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죽어 나가는’ 양평군 장애인센터, 무슨 일이?

2024.07.29 10:22:11 호수 1490호

대통령보다 만나기 힘든 군수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직장 내에서 일어날 수 있는 부조리의 총집합’. 성추행, 직장 내 괴롭힘, 갑질 등 직원이 6명 남짓한 소규모 사업장에서 지난 10여년간 불거진 일이다. 그사이 한 사람은 사망했고, 한 사람은 목을 맸다가 간신히 살아났다. 오랜 시간 바짝 웅크린 채 숨죽이고 있던 이들의 이야기를 <일요시사>가 추적했다.



“제가 죽었으면 조금 더 이슈가 됐을까요?” 지난 15일, 양평역 인근에서 만난 정모씨는 대뜸 그렇게 말했다. 목에는 깁스를 한 채였고 왼쪽 눈은 새빨갰다. ‘선택’의 후유증을 세게 앓고 있는 상태였다. 정씨는 주변 사람에게 적지 않은 상흔을 남기고도 또다시 ‘선택’을 시도하려 했다. 그의 지난 4년이 짐작되는 대목이다. 

유서 쓰고 
극단적 선택

지난달 20일 정씨는 일터에서 목을 맸다. 오전 배차를 마치고 점심시간 즈음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날 끈을 산 정씨는 망설이고 또 망설였다. 음악을 들으면서 마음을 다잡고 눈물을 흘렸다. 끈을 목에 걸고 아이스박스를 발로 찬 순간이 정씨가 기억한 마지막이다.

이후 시각장애인 활동지원사들이 그를 발견해 끌어 내렸다. 의사는 “천운”이라고 했다. 

정씨는 양평군 장애인생활이동지원센터(이하 양평군센터)의 운전원이다. 장애인생활이동지원센터는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에 차량 운행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장애인 지역사회 재활사업이다. 장애인생활이동지원센터는 시·도 단위의 시각장애인연합회에서 관리하는 시·군·구 단위의 지회가 운영한다. 


양평군센터의 경우 경기도 시각장애인연합회가 관리하는 양평군지회가 운영 주체다. 회원의 투표로 선출되는 지회장은 센터장 임면권을 가지며 전반적인 센터 운영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임기는 4년이다. 양평군지회는 2022년 1월 장모씨가 지회장으로 선출돼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다. 

정씨는 장 지회장에게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실제 정씨의 극단적 선택 이후 그의 사무실 책상에서 발견된 ‘유서’에는 장 지회장의 이름이 수차례 등장한다. 정씨가 극단적 선택을 하기 하루 전인 지난달 19일 날짜의 유서에서 “장○○의 집요한 괴롭힘에 더는 버틸 수가 없고 살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죽으면 장○○가 한 악마같은 짓을 모조리 밝혀주세요” 등의 문구가 발견됐다.

정씨는 고소‧고발, 이의신청 등으로 수차례에 걸친 경찰조사에 지칠 대로 지친 상태라고 설명했다. 유서에도 “그동안의 고소‧고발은 무혐(의)로 끝났습니다. 그런데도 장○○ XXX는 센터장님이 4명이 바뀌었음에도 이의제기를 주문하고 저를 자르려고 불굴의 의지로 제 목을 조여왔습니다”는 부분이 있다. 

직장 내 괴롭힘 주장하며 목매
그제야 부랴부랴 찾아간 군수

정씨는 장 지회장에게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상담원 윤모씨를 도와준 이후 모든 일이 시작됐다고 주장했다. 윤씨는 지병으로 사망했다. 윤씨의 남편은 아내의 사망 이후 장 지회장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진행했다. 장 지회장이 지회장 지위를 이용해 윤씨를 지속적으로 괴롭혔다는 취지다. 

<일요시사>와 만난 윤씨의 남편은 “아내가 생전에 이런 일을 당하는지 전혀 몰랐다”고 한탄했다. 윤씨는 사망 전날까지도 양평군센터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내용의 민원을 양평군에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씨의 남편은 “소송비용이 더 들었지만 직장 내 괴롭힘을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족 측은 한 회원이 상담원이었던 윤씨의 배차에 불만을 표하자 장 지회장이 이 문제로 여러 차례 전화해 호통치고 무례한 언행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괴롭힘이 2019년 9월부터 2020년 5월에 이르기까지 계속됐다는 설명이다. 윤씨는 2020년 6월2일에 암 진단을 받은 뒤 같은 달 28일 사망했다. 

윤씨의 동료였던 정씨는 이 소송에 사실확인서, 증언 등을 통해 장 지회장이 윤씨를 괴롭혔다는 유족 측 주장에 힘을 실었다. 원고(윤씨 측) 패소 판결이 난 1심과 달리 항소심은 윤씨에 대한 장 지회장의 직장 내 괴롭힘을 일부 인정했다. 장 지회장에게 위자료 200만원을 선고한 것이다. 

