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30대 부부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 충격적인 사실은 이 부부가 성폭행 사건을 겪었다는 것이다. 한 폭력조직 조직원이 아내를 성폭행하고 폭행했다. 하지만 그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억울함을 참지 못한 부부는 ‘죽어서도 복수하겠다’는 유서만을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성폭행 피해로 법정 싸움을 벌이던 30대 부부가 “죽어서도 복수하겠다”는 원망 섞인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유서 쓰고 자살
지난 3일 오전 0시28분쯤 전북 무주의 한 캠핑장 카라반서 A(38)씨와 아내 B(34)씨가 쓰러져 있는 것을 경찰이 발견했다. B씨는 2일 오후 11시29분쯤 ‘차는 ○○에 있고 차 안에 유서와 영정 사진이 있다’는 문자를 가족들에게 보냈고, 이를 본 가족들이 경찰에 신고했다.
이들은 곧바로 병원에 옮겨졌지만 B씨는 숨졌고, 중태에 빠졌던 A씨마저 4일 오전 끝내 사망했다. 당시 현장에는 타다 남은 번개탄과 빈 소주병 등이 발견됐다.
유족에 따르면 A씨 부부가 편지지에 기록한 유서는 모두 13장이다. A씨가 두 딸 앞으로 남긴 유서 2장, B씨가 양쪽 부모에게 쓴 유서 3장, 두 사람 이름으로 된 유서 4장 등이다. 나머지 유서 4장은 이들이 동반 자살하기 일주일 전쯤 A씨 혼자 본인 승용차 안에서 약을 먹고 자살을 시도하며 변호사에게 남긴 유서라고 한다.
남편 A씨는 ‘사랑하는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장모님께’라는 제목의 유서에서 “이 부족하고 못난 아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세상에서 가장 큰 불효를 저지르려 합니다”라고 썼다.
딸들에게는 “마음속 깊은 곳부터 우리 딸들을 아끼고 사랑했단다. 결코 (우리 죽음은) 너희들 잘못이 아니란다. 단지 아빠, 엄마가 어른 문제가 있는데 이제는 힘이 들고 너무 지쳐서 이 길을 택했단다”라고 애틋한 마음을 내비쳤다.
하지만 유서 말미에 “너(C씨)는 내가 지금 내 성질을 못 이겨서 이런 선택을 하지만 죽어서라도 끝까지 복수할 테니 기다리고 있어라”라는 ‘추신(PS)’을 덧붙이며 C씨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냈다.
A씨 부부는 두 사람 공동명의로 남긴 유서 4장에는 대부분 가족과 지인들에게 아직 미성년자인 두 딸을 부탁한다는 취지의 내용을 담았다.
하지만 B씨가 숨지기 일주일 전에 쓴 유서에는 C씨에 대한 원망과 저주가 적나라하게 담겼다. B씨는 유서에서 C씨를 ‘무언의 살인자’ ‘가정 파탄자’라고 불렀다.
그리고 “당신의 간사한 세치 혀가 죄 없는 예쁜 사춘기의 두 소녀를 한순간 고아로 만들었으며 여러 사람들의 눈에서 피눈물을 흘리게 했으니 그 죄는 어떠한 것으로도 갚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B씨는 “지난 일 년간 밤마다 우리 두 사람은 악몽에 시달려야 했고 사람들 앞에서 웃고 있어도, 살고 있어도, 웃는 것이 사는 것이 아닌 지옥 불구덩이었다”고 털어놨다.
B씨는 “피고인(C씨) 당신은 지금처럼 추잡하고 비굴하고 구차하게 그렇게 끝까지 살아남아야 한다. 그래서 남은 평생을 우리가 보낸 일 년 지옥보다 천 배 만 배 더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보내야 한다”고 저주했다.
그는 “제 마지막 이 글이 피고인 ○○○에게 어떠한 방법으로든 전달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마음속에 있는 말을 가는 길에라도 속 시원하게 하고 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라고 변호사에게 신신당부했다.
조폭, 친구 출장간 사이 아내 성폭행
합의된 성관계? 수차례 정신과 치료
경찰에 따르면 충남 논산의 한 폭력조직 조직원인 C씨는 지난해 4월 A씨가 해외출장을 떠난 사이 B씨를 유인해 성폭행하고, 지인들을 협박하고 폭행한 혐의 등으로 구속됐다.
검찰은 C씨에 대해 징역 7년을 구형했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1심 재판부는 C씨의 폭행 혐의는 인정하면서도 성폭행 혐의에 대해서는 증거 부족으로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성관계는 인정하지만 여러 정황으로 보아 남녀관계로 발전해 성관계를 맺었다는 피고인 진술내용을 수긍할만하다”고 판시했다.
C씨는 남편 A씨와 초등학생 때부터 친구로 지낸 사이로 확인됐다. C씨는 앞서 2013년 7월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2014년 4월 출소했다고 한다.
법원에 따르면 C씨는 지난해 4월14일 오후 11시43분부터 이튿날 오전 1시6분 사이에 충남 계룡시 한 무인모텔서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남편과 자녀들에게 위해를 가할 것처럼 협박해 B씨를 한 차례 성폭행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B씨는 경찰에서 “4월10일 밤 C씨를 만나 폭행과 협박을 당한 후 며칠간 협박당하다 강간을 당했다”고 진술했다.
C씨는 군 판사 출신인 경기 수원 소재 법무법인 변호사와 논산지역 변호사 등 2명을 선임했다.
유족들은 “상식적으로 남편 친구와 합의된 성관계라면 부인이 남편에게 자발적으로 털어놓는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입증할 수 없지만 가해자 측이 변호사 수임 비용 등으로 수억 원을 썼다고 한다. 돈 없고 연줄이 없어 당한 것 같다. 피를 토하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전지법 논산지원 관계자는 “부부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은 안타까운 심정이지만 당시 판결도 상당히 고심 끝에 내려진 것으로 들었다. 당시 재판부는 인사이동된 상태”라고 말했다.
C씨의 변호인 측도 “특별히 드릴 말씀이 없다”고 했다.
C씨는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A씨 부부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한 상태다. 유족은 A씨 부부가 C씨의 성폭행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법원 판결에 불만을 품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C씨의 성폭행 혐의가 무죄로 판결나자 A씨 부부는 심한 충격과 절망감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들은 “유전무죄 판결에 대한 억울함을 견디지 못했다”고 반발하고 있다.
유족에 따르면 B씨는 수차례 정신과 치료를 받았으며 수차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시도하기도 했다. 아내 B씨는 지난달 26일에도 본인의 사진과 유서를 차량에 싣고 나가 음독을 시도했다가 남편의 신고를 받은 경찰의 추적으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은 “A씨 부부는 1심 판결 이후 항소심이 진행되는 동안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며 “유서 내용이 성폭행 가해자에게 전달돼야 속이 시원하겠다는 글도 있었다”고 말했다.
성폭행은 무죄?
경찰 관계자는 “사건 이후 B씨의 정신적 충격이 커 성폭력피해지원센터에 연계해 치료받을 수 있도록 조치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유족 진술 등을 바탕으로 정확한 사건 경위를 파악하는 한편 유족 요구에 따라 부검을 하지 않고 시신을 유족에 인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