶에서 출발한 개혁이 아니라 권력과 외세가 설계한 개혁이었다. 동학이 요구한 개혁과 갑오개혁이 충돌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동학은 아래에서 시작됐다. 삶이 무너졌기 때문에 폭발했고, 구조가 잘못됐기 때문에 체제 변화를 요구했다. 그러나 갑오개혁은 위에서 내려왔다. 개혁의 속도는 빨랐지만 국민적 신뢰와 사회적 합의는 따라가지 못했다. 더 큰 문제는 일본이라는 외세 영향 속에서 개혁 방향이 설계됐다는 점이었다.
결국 조선은 개혁했지만 민심을 얻지 못했고, 민심을 얻지 못한 개혁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 장면은 지금도 중요하다. 개혁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강한 개혁이라도 국민이 “누구를 위한 개혁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얻지 못하면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동학농민혁명이 지금까지 기억되는 이유는 성공 여부 때문이 아니라 방향 때문이었다.
백성으로부터 나온 개혁이자 백성을 위한 개혁이라는 기준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현대사 역시 이 흐름 위에 이어져 있다. 1919년 3·1 운동은 민중이 국가의 주체임을 다시 선언한 사건이었다. 비폭력 독립운동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졌고, 국민이 국가를 만든다는 개념을 역사 속에 남겼다. 이후 1960년 4·19 혁명은 부정선거에 맞선 학생과 시민의 봉기로 이어졌고, 결국 이승만정권을 무너뜨렸다. 대한민국 최초의 시민혁명이었다.
그리고 1980년 5·18 민주화운동은 이 계보에서 빠질 수 없는 결정적 장면이다. 광주의 시민들은 국가폭력 앞에서 민주주의와 인간의 존엄을 지키려 했다. 그것은 단순한 지역의 비극이 아니라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피로 통과한 역사였다.
동학이 봉건 권력에 맞선 민중의 첫 외침이었다면, 5·18은 군사권력에 맞선 시민의 절규였다. 그래서 5·18은 4·19와 6·10 항쟁 사이를 잇는 민주주의의 깊은 뿌리다.
1987년 6·10 항쟁 역시 마찬가지였다. 거리로 나온 시민들은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했고, 결국 민주화 체제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2016~2017년 촛불혁명과 2024년 빛의 혁명은 시민 참여 속에서 대통령 탄핵을 만들어냈다. 폭력이 아닌 시민 참여로 권력을 교체한 세계사적 사건이었다.
결국 대한민국은 국가 권력이 아니라 민중의 힘으로 방향을 바꿔온 나라였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재명정부가 동학농민혁명을 강조하는 것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다. 국민주권정부의 정치적 정통성을 대한민국 민중혁명의 흐름 속에서 설명하려는 시도에 가깝다. 동학에서 3·1 운동으로, 4·19에서 5·18과 6·10 항쟁으로, 그리고 촛불혁명과 빛의 혁명으로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현재 정부의 위치를 설명하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동학농민혁명 발생지인 전북에서는 6·3 지방선거에 나선 도지사·시장 후보들이 동학 정신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겠다는 비전을 내놓고 있다. 이들은 동학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 동학 역사 문화권 조성, 동학 가치 세계화라는 3대 전략을 제시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제 동학이 단순 역사 보존이 아니라 지역 미래 전략과 국가 브랜드 논의로까지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 중요한 질문도 등장한다. 과연 지금의 개혁은 정말 동학 정신과 연결돼있는가 하는 점이다. 최근 정부는 검찰·사법·행정·경제 구조 전반에서 강한 개혁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방향 자체는 분명 의미가 있다. 불평등과 비효율 구조를 바꾸겠다는 시도 역시 필요하다.
하지만 개혁은 명분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동학이 남긴 가장 중요한 교훈은 첫째, 개혁은 언제나 삶에서 시작돼야 한다는 것이다. 제도가 먼저가 아니라 국민 삶이 먼저다. 국민이 체감하지 못하는 개혁은 오래가지 못한다. 결국 국민이 “내 삶이 나아지고 있다”고 느껴야 개혁은 힘을 얻는다. 삶과 동떨어진 개혁은 결국 정책 문서 속 구호로만 남게 된다.
둘째, 개혁의 주체는 국민이어야 한다. 권력은 설계할 수 있지만 완성은 참여를 통해 이뤄진다. 동학은 민중이 주체였고, 촛불 역시 시민이 주체였다.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언제나 아래에서 위로 움직였다. 만약 개혁이 특정 권력집단 중심으로만 설계된다면 결국 신뢰를 잃게 된다. 국민이 빠진 개혁은 속도는 낼 수 있어도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셋째, 개혁은 내부 기준으로 설계돼야 한다. 과거 갑오개혁은 외세 개입 속에서 추진됐고, 그 순간 정당성이 흔들렸다. 지금 시대에는 직접적인 군사 개입 대신 국제정치와 글로벌 자본, 외교 압박과 여론 흐름이 존재한다. 그러나 기준은 언제나 대한민국 국민이어야 한다. 내부 기준이 흔들리는 순간 개혁도 흔들린다.
넷째, 속도보다 신뢰가 중요하다. 빠른 개혁은 강한 인상을 남긴다. 하지만 오래가는 개혁은 신뢰를 남긴다. 사회적 합의와 균형 속에서 진행되는 개혁만이 지속될 수 있다. 갑오개혁 실패는 바로 이 점을 보여준 역사였다. 국민이 받아들일 시간을 확보하지 못한 개혁은 결국 저항과 피로를 동시에 키우게 된다.
다섯째, 개혁은 권력 강화가 아니라 균형 설계여야 한다. 한쪽 힘이 강해질수록 견제 장치 역시 함께 강화돼야 한다. 그래야 제도가 오래간다. 개혁은 상대를 무너뜨리는 작업이 아니라 국가 구조를 안정시키는 작업이어야 한다. 힘의 집중보다 중요한 것은 서로 다른 권력이 안정적으로 공존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결국 동학농민혁명 기념식은 과거 행사가 아니라 현재형 질문이었다. 대한민국 개혁은 어디서 시작되고 어디서 완성되는가. 역사는 이미 답을 보여줬다. 동학은 방향을 제시했고, 갑오개혁은 방향을 놓쳤다. 그 간극이 결국 조선의 운명을 갈랐다. 그리고 지금 대한민국 역시 같은 갈림길 앞에서 개혁의 방향과 방식에 대한 선택을 요구받고 있다.
이정부 역시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개혁은 위에서 시작될 수 있으나 완성은 국민 참여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 국민 삶 속에서 확인되지 않는 개혁은 오래가지 못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강한 개혁이 아니다. 더 바른 개혁이다. 더 빠른 개혁이 아니라 더 오래가는 개혁이다.
개혁은 힘이 아니라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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