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살인사건으로 본 ‘이상동기 범죄’

2026.05.11 11:11:01 호수 1583호

헐거운 법망에 아무나 그냥 죽인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죄를 짓는 사람에겐 벌을 내린다. 그동안 처벌은 범죄를 막는 가장 강력한 억제책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 방식이 먹히지 않는 범죄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묻지마 범죄’로 불리는 이상동기(무동기) 범죄다.

광주에서 17세 고등학생이 칼에 찔려 숨졌다. 장모씨는 어린이날이었던 지난 5일 0시11분께 광주 광산구 월계동 한 대학교 인근 보행로에서 고교 2학년 학생 A양을 흉기로 찔러 살해하고 또 다른 학생인 B군에게도 흉기를 휘둘렀다. 경찰은 장씨를 살인, 살인미수 등 혐의로 긴급 체포했다.

마른 하늘

경찰 수사 내용을 종합하면 장씨는 거주지인 광주 광산구 원룸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차를 세우고 범행 대상을 물색했다. 주변을 배회하던 장씨는 일행 없이 홀로 귀가하던 A양과 두 차례 이상 마주친 것으로 알려졌다. B군은 범행 현장 인근을 지나가다가 몸싸움을 하는 듯한 소리와 여성의 비명이 들리자 도움을 주려고 다가갔다가 부상을 입었다.

문제는 동기다. 장씨는 피해를 본 고등학생들과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다. 경찰에 따르면 장씨는 “사는 게 재미가 없어 자살을 고민하다 거리를 배회하던 중 피해 학생을 발견하고 충동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말 그대로 길 가다가 본 ‘아무나’를 상대로 칼부림을 벌였다는 뜻이다.

광주에서 일어난 사건이 알려지면서 흔히 ‘묻지마 범죄’를 칭하는 ‘이상동기 범죄’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사건 이름만 대도 당시 사회 상황이 떠오를 정도로 큰 충격을 안긴 범죄 중에 일부는 끝내 가해자의 동기를 알지 못했다. 그들의 범행 배경에서는 치정, 돈, 복수 등 그동안 알려져 있던, 범죄에까지 이르는 일반적인 동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경찰청 범죄백서(2024)에 따르면 이상동기 범죄는 ▲피해자 무관련성 ▲동기 이상성 ▲행위의 비전형성 등 3가지 요건을 모두 갖춘 범죄를 뜻한다.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 연관성이 없고 범행 동기가 불분명하며 범행이 과도하거나 비정상적인 범죄다.

법무부에 따르면 이상동기 범죄는 2023년 46건, 2024년 42건 등 매 분기 10건 이상 일어났다.

법무부가 지난해 9월 내놓은 보도자료에 따르면 2023년 신림역과 서현역에서 일어난 칼부림 사건, 2024년 일본도 살인사건, 지난해 미아동 슈퍼마켓 살인사건 등이 이상동기 범죄로 분류된다. 그보다 앞서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2019년 진주 아파트 방화․살인사건 등도 당시 ‘묻지마 범죄’로 불렸다.

2016년 서울 강남역 화장실에서 일어난 사건은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가해자 김모씨는 역사 화장실에 숨어서 혼자 들어오는 여성을 기다렸다가 칼로 찔러 살해했다. 피해자는 그 시간에, 그 화장실에 들어갔다는 이유로 범행 대상이 됐다. 김씨는 징역 30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진주 아파트 방화, 살인사건은 가해자 안모씨가 불을 지른 후 대피하는 사람들을 칼로 찔러 죽인 일이다. 안씨가 대피하던 주민 10명과 관리사무소 직원 1명 등 총 11명에게 칼을 휘둘렀고 이 가운데 5명이 사망하고 17명이 다쳤다. 1심에서 사형이 선고됐으나 이후 심신미약이 인정돼 대법원에서 최종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2023년 7~8월은 칼부림 사건으로 얼룩진 달이었다. 불과 2주 간격으로 신림역과 서현역에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무차별 흉기 난동 사건이 발생했다. 신림역 사건의 가해자인 조모씨의 범행으로 1명이 사망했고 3명이 다쳤다. 서현역 사건에서 가해자 최모씨는 차를 타고 백화점에 돌진한 후 흉기 난동을 벌였다. 이 사건으로 2명이 사망하고 12명이 다쳤다.