수원지방법원 제8민사부는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켰다면 이는 위법한 ‘직장 내 괴롭힘’으로서 피해 근로자에 대한 민사상 불법행위 책임의 원인이 된다”고 대법원 판례를 언급했다.

그러면서 장 지회장이 윤씨에게 한 일부 행위가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고소·고발 난무
조용할 날 없어

이후 정씨는 장 지회장의 타깃이 자신으로 바뀌었다고 주장했다. 업무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고소·고발을 진행하고 경찰조사에서 무혐의가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이의신청 등을 통해 끊임없이 괴롭혔다는 주장이다. 정씨는 “장 지회장은 센터장들을 시켜(자신에 대한) 이의신청을 하게 했다”고 주장했다. 

실제 양평군센터는 사문서 위·변조, 소송사기 등의 혐의로 정씨를 고소했다. 정씨가 업무일지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내용을 위조하고, 윤씨의 소송에 제출한 사실관계 확인서가 허위라며 소송사기를 저질렀다는 취지다. 이후 경찰조사가 진행됐고 정씨는 혐의를 벗었다.

하지만 양평군센터의 센터장들은 연이어 경찰조사에 이의를 제기했다. 이를 견디다 못한 정씨가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게 이번 사건의 전말이다. 

지난 2월 양평군센터에 센터장으로 취임한 최모씨는 정씨 수사 결과에 대해 이의신청을 하라는 장 지회장의 지시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최 센터장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센터장으로 취임한 이후 정씨 등에 대한 자료를 보고 나서야 제대로 된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있었다”며 “장 지회장은 여러 차례 경찰에(정씨에 대한) 이의제기를 하라고 했지만 민·형사상으로 다 끝난 상황이고 센터장에 부임하기 전에 일어난 일이라 개입하지 않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양평군센터에서 사건이 벌어진 게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미 2015년 양평군센터 직원을 상대로 성추행을 자행한 전 행복콜(양평군 교통약자지원센터) 센터장이 징역형을 받는 일이 있었다. 또 불과 3~4년 사이 센터장이 수차례 바뀌는 등 양평군센터 내부는 잡음이 끊이질 않았다.

처음 두드러진 사건 이후 무려 10년 가까이 송사가 계속됐다.

거듭된 사건
다 손 놨다


정씨는 사건 직후 가족과 함께 경기도 시각장애인연합회를 찾았고 양평군수를 만났다. 지난 24일에는 양평군센터 앞에서 시위도 진행했다. 하지만 그는 <일요시사>와의 두 차례 인터뷰에서 “아무것도 안 바뀔 것 같아요” “결국 대충 이러다 말겠죠” 등의 말을 거듭했다. 4년여 동안 지속된 일에 잔뜩 체념한 상태였다. 

정씨의 한탄은 장애인생활이동지원센터의 구조적 문제에서 기인한다. 장애인생활이동지원센터의 센터장은 지회장이 겸임하거나 지회장이 공개채용을 통해 임명하는 구조다. 시·도지부나 지회는 회원 투표를 통해 연합회장과 지회장을 선출하는데 센터장은 임명직의 형태다.

다시 말해 연합회장과 지회장은 면직이 쉽지 않지만 센터장은 언제든지 잘려 나갈 수 있다.

양평군센터는 성추행 등의 비위 의혹으로 자리에서 물러난 경우 등을 포함해 지난 4년 새 센터장이 4번이나 바뀌었다. 그 가운데 2명은 5개월, 2개월 만에 물러났다. 여기에 장 지회장이 센터장 직무대행을 겸직한 시기까지 합치면 1년을 넘긴 사람은 1명에 불과하다. 

지회장이 가진 센터장 임면권은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작용할 때가 있다.

양평군센터 상황에 밝은 한 관계자는 “장 지회장은 센터장 임면 외에 센터 업무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그 임면권 자체가 센터에 휘두르는 권력”이라고 주장했다. 장 지회장이 센터장을 통해 자신을 압박했다는 정씨의 주장이 나올 수 있는 배경이다.

양평군센터 관계자나 주변인들은 양평군지회에 대한 관리·감독을 맡은 경기도 시각장애인연합회나 보조금을 지급하는 양평군이 양평군센터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양평군센터는 양평군에서 90%, 경기도에서 10% 지원하는 보조금으로 운영된다. 

