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 없는 학교’ 현장체험학습 기피 실태

2026.05.11 11:21:11 호수 1583호

김밥도 설렘도 사라졌다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최근 초등학교 현장에서는 봄철이면 당연하게 여겨지던 풍경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운동장에 줄지어 선 관광버스도, 들뜬 표정으로 도시락을 챙기는 아이들도 예전만큼 보기 어려워졌다. 현장체험학습이 ‘교육 활동’보다 ‘사고 책임’의 문제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하면서 학교는 체험학습을 하나 둘 포기하기 시작했다.

코로나19 이후 다시 살아나는 듯했던 학교 현장체험학습이 다시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전국 곳곳에서 수학여행과 현장체험학습이 취소·축소되며, 숙박형 체험학습은 사실상 사라지는 분위기다.

그리운 풍경
점점 사라져

서울시교육청 자료에 따르면 올해 현장체험학습을 실시했거나 계획 중인 서울 초·중·고교는 전체 1331곳 가운데 407곳(31%)에 그쳤다. 코로나19 이후 회복 흐름이 이어지던 2023년 86%(1150곳), 2024년 74%(984곳), 2025년 58%(773곳)과 비교하면 가파른 감소세다.

수학여행 등 숙박형 체험학습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올해 숙박형 체험학습을 계획한 서울 지역 학교는 전체의 18% 수준인 242곳에 불과했다. 초등학교는 특히 더 낮았다. 서울 초등학교 가운데 숙박형 체험학습을 계획한 곳은 3% 수준에 그쳤다.

실제 학교 현장에서는 이미 ‘안 가는 분위기’가 굳어지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의 한 초등학교는 재작년부터 모든 학년의 현장체험학습을 사실상 중단했다.

서울 송파구의 한 초등학교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교외 체험학습 여부를 두고 학부모 설문조사를 진행했지만, 올해는 아예 ‘교내 프로그램 진행 여부’를 중심으로 의견을 수렴했다.

또 다른 학교에서는 수학여행 대신 교내 안전체험 프로그램과 학급별 활동으로 학사일정을 대체했다. 울산 지역 상황도 비슷하다. 지난해 울산에서 현장체험학습을 실시하지 않은 초등학교는 76곳이었다.

올해 역시 68곳으로 전체의 절반을 넘는다. 일부 학교는 학급별로 따로 체험학습을 진행하거나, 안전체험관 등 비교적 위험 부담이 적은 기관 방문만 제한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울산의 한 초등학교는 올해 학교 단위 현장체험학습 대신 학급별 소규모 활동 방식으로 방향을 바꿨다. 학교 차원의 대규모 이동 대신 담임교사 재량에 따라 가까운 기관을 방문하는 수준으로 축소했다. 체험학습을 가더라도 최대한 통제가 가능한 범위 안에서 움직이려는 것이다.

특히 학년이 낮을수록 미실시 비율이 높았다. 일부 학교는 체험학습 자체를 취소하고 학교로 찾아오는 프로그램으로 대체하고 있다.

‘속초 사고’ 이후 달라진 학교 분위기
초등학교 10곳 중 4곳 “체험학습 취소”

현장체험학습이 위축되기 시작한 건 지난 2022년 강원 속초 현장체험학습 사망사고 이후다. 당시 강원 춘천의 한 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은 속초의 한 테마파크로 현장체험학습을 갔다. 사고는 테마파크 주차장에서 발생했다. 학생들이 버스에서 내려 이동하던 과정에서 한 학생이 후진하던 버스에 치여 숨졌다.

사고 이후 검찰은 버스 기사뿐 아니라 담임교사와 보조 인솔 교사까지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검찰은 교사들이 학생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담임교사에게 금고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학생들이 대열에서 이탈할 가능성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고 판단했다. 또 버스가 임시 정차 상태였던 만큼 차량 이동 가능성 역시 예측 가능했다고 봤다.

반면 보조교사에게는 무죄가 선고됐다. 학생 안전관리와 관련한 명확한 역할이 부여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이 판결은 교육 현장에 적잖은 충격을 줬다. 교사들 사이에서는 “버스 기사 과실로 발생한 사고인데 왜 담임교사까지 형사 처벌을 받아야 하느냐”는 반발이 쏟아졌다. 이후 항소심에서는 일부 판단이 달라졌다.