일면식도 없는 여고생
한밤중에 칼에 찔렸다

벌건 대낮에, 사람이 많은 길거리에서 일어난 사건에 사회는 경악했다. 범행을 저지르고 도주한다거나 은폐한다는 행위 자체가 어려운, 다시 말해 반드시 잡히는 상황에서 범죄를 저질렀다는 점에서도 충격이 컸다. 마치 검거돼도 상관없다는 듯이 뒤가 없는 사람처럼 저지른 범행은 사회를 공포로 몰아갔다. 동시에 그들이 가진 동기가 없다는 점에서도 그랬다.

2024년 7월에 일어난 일본도 살인사건도 마찬가지였다. 가해자 백모씨는 일면식도 없는 피해자를 일본도로 잔인하게 난자했다. 피해자는 아파트 앞에 담배를 피우러 나왔다가 날벼락을 맞았다. 백씨는 ‘중국 스파이가 대한민국에 전쟁을 일으키려 한다’고 말하는 등 이상 증세를 보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4월 서울 강북구 미아동의 한 슈퍼마켓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다. 30대 남성 김모씨가 흉기 난동을 벌인 사건으로 60대 여성 1명이 사망하고 40대 여성이 다쳤다. 역시 피해자들과는 일면식도 없었다. 김씨는 슈퍼마켓에서 판매 중인 흉기를 사용했다. 손가락 골절로 정형외과에 입원해 있다가 나와 범행을 저질렀다. 신고도 직접 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이상동기 범죄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경찰청은 2023년부터 이상동기 범죄의 개념을 정립해 통계를 작성, 관리하고 있다. 하지만 기준이 모호하니 통계 또한 부정확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예방하거나 대책을 세우기엔 현황 파악부터 잘 안 되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4월 국회입법조사처는 이상동기 범죄 대책의 선결과제로 개념 재정립이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보고서는 “경찰이 ‘묻지마 범죄’ 같은 유형을 이상동기 범죄로 개념화하고 대책 마련에 나섰고, 법무부도 대응에 나섰지만 우리가 대응하고자 하는 범죄가 어떤 범죄인가는 여전히 불명확한 상태에 있다”고 지적했다.

또 “어떤 범죄군을 개념화하고 그에 따른 통계를 관리한다는 취지는 범죄 예방 대책과 유사 범죄 발생 시 대응 지침 마련 및 범죄의 변화 양상 등을 분석해 사회적 여건을 진단하고 그에 적합하게 대처하는 데 있다”고 전제했다.

그런 면에서 보면 가해자의 범행 동기가 불명확하거나 쉽게 파악할 수 없다는 특징을 드러내는 이상동기 범죄라는 용어는 일반적으로 정신질환자에 의한 범죄로 인식된다는 것이다. 동시에 잘못된 방향으로 대책이 마련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그러면서 “범죄에 대한 구체적이고 적합한 대책 마련을 위해서는 범죄의 개념, 유형, 죄종 등을 명확히 하고 그에 따른 통계 관리를 통해 사회적 여건을 진단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돼야 한다”며 “이를 전제로 소위 묻지마 범죄에 대한 구체적인 예방 및 관리 체계 구축 방안을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법무부는 지난해 9월 선별과 집중 관리로 이상동기 범죄 대책을 내놨다. 먼저 이상동기 범죄 위험군을 체계적으로 선별하겠다고 밝혔다. 보호관찰 대상자에게 법무부가 연구 용역을 통해 개발한 선별검사를 진행한다고 전했다.

이 과정에서 위험군으로 분류된 대상자에게는 정신적·심리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특별 준수 사항이 추가로 신청되며 치료 내역과 처방약 복용 여부 확인 등 강화된 지도 감독을 받게 된다고 했다.

또 보호관찰이 종료된 후에도 경찰의 관리가 필요한 위험군은 인적 사항 등을 경찰에 통보한다. 경찰은 법무부에서 제공한 이상동기 범죄 고위험군의 주거 정보 등을 이용해 지역별 범죄 위험도 예측, 순찰 경로 조정 등 선제적인 범죄 예방 활동에 활용할 수 있다.

날벼락

하지만 일각에서는 법무부가 내놓은 대책이 지나치게 헐겁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실제 이번에 광주에서 일어난 사건만 보더라도 가해자 장씨는 보호관찰 대상이 아니었다. 애당초 조사의 테두리 안에 존재하지 않던 인물이었던 셈이다. 장씨는 ‘사는 게 재미 없다’며 사람을 죽였다. 이런 사람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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