2015년부터 잡음 계속됐다
센터장도 4번이나 바뀌었다

양평군센터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박모씨는 “양평군은 그동안 센터 직원들의 문제 제기에도 별다른 반응이 없다가 이번에 정씨가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니까 그제야 대책을 마련한다고 난리를 피웠다. 정씨의 소식을 듣고 양평군수가 만나고 싶다는 뜻을 전하기도 했다. 사람이 이렇게까지 해야만 움직이는 건가”라고 분노했다. 

경기도 시각장애인연합회도 사건 직후 민원조사단을 파견해 진상파악에 나서고 장 지회장을 센터 업무에서 배제하는 등의 조치를 하면서도 그의 거취에 대해서는 권한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대통령이 선출직인 지자체장을 근거 없이 해임하지 못하듯이 경기도 시각장애인연합회에서도 양평군 지회장을 함부로 인사조치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피해자가 지회장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일정 수준 이상의 형사처벌이 결정되면 그 이후에야 조치할 수 있다는 게 경기도 시각장애인연합회의 입장이다.

경기도 시각장애인연합회 측은 “민원조사단의 조사가 끝났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이사회에 안건을 올려 8월 중순 전에 결론을 내리려고 한다”고 밝혔다. 경기도 시각장애인연합회 회장은 개인적인 의견이라면서 “양평군센터가 지회가 아닌 연합회로 업무를 보고하는 방식을 유지하고, 양평군에 센터와 지회를 분리하는 방안을 건의하려 한다”고 전했다. 

양평군 측은 경기도 시각장애인연합회의 결론을 기다리겠다는 입장이다.

양평군 관계자는 “양평군센터의 운영 주체는 양평군지회고 관리·감독은 경기도 시각장애인연합회에서 맡고 있다. 센터장 임명 과정에서 군의 승인이 필요하긴 하지만 직접적으로 센터 일에 개입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고 말했다.

양평군센터 내부에서 잡음이 끊이질 않는데 보조금 지급 중단 등의 조치를 할 수도 있는지 묻자 “보조금 횡령이나 부당 이용 등의 돈 관련 문제가 불거지지 않는 한 보조금 지급 중단은 어렵다”고 답했다. 하지만 직장 내 괴롭힘 문제가 불거진 진도군 장애인생활이동지원센터는 보조금 지급이 일정 기간 중단된 바 있다.

결국 피해는
이용자에게?

임기 5개월째에 접어든 최 센터장은 “일단 지회가 센터 업무에 관여할 수 없도록 조치가 내려진 부분에 대해서는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센터는 장애인의 이동권을 위해 운영되고 있다. 센터와 지회가 빨리 정상화돼 더 이상 이용자에게 피해가 가지 않았으면 한다”는 뜻을 전해왔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양평군 지회장의 해명 “나 때문 아냐…억울”

지난 2022년 2월부터 경기도 시각장애인연합회 양평군 지회장을 맡고 있는 장모씨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억울함을 토로했다.

정씨의 극단적 선택은 자신이 아니라 현 센터장인 최모씨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정씨에 대한 고소·고발·이의신청은 정당한 행위였다고 강조했다.

장 지회장은 “정씨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전날 이용자의 민원 제기가 있었다. 그 민원에 대해 최 센터장이 정씨에게 블랙박스를 요구했는데 정씨는 ‘블랙박스를 매일 지웠다’는 취지로 답한 것으로 안다. 그에 대해 최 센터장이 정씨에게 시말서를 요구했고 징계위원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그리고 정씨가 그런 선택을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 센터장의 시말서 요구가 정씨를 극단적 선택으로 몰아갔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정씨는 정신을 차린 이후 “최 센터장 때문이 아니다”라는 취지로 여러 차례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센터장 문제 주장

유서에 쓴 대로 장 지회장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다는 것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럼에도 장 회장은 직장 내 괴롭힘은 없었다고 거듭 주장했다. 

장 회장은 “사망한 윤씨의 경우에도 법원이 기각했는데도 불구하고 일부 사람이 내가 윤씨를 괴롭혀 죽게 했다는 말을 하고 다녀서 피해가 막심했다”며 “정씨가(소송에) 낸 사실확인서를 보니까 전부 허위였다. 재발 방지 차원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센터 차원에서 소송이 진행된 것”이라고 말했다.

장 지회장은 정씨의 주장대로 센터장들에게 이의신청을 하도록 지시한 사실이 없다고 부인하면서도 경찰 수사에 문제가 있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장 지회장은 양평군센터에서 정씨를 고소한 사건을 수사한 경찰을 상대로 민원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 장 지회장은 “지금 센터 업무에 전혀 관여하고 있지 않다. 센터가 지회를 건너뛰고 연합회에 보고하고 있는데 이건 말도 안 되는 것”이라면서 “경기도 시각장애인연합회가 내릴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그 이후의 상황은 결정을 보고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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