2심 재판부는 담임교사의 업무상 과실 자체는 인정하면서도 “사망 결과에 대한 책임을 교사에게 전적으로 묻는 것은 과도하다”고 판단했다. 결국 금고 6개월의 선고유예 판결이 내려졌다. 집행유예는 유지되지 않았고, 교사는 교직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교육계 반응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교사들은 “결국 유죄는 유죄”라는 반응을 보였다. 선고유예로 교직 유지가 가능해졌다고 해도, 법원이 교사의 형사 책임 자체를 인정했다는 점이 현장에 더 큰 메시지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실제 판결 이후 교사 커뮤니티와 교원단체 게시판에는 “이제 누가 현장체험학습을 가려고 하겠느냐” “사고 한번이면 전과자가 될 수 있다” “교사는 교육자가 아니라 잠재적 피고인 취급을 받는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속초 사고 이후에도 교사에게 책임을 묻는 판결이 이어졌다. 지난 1월 광주지법 목포지원은 전남의 한 초등학교 병설유치원 현장체험학습 중 발생한 사망사고와 관련해 인솔 교사들에게 금고형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당시 특수교육 대상 학생이 체험활동 도중 선착장 인근 바다에 빠져 숨졌는데, 재판부는 교사들이 충분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지나친 요구
과도한 책임

하지만 교사들은 “학생 수십명을 인솔하는 상황에서 모든 돌발 상황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한 초등교사는 “횡단보도를 건널 때도 학생들, 신호등, 차량 흐름까지 동시에 봐야 한다”며 “교사가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모든 변수를 완벽히 막을 수는 없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교사는 “학생들이 갑자기 뛰어나가거나 예상하지 못한 행동을 하는 경우도 많은데, 사고가 발생하면 결국 교사 개인의 과실 여부부터 따지는 구조 자체가 가장 두렵다”고 말했다. 교원단체들은 특히 이런 판결이 반복되면서 학교 현장 분위기 자체가 바뀌었다고 설명한다.

예전에는 “어떻게 하면 학생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면, 지금은 “사고가 났을 때 형사책임을 피할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 경기 지역 학교들 사이에서는 ‘버스를 오래 타는 일정’ 자체를 줄이는 분위기다. 경기 오산의 한 초등학교는 이미 체험학습 버스와 입장권 예약까지 마친 상태였지만 갑작스럽게 계획을 철회했다. 위약금 부담 가능성까지 있었지만 학교 측은 결국 체험학습을 진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학교 관계자는 “교사들 사이에서 ‘괜히 갔다가 문제 생기면 어쩌냐’는 분위기가 커졌다”고 말했다.

화성의 한 초등학교 역시 외부 지역 체험학습 대신 학교 주변에서 도보 이동이 가능한 장소를 다시 찾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교사들은 버스 이동이나 장거리 일정 자체를 위험 요소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과밀 학교일수록 체험학습을 기피하는 현상도 나타났다. 충남 지역에서는 학생 수가 많은 학교들을 중심으로 현장체험학습과 수학여행을 학사일정에서 빼기도 했다.

학생 수가 많은 학교들은 체험학습을 편성하지 않은 반면, 비교적 학생 수가 적은 학교들은 현장체험학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학생 수가 많을수록 이동과 안전관리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울타리 안
오직 공부만

특히 저학년일수록 체험학습 기피 현상은 더 뚜렷했다. 돌발 행동 가능성이 높고 통제가 쉽지 않다는 이유 때문이다. 실제 일부 학교에서는 1학년 전체 체험학습을 아예 취소하거나 교내 행사로 대체하기도 했다.

숙박형 체험학습 대신 도보 이동이 가능한 근거리 활동으로 대체하거나, 학교 내부 프로그램으로 방향을 바꾸는 사례가 빠르게 늘고 있다. 일부 학교에서는 체험학습 대신 강당이나 체육관에서 외부 강사를 초청한 프로그램으로 학사일정을 대체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교육 현장에서는 “예전에는 학생들을 모아 어떻게 더 다양한 경험을 제공할지 고민했다면 지금은 어떻게 사고를 줄일지부터 고민하는 분위기”라고 지적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교사들에게는 현장체험학습을 준비하는 과정 자체도 큰 부담이다. 체험처 선정, 사전 답사, 버스 계약, 보험 가입, 안전 계획서 작성, 학부모 동의서, 안전교육 자료 준비, 비상 연락망 구축, 안전 요원 배치, 일정표 관리, 식사 및 숙소 확인 등 대부분의 행정 절차를 교사가 직접 맡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준비를 하더라도 사고 발생 시 책임을 완전히 피하기 어렵다. 지난해 개정된 학교안전사고 예방 및 보상에 관한 법률(학교안전법)은 교직원이 안전조치 의무를 다한 경우 민·형사상 책임을 지지 않도록 규정했다.

문제는 ‘안전조치 의무를 다했다’는 기준 자체가 모호하다는 것이다. 교사들은 “어디까지 해야 안전조치를 다한 것으로 인정되는지 알 수 없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교육부가 배포한 현장체험학습 운영 매뉴얼에는 교통 안전, 식사, 화재 예방, 시설 점검 등 수십개 항목의 체크리스트가 포함돼있다. 활동 유형에 따라 점검 항목은 80~90개 가까이 늘어나기도 한다. 교사들은 “기준이 구체화될수록 오히려 나중에 책임을 따질 근거만 더 늘어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내놓고 있다.

교사들의 부담이 커진 건 최근 들어 학부모 민원의 양상 자체가 달라졌다는 점도 한몫했다. 예전에는 일정이나 준비물 정도를 문의하는 수준이었다면, 지금은 체험학습 과정 전반을 실시간으로 관리·감시하려는 학부모까지 등장했다는 것이다.

“사고 한번이면 교사는 전과자”
책임·민원·행정 부담에 급감

실제 한 학교에서는 수학여행 장기자랑을 실시간으로 생중계해 달라는 요구가 나왔고, 또 다른 학교에서는 “왜 제주도가 아니라 서울로 가느냐” “왜 1박2일만 가느냐”는 민원이 제기됐다.

현장체험학습 직전 “아이 도시락을 교사가 직접 준비해 달라”는 요구를 받은 경우도 있었다. 한 교사는 “출발 직전에 학부모 전화가 와 도시락을 준비하지 못했다고 했다”며 “결국 내가 먹으려고 산 김밥을 학생에게 주고 나는 점심을 굶었다”고 토로했다.

최근 온라인에서는 체험학습 비용을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기도 했다. 한 학부모가 중학교의 수학여행 안내문을 공개했는데. 강원도로 떠나는 2박3일 일정에 1인당 60만6000원이 책정됐다는 내용이었다. 안내문에는 우등버스 이용료, 숙박비, 식비, 체험 프로그램 비용 등이 포함돼있었다.

논란은 빠르게 확산됐다.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수학여행 비용이 지나치게 비싸다” “예전에는 훨씬 저렴했다” “학교가 리베이트를 챙기는 것 아니냐”는 주장까지 나왔다. 하지만 현직 교사들은 “현재 수학여행 구조를 전혀 몰라 하는 이야기”라고 반박했다.

현재 수학여행은 공개경쟁 입찰 방식으로 여행사를 선정하고, 학교운영위원회 심의를 거쳐 진행된다. 교사 개인이 비용 구조를 임의로 조정할 수 없는 시스템이라는 설명이다. 문제는 학생·학부모 요구 수준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는 점이다.

예전처럼 유스호스텔 단체 숙박이나 대형 식당 백반 형태 식사는 학부모 만족을 얻기 어려워졌고, 상대적으로 쾌적한 숙소와 식사, 체험 프로그램을 요구하는 분위기가 강해졌다는 것이다.

실제 일부 학교에서는 “왜 4인실이냐” “왜 리조트 수준이 아니냐” “식단이 부실하다” 등의 민원이 이어지기도 했다. 교사들은 “요구 수준은 계속 높아지는데, 적은 비용으로는 불가능하다”고 토로했다.

결국 현장에서는 “안전하게 가는 방법”보다 “아예 가지 않는 선택”이 가장 리스크 없는 선택이 됐다.

추억 없는
학교 생활

정부는 최근에서야 체험학습 위축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고 교사 면책 범위를 검토하기로 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국무회의에서 현장체험학습 위축 문제와 관련해 “혹시 구더기 생기지 않을까 싶어서 장독을 없애버리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에 학부모들 반응도 엇갈리고 있다. “아이들의 안전이 우선”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학생들이 추억과 사회성 경험을 잃어가고 있다”는 우려 역시 적지 않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 A씨는 “아이들이 친구들과 함께 이동하고 생활하면서 배우는 게 분명 있는데 그런 경험 자체가 사라지는 것 같다”며 “안전을 이유로 모든 활동을 접는 게 맞는지 고민된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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